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는 섬진강

by 야생마 posted Mar 04,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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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나의 봄은 섬진강에서 시작 되었습니다.
매화꽃이 피고 산수유가 뒤따라 노랗게 물들이기 시작하면
그제서야 제 마음속에 봄빛이 들기 시작했었지요.

작년 봄. 은근한 추위가 뼛속을 시리게 하던 런던에서
간절하게 봄을 갈망하던 순간이 떠오릅니다. 수줍게 싱그럽게 피어오른
크로커스를 보고도 봄을 느끼지 못하고 하이드파크 산수유로 착각한
생강나무 꽃에서 봄을 맞아야 했던 조금은 애달펐던 봄.

아~ 처음 맡아보는 것도 아닐텐데 매화향이 이렇게 좋았던가요.
취하고 취하고 또 취하고 정말 너무도 좋습니다.
해마다 섬진강의 봄은 아름다웠지만 올핸 더욱 유별나네요.

여행이란...굉장히 손해보는 일이지요.
싸고 맛있는 집을 알게되고 단골이 되면 공짜 차도 가끔 얻어마시고
길도 익숙해지고 친구도 생기고 암튼 여러가지 살기 유리해지고 편리해질때
짐을 싸야 하지요. 세상에서 가장 살기좋은 이곳에서도...
나의 봄은 시작과 떠남을 의미하기에 매화향은 더욱 향기로운가 봅니다.
사실 진짜로 손해보는 것인가 생각해보면 웃음이 나지요.

그나저나 무슨 비가 이렇게 많이 쏟아지나요.
"매화마을에나 가지.. 이 세찬 빗속에 그곳에 뭐 볼게 있다고 가나"
오늘 아침 여관방 할머니의 말씀에 크게 웃으며
"하동매화가 이렇게 예쁜데 뭐하러 그곳까지 가요.
이름이 너무 예뻐서 가보고 싶네요."  

그렇게 빗속에 올라간 섬호정에서 몸과 마음이 다 젖어 버렸습니다.
그 분의 시, 노래, 구품연지춤, 지리를 닮은 넉넉함과 열정...
그런게 어디에서 나오는지 조금은 알 수 있겠더군요.
불암산도 금오산도 빗속에 가린 섬진강 내려다보니 그리움이 쏟네요.
선생님~ 너무도 뵙고 싶습니다. 눈물 날뻔 했어요.

정말 얼마 살진 않았지만 이 X의 인생이란 도대체 뭔가요...
시장안에서 저녁을 먹고 지난날의 오브넷,
눈팅만 하던 그때를 잠깐 들여다 봤는데
소박한 찻상이 놓여 있는듯한 애틋하고 살뜰해 보이는
그 옛날의 오브넷 분위기가 참 멋스럽네요.

'오브'에서 '하해'로 이름이 바뀌던 그 당시 나누던 대화들이 참 예쁩니다.
그 때 함께 하시던 분들 대화도 참 아름답구요.
하해님께서 요샌 왜 그 아름다운 말씀들을 많이 안하실까...
제가 찾을때면 꼭 안보이시고...바쁘신지 생각이 많으신건지...
저와 이미지나 어떤 품격이나 수준이 현격하게 다른 부류이신데
이 공간에서 함께 하는게 신기롭기도 합니다.
방까지 하나 꿰찼으니 이게 무슨 조화인지요.

빗속의 청승인지 지금 제가 무슨말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매화향에 너무 취했나 봅니다. 매화향기 이젠 잊지 않으리라.
하동에서 화개, 불일폭포까지 걸을려고 했는데 평사리에서 주저 앉았네요.
아름답습니다. 섬진강 강줄기따라 가는 길...영원히 잊지 못할 길.


섬진강四계 <강물 >
-섬진강소견-

- 오영희-

산매화 피는 소식에
열 굽이 돌아 온 강물
벽소령 넘다 쉬어가는
흰 구름을 불러서
산철쭉 붉게 타면 만나자
소리치며 흐른다.

강물따라 늘어선 벚나무가지 틈새로
물비늘 반짝이면 뒤채이는 물살
평사리 머뭇거리며 봄빛 싣고 흘러간다.

바람은 돛을 달고 매화향을 실어가고
작설차 다담나누며 섬진강은 흘러간다

오랜 삶 이끼로 잠겨
그 물빛이 수척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