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어느 날 지리에서 이야기

by 허허바다 posted Oct 04,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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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에 들기 전날 찾아온 감기 좀처럼 떨어지질 않습니다.
산행중에도 몸에서 열이 나는 지
목젖이 말라 버려 침 삼키기도 어려웠습니다.

그래도 세석까진 그리 힘이 든다는 생각 없이 올랐는데
촛대봉에서 그 찬바람에 한참을 경치 구경하다가
감기가 더 심해져 버렸습니다.
촛대봉 내려와 삼신봉 오르기 전
급기야 맥이 풀려 버렸습니다.
한 30분 가까이 조는 닭처럼 가만히 앉아 있었습니다.

그래도 악 쓰며 뚜벅뚜벅 나아갔는데
또 꽁초바위에서 사진 찍느라
너무 오랫동안 찬바람 직격탄으로 맞아 버렸습니다.
이젠 그 댓가로 뭔가 문제가 생기겠구나 했습니다.

장터목에선 몸에 한기가 들어 일몰 사진도 담지 못했습니다.
담요 배정 전까지 차거운 바닥에 2시간을 누워 있었습니다.
오후 8시 드디어 담요 배정...
그런데...

누가 뒤에서 양 어깨를 꼬~~옥 쥡니다.
뒤돌아보지 않고도 누군지 알아차렸습니다!
희망님입니다!
너무 반가워 둘은 포옹(? ^^*)까지 합니다. ㅎㅎ

오늘 올라온 코스, 내일 일정 등 이런저런 얘기 나누고
희망님은 같이 온 동행분들께 돌아가셨습니다.
눈 붙이고 잠 청하는데
희망님 다시 돌아오셔서 파전 먹지 않겠냐고 하십니다.
또 감기엔 독한 술이 최고라고 ㅋㅋ

이런 것 잘 거절하지 못하는 접니다.
헤드 후레쉬와 두터운 옷으로 단단히 준비해
무거운 몸 일으켜 중앙홀로 나섭니다.
같이 오셨다는 동행분들과 인사 나누고
붐비는 취사장 한 귀퉁이에 자리합니다.

파전을 만드시는 여성분 아주 활기차고 애교 만점이십니다.
취사장 내 모든 분들에세 파전 만들어 돌리십니다.
바로 스타 탄생입니다 ㅎㅎㅎㅎ

몸이 안 좋아서 그런지 모든 음식물 맛 모르겠습니다.
단지 마오타이주의 독특한 향내만 느낄 뿐입니다.
한 잔 두 잔 으...
몸에 열기가 오르면서 좀 나아진다는 착각에 빠집니다.

취사장에서의 화기애애 이제 스물스물 꺼져 버리고
이날의 추억 사진으로 남기기 위해 밖으로 나갑니다.
까아만 밤하늘에 다이아몬드 빛 별들 총총 박혔고
산 아래엔 진주, 사천, 광양의 야경이 유혹하고 있습니다.
조금 있으니 환한 달님께서 제석봉 옆구리로 불쑥 떠오릅니다.
여전히 찬바람은 얼굴을 후려칩니다.
영하 3도입니다.

사진 찍느라 너무 오래 머물렀습니다.
내일을 위해 들어가 자기로 합니다.
소등된 대피소 안 살금살금 들어가 조용히 눕습니다.
잠이 오질 않습니다.
잠 잘 오라 마신 술, 오히려 잠 못 이루게 하고 있습니다.
몸이 정상이 아닌 탓입니다.
잠시 잔 것 같습니다.
원래 모든 잠이 1초인 저가 중간에 깬 것입니다.
밤 11:42 입니다.
다시 억지로 잠 청해 봅니다.

뒤척이다 새벽 3시경 잠들었나 봅니다.
빠져든 망각 참 좋았습니다.
부산한 움직임 소리에 잠이 깹니다.
새벽 4시입니다. 그렇습니다. 일출 보러 가야죠.
그런데... 먹으면 뒤끝 깨끗한 마오타이주 이번엔 아닙니다.
머리가 깨질 듯합니다.
예... 그렇게 일출은 포기하였습니다.

텅 빈 대피소에서 다시 잠에 빠져 들었나 봅니다.
놀라 시계 보니 오전 6:08...
빨리 하산하여야 하겠다는 일념으로 불편한 몸 놀립니다.
겨우겨우 배낭 다시 꾸리고 그럭저럭 준비 끝냈습니다.

대피소 앞마당 서성입니다.
오전 7:20... 대피소 옆쪽 가파른 오름길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습니다.
지금쯤 내려올 시간인데...
희망님과 그 동행분들 모습 나타나지 않습니다.
아마 천왕봉이나 제석봉쯤에서 사진 찍느라 늦으신가 봅니다.
특히 희망님 사진기 필카다 보니 한 장 찍는데 많은 시간 필요할 것입니다.
몸 상태가 좋지 않아 먼저 내려간다는 인사는
결국 못하게 되었습니다.

10월의 어느 날 지리에서의 이야기였습니다...

※이번 산행의 기록은 사진방에 올렸습니다.


담쟁이 넝쿨별 - 자전거 탄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