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 임자체 산행기-8

by 김수훈 posted Mar 22, 2006 Views 4781 Replies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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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6일 : 2월 22일(수)  맑음 3˚c/실내
   포르체텡가(Phortse Tenga 3,680m) -(3:40)- 남체 바자르(Namche Bazar 3,440m) -(2:00)- 몬조(Monjo 2,835m)

산행을 시작하면서 계속 신경을 써온 것이 입술이었는데 드디어 입술이 간질간질해 오는 것이 물집이 잡히는 모양이다. 공기가 건조하고 자외선이 강해서 입술이 갈라지고 터질까 봐 수시로 입술연고를 발라주고 있었는데 여태까지는 잘 견디어 오다가 이제 누적된 피로가 표시를 내려는지 싶다.

시원한 물소리도 들리고 쭉쭉 뻗은 큰 소나무들을 보니 이제 좀 익숙한 산길인 듯 싶었는데, 금세 나무 그늘을 벗어나더니 다시 자그마한 관목만이 급경사 비탈면을 덮고 있는 황량한 오솔길을 흙먼지 날리면서 고도 3백 미터를 치고 올라가야 한다. 올려다 보기에 목이 아플 정도의 고개인데도 이제는 그다지 숨가쁜 걸 모르겠다. 아마도 올라가는 길이 아니라 하산하는 길이어서 그런가?


     <설악산 계곡을 연상시키는 포르체텡가 롯지 옆의 "두드코시" 강 계곡>


몽라(Mong Lha) 언덕을 내려서서는 그냥 터벅터벅 걷는 기분으로 올라갈 때 길과 만나는 사나사를 어느새 지나고 "텐징 노르마"의 기념 초르텐도 지나고 드디어 남체바자르에 도착했다.


     <텐징 노르마의 기념 초르텐>


     <길 닦은 할아버지의 기부금 호소문이 이번엔 길바닥에 종이로 씌어 있었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점심을 먹고는 다시 몬조를 향해 간다.
전에 올라갈 때에는 내려 오는 여행객들을 좀체 보기 힘들었는데, 이제는 올라가는 트레커들이 심심찮게 보이고 있다.


     <남체에서 몬조로 가는 길>

스노우보드를 배낭에 얹고 가는 젊은 남녀도 있고, 기타를 메고 가는 사람들도 있고, 노년의 부부로 보이는 사람도 보인다. 그런데 올라갈 때는 내려오는 한국사람들을 보았는데, 지금은 올라가는 한국사람들을 전혀 볼 수가 없다. 아마도 한국사람들은 겨울방학이 끝나가는 시점에 여행도 끝나는 모양이다.

몬조의 롯지에는 13살짜리 주인집 딸이 또릿또릿하게 롯지 일을 거들고 있었는데, 훨씬 어려 보이는 남자아이가 일꾼으로 있어서 물어보니 15살이란다.
롯지 진열장에 맥주병이 유혹을 하길래 물어보니 콜라의 경우와 같이 한국적 물가에 비추어서는 비싸지 않다. 저녁 먹을 시간도 많이 남고 해서 오랜만에 맥주 파티를 열었다. 맥주 이름도 "Everest" 아닌가!
으음- 바로 이 맛이야!


■ 제17일 : 2월 23일(목)  맑음
   몬조(Monjo 2,835m) -(3:00)- 루크라(Lukla 2,840m)


     <롯지의 아침- 13살 짜리 딸이 향을 피워 집안 곳곳을 다니는 종교 행사를 하고 있다>

오늘은 팍딩까지 2백 미터를 내려갔다가 다시 오르막을 올라가야 하지만 역시 홀가분한 마음에 힘드는 줄을 모르고 간다. 팍딩에서 머물렀던 롯지의 여주인이 문에서 보고 아는 체 인사를 한다.
12일 전에 지나올 때에 비해서 훨씬 더 봄빛이 완연한 것 같다. 밭에는 메밀 잎들이 더 많이 올라온 것 같고, 길가에도 전에 보이지 않던 꽃들이 조금씩 보이고 있다.




     <팍딩으로 가는 길의 풍경>





     <길 가에서 본 여러 가지 꽃들>



     <체플룽으로 가는 길>


남체로 먼저 내려갔던 "왕추" 셀파가 체플룽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촐라 패스와 고쿄를 취소하는 바람에 전체 일정에서 이틀의 여유가 생겼기 때문에 귀국일정을 앞당길 수 있는지 카트만두에 알아 보았는데 비행기 좌석이 만원이라서 불가능하다고 한다. 겨울방학을 이용해서 해외여행을 왔다가 개학시기에 맞춰 일시에 귀국을 하는 한국사람들이 많기 때문이었다.

점심을 먹고는 왕추가 체플룽 마을에 있는 자기의 고향집에 초대를 해서 방문했다. 왕추는 카트만두에 나가서 살고 있고 고향집에는 여동생 부부가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다는데, 네팔 셀파족의 중산층 일반가정이 사는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었다.
집 전체가 하나의 방으로 되어있는데 한쪽 끝에 화덕이 있고 벽을 따라 주욱 긴 의자가 붙어 있어서 침상의 역할도 하는 것이 보통 롯지의 식당과 비슷한 구조인데 이 방에서 거실, 침실, 주방, 창고 등등 모든 기능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왕추의 여동생이 네팔식 막걸리를 내 왔는데, 그 제조방법이나 맛이 우리나라의 "조껍데기 막걸리"와 아주 비슷했다.


     <왕추의 고향집 - 왼쪽 끝에 화덕이 있고 그 오른쪽이 왕추의 외할머니>


왕추 셀파는 고향 마을이어서 그런지 루크라까지 가는 동안에 만나는 사람들 거의 모두와 인사를 하고 한두 마디씩 하느라고 무척 바쁘다.
마지막 오르막 언덕을 가볍게 올라 루크라에 도착했다.


     <루크라 롯지에 도착해서- 올라갈 때 모습과 비교해서 어떤지?>


오늘은 올라갈 때 여기서 채용했던 키친보이와 포터들의 임무가 끝나는 날이어서 모두가 송별파티를 하기로 했다.
우리 4명에 셀파 2명, 요리사와 키친보이 4명, 포터 14명 등 총 25명 중에서 먼저 내려온 포터 4명을 빼고 21명이 참석할 예정이었으나 집이 가까운 포터들은 집으로 돌아갔는지 15명 정도가 참석해서 맥주 파티를 열었다. 젊은 친구들이 많고 며칠 전에 포터들의 송별식 때 떠들던 걸 봐서는 오늘도 꽤 시끌벅적할 줄 알았는데, 우리가 있어서 쑥스러워 그런지 그저 맥주잔을 앞에 놓고 조용히 대화만 나누다가 돌아갔다.


     <요리사 "다와"가 축배를 선창하고 있다>


■ 제18일 : 2월 24일(금)  맑음 7˚c/실내
   루크라(Lukla 2,840m) - 카트만두
  
카고백을 06시까지 비행장에 보내야 한다고 해서 새벽에 일어나 짐을 꾸려서는 마지막 서비스로 카고백을 비행장까지 날라다 주려고 온 포터 4명과 왕추 셀파가 비행장으로 먼저 갔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여기 국내선 비행기는 정해진 도착/출발 시각이 따로 없다. 카트만두에서 비행기가 떠나면 전화로 연락을 받아 도착시각을 대충 짐작하고 도착해서 짐과 사람이 내리고 타면 바로 떠난다. 그래서 새벽에 짐을 부치고 탑승 수속을 미리 해 놓고는 롯지에서 아침도 먹고 길거리 구경이나 장비점 쇼핑도 하면서 노닥거리다가 대충 시간을 맞추어서는 비행장 대합실로 갔다.
다행히 날씨가 좋아서 10시 좀 넘으니 첫 비행기가 도착한다. 사람과 짐들을 부리고 새로운 사람들과 짐들을 싣고 떠나는데 대충 10분이나 걸릴까? 두 개의 엔진 중에 하나는 아예 끄지도 않고 돌리고 있다가 떠나는 것이 영락없는 시외버스 정류장 풍경이다.
네 번째에 우리가 탈 비행기가 도착했다. 우리는 계류장에 나가서 기다리다가 짐과 사람들이 내리자 비행기에 오르려고 했는데 항공사 직원이 타지 말고 더 기다리라고 한다. 응? 왜? 다른 비행기는 바로 타고 떠나던데? 알아보니 조종사가 카트만두에서 떠날 때 아침을 안 먹고 와서 지금 아침을 먹으러 갔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조종석에 사람이 안 보인다. 버스도 아니고 비행기가 밥 먹으러 간다고 손님을 기다리게 해?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일이지만 아무도 시비 거는 사람은 없다. 한국 같으면?


     <조종사를 기다리면서 - 왼쪽부터 보조셀파 "니마", 부산의 김兄, 보조요리사 "수지",
      수원의 정君, 대구의 허兄, 요리사 "다와", 셀파 "왕추", 그리고 나>

사탕과 솜뭉치를 다시 받아들고 비행기에 올랐다. 짧은 활주로를 내리박듯이 달리다가 절벽을 코앞에 두고 비행기는 사뿐 떠올랐다. 이제는 시끄러운 엔진 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끄덕끄덕 조는 사람도 생겼다.

다시 돌아온 카트만두는 완전히 초여름 날씨다. 뿌연 하늘에 희끄무레한 햇빛은 온도계를 거의 30도에 가깝게 올려놓고 있었다.
바로 여행사의 현지 대리점으로 달려가 귀국일자를 변경할 수 있는지 다시 확인시키고, 점심을 먹으러 갔다. 이제부터는 출국할 때까지 "다와"가 요리사에서 우리의 가이드로 변신을 하기로 했다.  한국식당에서 느긋하게 삼겹살에 맥주로 그동안 들이마신 흙먼지와 야크똥 먼지를 목에서 씻어내고 있는 동안에 연락이 왔는데 비행기 변경은 역시나 불가능하다고 한다.
자, 이틀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장시간의 토론 끝에 카트만두 시내 관광지 중에서는 별로 관심 가는곳이 없으므로 <포카라>로 자동차를 타고 가기로 했다. 비록 산에 오르거나 트레킹을 하지는 못하지만 멀리서나마 안나푸르나의 연봉들을 볼 수 있다고 하니까 일이 이렇게 된 김에 가 보는 것도 기회가 아니겠는가!

카트만두에서 유명한 <타멜 시장>을 둘러보았다. 서울의 모든 등산장비점들을 한데 모아 놓은 듯 정말 많은 장비점들과 기념품점들이 모여 있었는데 다른 가게에는 눈길이 안 가고 장비점과 서점(사진 때문에)에만 기웃거리며 등산복과 산악 사진 몇 가지를 사기도 했다.

저녁에는 네팔의 전통음식점에 갔는데 음식은 특별히 인상에 남는 게 없었지만 네팔의 많은 종족들을 대표하여 몇몇 종족들의 민속무용을 공연하고 있었다. 정식 공연장이 아니고 음식점에서 서비스로 하는 공연이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어쩐지 좀 성의없이 형식적으로 한다는 느낌이었다.


     <네팔의 소주 격인 "창"이라는 술을 따르는 모습>







     <민속무용 공연 모습>

-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