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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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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어렸을 때에 10세대가 조금 넘는 작은 마을이었던 계음터가 이 세상의 전부인줄 알았다.

지리산 아래에서 태어나고 자랐기에 멀리 왕산의 모습과 법화산이 보이는 골짜기만이 좀 더 큰 세계이라고만 여기면서 자랐었다.

바깥 세계를 전혀 모르고 바깥 문화와 전혀 접촉이 없었기에 그랬고 또 사회화가 되지 못한 어린 나이였기에 작은 마을일지라도 보고 자라는 환경이 그것 뿐이라서 그런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나 뿐 아니라 60년대 초만 하더라도 지리산 아래의 오지 마을로 통했던 엄천골 사람들 대부분이 외지 문화와는 단절된 삶의 연속이었다고 결론지어 본다.

당시에는 문정까지 신작로라는 이름으로 도로가 나 있었으나 버스는 다니지 않았고 바깥 나들이를 할 때는 반드시 걸어 다니는 게 상례였으며 화계장엘 갈 때도 함양읍까지 갈 때도 반드시 걸어 다녀야 했으며 무엇을 타고 간다는 개념은 전혀 없었던 것 같다.

그런 환경에서 그래도 신 문화의 센터는 학교 선생님이셨던 우리 동네의 김종률 선생님댁이었으며 그 집에는 우리의 놀이 대장이었던 영태형이 있었고 우리는 영태형 집 주변에서 놀이 활동을 참 많이 했다.

그런데 아무리 이해를 해 보려고 해도 도저히 납득이 가질 않는 의문때문에 한동안 무척 고민을 했던 건수가 있었다.

우리 동네 한 가운데 있는 형네 집에는 참 신기한 물건 하나가 있었는데 그것은 라디오라는 물건이었다. 길쭉하고 세련되었으면서도 걸레질이 잘 되어 항상 깨끗한 상태로 먼지하나 묻어 있지 않은 라디오의 겉 모습이 신기하기도 했거니와 그 속에서 전혀 나타나지도 않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자꾸 들려오고 있는 것이었다.

며칠 있다가 영태형네 집에 가서 그 라디오를 유심히 주시 해 보아도 역시 의문점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그 자체로 뇌리속에 계속 남아 있었다.

' 희한하데이! 저속에는 아주 작은 사람들만 사는 세상일거야! '

난 라디오 속에 사는 사람들의 크기를 대략 짐작 해 보았다. 라디오에서는 여러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으니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게 분명한데 그 작은 통속에서 살고 있다면 아주 작은 사람일 수 밖에 없다고 결론을 지어 보며 그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 몸체의 크기를 나름대로 분석하기 시작했다.

' 작은 통속에서 집도 필요할 것이고, 걸어 다니는 길도 필요할 것이고, 잠을 자는 방도 필요할 것인데 사람의 크기는 콩만 할거야! '

마당에 뒹굴어 다니는 콩 하나를 줏어서 대략 짐작해 보았다. 아니었다. 라디오 속에 사는 사람은 콩보다 더 작아야 했다. 아이들이 뛰어 놀 수 있는 마당도 있어야 했고 농사를 짓는 논도 함께 있어야만 했다. 그러자면 사람들의 크기가 콩보다 더 작아야 했다.






아주 작은 체구를 가진 라디오 나라가 있다고 해도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것 하나는 라디오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밥을 해 먹어야 할 것이고 그러자면 라디오 속에서 연기가 나야 할 것인데 라디오 속에서 연기가 피어 오르는 모습을 전혀 감지할 수가 없었다.

밥을 짓는 시간이 아니어서 그랬다고 나름대로 결론을 내려 보기로 했다. 언젠가 엄마를 따라 영태형네 집에 가면 꼭 그 부분을 유심히 살펴 볼 것이라 다짐을 했다.

라디오 소국의 사람들이 저녁밥을 지을 때 피어 오른 연기의 그을음은 영태형의 엄마께서 걸레로 계속 청소를 해서 라디오 바깥 부분이 깨끗해졌다는 결론에 도달하자 그런대로 답답함이 덜해졌다.

태조, 윤식이, 윤호, 위춘이, 박갑식, 영태형이랑 숨바꼭질 놀이를 하다가 우연히 저녁밥을 지을 때 마침 영태형네 집이었기 때문에 라디오에서 연기가 나는 장면을 관찰 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가 생겼다. 숨바꼭질을 하는 중간중간에 방문이 열려있는 큰 방을 유심히 두리번거렸고 라디오에 촛점이 맺혔다. 연기는 전혀 피어 오르지 않았다. 연기는 고사하고 용순이 고모가 예쁘게 수를 놓은 보자기가 라디오 위를 장식하고 있었다.

저녁밥을 먹으러 오라고 여기 저기에서 엄마들의 부름 소리에 우리들의 숨바꼭질은 끝이 났고 라디오 나라의 사람들 때문에 걱정이 참 많이 생기는 고민이 늘어났다.

' 라디오 속에 사는 사람들은 왜 밥을 해먹지 않지?'

저녁을 먹다가 그런 의문에 대해서 드디어 엄마께 해답을 얻기로 해 보았다.

엄마는 웃기만 하셨다.

" 나도 잘 모르겠는데~"

해답을 얻지 못했다.

라디오 속에 사는 사람들에 대해서 의문점이 꼬리를 문 것은 60년대 초였고 그 해답이 풀린 것은 그로부터 몇 년 뒤 새로 결혼은 한 임위생 형님이 우리집 바로 앞에 새 집을 짓고 영태형네 라디오 보다 더 큰 라디오가 등장하고 나서부터였다.

라디오 속에 작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고 많이 상상해 보고 작은 통 속에서 사람의 소리가 난다는 것 자체에 감탄을 했던 그런 시절이 분명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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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섬호정 2007.03.18 20:01
    어릴 적 궁금하던 그 요상한 기물이 우리들의 신 문화의 전령사쯤 되던 이야기에...재미잇는 감탄을 합니다 선생님의 무한한 동화적 상상력. 아마도 누구에게도 그 비슷한 감성은 있을법 한데 글로 그 시절을 흥미롭게 써주시니 작품을 재미있게 잘 읽습니다 잘 지내시지요~
    한려수도의 봄바다가 눈에 선 해 옵니다
    대서양 변 안나포리스의 엘리콧 시티에서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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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규 2007.03.18 20:36
    섬호정님 반갑습니다. 지금 한국에 계시지 않으시군요. 저는 지금 사량도에서 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혹 사량도에 오시는 길이 있으시면 전화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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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인 2007.11.07 17:40
    새마을 운동의 열풍으로
    돌담을 허물고 마을길을 넓히고
    보루꼬 담에 시야기를 하면
    아이들의 훌륭한 그림판이 되지요.

    산을 그려 놓고 " 백두산"
    좀 더 높은 산을 그려놓고 "망~"

    ("망~" 은 우리동네 뒷산이름입니다.
    책에서 공부한 백두산보다 망이 더 높다고 생각한 저였습니다.ㅎㅎ)

    라디오 속 세상 - 공감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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