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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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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6.20 16:34

지리산 아이

조회 수 1911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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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왕봉이 훤히 올려다 보이는 함양 마천의 작은 학교에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1999년도의 이야기이니까 벌써 옛날의 이야기이군요. 너무나 순박하고 때묻지 않은 유치반 아이의 이야기이며  실화이기도 한데 뚜렷한 주제도 없지마는 지리산 어귀에서 자라고 있는 순박한 아이들을 위해 이글을 올려 봅니다.   --    김용규





"너희 집이 어디니?"

"어! 마술 선생님!"

아이는 대답은 않고 6학년 선생님을 보고 싱글거리며 얼른 접근해 온다.

"선생님, 마술 한번만 보여 주세요. 네?"

능청을 떨며 차알싹 달라붙어서 대뜸 마술을 보여 달라고 조른다.

"선생님 이제 마술을 할 줄 모르는데! 이거 어떡하지?"
"에이, 라이터 먹는 것 있잖아요?"
"이제 라이터를 너무 많이 먹어서 배가 부르단다."
"에이, 한번 먹어 보세요"

주머니에서 살그머니 라이터를 보여 주고는 아이가 눈치를 못 채게 다시 호주머니 속으로 그것을 감추고 주먹을 쥐어서는 "이 라이터를 어떻게 먹니?" "전에처럼 한번 먹어보세요."한다.
선생님은 아무 것도 들어 있지 않은 주먹 속에 그 무엇을 한 움큼 입 속으로 집어넣고는 입을 우물우물한다. 그것도 혓바닥을 왼쪽 입천장에 힘껏 내밀며 우물우물 하는 꼬락서니가 영락없이 라이터를 아주 힘들게 씹고 있는 모습이다.

"햐! 진짜 라이터를 먹네!"

아이는 황당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신기한 듯한 감동마저 얼굴에 비춰진다.

"너 그런데, 선생님이 어디 사냐고 물었었지 않아?"
"어! 안 죽네!"

완전히 동문서답이다.
아이는 계속 자신의 세계 속에서, 자신의 시각으로만 선생님을 바라보고 해석할 뿐 대꾸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선생님, 라이터 먹어도 안 죽어요?"

2주일 전에도 라이터를 먹어 주었지만, 아이는 그때마다 감동을 하고 감탄을 하며, 참 재미있어 한다.
초등학교 병설 유치원엘 입학하고 두어 달 지나서 같은 학교의 6학년 선생님과 병설 유치반의 한 남자아이와의 대면은 으레히 마술로써 시작이 되었고, 이 어설픈 마술이 두 사람 사이의 레포 형성에 상당한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너희 집이 어디니?"
"배액수요."
"?!"

자기가 사는 동네 이름이 백수란다. '백수 건달' 이란 낱말 속의 그 백수란 말인가? 6학년 선생님은, 눈이 동그랗고 이마가 훤칠한 이 유치반 남학생의 순진한 발음에 많은 호기심과 장난기가 발동하기 시작했다.

"뭐라고? 네가 사는 동네 이름이 백수라 했어?"
"에이 '백수'가 아니고 '배-액-수'요!"

너무나 답답하다는 듯, 포동포동한 이맛살에 주름살 두어 개가 일그러진다. 제법 진지한 표정과 귀찮다는 표정이 유치반 아이의 얼굴에 그어지기까지 했다.
부임한 지 1년이란 시간이 흘렀고 학구의 구석구석까지 가정 방문을 한 경험이 있는 6학년 선생님의 귓전에 와 닿는 '백수'라는 마을의 이름이 약간 신비로웠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그 신비의 '백수'라는 자연 마을의 이름은 마천면에서 함양읍 쪽으로 넘어가는 길목인 오도재 어귀의 '별약수'라는 작은 마을의 이름을 유치반 아이는 세 음절 중 가운데 음절의 'ㄹ'발음이 잘 되지 않는 여섯 살짜리의 유치반 꼬마라는 것과, 아주 활달하면서 명랑한 성격의 소유자라는 것까지 유치반 담임으로부터 알아낼 수 있었다.

"6학년 선생님, 우리 백수를 아들 삼으실려구요?"
"!"

그 이후부터 그 아이의 별칭은 이름 대신 백수로 더 쉽게 불리어졌다.

"백수!"

운동장에서 신나게 뛰어 놀던 그 유치반 아이는 금방 싱글거리며 6학년 선생님께로 쪼르르 뛰어온다.

"내 이름이 백수 아닌데…! 선생님 마술 보여 주실려구요?"

이름 대신에 별칭으로만 불려지던 그 백수와 6학년 담임 사이에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친구 비슷한 제법 만만한 사이가 되어 갔다. 같이 무릎을 맞댈 정도로.
여름 방학을 며칠 앞두고서는 6학년 선생님이 이런 질문을 서슴없이 던질 수 있을 정도로 대화의 상대가 될 수 있었다.

"백수야!"
"……."
"넌, 사귀는 여자 친구가 있니?"
"없어요."
"어! 그러면 큰일인데! 백수야 가만히 생각해보렴. 너희 선생님께서도 유치원 다닐 때 남자 친구를 정해 놓지 않아서 아직까지 결혼도 하지 못하고 있잖아. 너희 선생님도 결혼 못했지?"
"네."
"거봐."
눈망울에선 제법 심각해지기 시작하는 눈빛이 아롱거린다.
"그러게 말이다. 엄마도 아빠랑 결혼했고, 할아버지도 할머니랑 결혼했고…."
"……!"
"그런데 넌 어떡할래? 없으면 지금부터 여자 친구를 정해 놓아야지!"
백수의 얼굴 표정이 약간 심각해졌다. 6학년 선생님은 심각하게 자신의 장래 문제를 걱정해 주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그것도 자기를 많이 사랑하고 귀여워해서, 평소에 6학년 선생님을 많이 따르고 좋아했기 때문에 그런 6학년 선생님이 자신의 장래 문제를 걱정해 주는 것이리라 하는 눈빛이 역력하다.
"선생님, 그런데 결혼 같은 거 안 할 거에요."
"어! 정말?"
"결혼하고 싶으면 울 엄마하고 할 거에요."
"!"

며칠 후엔 운동장에서 자기 또래들이랑 뛰어 놀던 그 백수가 다른 유치반 아이들을 데리고 뛰어왔다. 그네들은 곧 마술 솜씨를 보여달라고 조를 게 뻔했다. 6학년 선생님의 입가에서는 싱긋 미소가 머금어졌다.

"어이. 백수! 저번에 내가 물어 봤던 거 엄마하고 상의해 봤니?"
"아니오."

  전번의 그 문제란 유치반 시절에 여자 친구를 미리 정해 놓아야 나중에 장가를 갈 수 있다는 6학년 선생님의 애정 어린 그 충고에 관한 것이었다.

"아직도 엄마하고 결혼 할거야?"

옆에 있던 다른 아이들이 까르르 웃는다.

"히히히. 엄마하고 결혼하는 사람이 어딨어?"

곁에 있던 또래들의 핀잔에 백수의 얼굴이 이내 홍당무가 되어졌다. 무언가 불만인 듯 양쪽 볼이 씰룩거린다.

"나 여자 친구 있는데…!"

자존심이 많이 상한 얼굴이다. 이내 그 좋아하는 6학년 선생님의 다른 마술을 구경도 하지 못하고 운동장 저 켠으로 달음박을 쳤다.
6학년 선생님의 질문에 항상 재미있는 답변이 술술 나오는 그런 백수의 모습에서, 때로는 엉뚱하고 이상한 질문에 그때마다 심각해지고 고민에 빠진 듯한 그런 백수에게서 많은 흥미를 가지고 있는 듯했다. 까무잡잡한 얼굴빛에다가 훤칠한 동안의 얼굴에 항상 여유 만만하면서 어른들의 질문에도 서스럼 없이 답변을 하는 그런 백수의 모습을 무척 좋아했다.

말을 배울 때의 어린아이들이 다 그렇듯이 낱말 받침 발음이 잘 되지 않거나, 연결음에서 어떤 자음 발음이 되지 않는 발음을 그것도 어설프게 말을 할 때의 그런 어린아이의 귀여운 모습을 6학년 선생님은 자기네 학교의 한 병설 유치반 아이에게서 발견하고는 마냥 좋아라 하고 있는 것이다.

"저번에 말한 것을 잃어 버렸는데, 네가 살고 있는 동네 이름이 뭐라고 했지?"
"에이 선생님은 왜 그렇게 머리가 나빠요? 여러 번이나 물어 놓구선!"
"선생님은 그때 다른 생각을 하면서 들어서 그래."
"선생님 이번엔 다른 생각하지 말고 똑똑히 들어 두세요!"
침을 꿀꺽 삼키면서 이마의 주름살을 곤두세우더니만
"배-액-수"한다.

"뭐라구? 선생님이 잘못 들었어. 한번만 더 말해 줘. 응?"
"에이 선생님이 말을 못 알아들어요?"

무척이나 귀찮다는 표정이다. 선생님이 되어 가지고 아이들 말하나 알아듣지 못한다는 표정이다.
6학년 선생님의 얼굴 모습에서는 장난기가 어려 있고, 벌써 몇 달 동안이나 반복된 질문이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백수는 진지하게 어설픈 발음으로 답변을 해 준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선생님! 이번엔 잘 들어주세요. 잊어 먹지 말구요?"

목젖을 새삼 가다듬고는 이내
"배-액-수"한다.

"아하! 너희 동네 이름이 '백수'란 말이지?"
"에이. '백수'가 아니고 '배-액-수'요."

2학기가 되어서도 그 유치반 아이는 자기 동네 이름이 '별약수'란 발음을 하지 못했다. 6학년 선생님은 만족한다는 듯이 껄껄 웃었다. 그 백수는 그제서야 자기의 소임을 다 했다는 듯 6학년 선생님과 함께 낄낄 웃었다.
백수뿐만이 아니라 다른 유치반 아이들은 6학년 선생님의 모든 행동들이 마술 행위로 보이는 모양이다. 담배 연기를 한 모금 진하게 빨고 그것을 입안에 머금고 있다가 오른손 검지손가락을 머리 뒤통수를 살짝 갖다 댈 때마다 담배 연기가 뿅뿅 튀어나오는 연기를 해보기도 하고, 어떨 땐 머리 뒤통수를 툭 치고는 순간 동작으로 혀를 쑥 내밀고 오른손으로 목젖을 당길 때 혓바닥이 쑤욱 들어가게 하는 동작을 해도 유치반 아이들은 감동을 하고 무척 좋아라 한다. 그 모든 것들이 마술로 보이는 모양이다.

작은 행동의 모습에도 쉽게 감동을 해 주고, 반응이 있어 주는 그 유치반 아이들의 모습 속에서 6학년 선생님의 작은 행복을 발견했는지도 모른다. 때하나 묻지 않고 너무나 순수하게 웃는 아이들의 모습 속에서 6학년 선생님은 작은 행복을 발견했는지도 모른다. 때하나 묻지 않고 너무나 순수하게 웃는 아이들의 모습 속에서 6학년 선생님의 소싯적 그리움을 만들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 아이들 중에서도 특히 백수가 6학년 선생님을 더 따랐다.

지리산의 산자락마다 단풍잎이 오색 잎으로 물들어 갈 무렵 그 백수가 6학년 선생님에게로 뛰어왔다. 마치 아주 중대한 말을 전달할 태세다.

"선생님, 저번에 그 말인데요. 저…!"

말을 꺼내다 말고 잠시 머뭇거리는 모습이 진지하다 못해 제법 심각했다. 6학년 선생님도 백수의 얼굴 가까이 귀를 갖다 대고 진지하게 들어 줄 모양새를 취했다. 그때서야 백수는 용기를 얻었는지 다음의 말을 내뱉을 준비를 했다.

"전번 때 선생님께서 물으신 건데요. 결혼할 여자 친구 말인데요…"

얼굴이 빨개지면서 계속 말을 머뭇거릴 때 6학년 선생님이 얼른 말을 받는다.

"아하! 이제 여자 친구를 구했다 이 말이지?"
"예. 그런데 그것을 어떻게 아셨어요?"
"선생님은 백수의 얼굴만 봐도 금방 그런 것을 알 수 있거든"      
"내 얼굴에 그것이 쓰여 있어요?"
"그럼."
"우리 백수가 이제 여자 친구를 구했다니까 이제 나도 걱정 하나 덜었네!"

백수의 얼굴에서도 상당히 만족스러운 듯 여유 있는 표정을 짓는다. 그 어려운 고민 하나를 해결했으니까 말이다. 6학년 선생님 말대로라면 자기가 어른이 될 때 진짜 결혼을 하지 못하면 무척 심각해지리라 고민을 했던 모양이다. 1학기 때 유치반 담임 선생님께서 결혼을 하지 못한 이유도 유치원을 다닐 때 미리 짝지를 정해 놓지 않았기 때문에 결혼을 하지 못한 것이라고 자기 딴엔 결론을 내린 모양이다.

가을걷이가 시작되고 높은 산엔 단풍잎이 울긋불긋 물들기 시작될 무렵 지리산 밑의 작은 시골 학교에서도 가을 소풍을 갔다. 가까운데 걸어가는 것이 아니고 제법 거리가 먼 뱀사골 골짜기로 학교 버스를 타고 갔다. 유치반 따로 초등학생 따로가 아니라 학생수가 몇 안되니 항상 같이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버스에 다 태우지 못한 아이들은 선생님들의 승용차를 타고 소풍을 갔다.

맑은 계곡 물은 말 그대로 순수함 그 자체였다.
6·25 전적 기념관을 옆으로 하고 계곡을 따라 약간 올라가서 아이들은 여장을 푼다. 넓은 공지가 있었고, 여름이면 이곳은 텐트 장으로 활용되는 데 100여명이 앉아 놀기에는 딱 안성맞춤이었다. 단풍잎의 정취와 계곡 사이로 흐르는 개울물이 서로 어우러져, 가을의 정경은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산골 촌놈들이 더 깊숙한 산골로 왔는데도 아이들은 그저 흥분하고 좋아라 한다.

"선생님!"
"어, 우리 백수 왠일이지?"

  6학년 선생님을 불러 놓고선 백수의 작은 손목이 자기의 호주머니 속으로 들어가더니만 삶은 계란 한 개와 삶은 알밤 두 개를 꺼낸다.

"이것 선생님 잡수세요."
"백수가 선생님께 주는 선물이냐?"

6학년 선생님은 계란 껍질을 예쁘게 까더니만 그것을 반으로 나누었다.

"자 이 반쪽은 우리 백수 것, 이 반쪽은 선생님 것."
계란 반쪽을 입 안으로 집어넣고서 우물거리던 6학년 선생님은
"어, 맛이 왜 이래!"
"선생님 맛이 없어요?"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그 맛있는 계란을 씹지도 않고 있는 6학년 선생님을 쳐다보고 있는 백수의 눈망울에서는 긴장의 눈빛이 서려 있었다. 잠시 후에 선생님은 백수의 양 팔을 덥석 들어 올렸다.

"맛이 없는 게 아니고, 선생님이 여태까지 먹어 본 계란 중에 우리 백수가 갖다 준 계란 맛이 최고여서 그랬어!"
"선생님 정말요?"

6학년 선생님과 유치반의 그 백수와의 웃음소리가 뱀사골의 골짜기 사이로 메아리 되어 울려 퍼졌다.
  • ?
    선경 2006.01.29 01:48
    순수한 눈망울을 가진 산골아이가
    어느새 지금은 사춘기소년으로 변해있겠군요
    머어먼 훗날에도 행복했던 선생님과의 시간이 감미로운추억으로
    새록 새록 피어나겠지요
  • ?
    정관 2006.03.20 12:07
    좋은 사진 뿐만 아니라 글도 감칠나게 잘 쓰시는군요. 잘 읽었습니다.
    날마다 좋은날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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