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한편

by 기사인용 posted Mar 15,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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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3월 12일자 중앙일보에 게재된 좋은 수필 한편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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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중이 해제를 했다.
만행 중인 도반스님이 찾아왔다. 맑았다.
한철 공부는 그렇게 그의 마음의 번뇌를 씻어 낸 것이다.
환한 미소로 내 앞에 서 있는 스님.
걸망을 멘 스님을 보며 나는 운수납자라는 말을 떠올렸다.
세상의 명리에 머물지 않고 구름처럼 흘러가는 선승의 멋이 배어 있는 말이다.
그 어디에도 머무르지 않고 그 어떤 소유에도 집착하지 않는 삶은 얼마나 멋진 것인가.
행복할 것만 같다.
스님에게서는 그렇게 탈속한 멋이 풍겼다.

스님과 마주 앉아 차를 마셨다.
녹차를 황토에 발효한 차의 맛은 속을 따뜻하게 해주었다.
나는 스님에게 차의 맛을 물었다.
썩 괜찮다고 스님은 대답했다.
밖에는 눈발이 날리고 방 안에는 차 달이는 물이 뽀글뽀글 끓고 있다.
그리고 탈속한 듯한 운수납자와 마주한 지금 이 순간은 어떤 차를 마셔도 좋을 것만 같았다.
어쩌면 차는 본디 맛을 지니고 있지 않으나
사람들이 그 맛에 집착할
뿐인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차의 맛을 물은 내 질문이 속물스럽게만 느껴졌다.

신라 하대의 위대한 선승이며 차를 널리 보급한 진감 국사에게 중국의 좋은 명차를 드렸다.
그러자 국사는 법제를 무시하고 차를 마셨다.
차를 마시고 난 국사에게 차의 맛을 물었다.
한참을 침묵한 진감 국사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차의 맛을 모릅니다.다만 배만 적실 뿐이지요."
다시 국사에게 좋은 향을 올리고 향기가 어떠냐고 물었다.
그러자 국사는 다시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향을 모릅니다. 다만 마음을 경건히 할 뿐입니다."
진감의 대답은 일체의 집착이나 속됨을 떠나 있다.
그는 입을 떠나 배를 적시는 차를 마신 것이며,
코의 향기를 떠나 마음을 깨우는 향기를 맡은 것이다.
이런 진감을 최치원은 참됨을 지키고 속됨을 싫어하는 성품의 사람이라고 평했다.

진감에게 속된 것은 거짓을 의미한다.
명예와 권력과 부 같은 것들은 참이 아니라 거짓이라는 것이다.
진감에게 참된 것은 의미를 찾아가는 것이다.
진감의 대답은 내게 차의 맛을 잊게 한다.
차의 맛에 집착하던 내 혀의 허영을 지운다.
그는 일체의 욕구가 떨어진 탈속한 자의 성품을 내보인다.
언제나 경건하고자 하는 그의 마음은
탐착하는 속된 내 마음에 죽비가 되어 날아온다.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가는 사람의 모습은 아름답다.
부에도 걸리지 않고 권력에도 매몰되지 않고 명예에도 머물지 않을 때
삶의 참된 의미와 만나게 된다.
차를 마시되 차의 맛에 걸리지 않고, 좋은 향을 맡되 그 향기에 걸리지 않았던 진감은
참된 의미의 사람이었다.
그러나 세상적인 것에 매몰될 때 삶의 참된 의미는 사라지게 된다.
언제나 분주하지만 그 삶에는 마음의 평화가 없다.
그것은 끝없는 갈증의 삶일 뿐이다.
내가 내 삶의 주인이 아니라 대상과 경계에 그 자리를 내어주기 때문이다.
진정 끝없이 의미를 찾는 사람만이 자기 인생의 평화로운 주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가끔씩 내게 물어본다.
내 삶의 주인은 나인가, 아닌가.
곰곰이 생각해 보면 아닌 것만 같다.
때로 탐내고 때로 화내는 내 삶 역시 분주한 것이기만 하다.
갈애를 쉬지 못한 것이다.
목이 마르면 물을 마시고 배가 고프면 나무 열매를 따먹던
옛 스님들의 탈속의 자유가 아직 내게는 없다.
소유하되 소유에 집착하지 않고,
행하되 행위에 매몰되지 않는 그런 마음의 평화는 언제나 오려는가.
隨處作主,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자유로운 삶이 나는 그립다.

눈발이 점점 거세어진다.
나는 스님에게 왜 사느냐고 물었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부처가 되기 위해 산다고 대답했다.
삶의 분명한 대답을 지니고 있는 그는 어쩌면 자유인일지도 모른다.
나는 내 삶의 어떤 대답을 지니고 있을까.

분명한 대답 하나를 지니고 있는 스님의 미소가 눈보다도 희었다.

성 전 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