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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산마을>동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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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는 지리산의 존재가 저 멀리 있는, 나와는 상관이 없는 산일줄로만 알았다. 우리 동네 뒷동산은 그냥 밋밋한 산일 뿐, 소를 먹이러 가는 곳이며 우리 또래들이 소를 몰아 놓고 그냥 멱감고 소꿉 놀이를 하는 그런 산일 뿐, 지리산 하고는 아주 먼 곳인 줄로만 알았다.

세월이 지나, 오랜 객지 생활을 할 때면 상투적으로 내 뱉는 말이

" 지리산 밑이 제 고향입니더!" 했다.

객지 생활과 함께 지리산은 완벽한 나의 고향이었고 지리산이란 말만 들어도 그 존재는 나의 것이며 그 누구의 산도 아니었다.
방학때가 되면 꼭 하루에 두 짐씩 지리산에 들어가서 나무를 해 날라야 했던 것이 나에게 주어진 숙제중의 하나였다.

땔감 나무의 주 산지는 왕산이 보이는 얼음배기나 작은 칫골, 더 나아가서는 방곡 뒷산이 되었다.

그 인근은 눈을 감고서라도 지형적인 위치를 훤히 알 수 있다.

지금은 고령토를 파 낸 덕분에 예전의 얼음배기가 아니다. 지형이 완전히 변해 버려서 어렸을 때의 아득한 향수가 조금 덜 하다.

어렸을 때 가장 멀리 가본 지리산은 초등학교 3학년(1966년)으로 기억을 한다.

다른 곳에서 우리 마을로 이사를 온 형의 가족이 있었다. 그 형네 집은 무척 가난했던 것 같다.
귀한 아들이었지만 그 형은 초등학교를 다니지 않고 거의 매일 산에 가서 나무만 해오는 일꾼 역할만 했었으니까 말이다.

그 형은 우리들의 우상이었다. 지리산 구석 구석을 잘 알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시간이 날 때면 그형은 우리들 대장 노릇을 했고, 우리는 고분고분 그 형을 잘 따랐다.

" 야! 너그들, 지리산에 탄피 줏으러 가보지 않을래? "
" ! "
" 뒷골까지 가면 탄피가 수북하거던! 많이 줏어 와서 엿도 사먹고, 화약총도 만들수 있잖나 말이다!"

당시에 놀이 기구가 별로 없었던 우리 또래들은 6.25때 국군과 빨치산의 전투로 버려진 M1 탄피의 존재는 무척 신비하고 멋진 장난감 도구로 이용될 수 있었다.

그 탄피의 주둥이 부분을 줄을 이용해서 자른 다음, 대 못을 ㄱ 자로 휜 다음 탄피와 못 부분을 고무줄로 이어 놓으면 멋진 장난감이 되었다. 그런 탄피 장남감 하나만 소유한다면 친구들 사이에서 영웅이 되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 나도 좀 만져 보자!"

그렇게 만들어진 탄피의 위 부분에는 닭 털이나 꿩의 털을 묶어 놓고서 가게에서 구입한 화약 가루를 그 탄피안에다가 넣어서 공중으로 높이 던지면 그 탄피 장난감은 가속도가 붙여져 땅에 닿는 즉시 폭음과 함께 폭발을 하기 때문에 그야말로 스릴이 넘치는 과학 장난감이 되는 것이었다.

기껏 장남감이라고 하면 막대기를 들고 " 팡 팡 " 소리를 질러 대며 총 놀이를 하거나, 칼 싸움을 한답시고 길다란 막대기를 들고 친구들과 맞장 지르는 놀이가 대부분이었던 당시에 그 화약 놀이는 신비의 장난감일 수 밖에 없었다.

윤식이, 윤호, 태조, 위춘이 그리고 나, 이사온 형 모두 여섯은 드디어 지리산 등정 에 착수를 하게 되엇다.

사실은 그 형 혼자서 지리산 중턱에만 있는 관솔(소나무가 오래되어 송진이 짙게 묻어 있는 나무)을 해 와야 했기에 무서운 지리산엘 혼자 가기가 두려워 우리를 길동무 삼아 동행을 하자는 나름대로의 속셈이 있었다는 것은 어른이 되고서야 눈치를 챌 수 있었다.

동강 뒷 산을 길목으로 하여 수듬판으로 접어들었다 그 이상의 산길로는 한번도 가 보지 않아서 약간의 두려움도 있었지만 지리산의 박사인 형이 있지 않은가!

무척 든든했다.

" 형아. 지리산에 가면 귀신 안 나와?
" 빙신, 내가 가는데 무슨 귀신!"
" 호랭이는 안 나와?"
" 빙신, 내가 이래뵈도 지리산 까지 여러번 들락거려도 호랭이는 한마리도 안 봤다!"
" ! "
" 호랭이가 나오면 이 작대기로 팍 죽여버릴끼다!"

우리는 든든했다. 저 힘센 형이 보호자로 있는 한 호랑이도 귀신도 무섭지 않았다.

수듬판 계곡을 거쳐 드디어 상상만 했던 뒷골 산 언덕으로 접어 들었다.

" 형아, 인자 탄피 줏어도 되나?"
" 아니 조금 더 가야 해."

그 형은 관솔 나무가 목표이고 우리는 탄피를 찾는 것이 목표인지라 그 형의 각본대로 놀아 날 수 밖에 없었다.

뒷골의 산 능선은 신비했다. 멀리 왕산이 한눈에 들어왔고 엄천강이 발아래 있는 듯 했다. 야산에 이리저리 버티고 있는 나무들, 기괴한 바위 모양까지도 어린 나의 눈에는 신비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우리는 한참을 더 갔다. 산능선을 따라 산 모퉁이를 돌고 또 돌고 당시의 걸음 거리로 참 멀기만 했는데 그놈의 탄피라는 보물을 찾는다는 욕심때문에 어느 누구 하나 불만을 터뜨리는 사람은 없었다.

얼마나 갔을까 능선의 우리의 영웅 형아는 산 아랫쪽으로 손가락을 가르켰다.

" 저게 공개바구다!"

제법 아랫쪽에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가까이 접근을 하기 어려웠지만 큰 바위 덩이 다섯개가 일직선으로 얹혀져 있었다.

" 와하 ! 희한하데이."

모두들 입이 떡 벌어졌다.

능선의 산은 불이 났는지 억새나 다른 잡목들은 거의 눈에 보이지 않았다. 띄엄띄엄 관솔나무가 죽은 시체처럼 여기 저기에 누워 있고 다른것은 거의 없었다.

그때는 해마다 산에 불이 났었다.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산에는 해마다 불이 났었다. 그 해도 두어달 전 쯤 산불이 난 후라 우리가 노리는 탄피를 찾는 문제가 쉽게 해결될성 싶었다.

다른 친구들은 두리번두리번 거리는데 나의 눈에서는 그 요물의 탄피를 찾는데만 혈안이 되어 있었다.

" 와하 탄피다! "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순간 나는 잽싸게 탄피 세개가 나뒹굴고 있는 바위 아랬쪽을 향하여 뛰어가고 있었다.

" 그것 내꺼!"

뒷쪽에서 형아가 큰 소리를 내밷고 있었다.

" ? "

나는 탄피 세개를 줏어서 호주머니에 집어 넣으려는 순간

" 이 새끼 봐라. 내가 먼저 내꺼! 했잖아."

나는 황당했다. 나무를 하러 온 자기도 역시 강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탄피에 대한 물욕이 강렬했던 모양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형아의 요즘 나이를 생각해 보면 중 1정도 되었으니까 자기도 그럴만 했다.

문제는 내개 먼저 찾고 먼저 줏었는데도 멀리서 말로만 '내것'
하고 말을 먼저 내 뱉은 것이 임자라는 헌법 1조를 발표 한 것이다.

" 야 임마 너는 탄피다라고만 말 했고 나는 내꺼 했잖아. 그래서 이 탄피의 주인은 내것이 되는 거야. 알았어?"

활당했다. 아무리 우겨 보아야 이상한 법이 통하는 상황에서는 그 법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너무나 억울했다.

다른 친구들도 나의 절망적인 눈빛에 많은 동조를 했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터인지라 아무런 대항도 하지 못했다.

다른 친구들 모두 탄피라는 보물 찾기에 힘이 가해졌다. 바위 밑을 뒤져 보기도 하고, 나무 둥치 밑을 살펴보기도 하고 했지만 그 이상의 탄피는 찾을 수가 없었다.

나는 그 형아한테 떼를 썼다. 얼마나 갖고 싶었던 탄피였는데 형아한테 뺐겼으니 더더욱 정말 억울했다.

다른 곳에서 탄피를 한개라도 찾았다면 별개의 문제였는데 말이다.
또 형아 한테 탄피를 주라고 졸랐다. 또 졸랐다.

" 야 임마. 내것인데 네가 빨리 뛰어 갔으니 딱 한개만 줄께. 자 받어."

난 탄피 한개로 굉장히 만족해 했다.

그 형아는 여기 저기에서 관솔 나무를 지게에다가 얹기 시작했다. 나무가 참 많았기 때문에 그 형아는 무리하게 한 짐 가득히 새끼줄로 묶어 나갔다.

우리가 얻은 총 소득은 고작 탄피 한개 뿐이었다.

산 능선에 무진장 늘려 있다는 형아의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었고 모두들 속았다는 일종의 배신감을 많이 느끼는 듯 했다.

내려 오는 길은 참 편했다. 오던 길로 내려가면 되니까 더 이상의 산 길 안내자는 필요 없었다. 뛰어 가는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던 우리들의 걸음 걸이는 조금씩 빨라졌다.

산 모퉁이를 돌자 조금 뒷쪽에서 무거운 나뭇짐을 지고 오는 형아가 보이질 않았다.

" 우리 뛰자!"

누군가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자 말자 약속이나 한 듯이 내려오는 산길을 뛰기 시작했다. 산길을 뜃는 것은 얼음배기에서 소를 먹이러 갔다가 내려 올때 많이 단련된 솜씨가 있었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 야 임마. 너거들 같이 가자!"

뒷쪽에서 들리는 소리가 제법 가물 해졌다.

" 호랭이가 온다! 지리산 마구 할매 귀신도 온다!"

모두 합창을 하면서 꽥꽥 소리를 질렀다.

날이 흐렸기 때문에 한 낮이었지만 어둑함을 느꼈다. 음산한 날씨였다.

" 엉엉. 야 너거들 같이 가자."

뒷쪽에서 애절어린 목소리가 들려 왔다. 모두들 킥킥거렸다.

" 탄피 이것 다 줄께. 같이 가자!"

우리는더 이상 그 형아의 말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주고서 다시 뺏을 위인이라는 것을 다 알기 때문이었다.

내려오는 지리산 계곡에서는 계속 큰 남자 아이의 울음 소리가 메아리 되고 있었다
  • ?
    선경 2006.01.29 01:30
    옛추억속에 이야기가 한편의 단편소설처럼
    느껴지는군요
    산골개구장이들의 명쾌한 이야기가 너무도 귀여워요
    김선생님의 아름다운 옛추억은 하나 하나가 감칠맛나는
    글과 함께 더욱 고운빛깔로 되살아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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