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茶一味 茶詩一禪]
白利雲 의 차시조 세계
1. 왜 깨우나
찻잎을 따는 순간, 앞산 움찔하고
그 산 허리 굽은 암자 물 속에 첨벙하여
귀먹은 茶神 할미를 왜 깨우나 깨우나.
2. 마음의 조화
흙벽을 문짓문짓 바른 시골집 마당가
못질을 대강 맞춘 탁자에 둘러 앉아
저마다 지니고 온 그릇 조심스레 올려놓다.
속을 훤히 드러내 보기 좋은 그릇이며
부드러운 질감에 가슴 따뜻해 지는
어쩌면 파도가 만든 그런 무늬 그릇도.
불길을 빠져 나온 표정있는 그릇들엔
마음 가는 대로 가 닿은 나무의 천년 향기
하늘이 미뤄두었던 그 한마디 담겨있다.
우리 삶에 무슨 실패란 게 있겠는가
그저 조금 소심하게 타 올랐다는 것일 뿐,
그을려 연기 먹은 자국도 아름답게 받아들고
-시조세계 20호에서-
3. 옹이 진 소나무 찻잔 받침
옹이진 소나무로 만든 八角의 찻잔 받침
찻물이나 받아 먹어 둥그렇기 짝없는데
그 누가 심심풀이로 한가운데 흠집을 냈다.
대놓고 뾰족한 걸로 뚫은 건 아니지만
별 생각 없이 긁어댄 작은 茶沙匙 따위도
불시에 火印을 박듯 흉터 깊이 남기는 것.
말 못하는 미물 엎드려 상처 감추고
추적추적 내리는 빗소리에 갇혀서
찻물이 흐윽 끓는다, 꽃 지는 봄 한나절.
*차사시(茶沙匙) : 차 숟가락
- 여류시조 5호에서-
4. 소꿉장난
귀밑머리 세다 못해 반백 이미 넘었는데
콩나물 파뿌리 하나 다듬을 줄 모르면서
오늘도 소꿉장난 합니다 차 따르고 마시고.
아기 손에나 맞음 직한 조그만 찻잔으로
마음을 찔끔 부어 주었다가 뺏었다가
그 무슨 신선놀이라고 저무는 줄 모릅니다.
그래도 이젠 제법 철이 좀 들었는지
마음 뺏긴 일 있어도 접을 줄도 압니다
철 들자 망령 난다고 웃을 줄도 압니다.
-2005. tea world 차시패스티벌에서 낭송시-
매화차 聞 香
-푸른 다실에서-
잠들었던
매화 한 잎
찻잔 속에 깨어 난다
적막도
무심히 비운
무채색 물의 무늬
신들이 마련한 향을
숨 멎도록
훔쳐본다.
연잎차 푸른 생각
-푸른 다실에서-
천년을
혼자 머금은
연잎차 푸른 생각
오롯이 열린 향이
轉生으로 길을 놓아
눈부신
저 華藏 세계
일순에 새로 솟네.
-시조세계 7호 소시집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