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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네 번째 실직,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제1절 가벼운 듯 무심한 듯 짐을 챙기고

 

네 번째다. 2003년 10월 이후 네 번째다. 2015년 2월 10일부로 네 번째

백수가 되었다. 첫 번째는 내 나이 만으로 41세를 갓 지난 즈음, 이번은

53세 하고도 몇 달이 더 된다. 이번도 예상치 못한 것은 아니지만 제대로

대비하지 못했고 또 당분간 고단한 시간을 보내야 한다. 일이 닥치기 3일

전에서야 아내에게 알렸다. 반응은 아주 단순했다. “계속 일할 거지?”

 

세 번에 걸쳐 길게는 1년, 짧게는 4개월 정도의 공백을 두고 다시 일자

리를 찾아갔으니 어쩌면 이런 반응이 무리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날이 나이는 늘어만 간다. 1962년생, 범띠, 81학번. 27개월 군대 생활

을 한 동기들은 대부분 1987, 88년에 직장생활을 시작했으니 금년이면

27~8년. 2003년과는 달리 이제는 그리 드물지 않게 하나둘 물러나기

시작했다. 누구나 자신에게 닥친 일은 늘 특별하지만 이번은 그래서 더 녹록해

보이지 않는다.

 

특별한 난관을 헤쳐 가기 위해서는 특별한 처방이 필요하다. 2003년 처음

일자리를 잃었을 때는 오대산 월정사의 템플 스테이에 참가했었고

이듬해 여름에는 처음 2박 3일간 지리산을 종주했다. 지금 상황이 어느

정도 확정되었던 연초, 강릉에서 절을 지키고 있는 고교 5년 후배 - 이

후배 스님은 둘레길을 걷는 동안 두 번째 위문 공연자가 되어 하동 위태

마을을 방문해 주었다 - 가 지키고 있는 절을 찾아 이틀을 묵으면서 절

근처에 있는 칠성산과 태백산을 다녀왔다. 이날 동행했던 다른 고교 1년

후배와 혹 시간이 나면 지리산 둘레길을 한 번에 모두 걸어 보는 것도 의

미가 있겠다고 말을 나누었는데, 사실 깊은 생각이나 의지를 가지고 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예상대로 나는 2월에 직장을 떠났다. 한 달 뒤부터 세 번째 백수 생활이

예고되었던 2007년 3월 초 뇌졸중으로 10년 반 동안 자리를 보전하시

다 세상을 떠나신 선친의 기제 등 이런저런 사정을 감안해 기제를 모시

고 바로 떠나기로 생각을 굳혔다. 날짜를 정했으면 동행을 찾는 일이 다

음 순서. 다만 이번 여행은 정보도 그리 많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정처 없

이 마냥 걷는 완상(玩賞)이 목적이라 예전 비슷한 일들을 할 때처럼 충

분히 자세한 정보를 찾아보고 상세한 계획을 세워 볼 생각이 애초에 없

었다. 그렇게 준비해서 충분한 정보를 미리 확인했다면 성공에 대한

두려움으로  선뜻 이 길을 나서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나는 이 여행을 떠나기 전날 밤 8시부터 15일 치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약간 취기가 오른 상태에서, 주말 등산길 나서 듯 그렇게 덤덤하게 준비

했다. 원래 그런 성격은 아니다, 특히 여럿이 움직일 때는. 선택의 제한

이 없을 때는 매 끼니 메뉴와 식당까지 결정하고 길을 나서는 성격이다.

첫 번째 백수생활이 예고되었을 때는 미국 이민을 결심했었고 그래서

생을 함께 나눌 수 있는 한 친구 가족과 모두 7명이 남도로 이별 아닌 이

별 여행을 떠났을 때는 행선지는 물론 매 끼니의 메뉴, 식당까지 결정하

고 모두 계획대로 진행했다. 그런데 이번은 그냥 무심하게 이 일을 저지

르고 싶었다. 아니 가벼운 듯, 무심한 듯 보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가

족들에게 스스로에게. 그러나 속내는 무척 무거운 걸음이었다. 혹시 완

전히 다른 삶을 살 수 있을지를 시험하는 길이기도 했으니.

 

아마 작년이지 싶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보다 많지 않다는 생각

이 불현듯 들어 죽기 전까지 하고 싶은 일, 소위 버킷리스트(Bucket List)

라는 것을 작성해 보았다. 사막에서 하룻밤, 컨버터블 카(convertible

car)를 몰고 아우토반 달리기, 일본의 료칸에서 하룻밤 묵기 그리고 스페

인의 산티아고 걷기 정도.

 

2007년 우연히 접한 책 한 권이 있다. 프랑스 언론인 베르나르 올리비

에가 쓴 ‘나는 걷는다’. 장장 4년 - 한겨울에는 걸을 수 없는 곳이니 엄밀

하게 말하면 4년을 내리 걸은 것이 아니라 매년 초봄부터 늦가을까지 4

년에 나누어 - 에 걸쳐 터키 이스탄불에서 중국 시안까지 실크로드를

걸어서 간 도보 여행기. 이 시기는 내가 세 번째 백수 생활을 하던 때였

는데 이후 ‘걷는다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화두에 갇혀 유사한 소재의 책

들을 섭렵했다. 이런 방법은 일종의 내 독서법이기도 하다.

 

1984년 20대 후반의 여자의 몸으로 부산 금정산에서 진부령까지 태백

산맥을 76일에 걸쳐 홀로 종주한 남난희가 쓴 ‘하얀 능선에 서면’, 미국

동부 애팔래치아 트레일(AT) 3,489km를 111일 동안 걸어간 프랜시스

타폰(Francis Tapon)의 ‘너만의 길을 가라’, 요즘 한창 우리나라에서

과히 열풍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주목을 받고 있는 스페인의 산티아고

종주기인 김효선의 ‘산티아고 가는 길에 유럽을 만나다’, 그리고 최근에

읽은 미국 서부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PCT) 4,285km를 3개월 이상

걸은 셰릴 스트레이드(Cheryl Strayed)의 ‘와일드’까지.

 

그때 가졌던 화두는 ‘걷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잘 걷는다는 것은 명제

일 수 있을까?’ 정도였고 언제 기회가 된다면 치열하게 한번 걷고 싶다는

정도였다.

 

다른 계기도 있었다.

지난 여름 고등학교 동기생 4명이 - 이 중 한 명은 이번 여행에도 함께

했다 - 2박 3일에 걸쳐 중산리에서 시작해 성삼재에서 끝내는 지리산

종주 - 내 기준으로 하산의 고통을 피해 갔으니 본격 종주로 인정하기

는 어렵고 80퍼센트 정도는 된다 - 를 마치면서 2032년, 칠순 이벤트

를 지리산 천왕봉에서 여는 것을 행동강령 1호로 하는 ‘칠천회(七天會)’

를 결성했다. 그런데 금년 초 15년 선배(만 68세)를 만났을 때, 4월 초

그분의 3년 선배 두 분과 함께 스페인 산티아고 콤포스 텔라를 걸으신다

는 이야기를 듣고 도대체 천왕봉에서 칠순 기념행사를 한다는 것이 목

표가 될 수나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여, 함께 첫 백수시절 미국으로

이민가기로 마음을 먹고 두 가족이 함께 이별 여행을 떠났던 고교 동창

친구에게 다짜고짜 산티아고 가는 날부터 정하자고 들이댔다가

“가톨릭 신자도 아닌 놈이 지리산이나 제주도 먼저가라.”라는 타박을 듣고는

마침내 이 여행을 결심하게 되었다.

 

마지막 이유

이 상황을 헤쳐 나갈 힘이 필요했다. 고정적인 수입이나, 일정하게 찾아

갈 자리, 명함이 없는 상태를 백수로 정의한다면 이번이 분명히 네 번째

다. 그때마다 나는 특별한 시도를 통해 분위기 전환은 물론 스스로에게

용기를 불어넣는 전환점을 만들었다. 장기 가족 해외여행, 지리산 종

주, 산사 생활, 엄청난 양의 독서 등. 이번에는 위에 언급한 이유에 더하

여 지난 세 번에 비해 나이가 많아졌음을 감안한다면, 하루라도 서둘러

자신감을 보충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 덜 준비된 상태에서 길을 나

서게 되었다.

 

이 책은 유명 온라인, 오프라인 서점에서 판매 중입니다.  
사진이 포함된 원고는 페이스 북 '백수라서 다행이다(
https://www.facebook.com/baggsu/)' 에서 볼 수 있습니다.

  • ?
    위동량 2016.10.31 12:32
    백수가 반복 될수록 나이를 더해가니 그 절박함이란...
  • profile
    나그네 2016.10.31 14:13

    그렇지요. 이 번일까, 다음일까, 마지막은?

  • ?
    청솔지기 2016.11.01 09:35
    간혹은 ,
    나도 백수가 다행이라고 여겨질 때가 있습니다.
    연재되는 글 작품,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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