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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주변산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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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번 산행은 세 사람의 사정이 안 맞거나 장마비가 오거나 해서 7월 한달을 넘겨서 이루어지게 됐는데, 며칠 전에 삼봉 씨가 다시 사정이 생겨서 늦게 출발해서 뒤쫓아오겠다고 한다. 김천에서 우두령까지의 교통편은 다행히 친구의 친구를 연결해서 봉고차 지원을 받게 되었다. 기차를 예약하려고 했더니 으악! 이게 웬일인가! 00시 39분에 출발하던 무궁화열차가 없어져 버렸다. 하는 수없이 23:40 열차에 입석으로 가야 할 밖에. 어째 시작부터 좀 꼬이는 것 같다.
2) 봉고차를 타고 우두령에 도착하니 날이 밝아온다. 잠깐 비탈길을 올라서니 헬기장이 나타난다. 우두령을 낮에 지나는 팀이라면 점심먹기에 적당하겠다. 심하지 않은 오르막길을 20여분 올라가 날등에 서니 흔적만 남은 무덤이 하나 있고 길은 왼쪽으로 크게 꺾인다. 지도상의 870 고지 같은데 마땅한 표지는 없다. 다소 급해지는 오르막길을 20여분 올라선 후 평지나 나오는 곳에서 아침을 먹는다. 집에서 싸 온 유부초밥을 간단히 먹고 출발하는데 구름이 몰려와 휩싼다. 이슬인지 빗물인지에 흠뻑 젖어 삼성산(985.6)과 1,030m 봉우리를 알아보지 못한 채 지나쳐 버리고 헬기장이었던 듯 싶은 공터를 지나자 갑자기 나타난 콘크리트 전봇대에 깜짝 놀라보니 조그만 막사 같은 게 보이고 임도를 만난다. 지도에는 "폐초소"라고 되어있는데 살펴보니 초소가 아니고 이동식 화장실이다. 임도의 왼쪽 방향으로 조금 따라가다가 왼쪽 오솔길로 들어서면 오른쪽은 10여미터의 절개지 절벽이다. 다시 임도를 만나고 50여미터를 가면 임도가 오른쪽으로 꺾이는 곳에 오른쪽 오솔길로 대간길은 갈라진다. 이 부근에서 임도를 따라 잘못 가면 김천 쪽으로 내려가는 실수를 하기 쉽다. 잡목 사이를 뚫고 나가니 잘 관리된 헬기장이 나타난다. 아마도 여기가 바람재인 듯. 안개구름은 여전히 시야를 가리고 있고 나뭇잎의 이슬은 온몸을 적시고 있다.
3) 모처럼 이정표가 나타난다. 양철판에 방향 표시만 돼 있는데, 거리나 소요시간이 없긴 하지만 신선봉 갈림길이란 걸 알려주고 있어 지도와 대조해 보면 위치 파악이 가능해서 그래도 없는 것 보다야 백배 낫다. 형제봉도 표시가 없어서 대충 짐작으로만 적어둔다. 다시 양철 이정표가 능여계곡 갈림길임을 알려주고 곧이어 황악산이다. 좁은 흙바닥 공터에 자연석 표석과 화강석을 다듬어 만든 표석 그리고 삼각점이 나란히 줄지어 있다. 직지사 쪽에서 맨몸으로 올라온 관광객들이 몇 명 있어서 물을 나누어 주며 잠깐 얘기를 하고는 다시 출발한다. 여기에서는 직지사 쪽의 나무계단 길을 따라야 한다. 바로 밑에 헬기장으로 들어섰다면 빨리 오른쪽으로 꺾어서 확실하게 닦여진 직지사 길을 찾아야지 잘못하면 북쪽으로 난 다른 능선이나 계곡길로 들어서서 엉뚱한 데로 가기도 한다.(실제로 오후에 혼자 출발한 삼봉 씨는 여기 헬기장에서 길을 잘못 들어 죽을 고생을 하다가 서북쪽으로 4km 이상 벗어난 절(영축사)로 찾아들어 기사회생했다)
4) 다시 제대로 직지사 길을 찾아 조금 내려가니 조그만 전망바위가 나타나면서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구름이 걷히고 산아래 전망이 확 뚫린다. 길에는 리본이 제법 달려있지만 방향은 거의 동쪽으로 급히 내려가기만 하고 왼쪽에는 보다 확실하고 높은 능선이 평행으로 쫓아오고 있어서 자꾸만 직지사로 하산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고 불안해진다. 다행히 한 선생이 고도계를 가지고 있어서 지도상의 갈림길의 표고인 600미터와 비교해 가며 안심할 수 있었다. 길은 바위와 흙길이 골고루 나타나며 급경사로 내리꽂혀 만일에 비오는 날씨에 이곳을 지나면 매우 위험할 것으로 여겨졌다. 이제 해가 나면서 더워지기 시작한다. 등산로 양 옆으로 벤치가 놓여진 곳을 지나고 백운봉은 어딘지 모른채 통과, 두번째로 또 벤치가 놓여진 곳에 이르니 바로 갈림길이다. 안내판은 황악산(비로봉)까지의 거리만 알려주고 있지만 직지사는 오른쪽 나무계단 길로 내려가게 되고 대간길은 정면에 리본이 달려있어 쉽게 분간이 된다.
5) 갈림길에서 조금 비탈을 올라 적당한 자리를 찾아 점심식사를 한다. 집에서부터 무겁게 짊어지고 온 물로 라면을 끓여먹고는 나무그늘에 길게 누워 낮잠을 잤다. 바람은 살랑살랑 코를 간질이고 간간이 들리는 매미소리와 새소리를 벗삼아 단잠을 잤다. 속보로 휙휙, 몇 시간에 주파했다는 것도 좋겠지만 이렇게 이따금 자연 속에 파묻혀 산의 정기(精氣)를 맛보는 것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6) 나즈막한 운수봉을 넘어 더 작은 봉우리를 몇 개 넘어서면 여시골산은 또 알아보지 못하고 지난다.
목장 울타리였던 듯 싶은 철사줄의 잔재가 나타나면 그 왼쪽으로 길이 비교적 잘 보이고 차소리가 들리면서 궤방령에 내려선다. 우두령보다는 통행량이 훨씬 많은 2차선 포장도로이다. 왼쪽 영동 쪽으로는 비닐하우스와 건물이 몇 채 보이지만 민가는 아니고 가게 같은 것도 보이지 않는다. 김천쪽으로 1백미터쯤 내려가면 길 오른쪽에 큰 자연석에 "김천시 대항면"이라고 써 있고 주변은 잔디밭이 잘 가꾸어져 있어서 행락객도 있다. 왼편 깊숙이에 있다는 야영장 공간은 찾을 수 없어 시끄럽긴 하지만 잔디밭에 텐트를 친다. 샘물은 잔디밭에서 70미터쯤 더 내려간 가스공사 정문 맞은편에 전봇대 사이로 오솔길이 있고 50미터쯤 들어가면 정면에 텐트 하나 정도 들어설 만한 공간이 보이고 왼쪽에 샘물이 프라스틱 파이프를 타고 나온다. 가스공사에서 좀더 아래로 2백여 미터를 내려가면 길가에 식당도 있어서 위급한 경우에는 대피소가 될 수도 있겠다.
7) 여태까지 갖고 다니던 텐트는 한 선생의 6인용 터널식인데 너무 무겁기 때문에(7kg 초과) 내가 가지고 있던 3인용 돔식 텐트를 이번에 가져와서 테스트를 해보기로 했다. 날이 어두어지기 시작하는데 갑자기 천둥소리가 들리더니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철수해서 민가를 찾아갈 것인가 그냥 텐트를 믿고 기다릴 것인가 고민하는데, 삼봉 씨가 형제봉 이후부터 전화 연락이 안되니 다른 곳으로 옮길 수도 없다. 도착 예정시각인 저녁 8시가 넘어서 빗줄기는 점점 굵어지는 속에서도 전화는 계속 불통이고 점점 불안감은 더해진다. 9시가 한참 넘어서 전화가 왔는데 "영축사"에 있다고 하면서 택시를 불러타고 오겠다고 한다. 안심이 되면서 배가 꼬로록거리기 시작한다. 빗줄기가 가늘어진 틈을 타서 한 선생이 가지고 온 비프스테이크를 후라이팬에 구워서 허겁지겁 먹고 있으니 삼봉 씨가 도착했다. 걱정했던 대로 황악산 정상 옆의 헬기장에서 길을 잘못 들어 북서쪽으로 향하다가 아차 싶어 계곡으로 내려섰는데 폭우로 계곡물이 불어 엎어지고 미끄러지는 통에 안경과 지팡이 한짝이 어디로 갔는지 없어지고 밀려드는 공포 속에 가족들 생각만 나더라고...
8) 아침에 거짓말 같이 햇살이 비치고 파란 하늘에 두둥실 조각 구름이 떠있지만 삼봉 씨가 안경을 잃어버려 더 이상의 산행을 포기하고 철수하기로 한다. 가스공사 앞에 있는 샘물에서 발도 씻고 세수도 하고 말끔히 한 다음 김천으로 나오니 서울에는 폭우가 쏟아지고 있다는 뉴스가 들린다. 텐트 한쪽면이 후라이와 닿아서 빗물이 스며드는 바람에 하필 그곳에 놓아둔 카메라가 물에 잠겼다. 나중에 돌아와서 수리점에 가져가 고치고 보니 당장 작동은 되는데 언제 또 고장이 날지 예측불허라고, 완벽한 수리는 어렵단다. 에고, 카메라 속에 들어있던 찍은 필름은 물론 몽땅 버렸다! 카메라, 지갑 등등은 꼭 비닐에 싸 갖고 다녀야겠다.

≪기록≫  
8월 2일(금) 영등포 역 출발(23:40) → 김천역 도착(02:36), 한숨 더 자다가 봉고차로 이동 → 우두령 도착(05:40) 산행 시작  
우두령(05:42) → 헬기장(05:44) → 870봉(06:00) → 중간에 30분 가량 아침식사 → 헬기장 터(08:08)  → 이동식 화장실(08:14) → 헬기장(바람재 08:40) → 신선봉 갈림길(09:19) →형제봉(09:36) → 능여계곡 갈림길(09:55) → 황악산(10:05/10:27) → 운수암 갈림길(11:39) → 점심식사 하고 낮잠(12:05/14:30) → 운수봉(14:36) → 궤방령(16:06)
산행거리 13.0km/백두대간 구간 13.0km(지리산에서 누적거리 176.9Km)
≪정보≫
ㅇ 영등포-김천(기차) \12,700       향천리-김천(좌석버스) \1,000  
    김천-서울 반포(일반고속)  \10,300    맥주 기타 \1,200     계(1인당) \25,200
ㅇ 우두령은 버스가 없기 때문에 지나가는 차를 얻어타는 게 제일 좋은데(교통량이 많지 않다) 동쪽(김천 방향)으로 가면 지례-김천 버스가 많이 다니고, 서쪽(영동군 방향)으로 가면 흥덕 또는 임산에서 영동행 시내버스를 탈 수 있다. 택시는 영동 쪽의 임산(개인택시 019-443-3616)이나 김천 쪽의 구성(구성면 자가용택시 054-434-1928)에서 불러와야 하는데 거리가 비슷하다.
ㅇ 식수 구할 수 있는 곳 - 궤방령 가스공사 정문 맞은편.
ㅇ 우두령에서 처음 1시간 정도를 제외하면 큰 오르막은 없음. 가시덤불과 잡목 때문에 역시 긴바지와 긴소매 셔츠가 필수임. 황악산 정상에서 내려가는 길의 초입이 잘못 들기 쉽고 운수암갈림길까지 급경사 내리막으로 상당히 미끄럽다.    
ㅇ 궤방령은 김천까지 버스(하루 5번)가 있으나 다른 차를 얻어타고 직지사 갈림길까지 가면 김천 가는 버스가 자주 다닌다.

  ■ 다음은 역경을 헤치고 지나온 양삼봉 씨의 산행기 ■

□ 산행장소 : 우두령 - 바람재 - 형제봉 - 황학산(황악산) - 백두대간 길 벗어남
□ 산행일시 : 2002. 8. 3 (토) - 8. 4 (일)
□ 날    씨 : 8. 3 날씨 맑았으나 20:00경 천둥번개 폭우
              8. 4 새벽에 간혹 폭우 이후 맑음
□ 산행경비 : 6,600원
· 8월 4일
   - 시내버스 3,000원 (직지사에서 버스터미널 1,050원 × 3명, 150원 깍아줌)
   - 맥주 음료 3,600원
※ 개 인 : 8,000원
  · 남원 - 거창 고속도로 통행료 3,000원 (1,500원 × 2, 왕복)
  · 중식 4,000원
  · 핸드폰 충전 1,000원
□ 구간별 소요시간 및 거리
· 8.  3 :  7시간 45분 (13:30-21:15)
    남원(10:30) → 우두령(13:05) → 중식 → 산행 시작 (13:30) → 바람재 →
    형제봉 (16:35) → 황학산 (16:55) → 암자 (21:15)
· 8.  4  :  산행 취소
□ 산 행 기
  · 탈출...
  직원들이 휴가중이라 토요일 하루를 쉬는 것이 어려울 것 같다. 조금 일찍 퇴근하여 산행에 나서기로 하고 대간일행과는 야영지에서 합류하기로 하였다. 차를 몰아 이번산행의 초입인 우두령에 도착하여 도시락으로 점심을 하고 산행에 들어간다.
  13:30경
이번구간의 산행개념도를 점검하고 산행시간을 6시간정도 예상했으니 늦어도 20:00에는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1시간정도 지나서 1030봉 올라선다.. 고도계가 없으니 정확하게 확신할 수 없지만 산행시간으로 보아 삼성산인 것 같다. 군사통신시설을 두고 왼쪽으로 돌아 바람재를 거닐고 형제봉을 앞두고 능예계곡 삼거리에서 쉬어간다. 여기까지 산행은 어렵지 않았다. 다만 나 외에 등산객은 한 명도 만나지 못했다는 것뿐...
형제봉과 황악산 정상 비로봉은 20여분 거리에 있다. 황악산 정상 비로봉은 1111m 지금이 17:00이니 목적지인 궤방령에는 20:00경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야간산행도 조금은 해야할 것 같다.
정상에서는 물 한모금 축이고 바로 출발한다. 김 선생님, 한 선생님 두 분께서 점심을 하기로 한 헬리포트에 내려서고 아무런 의심없이 직선으로 놓인 능선길을 들어선다.
15분 정도를 걸었을까? 길이 없어진다. 어… 여기가 아닌가? 다시 돌아서서 가기는 싫고… 이리저리 확인하고 등산로 표지기를 찾아 빽을 해서 걸어보니 분명 등산로이다. 왼편으로는 분명 저수지가 있고 황악산 정상이 보이는 것으로 산행개념도와 일치한다.
그래 밀어붙이는 거야… 한참을 걸었을까 계속해서 등산로로 희미하고 길을 놓친다. 이때가 황악산 정상에서 1시간여… 대간길을 안내하는 표지기를 하나도 볼 수가 없지만 왼편으로는 분명 어촌저수지로 보이는 저수지가 있고 간간이 뚜렷한 길이 보인다. 소리죽여 들어보면 간간이 차량 소음이 들린 것 같기도 하는데, 도무지 확신을 할 수가 없었다. 운수봉과 여시골산이 나타나야 되는데… 대간 표지기가 있어야 하는데… 핸드폰은 통화불통 지역이고 이제 확실히 길을 잘못 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 다시 돌아선다면 19:00를 넘어서야 황악산 정상에 올라서고 다시 궤방령까지는 최하 3시간을 더하면 22:00, 야간산행을 감안한다면 23:00를 넘어서야 도착할 것이다. 여하간 1시간을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 싫었다. 왼편에 보이는 저수지에 미련을 떨쳐버리지 못하였고 능선을 타고 간다면 길을 찾을 수만 있을 것 같았다.
능선을 놓치지 않으려고 계속해서 능선을 끼고 걷는다. 간간이 나이론 줄 표지기가 보인다. 이건 분명 옛 등산로이다. 아니면 인적이 드문 등산로일 것이다. 조망이 트인 정상에서 보니 3∼4개의 작은 봉우리가 보인다. 일단은 능선길로 봉우리에 올라서면 등산로를 찾을 수 있으리라. 하지만 갈수록 길은 희미하고 계속해서 능선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나뭇가지에 걸려 안경이 벗겨지고 수통이 없어진지도 모르고 가쁨 숨을 몰아쉬고 내려선다.
마지막 봉우리 도착하니 19:10이다. 저수지도 가까이 보이고 소로길이 보인다. 길이다! 그렇다면 분명 궤방령에 내려서기 전 어촌저수지 일 것이다. 육안상 소로길과는 3∼4km 정도, 경사는 비교적 완만하고 산 하부에 내려서서 계곡을 탄다면 소로길이나 민가에 내려설 수 있을 것이다. 이제 1시간만 있으면 해가 질 텐테, 어두워지기 전에 계곡에 내려서야만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 이제 하산이다. 이곳에서 길을 뚫어 나가기로 결정하고 잡목을 뚫고 길을 내가며 내려선다. 돌밭 잡목들 사이로 내려서기를 한참 후, 완만한 산 하부에 내려선 것 같다. 해는 점점 어두워지고 산 하부에 내려오니 전체를 조망할 수 없어 산속에 파묻힌 형상이 되어버렸다. 산 하부는 칡덩굴과 잡목으로 도저히 한 발자국도 내디딜 수도 없다.
이제 철저히 혼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일단은 계곡과 이어져야 한다는 생각에 온몸으로 칡덩굴을 뚫고 구르고 넘어지기를 수십 번 스틱을 덩굴 위에 놓고 밟아가며 조금씩 나아갈 수 있었다. 때론 나뭇가지 밑으로 포복을 하듯이 기어가기도 하고 순간 나뭇가지에 안경이 사라져 버렸다.  안경은 찾아야 되는데 랜턴으로 곳곳을 뒤지고 더듬기를 수십 분. 어두워 진다.
안경을 버리고 나가자 잘못하면 고립될 수 있다는 생각에 아직 해가 남아있을때 계곡을 찾아야 한다는 마음뿐이다. 뒹굴고 넘어지고 덩굴을 밟고 가는데 순간 스틱이 꺾어졌다. 스틱마저도… 이제 스틱 하나와 랜턴만 있을 뿐… 시간을 알 수가 없다. 시계는 안경과 함께 사라져 버리고 날씨는 어두워졌는데, 거의 기다시피 하여 내려오는 순간 계곡 물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계곡이다. 계곡만 따라간다면 민가나 아니면 소로길을 만날 수 있으리라. 하지만 이것도 잠시 하늘에서 벼락소리와 함께 빗줄기가 점점 굵어진다. 비다! 안경이 없어서 시야는 뚜렷하지 않고 간신히 계곡을 찾았는데 비가 내리다니. 계곡을 타는데 장대비가 내리다니 물이 불어온다면 최악의 상황이다.
바위 위에서 잠시 쉬어 양갱과 계곡물을 마시고 생각에 잠겨든다. 이곳은 아무도 오지 않고 길도 없는 계곡, 산행객, 행락객도 없는 곳인데 만약 사고라도 난다면 도움을 받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오로지 홀로 이곳을 벗어나야 하는데…
가족들과 그가 생각난다. 그리고 지난 시절에 대한 벌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닌지. 돌아가신 할머니가 날 지켜줄 거란 생각도.
빗방울이 굵어진다. 허벅지까지 차는 계곡을 지나고 엎드려 기어가고, 위험해 보이는 계곡은 산으로 돌아서서 내려가기를 한참… 계속해서 하산을 감행 할 것인지, 아니면 침낭과 판쵸우의로 적당한 야영지를 찾아야 되는지… 그래 조금만 더 내려가 보자, 체력도 남아있는데.
한참을 내려와서야 계곡이 완만해지고 있었다. 불빛이 보인다. 텐트의 불빛처럼 약하고 시야가 밝지 않으니 정확히 판단은 되지 않지만 분명 불빛이다. 계곡 사이로 콘크리트 구조물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민가에 온 것 같다. 조금은 안심이 되지만, 바로 앞 계곡은 제법 낙차와 수심이 있다. 여기만 넘어 불빛으로 간다면…
한참을 계곡을 벗어나 계곡 옆을 타고 건너니 완만한 경사의 계곡으로 떨어진다. 인공구조물이 있는데 계곡 진입을 막기 위한 휀스인 것 같다. 어렵게 철망을 잡고 나가 드디어 계곡 위 다리에 올라설 수 있었다.
아! 살았구나! 다리 앞에는 입산금지 표지판과 산행개념도가 있고 차량이 주차되어 있는데, 이곳이 어디메뇨! 일단 불빛을 따라 올라서는데 가로등 사이로 보이는 것은 암자와 으르렁대고 짖는 개들! 암자의 계단을 올라서니 스님은 아니고 행자도 아닌 분이 나와 있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길을 잃어 산에서 계곡을 타고 왔습니다.
길을 잃었다는 말 때문인지 남자분이 일단은 배를 채우라며 부엌으로 안내하고 라면과 감자를 내어 주신다.
지금이 몇시 입니까?
9시 15분입니다.
그렇다면 황악산에서는 4시간 15분 소요되고 소로길을 확인한 마지막 봉우리에서 길을 뚫은지 2시간.  요기는 뒤로 하고 집에 전화를 한다. 그리고 일행들에게도 전화를 하였는데 걱정을 많이 하신 것 같다. 이제서야 나도 안심이 된다. 차려주신 음식은 먹지도 못했다. 계곡물을 얼마나 마셨는지? 배고프지도 않았다. 암자에 있는 분들께 감사를 표시하고 젊은 분의 차를 얻어타고 일행이 있는 궤방령으로 이동한다. 이상하게도 암자로 통하는 길은 마을 앞에서 바리케이드가 처져있고 젊은 분이 마을에 내려간 한참 후에야 다른 한분과 열쇠를 가져와 출발할 수가 있었다. 암자와 마을은 바리케이트로 단절되어 있는 것이다. 스님과 행자가 없는 암자와 젊은 분과 2∼3분의 아주머니. 문득 생각하니 부처님을 볼 수가 없었던 것 같았다. 여하간 11시경에 궤방령에서 야영하는 일행들과 합류할 수 있었다.
생각해 보면 산행지도도, 고도계도, 나침반도, 산행시간도, 산행에 대한 준비가 너무도 부족하였다. 그리고 힘든 산행이었다.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이다.
잠시 동안이었지만 길을 잃었다는 것, 홀로 위험에 처한다는 것은 공포나 두려움보다는 가족에 대한 걱정과 지난 시절에 대한 미련, 그리고 할 수 있다는 자신에 대한 믿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여하간 산행의 겸손함과 언제라도 주저없이 돌아서야 된다는 교훈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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