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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롤로그

설악의 속살에 들어 걷고싶은 갈망이 일고는 기어이 설악의 심장부로 발걸음을 옮기고야 만다.
산행당일새벽, 
장마비를 닮은 장댓비가 쏟아지기도 하고 어렵사리 계획한 산행일정동안의 일기예보가 불순하다.
악천후에도 자신의 키 높이만한 베냥을 둘러메고 모두들 모여들어 간략한 미팅시간을 갖는다.
계곡의 변화로 루트가 파악되지 않아  알바가 필연일거라는 사실을 주지시키고,
-싸나이 가는 길, 다소간의 무리가 따르더라도 간다- 라는 당연한 결과는 확인작업에 불과하다.
이번산행을 어떤 악천후에서도 진행하겠다는 의지는 이미 베냥속 깊이 패킹되어 있음으로..





비선대에 닿아, 천불동계곡을 향하는 철다리에서 일행을 기다리며 잠시 베냥을 내려놓는데 
베냥옆주머니에 꽂아둔 사진기가 비선대다리에서 계곡으로 자일도 없이 급하강을 한다. ~쑤웅~
'펑'하는 소리에 '르뽀'를 기획한 이번산행의 주무기가 사라져버린다.
결론적으로,  예상한 것보다 훨씬 더 스릴넘치는 알바가 있었기에 더더욱 아쉽다.
설악의 속살 그 심장부에서 맛본 알바는 특별하다. 심마니. 짐승도 다니지 않는 길을 장시간 알바했으니 
그곳에서의 풍광은 먼발치의 주등로상에서 바라보는 풍광과는 사뭇 다르다.
산행초반에 사진기가 박살나  - 알바의 진미를 생생하게 전하지 못한다는 점이 가장 아쉽다 -


비선대의 적벽
물기젖은 암벽을 오르는 의지 강한 바윗꾼이 있어 발걸음을 더욱 가볍게한다.





2. 설악의 속살에 들어

설악의 속살로 들어선다.
계곡을 따라 오르기도 하고 계곡 우측 등로를 따르기도 하며 설악의 속살을 헤쳐나간다.
좌우골 합수점에서 간단한 요기를 한 후, 비가 오다말다 오락가락하기도 하고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짙은 안개가 시야를 가리기도 하지만 산행하기엔 더없이 좋다.
출발을 포기했다면 두고두고 후회했을거란 말들이 이구동성으로 터져나오고..





이쯤들어 천화대에 대한 부연설명을 않을 수 없다.
天花臺 
그 이름만으로도 그 의미가 설명되어지는 천화대는 설악골과 잦은바위골 사이의 범봉능선에서 천불동으로 
이어져있는 참으로 빼어난 암릉이다. 
천화대의 지존 범봉에 서면 그 조망이 황홀하기까지 하다. 천화대는 여러갈래의 지암능을 거느리고 있는데 
흑범길, 염라길, 석주길, 청화길등이 이곳 설악의 속살, 설악골에 그 들머리를 두고 있다.




그중 하나인 석주길을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천화대의 왕관봉과 범봉사이에 성곽처럼 뾰족하게 생긴 암릉이다.
1960년대말, 의형제이자 자일파티인 송준호와 엄홍석은 설악의 여러 루트를 개척. 초등한다.
엄홍석이 연인인 신현주와 천당폭에서 빙벽을 오르다 둘은 함께 산화하고 만다.
이에 송준호는 천화대에 바윗길을 개척하며 초등하여 친구와 친구연인의 이름을 따 '석주길'이라 명명하고
자신도 몇년뒤 토왕성폭에서 빙벽을 오르다 실족하여 먼저간 두친구를 따라 떠난다.

 


3. 안개에 갇히다.

좌골로 접어들어 좌측 등로를 따르기도 하고 계곡을 치고 오르기도 한다.
이곳은 바윗꾼들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는다. 그들은 모두 설악골에 숨겨진 보물들을 알았기 때문이다. 
설악을 찾는 산꾼이라면 꼭 올라보고 싶어하는 천화대와 천변만학의 풍경을 자랑하는 흑범.염라.석주등의
보물들이 숨어 있기에 늘 분주하다. 
자연이 펼치는 풍경은 언제고 같은 법이 없다. 늘 새롭게 변하기에 같은 풍광을 내미는 법이 없다. 
때문에 그 많은 사람들이 설악가가 울려퍼지는 이곳을 찾고 잊지 못하는 것일게다.
계곡을 치고 오르는 그 뒤에서, 그 좌에서 우뚝하게 솟아 등불 밝혀던 암봉들은 아예 존재해본 적이 없었던 것
처럼 보이지 않고 주위 풍광은 물론이고 지척을 구분하기 어려운 안개가 자욱하다.
길을 놓치지 않으려 신경을 곤두세워보지만 계곡은 또 다른 모습으로 옛 흔적들을 지워버리고 있었다.











4. 길을 잃다

인간의 마음에 두려움이 스며들면 인간은 세상에 존재하는 동물 중 가장 나약해지고 만다.
길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주는게 바로 리딩의 출발이라 늘 생각하고 말해주고 있다.
이미 나는 길을 놓친 걸 안다.  그들도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강하다. 
두려움 대신 그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그 장시간동안 그들의 마음에 두려움이 없진 않았으리라. 
루트파운딩을 하고 길을 리딩하며 여러가지 경우의 수를 머리속에 그려가며 어느 순간 결정을 해야 하는 
나는 더했다.  그러나 그 상황을 즐길수 있는 우리는 강했다.
하늘만이 울릴수 있는 종, 범봉으로 향하는 길을 이미 놓친걸 알았지만 1275봉 안부로 바로 닿는 까치골의
뚜렷한 길을 확인하고도 그 길을 버리고 우리의 목적지를 향해 길을 다시 털었다.


예상보다 알바의 상황은 훨씬 더 길고도 혹독했다.


심마니는 물론이고 짐승조차 오르지 않는 벼랑 길을 잡목을 헤치며 나아간다. 
무거운 베냥을 메고 발디딤조차 없는 길을, 한치앞도 분간하기 어려운 길을  함께 헤치며 나아간다.
일순 구름이 잠시 걷히며 좌측으로 두개의 능선너머로 천화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두려움마저 즐거움으로 극복하며 올라던 벼랑 길을 너머 다시 계곡길을 따라 치고 내려선다.
보이지 않는 길을 오직 감각에만 의존할 뿐이다. 그간 산행지에서의경험, 일행들에 대한 믿음,  
그만으로도 충분하다.
험로를 헤치는 동안 어느누구도  단한번도  '길이 맞느냐' '빠져 나갈수있느냐' 어떤 의아심도 표하지 않는다. 
연륜과 탄탄한 산행경험을 소유한 그들임에도 묵묵히 뒤를 받치며 따르고 있다. 내공의 힘이다.
그렇게 기인시간을  험한길을 헤치다보니 설악이 드디어 자신의 속살을 내어준다.
구름이 걷히고 풍광을 즐긴다. 언제던 등로 먼발치에서 즐길수 있는 풍광이지만 그 풍광 바로 지척에서
바라보는 지금의 이시간은 다시는 오지 않을 것임을 우리는 안다. 

바로 지금 이시간, 이 자리에,  우리는 설악의 가장 깊은 곳에 안겨있는 것이다.
구름이 걷히고 풍광을 즐기다보니 걱정은 어느새 환희로 바뀌어져 있고 길에 대한 확신도 선다.
내려서던 계곡길을 멈추고 또 하나의 능선을 트래버스로 넘어서자 범봉으로 향하는 사태길이 나타난다.

 

우측으로 오르면 1275봉 안부에 닿는다.  이곳에서 좌측 능선으로 올랐다.




알바지역에서..
공룡의 맹주 1275봉에서 흘러내리는 암봉군





5. 사태골


눈앞에 펼쳐진 범봉 아래 사태골은 생각했던 것보다 심각한 상황이다. 
사태 지역이 범봉 아래에서 시작해 1km이상은 될 듯했다. 흘러내리는 돌들로 길이 험하다 보니 
아예 능선을 넘어 다시금 계곡으로 떨어지게 예전에는 없던 길이 만들어져 있었다.
알바없이 계곡에서 올라쳤다해도 방향을 사태골 우측의 숲으로 돌려야 했을 것이다.
설악이 앓고있는 몸살, 그 현장에 있자니 마음이 착잡해져 온다.








6. 범봉에 닿다.

이제야 설악은 제 모습을 드러낸다. 발아래 놓인 세존봉과 구름사이로 외로운 섬처럼 홀로 남은 울산바위,
잦은바위골과 칠형제봉 너머로 더욱 돋보이는 화채능선, 코앞에서 위용을 드러내는 공룡의 맹주 1275봉등
순간의 역사로 사라진 풍광들을 만들어낸다.
어쩌면 이 풍경들의 감흥을 얻기 위해 그리도 긴 수풀의 터널지대를 기어올라야 했는지 모른다. 
고통이 크면 그만큼 기쁨도 큰 법이다. 
한참을 안부에 앉아 삼매경에 빠져든다. 보이는 것은 모두 산수화에 등장하는 준봉들이며 굽이치는 올랐던 
골은 그 그림의 중앙을 가로지른 폭포처럼 느껴졌다.

길을 헤매느라 식수를 미처 준비하지 못했다. 해가 떨어지기 전에 물을 구하기위해 공룡샘터로 향한다.
공룡옛길이 나타나고 1275봉 앞에 있어 전봉. 전위봉이라 불리던 노인봉에 닿는다. 
노인봉의 머리위에는 사람 발자국과 꼭 닮은 거인 발자국이 있다.
그리고 이번산행의 내게있어 하이라이트, 솜다리(에델바이스)군락지를 찾아 그들과 한참을 눈마주침한다.
무거운 베냥을 벗어던지고 해 떨어지기 전에 돌아오리라 해서였는지 급하게 치고 올랐던 길을
물을 구해 돌아가는 길에 올라왔던 같은 길임에도 길위에 서서 길을 잃는다.
지형을 살피니 이 길을 계속 내려서면 잦은바위골로 들어서게 될것만 같다. 이미 해는 떨어져 버리고
긴장이 풀어져서인지 길에 대한 확신도 떨어진다.  랜턴도 없이 비를 머금은 풀잎에 젖어가며 
같은 길을 서너번을 오르내리다 안부에서 마중나온 일행의 랜턴빛을 보고서야 같은 길에서 방황했음을 
알게된다.  조금전에 올라왔던 똑같은 그 길이 왜 그리 낮설었을까
길에 대한 확신, 곧 경험과 준비에 의한 확신이다. 산행에 있어서는 그 확신이 함께한 모두의 확신이 되어져야 
한다.

우리는 그렇게 하나의 팀이 되어있었다.

 
 
하늘만이 울릴 수 있는 종, 
범봉


섬이 된 울산바위


잦은바위골, 칠형제봉과 화채능선상의 화채봉





7. 범봉과 함께 한 하루밤

범봉에서의 하루밤, 산을 찾는다고 해서 모두에게 주어지는 기회는 아니다.
이는 특권이다. 우리는 그 특권을 누릴 자격을 갖추었다.
그 무거운 배냥을 메고 계곡을 헤치고 발디딤 하나 없는 숲을 헤치며 돌이 굴러 떨어지는 사태길을 헤쳤다.
설악이 자신이 가진 모든걸 토해내고 있다.
마음의 때를 씻겨내라고 비도 뿌려주고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라며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깨우침을 주고자 구름속에 암봉들을 숨기기도 하고 무기체인 암봉들을 살아 꿈틀거리게 하는 운해도 주고 
그토록 짓궂은 날씨속에서도 잠시동안 밤하늘에 영롱한 별빛도 주었다.
바위틈에서 비에 젖은 원추리, 앵초등을 비롯 산내음 그윽하게 담은 산라일락 내음도 주었다.
암봉틈의 솜다리(에델바이스)와의 눈마주침은 이번산행에 있어 내게 가장 큰 소망이었는데 그도 주었다.

2동의 텐트가 호텔보다 아늑하게 펼쳐지고 한잔 술에 설악가를 목젖 울리게 불러가며
범봉호텔에서의 하루밤은 구름을 타고 바람을 따라 그렇게 설악의 한페이지로 장식되어질 것이다.



솜다리



범봉호텔





8. 공룡능선

공룡능선, 
산에 든 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다녀오고 싶어하는곳. 이곳을 한번 다녀가기위해 얼마나 많은준비를 하고 
공룡의 문앞에서 끝내 문을 두드리지 못하고 천불동으로 발걸음을 되돌리며 다음 기회를 엿보고자 하던
산객들이 그 얼마나 많았는가.
암봉을 오르내리고 미끄러져 구르기도하며 길위에 서서도 고도감에 쉬이 발걸음을 내딛지 못하던 그 길,
자신에게 도전하는 자, 땀흘린 자에게만 그 위용을 드러내며 자태를 뽐내는 공룡의 중앙에 자리한 맹주 
1275봉은 그 얼마나 감격이었는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있는 그대로 보는 법을 말없이 가르치고 있는 공룡,  
우리산하에 우뚝 솟아  더많은 산객이 자신에게 도전하길 기다리며 땀흘리고 지친 몸을 절경으로 감싸주고
성취감을 안겨줄 공룡능선과 공룡의 맹주 1275봉은 언제나 감동이다.

 

 

의연한 공룡


공룡옛길에서..





9. 천불동계곡

내기 하나 할까??
천불동계곡보다 멋진 곳을 아는 사람.
천불동계곡을 보라.
눈을 크게 뜨고, 자신이 걷는 길을 보지말고 계곡을 생성시키고 있는 그 암봉들을 하나하나 보라
천불동을 이루고 있는 암봉들과 그 투명한 물이 지나는 깊은 골을 보라 
이번산행에서 천불동골을 걷고 싶었다.
사람이 도저히 지날 수 없는 폭포와 담소를 만나면 길로 우회했다가 다시 골로 들어가며 그렇게
천불동계곡을 따르고 싶었다.
이것이 소망에 불과하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래서일까 헤아릴수도 없이 드나들었던 그곳이 다르게 느껴져왔다.
눈에 잠시 담고 스쳐지나던 그 암봉들, 맑디 맑은 물이 지나는 계류의 골골 담소 하나하나,
천불동의 골은 그렇게 설악을 벗어난 지금도 내 안으로 흐르고 있다.

 





10. 에필로그

일행의 지인이 운영하는 오색에서의 산채비빔밥, 
머루엑기스과 한잔 술은 설악에서의 피곤을 싸악 씻겨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일상으로 돌아오는 길에 한치 앞도 구분할수 없는 장마비보다 더 강하게 쏟아지던 장댓비,
경기도로 들어서자 비가 언제온 양 시리도록 아름답게 밤하늘을 내내 수 놓았던
초생달과 별빛하나.

 
아~ 산도 일상도 감격스러웠던 그 시간,

 
멋진 산사나이들과
같은 길을 함께 걷고 함께 웃으며 함께 땀흘리고
역경과 즐거움을 함께한 그 시간,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설악에서의 이틀이었다.


 
바위산꾼 1세대들의 추억어린 양폭산장

  • ?
    선경 2010.08.29 00:29
    역경을 헤치고
    아름다운 운무속에서 그리고 어여쁜 솜다리의 미소속에
    설악의 멋진사나이들의 산행~~~
    추억의 뜰안에서 오래 오래 행복의 시간을 안겨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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