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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정진원의 지리산이야기

정진원 프로필 [moveon 프로필]
산 이야기
2002.02.25 14:31

뜻하지 않은 만남-牛飜庵 그 스님

조회 수 3906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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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하지 않은 만남-牛飜庵 그 스님

6개월만의 지리산행의 목적지는 당초 묘향대였다.
성삼재에서 종석대로 오르는 길은 처음에는  플래쉬를 켜야 할 정도였다. 능선에 오르자 노고단 위쪽 하늘은 아침노을이 붉다. 동양화의 여백처럼 아침 안개가 멀리 조망되는  첩첩산중을 에워싸고 있다. 밝아오는 黎明으로 안개에 쌓인 그 산들의 색이 미묘하게 변해간다. 시시각각 변하는 저 빛의 오묘한 변화-그것을 말로 표현할 재간이 없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하여 침묵할 지어다.

노고단 위로 드디어 아침해가 모습을 드러내자, 태양의 직사광선은 맞은 편 서북면쪽에 아직 흰 눈을 머리에 이고 있는 만복대 정상을 맨먼저 비추는 것이다. 햇빛은 頂上에서 부터 아래로 내려오며 산모습을 새로이 드러낸다. 화엄경의 위치를 아침해가 맨먼저 산봉우리에 비추는 것에 비유했던 것이 바로 저것이구나!

종석대, 노고단을 지나 임걸령에 도착하니, 1년 6개월 전의 모습과 많이 변했다. 졸졸 흐르는 샘물소리 밖에 들리지 않던 그 靜寂은 얼마후 두 老夫婦 등산객 소리로 깨졌다. 이윽고 다른 일행들이 몰려든다. 길을 재촉하여, 반야봉에 올랐다. 삼도봉 쪽 입구로 오른 후 표지판 있는 곳 오른쪽 길로 산허리를 감고 가라 했는데, 눈밭위에 사람 흔적이 전혀 없다. 계속 올라가니, 반야봉 올라가는 철계단. 결국 반야봉에 먼저 오른다. 몇 년전 늦가을에 올랐을 때 그 무섭게 파랗던 하늘빛은 아니다. 황사 아니면 엷은 구름 때문일까? 그러나 바람 한점 없는 따뜻한 날씨는 정상에서 사위를 조망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半球로 된 하늘을 엎어 놓은 한가운데 해가 떠 있고, 나는 그 바로 밑 땅위에 앉아 있는 기분이다.  靑天白日.
늘 이곳에 있을 것 같은 생각. 그러나 그 생각조차 여읠 때, 비로소 만남은 이루어지는 것일까? 그렇다면 평생동안,  만남의 인연은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하긴, 부처님께서도 인연 없는 중생은 어찌할 수 없다 하시지 않았던가.

중봉 무덤 지나 묘향대 가는 길도 흔적이 없다.  눈 위에는 짐승들의 발자국이 심원이나 달궁 가는 길목의 사람 발자국 들과 뒤엉켜 있을 뿐이다. 초행길의 무리를 할 엄두가 안난다. 6 시에 달궁에서 일행들과 합류하기로 했기 때문에 시간에 맞추려면, 묘향대 찾는 일은 포기할 수 밖에.  사람 발자국과 나무에 매달린  표지를 보며 달궁으로 하산. 얼음골 지나 개울을 가로질러 차도로 나올 때까지 한 사람도 없다. 계곡에 고로쇠 채취용 비닐 봉지가 눈에 띌 뿐이다.  달궁에서 일행과 합류.

이튿날, 노고단 까지는 가본 후 귀경하기로 했다. 전날 오후 노고단에 갔던 몇몇과 나는 뒤로 쳐지다가, 무냉기 능선으로 해서 종석대에 오르기로 했다. 산죽 길 옆에 왠 물통 두 묶음이 놓여 있다????  한참 오르니 저 앞에 왠 스님 한분이 등에는 큰 바랑을 지고, 양손에는 비닐 봉지 큰 것을 들고 어렵게 오르고 있다.

스님, 짐을 놔 두시면, 저희들이 들어 드리겠습니다. 어디까지 가십니까?
우번암이오.
우번암이요?!!!
우번암을 어떻게 아시오?
글에서 보았습니다.
짐을 거기까지 들어다 주면, 시원한 물을 대접하겠소.

노고단에 미리간 일행들도 이곳으로 오도록 연락하고,  우리는 우번암에 먼저 도착했다.

스님께서 이곳에 이십년 동안이나 계셨습니까?  
그걸 어떻게 아시오?
...................................

스님이 직접 채취하였다는 고로쇠 물로 목을 축인 후, 석간수는 어디 있느냐 했더니, 뚜껑을 열고 보여준다. 다시 석간수 한 모금씩 모두 마셨다.
뒤따라온 일행들 몇과 법당에 들어갔다.
촛불을 켜고,
향을 사르고,
백팔배를 올렸다.

스님은 옆방을 보여준다.
벼루에 갈아놓은 먹물이 아직 마르지 않았다.
붓글씨도 쓰십니까?
가끔 쓰지요.
벽에 걸린 사진을 보라 하신다.
노고 雲海, 하늘이 온통 붉게 물든 落照, 가지 끝에 얼어 있는 얼음이 역광에 반짝이고 있는 숲속, 그리고 눈밭에서 좌정하고 앉아 참선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 모두 스스로 찍은 것이란다. 雲海사진을 가리키며, 저 광경은 무한한 시간 속에 딱 한번 밖에 볼 수 없는 유일무이한 모습이란다. 한 순간의 유일무이함!

우리같은 세속의 인간들은 처자권속을 거느리는 일조차 힘들어 하는데,  도대체 道가 무엇이길래, 이렇게 괴로운 수행을 하시는 것입니까? 중생을 제도하시려고요?

당돌한 질문. 물론 괴로운 적도 있었지만, 그 괴로움이 즐거움이 되더란다.
우번암의 유래를 설명하며, 수월스님 일대기를 쓴 저자가 언젠가 다른 스님 안내를 받고 이곳에 와서 하루를 묵고 갔단다.

성불하십시오.
합장후 작별하고, 우리 일행은 상선암 쪽으로 하산.

"道에 무심하면, 도는 저절로 얻어 지지만,
뜻을 두고 사람을 대하면, 사람은 점점 멀어지지....." (관휴)

  • ?
    parkjs38 2003.10.21 21:49
    "道에 무심하면, 도는 저절로 얻어 지지만, 뜻을 두고 사람을 대하면, 사람은 점점 멀어지지....."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맘 꽤뚫어본... 이런 진리와 그 실체를 찾으러 그리 돌아다니셨습니까... 이젠 신비주의라 장난같이 놀려댄 것 그만 두겠습니다. 항상 그 깊은 뜻 알고 있으면서.. 괜히 친해지고자 그리 장난친 것.. 용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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