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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산행기>주변산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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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1일 : 2월 17일(금)  맑음
   베이스캠프(Base Camp 5,070m) -(4:40)- 스노우 라인(Snow Line 5,850m) -(4:00)- 정상(Peak 6,189m) -(5:00)- 베이스 캠프 -(3:00)- 추쿵(Chhukhung 4,730m)

왕추 셀파가 깨우는 소리에 눈을 떴다. 12시가 조금 넘었다. 날씨가 괜찮아서 예정대로 출발이란다.
옆에서 자는 부산 김兄을 깨웠지만 도저히 안 되겠단다. 머리가 아픈 건 물론이고 속이 메스꺼워서 구토증이 난다고 포기하겠단다.
아니, 여기까지 어떻게 해서 왔는데 지금에서 포기한단 말인가! 돈은 말할 것도 없고, 3주일 동안 생업을 마다하고 이 먼 곳까지 온 목적의 절반이 "임자체 등정"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그런데도 이런 말을 한다는 건 고소증의 초기 단계인 "머리 아프고 식욕 떨어지며 구토증이 나는 단계"를 지나서, 다음 단계인 "만사 귀찮음증"에 진입했다는 증거일 것이다. 건강과 안전을 위해서 강요하지 않기로 한다.
텐트 안에서 복장을 갖춘다. 아래는 일반 내복용 타이츠에 겨울용 바지, 그 위에 오버트라우저를 덧입었고, 상의는 쿨맥스 셔츠에 플리스 셔츠와 다운 자켓을 입었다. 어제 셀파 왕추가 내 다운자켓을 보더니 부실하다고 느꼈는지 자기 것을 빌려주어서 바꿔 입은 것이다. 에베레스트에 오를 때 입었던 것이라나.
신발은 플라스틱 이중화를 신지 않고 처음 계획대로 그냥 등산화를 신기로 하고, 대신에 완벽한 보온을 위해 면양말에 울양말, 털실스타킹으로 3겹을 신었다. 이 털실스타킹은 남체에서 $2에 산 것인데 무슨 털인지는 몰라도 천연 모직인 것만은 틀림없는 것이(불에 태운 냄새로 확인) 손으로 짠 것으로 두툼해서 사이즈가 넉넉한 새 등산화에 딱 안성맞춤이었다.
머리에는 고소모에 바라클라바와 고글을 썼고, 장갑은 스키 장갑 속에 폴라 장갑을 꼈다. 부산의 김兄이 결국 고소증세로 등정을 포기하는 바람에 사람 대신 장갑이라도 정상에 세워보려는 마음에서 김兄의  장갑을 빌려서 낀 것이다.
배낭 속에는 고어텍스 자켓과 군용 벙어리장갑, 여벌 바지, 비상약, 보온병, 그리고 또 뭐더라? 하여튼 빵빵하게 "뽕 배낭(?)"을 꾸렸다.
주방 텐트에 모여 밀크티(찌아) 한 잔씩을 마시고 드디어 출발이다. 셀파 왕추가 대열의 순서를 정해주는데 니마 셀파가 1번, 그리고 내가 역시 제일 염려스러운지 2번, 정君, 허兄, 왕추 셀파의 순서이고, 순서가 정해지지 않은 키친보이 3명이 고정로프 200미터짜리 2뭉치와 스노우 바, 아이스 스크류 등 공용장비에다가 개인등반장비와 간식을 메고 따라간다.
하늘은 더없이 맑아 하현으로 기울어진 반달이 뿌리는 달빛 속에서도 별들은 부지런히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바람도 한 점 없이 그야말로 고요함이 충만한 더없는 날씨 상태다. 그런데 왜 지리산에서 보는 것처럼 낭만적인 분위기는 느껴지지 않는 것일까?
급경사 너덜지대를 갈짓자로 올라 전진캠프까지 가는 길은 어제 내린 눈으로 살짝 덮여 있어서 아이젠이 없이 오르는 발길이 조심스러웠다. 뒤돌아 보니 5~6미터씩 거리를 두고 올라오는 일행들의 헤드랜턴 불빛이 지리산 천왕봉 올라가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너덜지대를 올라가는 일행들>


우리보다 10여분 앞장 서서 출발한 이태리팀은 쑥쑥 거리를 벌리더니 이내 보이지 않는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전진캠프로 올라가는 동안에 이미 심장은 쿵쾅쿵쾅, 허파는 확확- 그야말로 터지기 일보 직전까지 간다. 여지없이 10초 걷고 30초 휴식이 반복된다. 워낙 걷는 시간이 짧고 쉬는 시간이 길어서인지 다리는 힘든 줄을 모르겠다.
그래도 아무 생각없이 꾸역꾸역 걸어 올라 어제 올라왔던 전진캠프 자리를 지나고, 어느덧 스노우 라인(본격적으로 눈이 쌓여 있어서 장비를 착용해야 하는 지점)에 도착했다. 6시가 조금 지났다. 예정했던 시간보다도 벌써 1시간이나 초과했다.
먼저 도착해 있던 이태리팀의 3명 중에서 2명이 고산증세가 심해져서 도저히 더 이상 못 가겠다고 도로 내려가고 한 명만 남아서 우리 팀과 같이 올라가기로 했다.
스노우 라인에서 왕추 셀파의 도움을 받아 장비를 착용했다. 10발 아이젠과 스패츠를 착용하고, 안전벨트에 쥬마와 8자 하강기, 안자일렌용 확보줄 등을 카라비너 3개로 주렁주렁 매달고 스틱 대신에 피켈을 들었다. 그런 대로 에베레스트 원정대하고 비슷한 폼이 나오는가?



     <등반장비들을 착용한 모습 - "군장검사 이상 무!">


     <남쪽을 바라보니 꼭대기에만 떠오르는 햇살을 받아 빛나는 "아마다블람"이>


주먹밥과 찌아를 간식으로 먹고, 이제는 날이 밝아졌기에 랜턴을 배낭에 집어넣고 본격적인 정상 공격이 시작되었다.  
만년설 지대인 듯 눈이 녹았다가 얼어붙은 것이 꼭 도로공사판에 세워 놓은 플라스틱 원뿔(콘)처럼 위로 솟은 고드름이 온통 덮고 있는 경사면을 따라 안자일렌을 하고 서서히 오른다. 니마 셀파는 이태리팀의 셀파와 함께 고정로프를 설치하러 먼저 올라갔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왕추 셀파가 선두를 섰다.
조금 가니 사진으로만 보아왔던 크레바스들이 있는 지역이다. 왕추가 조심조심 피켈로 찍어보고 안전한 곳을 골라 건너갔다. 겁이 나서 가까이 가지는 못하고 건너면서 흘낏 내려다보니 시커먼 게 얼마나 깊은지 짐작이 안 간다.


     <안자일렌으로 크레바스 지대를 지나가고 있다>


     <공포의 크레바스 지대 - 갈라진 틈의 간격은 대략 1.5미터 남짓>


이제는 아침 햇살이 완전히 퍼졌다. 햇살을 받아 더욱 희게 빛나는 설벽이 엄청난 공포감을 몰고 덤벼든다. "과연 해낼 수 있을까?"


     <햇살을 받아 빛나는 "3백미터 설벽" 앞에서 왕추 셀파가 일행을 살피고 있다
       - 그림자 경계 부분이 로프 시작점으로 여기서 정상까지 고도차이가 3백 미터>


땅, 아니 눈바닥은 녹았다 얼었다를 반복해서 거의 얼음 수준인 데다가 위로 솟은 고드름 때문에 울퉁불퉁해서 발을 디디기가 힘든 건 말할 것도 없고 적당히 위로 경사진 것이 지리산 제석봉 올라가는 돌길을 연상시킨다.
아무 생각이 없다. 누가 카메라를 들이대도 멋진 폼 한 번 잡을 생각도 안 나고, 아침 햇빛에 반짝이는 설산들을 뒤돌아보며 감상할 생각도 못 했다. 그저 앞 사람 신발만 내려다보며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내디딘다. 그리고 30초도 못 가서 휴식-


     <"힘들 때는 쉬는 게 맞지">


     <"사진 찍는다고? 그럼 힘들어도 폼을 잡아야지">


     <또 쉬고 - 걷는 시간 보다 쉬는 시간이 더 많은 듯>


     <또 휴식 - 추위 때문에 필름카메라도 얼었는지 렌즈 뚜껑이 반쯤만 열리다 말았다>


     <또 쉬어? 이 사람들 내가 쉴 때만 사진 찍었나?>


지난 1년 동안 모래주머니 차고 체력 훈련한 것도 다 소용없다. 문제는 다리 힘이 아니고 산소량이니까.(폐활량 늘리는 훈련을 하고 올 걸 그랬나? 폐활량이 크면 좀 도움이 되려나?)
멈추어 서서 가쁜 숨과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면서 눈을 들어보니 설벽의 윗부분에서 셀파 두 명이 고정로프를 설치하는 모습이 마치 하얀 벽에 개미가 기어 올라가는 듯한 느낌으로 눈에 들어온다.
드디어 설벽이다. 고도계를 보니 5,850m- 정상이 6,189m이니까 해발고도 차이가 300미터를 넘는다는 얘기다. 떠나오기 전에 이 "3백미터 설벽"에 대해서 그토록 많이 들었고 사진도 보았건만 수직으로 3백미터를 기어 올라가야 한다는 건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수평거리 3백미터로 생각했었다)
그 사이에 운행의 순서가 바뀌어서 내가 맨 마지막이 되어 버렸는데, 안전을 위해서 내가 왕추 셀파의 앞에 오르고 왕추가 맨 뒤에 모른다. 왕추 셀파의 도움으로 쥬마와 안전고리를 고정로프에 걸었다. 오른손으로 쥬마를 당기면서 아이젠 발끝의 톱포인트를 벽에 힘껏 박으면서 왼손에 든 피켈로 설벽을 찍었다.
그런데 웬걸? 아이젠으로 찍은 곳은 얼음이 부스러지고 피켈은 튕겨나오고 첫 걸음부터 헛발질이다. 기술이 없어서인지 체력이 딸리는지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 왕추가 보더니 피켈을 배낭에 집어넣고 손으로 그냥 오르란다.
다시 오른손에 쥬마를 잡고 왼손으로는 하늘로 솟은 고드름을 잡고, 아이젠을 그냥 평지 걷듯이 디디니까(다행히도 벽이 수직은 아니어서) 좀 올라갈 수 있는 것 같다. 문제가 잘 안 풀릴 때는 역시 단순 무식한 것이 통할 때도 있는 것 같다.


     <앞 사람은 까마득히 저 위에 가고 있는데…>


한 발짝 한 발짝 오르다가 스노우 바가 있는 곳에서 피치를 바꾸려면 쥬마와 안전 카라비나를 로프에서 풀었다가 다시 걸어야 하는데, 이것도 벽에 붙은 채 장갑 두툼하게 낀 손으로 하려니까 잘 안 된다. 한국에서 연습할 때는 잘 됐는데...
위에서 오르는 사람이 로프에 힘을 주고 체중을 실으면 로프가 좌우로 크게 흔들리는데 이게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난관이다. 그러잖아도 균형 잡기가 어려운 판에 아래 위에서 힘을 줄 때마다 좌우로 90도씩 몸이 돌아가며 얼음벽에 부딪치는 게 바싹 꼬아 놓은 고무줄에 매달린 꼴인 것이다.
결국, 쥬마를 놓쳤다!
쭈르르륵- 까마득히 떨어지는가 했는데, 덜컥 하더니 멈추었다. 쥬마의 브레이크 기능이 제대로 발휘되면서 안전벨트와 연결된 쥬마에 대롱대롱 매달린 것이다. 에고, 십년감수했다! 신문에 날 뻔 했네. 아니, 해성이 <119 헬기> 타고 히말라야로 날아올 뻔 했나?
내가 여기 왜 왔지? 이렇게 힘든 줄 알았으면, 수평이 아니라 수직으로 3백미터를 올라야 하는 줄 알았으면 포기했을 텐데… 여기 오는 돈이면 지리산에 5년 동안은 다닐 수 있을 텐데… 도로 내려갈까? 고개를 돌려 밑을 내려다보니 더욱 아찔하다.
"여기 온다고 동네방네 얼마나 소문내고 다녔는데 올라가다가 도로 내려왔다고 얘길 어떻게 하지? 아자! 가는 거야! 한 번 당기고 쉬더라도 계속 가는 거야!" --- 이런 생각과 각오로 올라갔으면 좋았을 텐데, 그게 아니고 그냥 무념무상, "고추밭에 구멍 파는" 것처럼 아무 생각없이 줄을 당기고 고드름을 잡고, 아이젠을 얼음에 박으면서 그렇게 올랐다.
겨우겨우 정상 직전의 릿지에 섰다. 좌우로는 말 그대로 "3백미터의 절벽"이다. 다리가 후들후들(힘이 빠져서가 아니라 겁이 나서)- 천천히 마지막 둔덕을 올라섰다.


     <정상 직전의 릿지 구간을 오르고 있다>


     <릿지를 통과해서 정신을 차린 다음에 바라본 마지막 정상 부분의 비탈면>


아! 드디어 정상이다.
"이제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다!"- 정말로 이 말이 그렇게 하고 싶었다.
먼저 올라와 있던 일행들이 뭐라고 떠드는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전혀 생각이 안 난다. 우선 눈에 들어오는 건 코 앞에 우뚝 선 눕체와 로체, 그리고 그 뒤로 삐쭉 머리를 내밀고 있는 에베레스트! 저 너머 마칼루와 아마다블람, 그리고 또 많은 산, 산, 산…
모두들 서둘러 기념사진들을 찍었다. 갖가지 포즈와 배경으로…(그런데 생각보다 정상부의 넓이가 크지 않은 탓인지 정신이 없었던 탓인지, 나중에 보니 좋은 배경이나 멋진 폼은 하나도 잡지 못해서, 결국 카트만두에 와서 인쇄해서 파는 사진을 사야만 했다.)


     <정상에 서서 에베레스트를 배경으로 - 뒤로 제일 높게 보이는 봉우리가 에베레스트>


나도 얼른 배낭에서 "오브넷 스티커"와 "오브넷 물병"을 꺼내 앞에 놓고 사진을 찍었다.


     <오브넷 스티커와 물병도 같이 올라왔습니다>


     <단체 사진도 - 왼쪽부터 허兄, 왕추 셀파, 본인, 정君
       뒤의 눈보라를 뒤집어 쓴 봉우리는 "눕체(7,861m)">


     <정상에 서서 내려다 본 릿지 구간>


이제 내려가야만 한다. 춥고 바람이 부는 데다가 11시가 넘어서고 있어서 구름이 몰려들 시간이 되기 때문이다.
올라올 때 사용했던 쥬마는 안전벨트에 걸고 대신 "8자 하강기"를 로프에 걸었다. 왕추 셀파는 하강기를 걸지 말고 그냥 내려가 보라고 하는데, 어림도 없지, 나같이 겁 많은 사람이 가당키나 한 소린가!


     <"초보 올빼미 하강 준비 끝!" - 하강기를 줄에 걸고 내려갈 준비>


하강기를 걸고 뒤로 돌아선 자세로 천천히 내려간다. 군대에서 유격훈련 받을 때를 생각하며 멋지게 레펠을 해야지- 하고 생각했는데 천만의 말씀이다.
이 역시, 국내에서 한 번 연습할 때는 쉽다고 생각했는데 아래 위에서 흔들어대는 데다가 벽이 고르지 않으니 올라갈 때 이상으로 어렵다. 천신만고 끝에 두 번의 추락사고를 더 겪을 뻔 한 뒤에야 겨우 로프 끝에 내려올 수 있었다.


     <줄에서 하강기를 풀고 올려다 본 임자체 정상>


올라갈 때보다 결코 더 빠르지 않을 속도로 어기적어기적 대면서 돌아온 스노우 라인에서 기다리고 있던 키친보이들이 건네주는 찌아 한 잔의 맛은 세상 그 어느 음료보다 달콤하게 느껴졌다.


     <숨을 돌리고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 가운데 하얀 것이 얼어붙은 "임자초" 호수>


결국 여기에서 나는 왕추 셀파의 명령(?)에 의해 배낭을 키친보이에게 넘겨주고 말았다.
오늘 BC의 텐트를 모두 철거해서 추쿵까지 내려가야 하기 때문에 왕추 셀파는 철수 준비하러 앞장 서 서둘러 하산하고 나는 내 배낭을 멘 키친보이와 함께 또다시 "비스따리"를 주절대며 맨 꼴찌로 내려갔는데 요리사 "다와"와 등정을 포기했던 김兄이 한참 앞에까지 마중을 나와 주었다.
BC 자리에 이르니 이태리팀은 어느새 몽땅 철수해 버리고 깨끗하다.
이제는 철수 준비다. 서둘러 점심을 먹고는 카고백의 짐을 싸서 포터에 넘겨주고 배낭을 둘러 메었다. 14:40. 여기서 추쿵까지는 3시간을 예정하니까 17:30이 넘어서 도착하게 되고 곧 어두워질 수 있으니까 서둘러야 한다. 다행히도 길이 대부분 평탄하고 전반적으로 고도를 낮추는 구간이기 때문에 큰 걱정은 되지 않았다.
아직도 체력이 왕성한 허兄과 정君은 어느새 보이지도 않게 앞질러 갔고, 한 시간쯤 같이 가던 왕추 셀파는 요리사 "다와"와 함께 추쿵에서의 준비 때문에 앞서 가야겠다고 보조 셀파인 "니마"를 불러 후미에서 나와 김兄을 이끌고 오라고 지시했다.
그런데, 이 친구 "니마"는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약간은 천방지축인 청년이었다. 우리들의 걷는 속도가 지루했던지 지나가던 포터들과 대화를 나누다가 슬그머니 그들과 보조를 맞추어 앞서 나가더니 1시간쯤 지나서는 종적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길이 확연하기에 별 걱정을 하지 않고 "우리들만의 속도"로 뒤따라가고 있었는데, 17시가 가까워지면서 예의 짙은 구름이 몰려들어 사방이 갑자기 어두워지고 느닷없이 길이 세 갈래로 나뉘어졌다.
이정표가 있을 리 없고 올라갈 때 지나갔던 기억이 아리송하니 어느 길인지 영 자신이 없다. 가운데 작은 계곡 길을 두고 양쪽으로 능선길이 나뉘어졌으니 김兄은 오른쪽, 나는 왼쪽, 양쪽 능선으로 갈라서 가 보기로 한다. 서로 맞은편의 능선에서 소리를 질러가며 위치를 확인하고 진행하다가 어느 순간, 소리가 끊겼다.
주위는 이제 완전히 어둠에 싸였다. 불안감이 엄습한다. 조금 전에 본 야크 몇 마리를 빼고는 왼쪽의 능선 아래로는 전혀 불빛이나 인적도 없고, 길은 야크가 다닌 자국으로 인해 그물처럼 얽혀졌다. 다시 소리를 질러가며 오른쪽 김兄이 간 방향으로 신경을 모아 보지만 허공에 흩어진 소리는 메아리도 없다.  
바람과 함께 날은 점점 추워지고 배낭에는 갈아입을 간단한 옷가지만 들었지, 침낭이나 두터운 방한용품은 거의 없으니 여기서 밤을 지샌다는 것은 거의 자살행위다.
그러기를 얼마나 되었을까? 오른쪽 김兄이 갔던 방향에서 무슨 소리가 나는 듯 하다. 얼핏 생각이 나서 헤드랜턴을 깜박이로 바꿔서 오른쪽으로 돌리고는 다시 소리를 질렀다.
몇 분 후, 내 앞에 불쑥 나타난 나이 어린 포터의 얼굴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나중에 얘기를 들으니, 김兄이 간 쪽이 올바른 길이어서 곧 롯지에 다다를 수 있었고, 상황을 전해들은 왕추 셀파가 포터들을 풀어서 수색에 나선 것이었다. 마을 입구 길에서 만난 왕추는 미안해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산에서도 아니고 멀쩡한 길에서 손님을 조난사고로 죽게 할 뻔 했으니 그도 역시 황당한 사건이었겠지만, 내 심정에 비할 수 있으랴!
엎친 데 덮친다고 했던가- 저녁을 먹고 어느 정도 진정이 되고 나니 왕추의 얘기가, 방금 촐라 패스를 넘어온 현지 주민의 얘기에 의하면 촐라 패스 통과의 깃점인 <종글라>와 넘어선 뒤의 <당낙>에 있는 롯지가 비수기라서 문을 닫았다고 하고 겨울 동안 눈이 많이 내리지 않아서 크레바스들이 많이 위험하다고 한다.(이 점은 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롯지를 이용하지 않고 야영을 하면서 통과할 수도 있겠으나 포터들의 야영 장비가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아서 또한 문제가 된다.
결국 촐라 패스 통과를 강행하기에는 너무 위험하다는 왕추 셀파의 결론에 우리 욕심만을 고집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촐라 패스를 넘지 않고 고쿄리를 가려면 포르체텡가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북쪽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그러자면 원래 일정보다 최소한 이틀 이상 더 걸리기 때문에 촐라 패스만이 아니라 전체 일정상 고쿄리 등정도 포기해야만 한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니 섭섭해도 할 수 없지 뭐.
다시 일정을 수정하고 나니 오히려 이틀 정도의 여유가 생겼다. 일행들끼리 이틀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를 의논했지만 결론이 나지 않아서 가면서 다시 의논하기로 했다.
정상 등정에 조난 사고 일보 직전까지 갔다 오고 나니 심신이 피곤해서 금새 잠이 들어버렸다.
  • ?
    부도옹 2006.03.13 13:10
    와~ 짝 짝 짝 짝~~~~~~~~~~~~~~~~
    정상등정을 축하합니다. ^^*
    "....예의 짙은 구름이 몰려들어 사방이 갑자기 어두워지고 느닷없이 길이 세 갈래로 나뉘어졌다...."
    아, 그때의 심정 깊히 공감합니다. ^^;
    손에 땀을 쥐게하는 등정기였습니다.
  • ?
    김종광 2006.03.13 16:21
    대 ~단 하십니다. 김선생님 수고 많이 하셨네요.
    축하합니다. 좋은글 사진 읽고 보면서 잔잔한 감동이 가슴에
    밀려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좋은일이 많으시길 빕니다.
  • ?
    야생마 2006.03.13 23:54
    정말 대단하십니다. 그렇게 신을 만나셨군요.
    하루만에 정상을 공략할 수 있다는 것에 저도 마음에 두려 합니다만,
    장비없이는 꿈도 못 꾸겠구만요. 그 아찔하고 위험한 곳에서는
    집중력과 투지로 잘 해내시고 아래쪽 안전한 곳에서 오히려 큰일이
    날뻔 했구만요. 당락의 롯지가 문을 연다 하더래도 촐라패스를 넘는건
    정말 무리지요. 그럼, 칼라파타르로 향하시는 거군요.
  • ?
    강미성 2006.03.14 08:46
    저도 메고 다니는 오브넷 로고,
    반갑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 ?
    H.S 2006.03.14 09:16

    정상 등정을 진심으로 축하 합니다!
    조금 더 젊은 나이에 시작하셨으면
    에베레스트 등정을 비롯한 14좌 등반 성공자로
    남을뻔 하셨습니다.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 ?
    K양 2006.03.14 09:47
    사진으로만 봐도 아슬아슬한 암벽 능선을 타고 결국엔 올라가셨네요.
    정상 정복도 좋지만 저런 곳을....
    휴... 큰일 날뻔하셨네요.
    가슴조이며 읽으니 함께 오른 기분입니다.
    대단하시네요.
  • ?
    선경 2006.03.14 12:51
    투지력과 용기로 등정하신 정상의 모습,,,
    정말 멋지십니다,,,,김수훈님
    하강기를 풀고 올려다본 임자체정상을 올려다본 사진을
    보니 다시한번 가슴이 떨립니다,,,다시한번 축하드립니다
  • ?
    슬기난 2006.03.15 00:03
    목숨걸고 초보의 명예를 지킨 초보산행님께
    박수를 보냅니다. 짝짝짝!!!

  • ?
    진로 2006.03.15 10:57
    내년엔 7,000미터급에 도전하시겠는데요?
    축하드립니다... 수고하셨고요...
  • ?
    정동훈 2006.03.15 14:16
    고생많으셨습니다. 저도 내년에 아마다블람 원정준비를 하고있는데 김선배님의 생생한 산행기 많은 도움이 되는것 같습니다. 같이 지리를 사랑하는 사람들로서 항상 김선배님께 존경을 금할길 없습니다. 기회가 되시면 저희산악회 홈페이지에도 놀러 오십시요 www.kjwooam.com/ 광주우암산악회입니다.
  • ?
    희망 2006.03.17 12:35
    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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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2 히말라야 임자체 산행기-1 11 김수훈 2006.03.09 3489
331 히말라야 임자체 산행기- 못다한 애기들 5 김수훈 2006.03.28 3095
330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트레킹 (6) 3 청솔지기 2012.12.31 883
329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트레킹 (5) 1 청솔지기 2012.12.29 690
328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트레킹 (4) 1 청솔지기 2012.12.25 1328
327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트레킹 (3) 1 청솔지기 2012.12.23 1538
326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트레킹 (2) 1 청솔지기 2012.12.07 800
325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트레킹 (1) 2 청솔지기 2012.11.26 790
324 후지산 산행기 12 오 해 봉 2004.08.30 2865
323 황과수폭포에서 귀양을 거쳐 계림으로 file 김수훈 2016.10.23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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