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지산에 오르다.

by 야생마 posted Aug 03,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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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가 5합목에 도착할때도 역시나 운무에 휩싸여 날씨탓 또 해봤는데
7합목에서 구름들이 갑자기 꿈틀대더니 8합목에 도착하니 하늘이 열렸습니다.
등산로도 임도처럼 멋대가리 없이 지그재그 산행의 맛을 느끼지 못했는데
마침 하늘이 열리니 정말 딴세상에 온 것 같은 느낌이네요.

방학을 맞아 가족과 함께 후지산에 오르는 꼬맹이들이 제법 있어서 대견하고
팔순이 되어보이는 할아버지 등산화는 커녕 버선같은걸 신고 오르시더군요.
외국인들도 참 많습니다. 스페인커플, 프랑스 녀석과는 대화도 꽤 나눴구요.

지리산에 갈때마다 산에서 만나는 분들 모두 미남, 미녀들이다 항상 생각했는데
후지산에 오르는 일본여성들...어찌 그렇게 가녀리고 앳된 모습으로 꿋꿋하게
잘 오르고 거친 숨 뱉으면서도 맑은미소가 사라지지 않는지 참 아름답네요.
몇해전 겨울산길이 열리던 때 벽소령의 그녀처럼 지워지지 않을 모습들입니다.
정말 장가갈 때가 되었는지...큰일이네요. 빨리 떠나야지...

고소증세가 있어서 8합목에 있는 白雲莊에서 멈추고 여행중 가장 비싼 숙박을 했는데
정작 잠을 못이루고 河口湖, 山中湖의 야경과 수많은 별, 밝은달을 헤이다
간신히 잠들었지만 잠시뒤 해 뜬다고 스텝이 깨우러 와서 하루종일 골골댔네요.

일출도 아름다웠고 타르쵸, 룽다를 보니 티벳과 히말라야도 회상되어 좋았고...
정상에서 본 남알프스의 파노라마와 그 뒤로 살짝 보이는 중앙알프스,
오른쪽 멀리 아스라히 보이는 북알프스와 하얀 이불을 덮은 고요한 태평양...
그리고, 제가 사랑한 닛코의 산줄기도 저멀리 그립게도 아름답습니다.

어떤 존재만으로도 따스하고 아름답고 행복을 느끼게 하는게 있지요.
지리산이 그렇겠고 오브넷도 그렇지요. 그분이 그렇고 그녀가 그렇습니다.
그저 바라만 볼때도 어떤 얘기가 펼쳐질까 기대하고 용기내어 댓글 한줄 쓰고
행여 그게 나쁜 영향이 되진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그러다가 글을 써서 올리기도 하고...

지금도 솔직히 글 한편 올리면서도 조심스럽고 긴장되고 합니다만
익숙해지고 친해지고 편해지면 이상하게 초심을 잃고 그 상대를 조금씩 지배하려 하지요.
자주 산에 가면서도 산을 닮지 못합니다. 갑자기 구름에 덮히고 비도 내리기도 하는데
그 모든걸 그대로 바라보면 되는것인데...자기만 옳다고 자기중심으로만 숲을 봅니다.
남 탓하기 좋아하고 욕하기 좋아하고..저부터도 왜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되는지 참 문제가 많아요.

아름다운 산행기와 소박하고 절제된 삶을 보여주고 때론 멋진 여행을 하는 어떤 여인이
이 공간에서 함께 존재한다는 자체만으로 행복한건 비단 저 뿐인가요?
그냥 사랑만 하면 되는데...이렇게 아름다운 곳과 아름다운 사람들이 또 어디있다고...
All that things come to an end. . .그 분의 말에 저도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서로 감싸주고 용기주고 이해하며 사랑하는게 우선일텐데...지금까지 그래왔는데..
새로운 장이 열리면 떠나는 자는 말없이 조용히 길을 가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