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그리운 지리..

by 오브 posted Sep 18,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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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님들, 고맙습니다.
지리를 그리는 분들의 도시 속, 작은 마음의 처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 작은 공간이 지리가 굴뚝같이 보고플 때 스쳐지나는 마당이 된다면 더할나위 없이 좋겠습니다.
지리에 달려가고 싶어도 발목을 붙잡는 사정들이 저마다 있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지리에 다녀와도 늘 지리품이 그리운가 봅니다...

함세덕의 희곡 "동승"이 생각납니다.
오늘. 그 그리움의 은유로 삼아봅니다..


      ------------------------ 동 승 (童僧) -----------------------

*도념=동승

[때] 초겨울
[장소] 동리에서 멀리 떨어진 심산고찰(深山古刹)
[무대] 숲을 뚫고 가는 산길이 산문(山門)으로 들어간다. 원내(院內)에 비각, 그 뒤로 산신당,  칠성당의 기와 지붕, 재 올리는 오색기치(五色旗幟)가 펄펄 날린다. 후면은 비탈. 우변(右邊) 바위틈에 샘에서 내려오는 물을 받는 물통이 있다.

재 올린다는 소문을 들은 구경꾼떼들 산문으로 들어간다. 청청한 목탁 소리와
염불 소리 이따금 북소리.  

도념, 물지개에 걸터 앉은 채, 멀거니 동리를 내려다보고 있다. 이따금 허공을 응시하다가는, 고개를 탁 떨어뜨리고 흐느낀다.

초부(樵夫), 나무를 한짐 안고 들어와, 지게에 얹는다.

  [도념] 인수아버지. 정말 바른 대루 얘기해 주세요. 우리 어머니 언제 오신다고 하셨어요?

  [초부] 내년 봄 보리 베구 나면 오신다드라.

  [도념] 또 거짓말?

  [초부] 거짓말이 뭐니? 세상 없어도 이번엔 꼭 데리러 오실껄.

  [도념]  바위 틈에 할미꽃이 피기가 무섭게, 보리베니 하구 동네만 내려다 봤어요. 인수 아버지네 보리를 벌써 다섯 번째 베었지만 어디 오세요?

  [초부] 내년만은 틀림없을 게다.

  [도념] 동지, 섣달, 정월, 2월, 3월, 4월 아이구 아직도 여섯 달이나 남았군요?

  [초부] 뭘, 세월은 유수 같다고 하지 않니?

  [도념] 여섯 달을 또 어떻게 기다려요?

  [초부] 눈 꿈쩍할 사이야.

  [도념] 또 봄보리 베구 나서 안 오시면 도라지 꽃이 필 때 온다고 넘어갈라구?

  [초부] 이번만은 장담하마. 틀림없을 게다. (도념의 팔을 붙잡고 백화목 밑으로
끌고가며) 이리 오너라. 내가 여섯 달을 빨리 기다리는 법을 가르쳐 주마.

  [도념] 그만둬요. 또 속일려구?

  [초부] 한번만, 더 속으려무나.

  초부. 도념을 나무에 세우고 머리 위에 세 치쯤 간격을 두고 도끼를 들어 금(線)을 긋는다.

  [도념] (발돋움하며) 이거 너무 높지 않어요? 작년 봄에 그은 금은. 두 치 밖에 안 됐어요.

  [초부] 높은 게 뭐니? 네가 이 금까지 자랄 땐 여섯 달이 다 가구. 뒷산에 꾀꼬리가 울구 법당 뒤엔 목련꽃이 화안히 필 께다. 그럼 난 또 보리를 베기 시작하마.

  [도념]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하루 안 빠지고 아침이면 키를 재 봤어요. 그은 금까지 키는 다 자랐어두 어머니는 안 오시던데요 뭐?

  도념 물지개를 지고 일어선다.

(.....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