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보스톡에서...

by 야생마 posted Nov 02,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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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횡단열차는 아주 정확하게 역에 정차를 하고 도착을 하는군요.
동해바다 물결치는 연해주 블라디보스톡에 와 있습니다.
기차가 동쪽으로 달릴수록 구름은 걷히고 파란하늘이 보여지네요.
밤엔 별들이 무수히 많고 정말 지평선 바로 위에도 떠 있답니다.

비용아끼려 6인실 개방칸을 이용했는데 두 명의 차장아가씨가
함께 가며 청소도 하고 먹을것도 팔고 관리를 하면서 가는데
정이 들게 마련이지요. 우리나라 무척 좋아하나 보던데...
그리고, 옆자리 뒷자리 러시아인들과도 친해지고 재밌어요.
마실것도 나누고 자기가 좋아하는 연주곡 테이프도 선물로 주구요.

참, 이르쿠츠크에서 기차를 타고 출발하면 두시간 정도 지나면
바이칼호수가 나오는데 그때부터 5시간이 넘도록 기차가 달려도
호수가 계속 나옵니다. 아름답지만 정말 징그럽더군요.^^  
호숫가 간이역에 기차가 서면 그 어물?을 또 사서 컵라면과 함께
식사를 했죠. 중국인들이 많은데 밥을 싸와서 맛있게 먹더군요.
자작나무 숲들은 추운 지방에서 안쓰런 마음 자아나게 합니다.
마치 잔뿌리 많이달린 콩나물 거꾸로 세워놓은듯 하얀 몸통이 안쓰럽죠.

또, 제겐 잊을 수 없는 만남이 이뤄졌는데요. 처음엔 중국인인줄 알았어요.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맨 끝에 자리잡고 있던 이들이 북한사람들 이라는걸
알게 되었고 제가먼저 인사를 하고 악수를 나누는데 뭔가 북받치는게...
그 사람들 눈가에도 눈물이 조금 번지더군요. 순박한 사람들...

핵실험 얘기도 나눴는데 그 사람들 이제 남조선도 걱정 말라더군요.
자기들이 미국을 막아준다고...왜 걱정하냐고 남쪽에 쏠일은 없는데...
이제 통일만 하면 된다네요. 서로 체제를 유지하면서...
저는 여러가지로 반박을 했겠죠. 남한에도 핵이 있다없다 참...
중요한건 남한을 미워하지 않고 통일을 원한다는 거에요.
주변사람들 다들 그렇게 생각한다고 합니다.

요즘은 형편이 괜찮다네요. 몇년전엔 엄청 어려웠다고 하구요.
우리가 보내준 쌀이며 옷, 신발들 잘 받았답니다.
남한이 잘산다는거 모두가 잘 알고 있다고 하구요.
그러다 갑자기 제 여행얘기가 나왔고 경비가 미화로 어느정도냐 묻길래
생각없이 얘길했고 순간 그들의 표정이 뭔가 말을 잃은 체념적인 표정으로...

아차 하면서 제 속도 까맣게 타들어 가더군요. 내가 팔자가 좋아서
이렇게 다니는게 아니고 정신 못차려서 그렇고 돈 아까워 영국에서
뼈빠지게 일해서 여행경비 반이상을 복구했다고 바로 얘길 해주었죠.
남쪽이 돈을 많이 벌지만 그만큼 물가도 비싸다며 위로를 했습니다.
정말 그 표정을 잊을수가 없군요.

하바롭스키에 가까와지면 광할한 벌판들이 괜히 낯설지 않게 보입니다.
화전을 일구는지 엄청난 불길에 놀래기도 하는데 그 밑으로 만주벌판이겠죠.
이거 다 원래 우리땅 아니냐고 그랬더니 두 사람 쓴웃음 지우며 고개 끄덕입니다.
연해주는 어떻구요. 그런데 그 좁은땅에서 옥신각신 하고 있으니...

마지막밤 늦게 만나게 되어서 많은얘길 못 나눴지만 꼭 다시 만나자고
평양냉면 먹고 묘향산 같이 가보자고 그러니 꼭 건강해야 한다고
꼭 돈이 많아야만 행복한건 아니잖냐고 밝은 마음으로 살자고 맥주로 건배했습니다.
최형! 익형! 꼭 다시 만납시다. 자유롭게 왕래할 날이 오면 묘향산 같이 갑시다!
지리산에서 묘향산까지 산길따라 따라올 이 많으니...

블라디보스톡 두 정거장 전에 내려서 평양행 기차로 갈아탄답니다.
저도 같이가면 좋을것을...평양에서 냉면 한그릇 먹고 개성 들렀다가
서울로 가면 되는데 왜그리 멀리 돌아가야 하는건지요.

블라디보스톡에 오니 영화속 옛 우리정취도 살짝 느낄 수 있네요.
시장에 김치가 있고 먹거리도 같고 구두수선집도 그렇구요.
상인들중에는 의외로 베트남 사람들도 많습니다.
달동네들 재개발이 한창입니다. 온동네가 집 짓느라고 요란하네요.

이제 고국에서 인사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