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장산 종주

by 오 해 봉 posted Aug 01, 2006 Views 4297 Replies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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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일시: 2006.7.30.     09:10분 - 19:27분.
0.인원: 권태국(56 )  이선용(52 )  이명수부부(51,48)  오해봉(60).
0.코스: 장군봉-연자봉-신선봉-까치봉-연지봉-망해봉-불출봉-서래봉-월영봉.
0.거리: 13.3km
0.시간: 10시간17분

사진1 - 망해봉에서본 변산반도
사진2 - 서래봉에서본 내장사



긴 장마와 폭우로 인해 설악산 일대와 안성 단양 거창등 곳곳에서 수해로 고통을
겪고있는데 산행을 한다는것도 쑥스러운 일이다,
40몇년전 중학교 1학년때 가을 소풍을 가본이후 몇봉우리씩 올라는 보았지만 완전
종주는 오늘 처음으로  해봤다,
시골 한마을 동생들과 한달전부터 예약했던 산행이다,
83세에 돌아가신 어머니 19번째 기일이 29일 토요일 (음7.5) 이어서 제사 모신후
일요일날 산에 가기가 좋기도했다,
정읍이 고향이면서 장군봉부터 월영봉까지 9봉우리 13.3km 완전종주는 처음이다,
객지산인 지리산 설악산 덕유산은 몇번씩 종주를 했으면서도 고향산인 내장산을
오늘에사 종주를 한것도 참 쑥스러운 일이다.


내장산과 백암산은 주위에 입암산 지구를 포함하여 71. 11. 17부터 내장산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관리되는 곳으로서 행정구역상으로는 전북 정읍시 내장동과 순창군 복흥면에  내장산이, 전남 장성군 북하면 약수리에 백암산이 위치해 있으며 북측에 내장산, 남측에 백암산, 서측에 입암산이 있다.

763년 백제 시대에 창건된 내장사는
조선 8경 중 하나로 유명한 내장산은 대한불교 조계종 제18교구 백양사 말사로서 사찰 내장사가 있으며 사찰 영은사와 영은산으로 불리던 것을 조선명조때 희목대사가 수 많은 인파가 몰려와도 양의내장처럼 수 많은 굴곡을 갖는 계곡에 묻혀버리게 된다고 해서 개칭하여 내장사와 내장산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하며 내장산의 형상은 말발굽형으로서 굴선, 왼정계곡, 먹벵이골, 내장사를 두고 주봉인 신선봉과(장군, 연자, 까치, 연지, 망해, 불출, 서래, 월영봉)들이 둘러져 있고, 금선, 도덕폭포와 용굴들이 있다.

백암산의 경우에는 대한 불교 조계종 제 18교구 본사로서 사찰 백양사가 있는 산이며 일반적으로 백암산(백양산)하게 되면 주봉격인 상왕봉, 백학봉, 가인봉, 도집봉을 총칭하는 것으로서 약수동 계곡과 백양사를 둘러쳐진 형상을 하고 있고 봄철의 흰바위봉이 수목에 둘러 있는 모습이 백학과 같다는 백학봉을 중심으로 하는 산행과 가을의 단풍산행지로 좋은 곳이다.

입암산의 경우에는 산성이 있는 산성산으로서 북쪽으로는 북창, 남쪽으로는 남창골 계곡을 포함하고 있으며 기도원 2개소와 대학 수련원 등이 있으며 좌우로 방장산 내장산 으로 등산과 계곡 피서지로 인근주민 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다가 교통과 인터넷이  원활한 지금은 전국적인 사랑을 받는 곳이되었다.







순창군 복흥 유군치에서 출발준비.

좌로부터 이명수부부 권태국 이선용.
이들과 작년 어머니 제사 뒷날도 비를 맞아가며 내장사에서 백양사까지 종주를했다.




장군봉을 오르다본 내장사.

우측으로 울산바위처럼 서래봉이 보이고 그밑에 보이는절이 고내장 (벽련암) 이다.




유군치.




장군봉.




장군봉 오르다본 서래봉.

케이블카 승강장과 고내장(벽련암)이 보인다.
사진에서는 별로 힘들것 같지안게 보이지만 실지는 무지한 험로다.




연자봉.




신선봉.

내장산 최고봉 (763m) 이다.
95년 가을에 생질 재종이와 처음으로 종주중 이곳에서 부천사는 오순임 사장을 만났다.
세번째 부임지가 정읍인 성공한 조카의 초대로 여러명의 친척들과함께 먹을것도
많이 갖고 왔기에 배고프던 참에 과일이랑 떡 음료수를 잘 얻어 먹었다.
힘들어 헬기장에 앉아 쉬고있는데 뒤에서 누가 오빠 오빠 하는소리가 들렸다.
나는 막내라 여동생도없고 설마 나를 부르는줄은 꿈에도 몰랐다.
옆에와서 어께를 흔들기에 알았다.
누구든 죄짓고는 못산다며 세상에 내장산 꼭대기에서 오빠를 만날줄은 몰랐다고했다.
우리는 10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 그 이야기를 하며 웃는다.




신선봉을 지나며 바라본 두승산.

산아래 샘바다 저수지가 보이고 멀리보이는 능선은 변산 반도이다.
날씨가 맑아서 서해바다와 위도까지 잘보였다.
두승산앞 조고맣게 보이는 산줄기 국사봉 넘어에 그리운 어머니 아버지 외할머니의
산소가 한곳에 계신다.
땀흘리며 스틱을 짚고 불효를 반성하며 한참을 멍하니 바라 보았다.




까치봉.




연지봉.




지나온 봉우리들.

광주 무등산도 선명하게 보였으며 장군봉 넘어로 반야봉과 지리산 주능선도 보였다.
빨치산 훈련소와 보급창이 있던 순창 회문산과 무주 덕유산도 잘보였다.




망해봉.




망해봉에서 보이는 위도.

변산반도 끝부분 바다 건너로 위도가 선명하게 보였다.
5년째 사용하는 삼성카메라도 백내장이 오는지 희미하게 보인다.




불출봉.

95년 가을에 재종이와 내장산 종주를 한다고  저수지위 사슴목장에서 급경사길 이곳
으로 올라오면서 얼마나 힘이 들었던지 포기하고 벽련사로해서 그냥 내장사로 내려
가기로하고 바위에 앉아서 쉬고 있었다.
그때 어떤 젊은이가 땀을흘리며 아기를안고 불출봉에 올라왔다.
기가 막혔다.
10개월된 아기는 아빠품에 안겨서 자고 있었다.
10개월된 아들에게 높은곳을 구경 시켜줄려고 힘은 들어도 엄마랑 교대로 보듬고
왔다고했다.
재종이와 나는 그젊은 엄마 아빠를 보고 힘을얻어 다시 종주를 시작했다.
그러나 우리는 힘들고 짧은 가을해가 질려고 하기에 장군봉을 못가고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왔다.




서래봉 올라가는 철계단.
우측 상단에 이명수부부 이선용 권태국 순으로 힘겹게 오르고있다.

경사도 심하고 무지하게 힘드는 철계단이다.
계단으로 유명한 월악산이나 덕유산 대둔산보다 훨씬길고 힘들었다.
어젯밤 형님들과 이런저런 이야기가 재미있어서 잠을 서너시간 밖에 못잤기에
더욱 힘드는것 같았다.

6.25때 3일 간격으로 빨치산 들에게 소를 2마리를 뺏겼던 이야기는 어릴때부터 몇번을
들었어도 흥미롭고 재미있고 분한 이야기다.
6.25 이듬해인데 밤마다 빨치산들이 산에서 내려와서 곡식이나 닭 염소 돼지 개
소까지 강탈 해갔다.
큰소와 봄에난 송아지를 기르던 우리집은 이른 저녁을 먹고는 아버지는 송아지를
끌고 동내 뒷산으로 가시고
어머니는 큰소를끌고 지서가 가까운 아랫동네 춘수리 천영이형네 집으로 가서자고
아침에 소를 데리고 집으로 오곤 했다고한다.
헌데 3일 간격으로  그놈들에게 송아지와 큰소를 강탈 당했단다.
소를 뺏기고 어머니와 아버지가 몇날 몇일을 허탈해하며 눈물을 흘리며 밥을 굶으
시드란 안타까운 이야기에는 지금도 목이 메였다.

우리동내는 변산에서 내장산에 이르는 빨치산들의 이동로였고 춘수리와함께 근처
에서 조금은 부자동내 였기에 빨치산들의 피해를 가장 많이본 마을중 하나다.
중학교와 초등학교에 다니던 형님들이 보니 당시 대낮에도 4-5명의 빨치산들이 줄포
쪽에서 동내앞 냇가뚝으로 따발총을 메고 유유히 항골 국사봉쪽으로 지나 갔다고했다.
어쩌다 지서에 신고되어 경찰관이 두명정도 자전거를타고 오는게 보이면 빨치산들이
따발총을 조준하여 두세방 갈기면 경찰관들은 자전거를 버리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
드란다.
이태의 남부군에도 선요원들이 다니던길로 소개되는 길이다.

그 빨치산들이 보급투쟁후 돌아가는데 잠자던 송아지가 일어나서 음-메 하니까 10 명
정도의 빨치산들이 송아지 소리나는 곳으로 달려와 욕설을 퍼붓고 끌고 갔다고했다.
그곳에 함께 있었던 학천아재 유현규씨 송종술씨등 7-8명이 빨치산 들에게 혼이났더
란다.
당시 30대였던 이분들도 지금은 모두 고인이 되셨다.
이 소가 누소 냐고 닥달을하며 반동분자놈의 새끼들 까버린다고 하드란다.
까버린다는 이야기는 그무섭고 잘난 따발총으로 쏴죽인다는 말이다.
50넘은 아버지는 젊은 빨치산들한테 아뭇 소리도 못하고 욕만실컷 얻어 먹었다고했다.
그날 아버지는 20대의 젊은 빨치산들이 그렇게 무서웠다고 하시 드란다.

소를뺏기고 새벽에 빈손으로 집에온 아버지는 어머니한테 무지하게 당했다고했다.
3일후 지서와 가까운 아랫동내인 춘수리로 소를갖고 잠을 자러갔던 어머니도 빨치산
들에게 소를뺏기고 망연자실 했다고 하였다.
빨치산들이 자식같은 소를 산으로 끌고가서 잡아 먹었다고해서 어머니는 그후로는
돌아가실 때까지 소고기를 입에대지 않으셨다.
빨치산들의 뱃속으로 들어간 당신의 소가 그리워 먼곳의 뚝에 소가있으면 행여나하고
뛰어가서 보고오곤 했다고 하였다.
어머니가 좋아하는 고기는 유일하게 굴비와 명태 뿐었다.
이제는 제삿상에 소고기도 올려 드리고있다.
당시 큰소 한마리는 논한필지(1200평) 값이 었다고했다.

오늘 이 급경사 철계단을 정확히는 몰라도 1500개는 오르 내린것같다.
중복날이라 무지하게 덮기에 아침에 갖고온 2리터짜리 삼다수는 망해봉에서
동이 나버렸다.





지나온 능선.

불출봉과 망해봉.




서래봉.




서래봉 정상에서본 내장사와 고내장 (벽련암).




월영봉 가는길.

70도가 더되어 보이는곳에 저런 쇠줄이 길게 여러곳에 걸려있다.
사람들이 별로 다니지 않기에 녹이많이 슬었다.
거의가 내장산을 종주할때 월영봉을 거치지않고 서래봉 까지만들 한다고했다.
달을 맞는다는 월영봉이 406m 이지만 퍽 험하고 지루한 코스다.




난코스를 걱정해주며 기다리는 명수아우.

아래는 10여m의 낭떠러지인데 안전시설이 없는 곳이다.
내장산 관리사무소 에서는 이곳에 즉시 계단이나 안전 구조물을 설치 했으면한다.
릿지화를 신고도 조심조심 떨며 지나왔다.




월영봉 이정표.

내장산은 장군봉부터 월영봉까지 9봉이 종주인데 월영봉은 퍽으나 난코스다.
지리산 종주시 군기잡는 토끼봉은 한참동생 일것같다.
지루한 급경사 너덜길을 내려오면서 양쪽 뒷굼치가 어찌나 아픈지 등산화끈을 힘껏
조였더니 발목에서 쥐가 날려고했다.
너무 아팟기에 고장난줄은 짐작했지만 큰집에와서 샤워 하면서보니 양쪽 뒷굼치에  
큰뻔데기 만큼씩 검은피가 잡혔다.
용아장성 간다고 새로산 릿지화를신고 성주산과 소래산에서 길을 낸다고 냈으나
10시간이 넘는 산행을 하고보니 신고를 단단히했다.


유군치에서 09:10분에 산행을 시작했는데 월영봉을 내려오니 19:27분 이었다.
10시간 17분 걸렸다.
지도에는 13.3km 이며 8시간 이라고 표시 되었지만 많은 철계단과 바윗길 난코스로
퍽 힘든산행 이었다.
날씨가 너무 더워서 물을 5리터 정도를 먹었다.
서래봉밑의 서래약수가 큰 도움이 되었다.
내가 간다면 두시간도 더걸릴 유군치에 두고온차를  명수아우는 40여분만에 갖고왔다.
배낭을 벗어놓고 뛰면서 산을넘어 갔다고했다.
고마운 아우들덕에 60이되어서 내장산 종주를 마쳤다.
고향의 명산인데 60살에사 너무 늦게야 종주를한게 부끄러운 생각도 들었지만 속없이
흐뭇 하기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