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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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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적인 여유가 있어서 진주에서 출발하여 산청의  방곡 마을 쪽으로 차를 몰았다. 오봉으로는 자주 가 보았지만 근 10여년간 가 보지 않은 가현 마을까지 차를 몰고 마을 어귀까지 가서 마을의 모습을 관찰해 보았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옛날 가현마을의 모습과는 딴판으로  전혀 다른 모습의 가현 마을이 나타났다.

가현 마을에 살던 사람들은 모두 바깥으로 나가 버리고 한두세대만 살고 있던 가현 마을엔 10세대가 훨씬 더되어 보이는 큰 마을로 변해 있었다.

6.25때의 가현 마을은 말 그대로 첩첩 산중이었으며 국군 토벌대가 지리산의 빨치산 토벌을 위해 엄천골로 가장 먼저 진주한곳이 가현 마을이었으며 국군의 견벽청야 작전으로 마을의 모든것을 싹쓸이 하였던 바로 그 마을이다. 방곡마을과 가현,  그 곳에서 더 깊숙한 산길로 접어들면 나타나는 오봉 마을 역시 얼마나 오지 마을의 대명사로 통했던 곳인가!

몇년전에 산사태가 난 이후로 복구를 하고 그 주변에 새로운 마을이 들어섰는데 산골 마을에 완전히 새로운 현대식 건축물들이 즐비했다.

미리 전화를 해서 만나고자 했던  충청도에서 와서 살고 계시는 어느분께 질문을 해 보니 인천에서 귀농을 한 분, 옛날에 산청이 고향인데 도시에서 살다가 노년에 고향을 찾아와 정착을 한분등등이란다.

가현 마을로 접어들기 전 다리를 건너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면 오봉 마을로 가는 길이다.

내가 오봉 마을에 처음 가 본 해가 1976년 겨울이었다. 그해 겨울에 오봉 뒷동산에 큰 산불이 났었으며 이틀동안 지리산 인근이 불에 타고 있었으며 산청군 전 민방위 대원들 소집이 있었고 함양의 인근 마을 사람들에게도 산불 진화에 대한 협조 사항이 있었기에 나 역시 산불 진화 요원으로 참가를 했었던 것이다.

그 당시엔  현재의 오봉 가는 길보다 산청 함양 군계능선을 타고 공개바위가 있는 바로 그 능선을 따라 오봉 마을까지 진입을 했을 때는 이미 산불 진압이 완전히 이루어진 다음이어서 큰 수고로움은 없었지만 당시의 오봉 마을의 모습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열 세대 정도 사람이 살고 있었으며 모두 초라한 오두막집의 일색이었으며 말 그대로 산간 오지 마을의 모습이기도 했다. 마을로 진입을 하는 길이라고는 현재의 차량이 다니는 그 길보다 윗쪽으로 험한 오솔길이 나 있었는데 산 중턱이었기 때문에 가파른 오솔길이 오르락 내리락 하여 100m를 걸어 가는데 10여분이 걸릴 지경일 정도로 길이 험했다.

특이하면서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하나는 마을 사람들이 벼나 보리, 옥수수를 정미하는 곳의 모습이었는데 가파른 산길 모퉁이를 돌아가자 디딜 방앗간처럼 억새 지붕의 모습을 한 집이 있었고 그 곳으로 계곡의 물을 물을 유입해 온 도랑이 있었으며 아주 길다란 쇠 파이프( 지름 20cm 길이 약 20m)를 설치하여 그 쇠파이프는 물을 저장해 두는 곳이 되었고 높은 곳에서 내려 오는 물의 낙차를 이용해 쇠 파이프의 맨 아래엔 터어빈 장치를 하여 그 터어빈을 동력원으로 하여  정미기를 돌리는 방앗간이 있었다.

그런 오봉 마을에도 1976년 당시에 새마을의 바람이 불었는지 개울을 따라 낭떠러지의 바위를 부숴 놓은 흔적들이 많았고 개울을 따라 큰 바윗돌로 축대를 쌓아 가는 중이었으며 그 모습은 도저히 길을 내어도 사용을 하지 못할 것 같은 험한 길이기도 했다.

오봉에서 금서면 화계장엘 갈려고 한다면 이틀이 걸렸다고 한다. 차량으로 쉽게 오고 가는 지금과 비교를 하면 큰 오산이다. 비탈진 산길 오솔길로 무거운 나무짐이나 산나물을 이고 지고 장에 내다 팔려고 했다면 걸음걸이 자체가 엄청 느렸을 것이고 자연적인 산길을 따라 구불구불 둘러 가야만 했던 그런 곳이었다.

지금의 오봉마을은  옛날의 오봉마을이 아니다.

구석구석 전원 주택이 들어섰으며 토착민 보다 외지에서 들어 온 분들이 더 많은 실정이다.

점촌 마을 역시 두 세대가 들어와 살고 있으며 뒷골에도 함양읍에서 고사리를 키우기 위해 들어 온분, 강연호, 서울서 귀농을 한 분, 새로 집을 지을 계획이라는 대덕연구단지 연구원 출신의 귀농인등도 준비중에 있다.

동강 마을에도 벌써 세 세대가 새롭게 정착을 했으며 앞으로 몇 세대가 귀농을 한단다.

원기마을 주변에도 반듯하고 멋지게 집을 지어 놓은 광경을 많이 목격했을 것이다. 모두 외지에서 들어와 정착을 한 분들이다.

운서에도 수도권에서 귀농을 하신 산짓골님네를 비롯해 운암마을에도 상당수가 정착을 해 있다.

문정에는 수를 셀수 없을 정도의 외지분들이 귀농을 해 있단다. 수년전부터 견불 마을엔 귀농을 한 수 세대가 이미 완전 정착 단계에 있으며 세동 마을, 송대 마을 역시 옛날과는 다른 집들이 눈에 띄이는 현상은 역시 외지분들이 엄천골을 찾아 들어 왔다는 증거일것이다.

마천에는 구석구석 새로운 집들이 보이는데 상당수의 세대들이 지리산을 찾아 귀농을 한 분들의 편안한 안식처이다.


대부분 엄천골의 사람들은 고향을 외면했지만 외지분은 지리산이라는  강한 이미지의 순수함과 자연과 쉽게 교감이 되는  엄천골의 아름다움을 잘 찾아내고 그 환경을 잘 즐기면서 새로움을 창조해 가고 있는데  21세기 엄천골의 새로운 주인공일것이다.
  • ?
    하해 2007.01.17 10:43
    김용규님의 고향사랑과 겹겹한 마을 이야기에 늘
    감사드립니다. 더불어 후에 의미있는 기록으로도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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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세팔 2007.02.26 20:35
    고향이야기를 들을수있으서 넘~~감사하네요.....
    고향을 사랑하는 마음이 여기까지 전해져오는것같아서 더더욱 좋네요.^.^
    고향사랑 변치마시길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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