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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1월 말에 미국 그랜드 캐년에서 콜로라도 강까지 내려갔다 오는 당일 하이킹을 했다.

그랜드 캐년에서 협곡 아래 흐르고 있는 콜로라도 강까지 내려갈 수 있는 공식 트레일은 3개가 있다.

해발 2300m 정도 높이에 있는 사우스 림(south rim, 남쪽 가장자리)에서 해발 750미터인 콜로라도 강까지 내려 가는 트레일 두 개, 2600m 높이인 노스 림(north rim, 북쪽 가장자리)에서 강까지 내려갈 수 있는 트레일이 하나 있다.  

내가 택한 코스는 사우스 림에 있는 사우스 카이밥(south kaibab) 트레일로 콜로라도 강까지 내려갔다 브라잇 엔젤(bright angel) 트레일로 사우스 림으로 다시 올라오는 왕복 코스였는데, 총 길이는 약 27km, 새벽 6시 경 시작해서 10시간 만인 해 지기 전 4시에 끝났다.

여름철에는 이렇게 하루 동안 강까지 갔다 오는 건 죽음을 무릅쓴 위험한 일이라고
트레일 곳곳에 경고 표지가 있을 만큼 물과 나무가 없고 한낮 지열이 대단한 곳이다.

11월 말이라 사우스 림 새벽 온도가 0도 정도였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대략 꼭대기인 사우스 림과 협곡 아래 콜로라도 강의 기온 차이는 10~15도 정도 되는 것 같았는데 여름에는 지열 때문에 체감 온도는 더 차이 난다고 한다.

지리산 천왕봉에서 중산리로 내려갔다 다시 장터목 거쳐 천왕봉으로 올라가는 것과
비교하면 그랜드 캐년 사우스 림에서 콜로라도 강까지 왕복하는 게 고도 차이는
200m 정도 더 되고 거리는 두 배 이상 길다고 보면 된다.

지리산에 비해 길은 비교적 편안하지만 1450m 정도를 계속 내려갔다 또 계속
올라오기만 하는 코스라 내려갈 때 특히 무릎 조심해야 할 것 같았다.


*림에서 강까지 하루에 갔다 오면 극심한 탈진으로 인해 죽음에 이를 수 있다고
경고하는 표지판과 사우스 카이밥과 브라잇 엔젤 트레일 기점 표지판


십여 년 전, 노스 림(north rim) 에서 처음 그랜드 캐년을 내려다 봤을 때의, 숨이 턱 멎을 것 같은 느낌은 정말 뭐라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너무 장엄하고 아름다운 나머지 갑자기 슬픈 느낌이 들어서 한참 앉아서 그냥 바라보기만 했었다.

작년에 미국에 몇 달 있을 때, 그랜드 캐년 사우스 림에 한번 가봐야겠다 생각하고
인터넷 검색하다가 우연히 계곡 아래 콜로라도 강까지 내려갔다 오는 트레일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거리상으로는 충분히 하루 만에 강까지 내려갔다 올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공원 안내서에는 하루에 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경고가 있었고 처음 가보는 곳이라 무리하면 안 될 것 같아 일단 내려가 보고 올라오는 지점은 상황에 따라 결정하기로 계획했다.

하이킹 전날 오후에 공원에 들어가서 트레일 기점까지 타고 갈 셔틀 버스 타는 곳과
주차장, 그리고 첫 운행 시간도 알아 놓고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근처 마트에서 다음날 먹을 샌드위치도 사고 간식 에너지 바, 충분한 물도 준비했다.

중앙 주차장에서 사우스 카이밥 트레일 기점으로 가는 버스는 종점이 일출 전망으로 유명한 곳인데 그날은 5시 반에 운행을 시작했다. 내가 탄 날 세 커플이 함께 타고 갔는데 그 중 두 커플이 트레일 기점에서 내렸고 한 커플은 계속 타고 간 것으로 보아 바로 다음 정거장인 야키 포인트로 일출을 보러 간 것 같았다.

아직 캄캄한 트레일 시작점에 내려 헤드랜턴을 켜고 간이 화장실에도 들르고 몸을 살살 움직여도 보며 조금 밝아지기를 기다렸다가 6시 경부터 본격 트래킹을 시작했다. 해 뜨려면 1시간 정도 남았지만 여명과 함께 아직 지지 않은 휘영청 둥근 보름달이 새벽 어둠을 걷어 내고 있었다.  

버스에서 함께 내린 다른 커플은 어느새 쌔~앵 내려가고 없었다.




계곡 아래 콜로라도 강변에서 만나 얘기 나눠 보니 독일인 젊은 부부였다.

6개월 전에 독일에서 떠나 자전거로 중국까지 대륙횡단을 해서 왔고, 중국 상해에서 비행기로 미국 캘리포니아주 시애틀로 와서 다시 자전거로 LA까지 왔고, 거기서 비행기로 그랜드 캐년까지 왔다고 했다.

그랜드 캐년 하이킹 후에 다시 비행기 타고 LA 가서 거기 두고 온 자전거를 타고 남미로 계속 내려 갈 계획이라고 했다.

그랜드 캐년 속에 들어 오니 참 놀라운 사람들도 만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트레일 내려갈 때 좀 무리를 했는지 여자분이 무릎이 아파 올라올 때 많이 힘들어 했는데 그후 여행 잘 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잘 했을 것 같다!

장거리 하이킹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것 중 하나가 시작할 때와 내리막에서 천천히 걷는 것인데 초반 내리막에서 좀 속도를 낸 것 같다고 했다.

해 지기 전에 하이킹 끝내고 일몰 경치가 유명한 전망대로 이동하기 위해 끝까지 함께 안 올라오고 전망대서 만나자고 하고 먼저 올라왔는데 일단 해 지면 완전 암흑천지 되는 곳이라 다시 만나지는 못했다.

사우스 카이밥 트레일로 내려갔다 다시 올라오려 한 원점회귀 계획을 수정해서 브라잇 앤젤 트레일로 올라 온 것도 그 독일인 부부 덕분이었는데 - 그랜드 캐년 근처에 사는 하이킹 좋아하는 친구가 그 왕복 코스가 그랜드 캐년에서는 베스트라고 추천했다고 했다 - 정말 최고의 선택이었던 것 같다.

능선을 타고 내려오는 사우스 카이밥 트레일에서는 일출 후, 시간에 따라 변하는 그랜드 캐년의 아름다운 색깔과 장엄하고 광활한 풍광을 볼 수 있었고, 브라잇 엔젤에서는 다소 아기자기한 협곡의 속살을 볼 수 있었으니까!

그날 우리 부부와 그 독일인 부부 외에는 당일로 왕복 코스를 걸은 사람은 만나지 못 했는데 정말 행운이었던 것 같다. 함께 하이킹을 마치고 시원한 맥주 들이키며 좀 더 이야기 나누지 못한 것이 좀 아쉽긴 해도.


(* 노란 원: 독일인 부부)


브라잇 엔젤 트레일은 총 길이가 15.3km 인데 사우스 카이밥 트레일(11.3km) 보다
거리는 4km 정도 더 길지만 덜 가파르고 그늘진 곳도 있고 인디언 가든이라는 야영장도 중간에 있어서 미리 예약하면 텐트 치고 하룻밤 쉬었다 가도 된다.

계곡 아래 콜로라도 강변에도 야영장이 하나 있고 팬텀 랜치(Phantom Ranch)라는 유일하게 식사도 제공하는 숙박시설도 한 곳 있는데 랜치에서 묵으려면 길게는 일 년 전부터 예약해야 할 만큼 규모가 크지 않은 곳이다. 노새로 여행하는 단체 손님들이 주로 이용한다.

트레일 중간에서 두어 팀 만났는데 이들을 만나면 무조건 트레일 안쪽으로
약간 높이 바짝 붙어 서서 마지막 노새가 완전히 지나갈 때까지 가만 있어야 한다.

트레일 바깥쪽은 걸으면서 봐도 아찔해지는 천길 낭떠러지인 좁은 길에서 노새를
타고 가는 것을 보니 땀 흘리며 힘들게 걷는 것보다 편하기야 하겠지만 웬만한 용기와 배짱 없으면 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마치 석양의 무법자의 한 장면을 보는 것처럼 멋있어 보이기도 했는데 본인들도
서부 영화의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을 충분히 만끽하며 즐기는 것 같았다.


*Tip-Off 라는 곳에서 휴식하다 만난 노새 여행객들과 그들의 짐을 싣고 가는 노새들


사우스 카이밥 트레일로 내려올 때 상당한 내공이 느껴지는 좀 나이 든 백인 여자분과 마주쳤는데 팬텀 랜치에서 이틀 자고 올라가는 길이라고 했다.
나보고 랜치에서 잘 거냐고 물어서 안 자고 당일로 강까지 내려갔다 올라올 거라고
했더니 약간 놀라며  올라올 때 자기랑 만날지도 모르겠다며 농담을 했다.

당신이 올라가다가 중간 어디에 앉아서 명상하고 있으면 다시 만날지도 모르겠다고
나도 농담했더니 "오키도키" 즐겁게 화답하며 손 흔들고 올라갔다.

그랜드 캐년을 혼자 유유자적 즐기며 오르내리는 그 모습이 나도 모르게 명상 수행자처럼 보여 자연스럽게 그런 대화를 나눈 것 같다 . 혹시 그랜드 캐년을 자주 찾는 지질학자 중 한 사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랜드 캐년에 있는 봉우리들 중에는 무슨 무슨 temple(사원, 신전)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곳들이 있는데 붇다, 브라흐마, 비쉬누, 시바, 이시스, 조로아스터 템플 등
수행과 신비 체험을 중시하는 고대 동양 종교와 관련된 것이 많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아름다움을 간직한 캐년 속에서 18억 년의 시간 여행을 하면서 왜 그런 이름이 붙여졌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바다에 떨어진 물방울 하나가 된 듯한 무의 체험, 그런데 그 작은 물방울 하나가
바다를 담고 있다는 인식, 그랜드 캐년은 그런 깨달음을 주는 곳이기 때문 아닐까!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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