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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산행기>주변산행기

2004.10.25 02:13

03 시 별과의 대화

조회 수 1689 댓글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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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소령에 오르기 위해 길 떠난 첫 날,  03시에  금대암 마당에  섰다. 
깊은 어둠 속의 별들이 너무 뚜렷 해 가까이 비밀스런 말을 걸어 올것 
같아 가슴이 뛰었다

뜰 아래 대숲이 사그락 사그락 바람을 일어대는 소리에 무서움이 생겨
 별들과의 대화를  제대로 하지도 못했다.
하늘의 정경이 마치 '검정 벨벳 정장에 매달은 노란 별 훈장'으로 보였던 밤.

그 귀족 같은 별무리들의  아는 이름을  찾느라 목 고개가 아파왔다 
우리, 벽소령에서 만나자~ 반짝이는 별과  헤어져 안으로 들어와 따순 방에 
누워서  감은 눈 속으로 우아한 그 귀족별 하나 따라와 열 여섯에 짝사랑 하던 
그 아이를 떠올린다.

벽소령 달빛이 사라진 깊은 밤, 여전히 03 시에 세석 쪽 길 검정나무 울타리에 
기대섰다. 이 길은 언젠가 오브넷 사진에서 본 누군가 한 사람이 여름 산행중에 
벽소령을 향해  걸어오던 그 길이었다. 

내가 처음으로 벽소령에 오던 오래 전 그때는 검정 나무 울타리는 설치되어 있지
않아  황량한 산 길이었다. 이로 인해 벽소령 산장은 더 정겨운 운치를 주고 있다.
숙소 앞 마당에는 검정색 山 유니폼을 차려입고 길 떠날 채비에 많은 사람들이 
두런대고 있어 그들과 조금 떨어져서 울타리에 기대어 섰다.

벽소령 산장의 뾰족한 지붕에 가리워진 하늘을  세석 쪽으로  조금 벗어나니 
별들이 더 총총히 잘 보인다. 
벽소령의 별들은 하늘에서 산장의 세련된 지붕위로 떨어져 미끄러질 듯하다,
어젯밤 금대암의 03시 별들보다 어쩐지 귀족스럽기는 덜하다.

길떠나는 산꾼들의 수런대는 분위기 때문인가 보다. 그래서인지 
별들은 저마다 야간 산행을 떠나는 이들을 전송하는 말들을 보내오고 있다.
-뜨거운 라면 국물 좀  더 많이 먹고 떠나거래이~
-앗다, 이제 그만 묵소잉~ 날새기 전에 싸게 가야제~
쏟아질듯 무언의 빛으로 말을 보낸다.
 
껌껌한  산 중 밤 하늘도 한 무리 산꾼들의 이마에 쓴 머리전등 불 빛들로 
온전한 별빛 감상이 덜 된다.
누군가 우체통 앞, 벽소령 주릉선의 이정표 약도판 앞에서 찍사를 부탁한다.
자신 없지만, 어두워 내 모습이 잘 안보이니 찍을 만 하다 싶었는지...부탁이다.
그 사진 잘 안나오면 다시 벽소령 찾아 올테지... 

마치 검은 장막을 둘러친 어두운 무대에서 거의 무언극을 하는 분위기 같다. 
찬 바람이 싸늘하여 얼굴을 두 손으로 문지르며 매끄러운 피부를 느낀다.
별들에게 눈짓으로 따라오라 마음 속으로 말하고 식수장을 향해 내려간다.
어두운 숲 속 길을 한 발짝 씩 조심해 내려가며 중얼거리기 시작한다 .

몇 걸음 층층대를 내려가다 멈추고 따라오는 별을 확인하며 다시 말한다.
'법성원융 무이상 제법부동 본래적.무명무상 절일체 능지소지 비여경, .....
아, 저절로 스며 나오는 소리, 의상대사가 쓴 법성게를 읊고 있다.

마치 산 속의 절에서 새벽 도량석을 하듯이...벽소령 03시 지리산 마당 한 켠을
도량석하고 있었다.  무의식 중에 지리의 아픈 역사 속 그들의  명복을 빈다...
마음이 훈훈해 오고 있다. 

머리 위엔  크고 작은 별들이 샘터 까지 따라오며  내 도량석 소리를 귀담아 
듣고 반짝거린다, 발걸음은 어느새  큰 물병을 찾아 들고 산 아래 숲 속으로 
어둠을 뚫고 내려간다. 약간의 두려움에 가슴 두근거리던 것도 없어지고,
별들과 법성게를 읊으며 새벽 물길을 열었다.

먼지 끼었던 산 아래에서의 마음이 높은 산 상에서 별님과 대화를 나누어 더 
친해진 기분이다. 언제, 또 다시 해 볼 수도 없는 03시 별들과의 대화는 
벽소령에서 만들어지는 추억 어느 한 페이지를 새롭게 메꾼다. 
내 생애에 남는 신성한 영혼의 대화이다.

아마도 지리 유사 이래 벽소령에서 03 시  법성게 도량석은 처음이 아닐까?? 
합장한다. 2004. 10. 23. -도명-
 
  • ?
    김현거사 2004.10.25 08:15
    벽소령 별빛은 한없이 맑은데.새벽 3시 어둠 속에 초로의 여류시인 혼자 깨어 일어나 산장을 거닐며 법성게를 읊었으니,,,
    '법성원륭 무이상 제법부동본래적'
    참 아름다운 장면입니다.
  • ?
    섬호정 2004.10.25 10:24
    예~ 참 신령스런 기운으로 두려움도 없었습니다
    산 아래 오솔길 속으로 홀로 물을 뜨러갈 용기가 났습니다.
  • ?
    진로 2004.10.25 16:22
    섬호정선생님
    Why?
    이 글이 멀리 여기로 와 있나요?....^^
  • ?
    야생마 2004.10.25 17:23
    나비님의 티벳 네팔 여행기에서도 느꼈지만
    새벽 3시 그 시간에 혼자 별과의 대화, 자신과의 대화...
    뭔가 다른 눈으로 다른 세상을 보시는듯 한데
    그 깊이를 알수만 있다면 좋겠습니다.
  • ?
    허허바다 2004.10.25 17:56
    바람 한 점 없는 고요한 밤
    칠흙 같은 밤하늘
    흩뿌려진 수많은 영혼들...
  • ?
    섬호정 2004.10.25 22:13
    예~ 진로님! 산행기 품목?에 드는 글로 여기고서...
    예~~! 허허바다님! 그 밤 같은 시간에 지리산상 세석 동네에서
    같은 별빛 달빛 보았었죠. 하필이면 그날 따라 작전도로 대 공사중이라 2~3백 미터를 군용 호를 파는 속에서 기었어요 예~ 김수훈님 애 무척 잡숫고 ...꾹~ 인내하시는 소릴 듣고 싶었구요
    마지막 벽소령 오름길도 포복이었는데..함께 하신 허바님댁 마님!
    지리 이메지 나빴으면 어떡한다지요 고생하신길 ? 점수 관리에는 지장 없시겠지요...하 ㅎㅎㅎ
  • ?
    부도옹 2004.10.25 22:40
    고요한 산정....
    반짝이는 별빛....
    마음 가득 따뜻하게 채워짐을 느낍니다.
    고맙습니다. ^^*
  • ?
    오 해 봉 2004.10.26 01:11
    섬호정선생님 참 대단 하셨습니다,
    힘드셔도 봄가을 꼭 한번씩 이런행사를 맞으세요,
    내년봄에는 저도 동참할께요,
    수고 많으셨습니다.
  • ?
    선경 2004.10.26 10:52
    고요한 벽소령새벽 별님들과의 대화...
    이풍경이야말로 선경이군요
    오브넷은 멋진어르신님들이 계셔서 더욱빛납니다
  • ?
    솔메 2004.10.26 16:28
    섬호정선생님,
    멋진 행사에 아름다운 인연들을 축하합니다.
  • ?
    길없는여행 2004.10.26 21:41
    느낌이 깨어있는 산행...
    의식이 깨어있는 산행에
    자연만물이 함께 일어나 동행하였나봅니다.
    산기운 듬북 받으시고 선생님기운 도로 돌려주시니...
    지리의 만가지 생물도 고마워하겠습니다.
    그런데, 새벽03시 지리자락을 돌며하는 도량석은
    어떠하셨을까!!!
  • ?
    섬호정 2004.10.27 09:53
    길없는 여행님! 목탁은 없었지만요,
    핸드폰 나무音 벨소리 닥,닥,닥,을 좀 사용해 보니 그럴듯 해,
    전생에 나, 스님 이었나 싶어 빙그레 별에게 속삭였지요. ^&^
    스무살 적, 천은사에서 책 보따리 싸 들고 며칠 사는 동안,
    만행 중인 계룡산 비구니 스님에게 삭발설법 듣고 도망 치듯 하산해서 지금 이렇게 참회하듯 읊조립니다. 그 눈푸르던 비구니! 성불하시길
    합장합니다.
  • ?
    부용암 2004.10.27 20:06
    한 선배는 여군으로, 두선배는 절집으로...
    1년후 저는 또 다른 집으로~~참 별나게 보냈네요.ㅎㅎㅎ
    저의 대모님[견진]은 영도경찰서 여경이셨고...
    절집으로 가신 언니들을 인연따라 만날 수 있을지?(본가 이사하셨음)
    그래서 비구니스님을 유심히 보는 버릇이 있습니다.
    어디서나 건강하시길...^^*
  • ?
    섬호정 2004.10.27 22:57
    한 집안 자매 같은 분위기로 느껴져서,
    삼소회 수행자님들을 뵈면 참 따스한 기분이 듭니다
    세상은 그렇게 편안하고 아름다우면 참 좋겠습니다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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