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과 인연을 맺은 고려 문인

by 김용규 posted Jan 21,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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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화수님의 지리산 산책중 용유담과 엄천에서 잠깐 언급되어진 백연마을과 관련된 이야기를 덧붙여 나열해보고자 합니다.

  개성유수 이억년이 벼슬을 버리고 경상남도 함양으로 들어가게 되자, 그의 동생 이조년은 한강 나루 건너까지 배웅차 두 사람이 길을 떠나게 됩니다.

  그리하여 도중에서 금 두뭉치가 땅에 떨어져 있어 이를 주워서 두 형제가 한 뭉치씩 나누어 가집니다. 그리고 당시 양천(김포군내)강 나룻터 양화도(현 서울특별시 강서구 가양동 구암공원안에 당시 나룻터 현장이 있음)에서 배를 타고 건너게 되었습니다.

  배가 중간에 이르렀을때 아우인 이조년이 주운 금 뭉치를 강물에 던져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형인 이억년이 그 연유를 물으니 아우가 대답 하기를

  "저는 평소에 형님을 공경 하는 마음이 깊었는데, 황금 뭉치를 주어서 둘이 나  
   누어 가진 순간부터 홀연히 시기하는 싹이 틈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는 황금
   이란 즉 착하지 못한  물건이기 때문으로 생각되어 강물에 던져 버렸습니다."

라고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형님인 이억년이

   "너의 말은 참이로구나, 나 또한 같은 감정을 느꼈도다."

   하며 그 또한 가졌던 황금 뭉치를 강물에 던져 버렸습니다.

   이 일화는 [고려사 절요],[고려사 열전],[양천읍지],[동국여지승람]등에 실려 전해지고 있는데, 그 연대는 대략 고려 충렬왕 20년(1294년)경이며 그 이후 이 나루터 강을 투금강(투금강)또는 투금탄(탄,여울)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현재 서울 강서구 가양동 구암공원내에 당시의 나룻터를 나타내는 표지와 함께 공원 안내문 가운데 고려 중,말기의 명사인 이조년, 이억년 형제간의 고사라고 밝힌 투금탄의 전설과 함께 있는 것입니다.

   이 두형제의 이야기와 지리산과는 어떤 인연이 있을까요?
 
   이억년이가 어수선한 정치 세계가 싫어 지리산으로 갈려고 할 때 동생 이조년이 배웅을 하게되고 이때 생겨난 투금강 일화가 생겨난 것이 됩니다.

   후에 이억년은 지리산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정확한 위치를 표현하면 경남 함양군 휴천면 문정리 백연마을이 됩니다.

  최화수 님의 지리산 산책에 나오는 용유담과 엄천 바로 그곳이 되는데, 백연 마을은 용유담에서 약 1km 아랫쪽에 위치해 있으며 견불동 마을과도 가까운 곳입니다.

  이들 형제중 이억년은 그의 형님인 이백년과 지리산에서 은둔 생활을 하게 되는데  맏형이었던 이백년의 이름에 유래되어서 현재 마을 이름이 백연마을이 되었으며 이억년의 무덤은 백연 마을과 가까운 문정 마을의 뒷산(노루목) 양지 바른곳에 모셔져 있습니다.

   이백년, 이억년 형제가 지리산에 은둔 생활을 하게 된 셈이지요. 함양의 지명 책자에도 언급이 되어 있고, 마을 이름이 백연이며, 문정 마을 뒷산에 이억년의 무덤도 함께 있는 것을 보면 막연한 설이 아닌  사실로 인지 될 수밖에 없더군요. 직접 현장을 답사하여 비에 새겨진 이억년의 비문도 확인(김윤수교수: 인산 김일훈선생의 셋째-한문학전공)을 했으니까요.

  이들 형제를 살펴보면 밀직사사 이백년(李百年), 참지정사 이천년(李千年), 낭장 이만년(李萬年), 참찬 이억년(李億年), 정당문학 이조년(李兆年) 모두 다섯 형제가 되는데 이들중 이백년, 이억년이 고려때 이 지리산과 인연을 맺게 된 것입니다.

아울러 이조년의 그 유명한 시조도 함께 나열해 봅니다.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제
일지춘심을 자규야 알랴마는
다정도 병인양 하여 잠못들어 하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