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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주변산행기

2011.07.29 16:26

덕을 쌓다 - 덕숭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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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 수덕사 - 만공탑 - 정혜사 - 정상 - 견성암 - 수덕사


전국이 장마다.
비를 피해 수덕사가 있는 덕숭산으로 머리를 돌렸다.
조계종 5대 총림 중 하나인 덕숭총림 수덕사.
그간 몇 번을 걸음 하면서도 산행은 오늘이 처음이다.
산사 들어가는 길은 예전과 많이 달라져 있는데 근래 말끔히 정비되어
일주문에서 본체까지 운치 있게 한참 걸어 들어가지 못하는게 아쉽다.
산문을 지나 양 옆으로 빼곡히 우거진 초록길이 서운하게 금강문을 넘고
사천왕문을 지나 박물관과 찻집이 있는 큰 건물 중앙 통로를 질러 오르면
중간 마당에 올라서는데
예나 지금이나 반기는 투박한 돌확 약수가 변함없이 맞이한다.
이른 아침 템플스테이 참가자들이 모여 스님의 설명을 듣고 있다.  

대웅전 마당 오르기 직전 가파른 계단 끝에
고목진 느티나무와 소나무가 몸통과 가지를 석축 아래로 쏟아질 듯 드리우며
덕숭산 끝자락에 매달려 있다.
하늘에 걸린 듯한 이 망연한 풍경을 한참 바라보다 걸음을 옮긴다.
이른 아침 신자인듯한 몇몇 사람만 왔다갔다 할 뿐 널따란 대웅전 앞마당은 한적하다.
대웅전을 뒤로 한채 안개 자욱한 내포 들녘의 원경을 배경으로
제모양대로 틀어진 느티나무와 노송의 적절한 배치가 마음을 가라앉게 한다.
귀퉁이가 떨어져 나간 고탑은 대웅전 앞에서 천 년의 세월을 지켜오고
아직 세월의 관록이 물들지 않은 뽀얀 석탑과 석등이 그 옆에 엉거주춤하다.
대웅전 배흘림기둥은 주름진 노인의 피부처럼 깊게 패여
기름도 양분도 다 빠져버린 미이라가 된채로 몇 백 년의 세월을 지나왔다.
수덕사 대웅전은 주심포 양식으로
간결하고 단아한 절제미가 있으면서도 누추하지도 않고 기품있다.
이삼 미터 높이의 가지런한 석축 기단 위에 올려 더욱 독보적으로 보이는 듯하다.














대웅전을 보고 왼쪽 숲으로 들어가면 덕숭산 산행 시작점이다.
길게 걸쳐놓은 두 토막 석다리가 조그만 계곡을 몇 번씩 가로지른다.
비 온 끝이라 계곡 물은 힘하게 아우성이고 초록은 색소가 터져나올듯 더욱 짙고 푸르다.
수덕사에서 정혜사까지는 돌계단인데
그냥 돌계단이 아닌 대리석, 그것도 공장에서 찍어 나온 상품이 아닌
천 개가 넘는 계단을 손수 정으로 찍어내 일률적이지 않으면서도
나름 일관성이 있는 자연스러운 모양이 수많은 발길에 닳아 다듬어져 있다.
삼사십십 분 정도 오르니 계곡 건너편 숲 속에 근대 최고의 선승 만공 스님께서 머무셨다는
깨끗한 초가집이 눈에 들어오는가 싶더니 눈앞에 커다란 석불이 있다.







만공스님께서 손수 지으시고 머물던 초막과 미륵불이라나.
초가집으로 건너는 다리엔 조그만 기왓장에 출입금지라 써있다.
예쁘장한 한 칸 초가집이 궁금했지만 차마 문턱을 못넘고 그냥 발길을 돌렸다.
몇십미터 위의 아기자기한 해우소를 지나 이어 좀 더 오르니
수덕사에서 800미터 지점에 둥근 우주를  올려 놓은듯한 만공스님의 사리탑이 나온다.
근대 선불교를 부흥 시켰다는 만공스님의 일화는 많다.
계속 이어지는 대리석 돌계단을 오르니 정혜사다.
스님들의 하안거 기간, 문은 닫혀 있다.
뒷문이 조금 열려 있어 고개만 들이밀며 바라보니 안갯속에 고요한 정적이 흐른다.
스님 한분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계시고 그 옆방에서는 둘어앉아 학습 중이시다.
돌아서 산행길로 접어들자니 예전 암자 터에 스님들께서 가꾸시는 채전밭이 나온다.
풀베기 하시는 스님께 정혜사에 들어갈수 없는가 여쭤보니 8월 15일 이후나 가능하다신다.
어느새 등산로는 가지런한 대리석이 없어지고 바위 색깔도 누렇고 풍화토가 되어 바스락 부서진다.
주변엔 잡풀도 잡목도 별로 없고 크지 않으면서도 단단한 노송들이 정갈하게 휘어져 있다.
나무 한 그루 한그루가 선별 해서 자란듯 단정하고 귀히 보인다.









해발 495.2미터.
정상이라 할 수 없는 민둥한 정상이다.
노란 마사토와 혹떼기 바위 사이에 소나무들이 몸을 틀고 있다.
하산하며 다시 정혜사 근처를 기웃거리다 석문 지나 조그만 대문을 살짝 밀어 본다.
군더더기 하나 눈에 띄지 않는 깨끗한 경내에
사그락사그락 발자국 소리가 천둥처럼 크게 울린다.
절간 옆 이끼 낀 바위 옆에 키작은 소나무 한 그루가 빼조름이 자라고 있는 모양이 특이하다.
도둑질하는 사람마냥 몸을 길게 빼고 사진 몇 컷만 얼렁 찍고 나온다.
다시 되짚어 내려오며 미륵불도 찬찬히 둘러보고 견성암가는 길로 하산한다.
진도리가 봉숭아 꽃 담벼락에 길게 누워 오수를 즐기다 한쪽 눈만 뜨고 힐끔 쳐다본다.
참 복 받은 팔자다.









수덕사를 거쳐 덕숭산 정상을 올라 내려오는데
많이 해찰해가며 사색하듯 걸어도 왕복 세 시간이면 충분하다.
하산하여서도 바로 나오지 않고
미술관과 이응로화백의 자취가 어려 있는 수덕여관을 찬찬히 둘러본다.
많은 예술인들의 발길이 지나간 사연도 많은 수덕여관.
몇년 전에 왔을 땐 다 허물어져 가더니 지금은 수덕사에서 인수하여 원형을 복원해놓았다.
이야기로 전해 내려오는 일엽스님과 나혜석, 이응로 화백의 인연을 되새겨 본다.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태어난 여성행동가이자 해방가,
삶도 사랑도 치열하고 신열나게 치뤘던 신여성들,
만공스님은 왜 일엽스님만 들이시고 나혜석을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내공이 깊은 분들의 눈에는 중노릇할 사람과 아닌 사람이 들여다 보이는 건가.
글 또한 망상의 근원이라 했다니 높으신 분들의 심오한 세계를 어찌 짐작이나 하겠는가.
비구니스님 두분이 공기처럼 걸어가신다.
수덕도령의 탐욕스런 마음 때문에 버선꽃만 남기고 사라진 덕숭낭자 이야기는
출가한 여성들을 넘어다보는 속세의 부끄러운 호기심을 차단하며 경계함인가..
엄격한 규율과 끝없는 정진을 통해 저들이 얻고자 하는것은 무엇인가 가늠할 수가 없다.
근원적으로 비극적이고 서글픈 인간의 굴레,
얼마나 수덕해야 오욕칠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옛사람들의 이야기가 싸르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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