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명에 잭살차 한 잔

by 도명 posted Feb 25,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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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에 죽선재(竹宣齎)를 열고 오롯이 향을 피운다 
유키의 음악이 밤사이 침몰했던 죽선재 분위기를 조용히 흔들어 일깨운다 
나의 애장품이 즐번한 이 작은 토굴에서 먼저 손길을 마주하는 건 컴이다 

향이 소리없이 타다 사그라 질 동안 유키의 선율에 양팔을 활짝 펴서 
독수리 날개 젓듯이 나의 창작 선무에 몰입한다. 
합장에서 시작하여 합장으로 마무리하는 선무춤사위로 잠을 깨는 명상이 
열린다 

울진 7 번 국도해변의 여명이 방안에 환히 퍼지는 요즘에는 유키 구라모토 
피아노 音이 함께 하여서 또 다른 감흥에 들게 된다. 

살폿이 땀이 솟은 아침 얼굴을 매만지며 맑은 차 한잔을 마시고 싶다. 
거실의 포트에서 찻물 끓는 소리가 구석방 까지 들리면 차도구를 펼치기 
시작한다. 

밤사이 손바느질로 죽선재 다포 하나를 마름했더니 제법 궁색치 않게 
곳곳마다 놓아 두고 쓰기에 편해 졌다. 
살짝 누빈 회색 옷감이라 찻물이 베어도 무난하다. 
버리지 못해서 둘 둘 말아 두었던 천을 꺼내어 요긴하게 활용하게 된다. 
새 봄에 월곶 토굴에 떠 날때에도 몇개는 들고 갈 수가 있겠다. 

작은 다관에 잭살을 담고 말린모과 서너 쪽을 함께 넣었다. 
다유락에서 동방미인 차 강의를 들으며 우리의 잭살차와 비교하며 
실험해 보고 차심평도 해 본 결과인데 복습겸 새로 익히기로 한다.

뜨거운 찻물을 붓고 1분간 우려낸다.
과연 어떤  맛일까? 모과향이 잭살차 향을 감추어 버릴것인가...
첫번째 잔은  잭살맛만  강할 뿐이다

두번째 잔의 차향은  코를 자극해온다  이른 아침 시간이라서 더 
싱그럽다. 잭살맛이 모과맛과  친근감 있게 잘 어우러져서 혀끝이
 감미롭다. 뜨거워서가 아닌, 정깊은 차와의 인연으로 훈훈함도 
감돌기 시작한다.

세번째의 잔을 들면서는 가슴이 동동 뛰고 있다. 가슴도 머리도
 환하게 맑음이 느껴지는 잭살 모과의 묘미!  향기도 맛도 더 짙게 
우러났다. 이 탐구적인 차생활을 지향하던 사람들...
다유락 방장님의 열강을 경청하던 다우들 모습도 환히 웃고 떠 오른다 .  
나 역시 마음속으로 그 분들께 차 메세지를 띄운다.
"차 심평의 그 차맛을 우렸습니다"  라고...

다시 네번째 , 다섯번째를 우려내면서  다음날엔 '동방미인차'를 마실 
꿈으로 즐겁기만 하다. 

한 잔의 차를 우려마시면서 혼자 기쁘고 즐겁고 행복을 느낀다면 
차생활은 여생의 좋은 반려가 되는 것이리라.
나 스스로에게,  우리차를 즐겨마시는  생활과 의식이 정착되어  나를 
이토록 맑고 편안하게 해 주었는지를 새삼 고마워한다.

잭살의 고향 화개를 지척에 둔 나의 고향에서 어릴적에는  겨울에 고뿔*
(감기: 하동사투리)만 들면 한지 봉다리*에 싸서 방안에 걸어둔 잭살
봉지는 할머니 손에서 놋 주전자에 덜려나간다. 
화로에 올린 놋 주전자에 한 웅큼 넣어 뜨겁게 끓인다. 

잭살향이 주전자 주둥이로 폴폴 솟아 나올때
까지 잘 다려진 한약 마냥 정성껏 놋대접에 가득 따루어 꿀 한 숟가락 퍼 
담아서 휘이 저으신 할머니는 "아가, 후루룩 다 마셔라 그래야 꼬뿔이 쑥~ 
나가버린다" 하시던 그 목소리, 지금은 잭살  구수한 맛으로 가슴에 녹아
있고  잭살차 마실적 마다 입속에 그 情의 향기를 머금고 있다.

고향의 외진 산모롱이 찬 바람속에 할머니는 말없이 누워계시지만, 
따순자리  따순 차로 마음도 몸도 녹여주시던 그 손녀의 잭살차 한 잔 
받고 싶지 않으실련지 가슴이 저려온다.

한 동안 잭살은 그 지방 생산지에서만 사용하던 찻잎으로. 70년대 중반 
우리 전통 차문화의 중흥시대를  맞고서도 세작, 우전이란 고급 녹차에 
치우쳐 잭살의 효능은 거들떠  보지않았다. 
인도에서 영국으로 간 홍차의 시대에서 외래문화로 인해 잭살은 촌스러운 
음료로 외면당하고 또한 일반인들은 못 들어보고, 볼수도 없던 것이어서
 무지하기도 했다.

내게  잭살차는 마음의 고향같아 인사동 찻집에서 잭살이 함께 꽂혀 
있기만 해도 감격해 하였다.  
 
발효차의 효능과 편안함을 감지한것도 아마  화개동천 그 고장출신으로 
시조를 쓰며 전통 발효차를 재현하여 만들어온 달빛초당  김필곤 시인으로 
인해 세상에 대우받는 차로 알려진게 아닌가 한다. 
그 이후로 박희준님의 우리차 잭살의 연구필요성을 촉진케 한 것이리라. 
혼자 생각한다. 

내가 아는 화개 목압마을의 다전들은 우리 전래의 잭살차를 개개인마다 
나름대로 재현하여 발효차로 세상에 여러 종류 들을 내보내고 있는줄 안다 .

우리에게 잭살이 있다면 무이산과 대만에는 동방미인이 있음이다.
본래 무이암차의 고장에서 팽이와 팽조 두 아들이 원조로 무이암차와 
동방미인을 만들었는데, 대만으로 건너가서 대만산 동방미인이 된것이라 
한다.

동방미인차는 대만 오룡의 본적이라 할 수있다.
동방미인차에는 설화가 많은것 같다. 또한 이름도 많은줄로 안다.

* 동방미인의 시작은 지금부터 100년이 넘으나 1994년에 
동방미인을 만드는 부진자라는 벌레가 작용한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벌레먹은 동방미인차를 발견한 유래는 재미있겠다. 즐거운 다담으로 올린다.
한 선교사의 집 가정부가 늘 마시는 차는  찻잎이 거칠고 벌레의 2mm크기가
되는 애녹매미벌레(Tea small green leaf popper)가 먹는 무공해 찻잎이다.
우리들도 벌레먹은 복숭아나, 과일을 먹으면 예뻐진다 하는거와 같을 것이다.  

우리의 잭살과 동방미인은 같은 차인데,생산지가 다르므로 香이 다르다는 것,
그리고 우리 잭살보다는 외국 수입품이니 비싸다는건 사실이다.
하지만, 오늘 긴 차이야기 를 잭살에 담아내는 것은  
잭살에 모과 향을 감미하면 동방미인 차에 버금간다는 사실이다. 

차를  탐구하는 많은 이 땅의 열정적인 차인들께 격려와 분발을 촉구하고 싶은 
심정으로 글을 마감한다.

_ 죽선재(竹宣齎)에서 도명 -  
 
* (차와사람) 지난 2월호의 글에서 .
-Sonnet of Founta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