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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산행기>주변산행기

2008.01.01 21:24

2008년 해맞이 산행

조회 수 2005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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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날 유리창에 달라붙은 매미를 본 일이 있다. 나무에 달라붙어 있을 때는 등짝만을 보아왔는데, 유리에 달라붙으니 전혀 볼 수 없었던 매미의 배를 보았다. 징그럽기도 하고 아름답기도 했다. 그것을 바라보면서 사람에게 마음이 없었더라면 유리 같은 것을 만들어내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인간이 얼마나 마음을 존중하는 종자인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유리는 매미와 나 사이에서 매미를 나로부터 보호하기도 하고, 나를 매미로부터 보호하기도 했다. 굳게 닫힌 유리창이 없었더라면 커다란 곤충을 가까이하기 두려운 사람은 그것의 배를 한참 동안 바라볼 수는 없었을 것이다. 매미 또한 배를 보여주며 그렇게 집념에 차서 울고 있을 수는 없지 않았을까. 차단되고 싶으면서도 완전하게는 차단되기 싫은 마음. 그것이 유리를 존재하게 한 것이다. 그러고 싶으면서도 그러기 싫은 마음의 미묘함을 유리처럼 간단하게 전달하고 있는 물체는 없는 것 같다. 가리면서도 보여줄 수 있다는 것 때문에 유리로 된 용기는 두루 사용된다. 술병도 그러하고 화장품용기나 약병 같은 것도 그러하다. 안에 있으면서도 밖을 동경하는 마음 때문에 사람은 분명 유리창을 만들어냈을 것이다. 안과 밖의 경계를 만들면서 동시에 허무는 것. 그것에 대한 인간의 욕망 때문에, 유리는 세상에 존재하고 있고, 그렇게 단순하게 안과 밖 혹은 이분법적인 구분이 아닌 것들로 세상이 존재하고 있음을 유리는 요약해 보여주고 있다. 유리의 뒷면에 수은을 입히면 거울이 된다. 유리는 빛을 투과시키고 거울은 빛을 반사시킨다. 빛이 지나갈 수 없다는 점 때문에 거울은 피사체를 그대로 볼 수 있게 해준다. 거울을 보는 눈. 빛이 지나다닐 수 있기 때문에 다른 그 무엇도 자유롭게 지나다닐 수 있어서 유리가 경계를 허물 수 있는 물체가 되었다면, 거울은 빛조차 지나다닐 수 없기 때문에 모든 것을 반사한다. 유리는 우리가 무언가를 투시하게 한다면, 거울은 우리가 무언가를 반영하게 한다. 반사하고 반영한다는 점 때문에 거울을 오래 들여다보는 이는 거울의 이면까지 들여다보게 된다. 정확한 풍경을 보여주기 때문에 풍경 안으로 걸어 들어갈 수가 있다. 유리를 통하여 우리는 빛의 길을 따라 '갈' 수 있다면, 거울을 통하여 우리는 빛의 길을 따라 '올' 수 있게 된다. 그렇지만 거울은 정확한 풍경을 보여주는 대가로 그것을 반대로 보여준다. 오른쪽은 왼쪽이 되어 있고 왼쪽 또한 오른쪽이 되어 있다. 실체를 뒤집어 보여준다. 이데아와 그림자가 역전된다. 그 때문에 우리가 굳게 믿고 있었던 것들에 대한 인식의 틀을 뒤집어버린다. 또한, 거울 두 개 마주보게 하면 끝없이 자신을 반영하며 마주본다. 거울이 거울을 끝없이 마주보고 있으면 무한으로 갈 수도 있고 그 과정 속에서 분열을 일으킬 수도 있듯이, 사람이 사람과 끝없이, 그리고 골몰히 마주보고 있으면 그와 같을 수 있다. 거울은 배면이 수은으로 닫혀 있기 때문에 풍경 밖으로 걸어가기보다는 풍경 안에 침잠하게 되며, 유리는 아무 것으로도 배면을 닫아놓지 않기 때문에 풍경 밖으로 걸어가게 된다. 마음을 확산하는 것이 유리라면, 마음을 수렴하는 것은 거울인 셈이다. - 마음 사전에서 -
    오래전에 닫아두었던 -마음사전-을 새삼 왜 꺼집어내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올겨울들어 가장 추울거라던 새해 해맞이산행을 친구와 다녀온 후, 사진기의 잭이 호환되질 않아 그를 기다리며 불현듯 떠오른 마음사전이다. 초승달임에도 랜턴을 밝힐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어둠을 가로질러본다. 어둠속에서의 산길은 자신의 내면으로 더많이 침잠케하기에 이런 기회가 더 많아지길 바라곤 한다. 산행친구와 함께 어둠을 가르며 내딛는 발걸음에 거침이 없다. 긴 슬랩지역을 오르며 부침을 느끼지만 뒤돌아 보는 서울의 야경은 달빛보다 더 환하다. 일출예정시간보다 훨씬 빠르게 향로봉에 닿아 자리를 확보하고 친구의 밝은 미소를 대하니 탐욕이 많을수록 자신에 대한 진실을 직시할 수 있는 능력은 줄어든다는 생각이 스민다. 위대한 예술은 진실탐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견디는 법을 배우는데 있듯.. 하루를 밝힐 해가 힘차게 떠오른다. 어둠에서 잉태한 하루를 토해내고 있다. 하산길을 서둘 이유는 없지만, 오늘산행의 의미를 다한지라 구지 산에 머물 이유도 느끼지 못한다. 굴뚝을 통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허름한 식당으로 들어선다. 70년대의 포크송이 흘러나오고, 장작으로 지피는 난로에는 혀를 날름거리는 불길이 활활타오르고 있다. 목가적.. 함께한 일행과 나는 이내 그 목가적 정취에 깊게 빠져들고야 만다. 마음씨 좋아보이는 아줌마의 정성이 배인 떡국을 먹고나서도 서두름이 없다. 음악에 취하고 장작을 지펴가며 불길에 취하고 함께 있다는 즐거움에 취한다. '왜 산에 가느냐..' 라는 질문에 '이미 나보다 먼저 산에 들어간 마음을 찾으려 간다..' 라는 대답을 가졌다는 나, 이렇게 하루를 출발한다.
        여명
        야경
        웅트림
        목가적 정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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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 해 봉 2008.01.08 14:41
    카오스님 반갑습니다,
    덕분에 해맞이사진 잘 보았습니다,
    사랑방에도 자주들려 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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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쉴만한 물가 2008.01.10 16:14
    같은 시간에 저는 수리봉에 있었습니다 좋은 해맞이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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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기난 2008.01.11 17:44
    새벽녘 산에 드시어 마음을 만나고 오셨는지요?
    활활 타오르는 난로에서 따스한 내음이
    여기까지 풍겨옵니다.
    새해 건강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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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경 2008.01.22 13:04
    장작타는 나무향속에~~목가적분위기의 카오스님~~
    올해도 감성깊은산행 행복한시간되시고요
    지금 고국에도 소복히 눈이 쌓이고 있다는밤~~지구반대편
    설국의 아침햇살에 비치는 눈의 미소속에 그리운고국을 그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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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생마 2008.01.24 20:08
    나보다 먼저 산에 들어간 마음을 찾으러 간다는
    마지막 말씀 아주 멋집니다.
    향로봉의 일출, 곳곳의 사진들이 아름답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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