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지리산

산행기>주변산행기

조회 수 2072 댓글 3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백담사,

그간 수없이 벼르던 설악산행.
들머리를 어디로 잡느냐에도 신경을 많이 썼다.
내설악의 대표적 들머리이며 뫼마다 골마다 서리서리 유서깊은 백담사를
이번 산행의 들머리로 잡은 것은 근 30년만에 찾는 나로써는 당연하다.
달리는 차창에 스치는 강원도는 길은 넓어지고  산천은 많이도 새로워졌으며
산마다 골마다 이미 가을이 내려오고 있었다.
점심무렵에 도착한 내가평 백담사들머리는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울긋불긋 산객의 차림들로 붐비면서도 아름답다.

盤石淸流 - 하얀 반석과 돌아앉은 듯 자리잡은 괴석을 휘돌아
쉼없이 흐르는 맑은 물,
멈추는 듯 다시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백담계곡을 끼고 가는 길을
중형 셔틀버스에 의존한다.
신라 진덕여왕조 자장율사 손에 창건된 이 절은 1,400여년간 이름도 많이 바뀌었고
육이오전쟁 때 불타기까지 수없는 火魔도 입었다.
대청봉에서 흘러내린 물이 백담사에 이르기까지 百이나 되는 潭沼가 있다하여
百潭寺라는 이름을 얻은지도  어언 500여년,
그간  견디어 온 세월이 오래이다.

근대에는 만해선사(한용운)가 머물면서 ‘님의 침묵’, ‘불교유신론’을 집필하여
만해사상의 산실이 되기도 하였고,
80년대에는 日海(전두환)가 정치적 이유로 2년간 칩거하며
수렴동, 가야동, 구곡담을 거쳐 봉정암에도 오르며 선방에서 留하다가
문득  처지에 울분이 솟을 때에는  
하산 후에 손 보아주려 꼽은 사람도 여럿이라던가.
아무튼 幸이라 해야 할지
일해 덕분에 진입로포장은 물론,  전기시설이 완비되어 선방 곳곳이 불야성이요
處處堂宇가 휘황하니 이 또한 ‘붓다’의 加被가 아닐런지...
동행이 있어 20여년 만에 어렵사리 찾아든 설악산행에 뜻깊은 의미를 담아  
기와 한장에  불사의 념을 실어 일필휘지 奉納한다.

수렴동계곡,

백담사를 뒤로하고 황장폭을 비껴보며
가야동계곡과 구곡담계곡 합수지점까지 이어지는 수렴동계곡을  
쉬어쉬엄 거슬러 올라간다.
이제 막 천상에서 내려오는 赤裳의 가을여인들이 학이 날듯 솟은 묏부리와
우직한 머슴이 돌아선 듯 자리잡은 기암괴석을 감싸안아가고 있다.

구곡담계곡,

龍牙장성능을 사이에 두고 동북에는 가야동계곡, 서남에는 구곡담계곡으로 나뉘어
각각의 계곡미를 한껏 자랑하고,
옥녀봉을 깃점으로 용의 이빨처럼 날이 선 연이은 기봉들이 佳景이다.
산첩첩 물첩첩 만수담에 만수폭을 보고 백운동계곡을 우로 두며
대소 폭을 몇 개 더 건너오르니
숨이 가빠지는 우리를 쌍룡폭이  반겨준다.
갈수록 고도는 높아지고  골은  깊어만 가는데
해는 이미 서봉을 넘어가고
사위는 어스름이 깔려 발밑을 조심하여 봉정암 입구 봉정골에 당도하니  
완연한 어둠발이 우리 몸을 휘감는다.

봉정암.

해발 1,224m이니 설악에서 제일 高地에 자리한 암자이다.
평일인데도 신도와 산객들이 어우러져
마침 초저녁 예불시간에 맞춰 경내가 술렁인다.
우리는 무료로 제공하는 커피와 감로수 한 모금으로 목을 축이고
요사채 뒷편을 따라 소청봉 안내판을 보고 향을 잡아 어둠을 가르며 출발한다.
가파른 오르막길을 발 밑은 해드렌턴에 맡기고
돌계단길을 계속 올라 능선 깔닥고개에 당도하니
동해로부터 불어오는 가을 찬바람이 사무치게 써늘하여 옷깃을 여민다.

소청산장,

드문 인적속에
길 잃은 일행을 찾는 산객의 불빛들이 어지러이 흔들리다 사라지자  
얼마 안 지나 희미한 장명등 불빛이 숲사이를 파고드는 산장 -
비상 발전기 소리가 요란한 소청산장이다.
산장마당에 삼삼오오 둘러앉아 취기어린 담소와
설악의 가을을 노래하는 산객들이 즐비하다.
평일이라선지 산장의 숙박인은 여유로워 보이지만
등줄기의 땀이 식어가는 우리는 한기를 느낄 새도 없이
물 한 모금으로 목을 축이고 다시 중청봉으로 오르는 돌계단을 올라선다.
한동안 가쁜 숨을 몰아쉬며 오르니
갈바람 한 점을 몸에 맞으며 하늘의 별빛 점점한 어둠속에  
포근한 모습의 중청봉이 저만치다.

중청산장,

山陵을 거스르는 바람결이
익어가는 가을의 한기가 되어 앙가슴을 파고들자
소스라치며 옷을 여민다.
가쁜 숨을 몇 번 더 몰아쉬니
이내 저 아래 어둠속에 중청대피소가  자태를 드러낸다.
이미 밤은 이슥하고 대피소와 우리 주변을
밤안개는 스멀거리며 집요하게 몰려든다.
내일 새벽, 대청일출을 구름속으로도 보기 어려울까 신경이 쓰인다.

대피소는 消燈 30분여를 남긴 시간,
숙소배정 마감시간이 임박하였지만 늦은 저녁이라도 해야겠기에
취사장에 들어서자  안에는 아직까지 한 떼의 검은 등산복을 입은
산꾼들의 醉氣放談이 낭자하여 싸움이 난 듯 소란스럽다.
비등점도 되기전에 끓어넘쳐 설익어버린 쌀밥에다
무겁게 짊어지고 올라간 와인병을 따서 몇잔을 부어넣으니
속은 든든하고 얼굴은 불콰해진다.
이미 숙소의 장명등도 모두 꺼지고 관리인은 취사장 소등을 우리에게 맡기고
들어가 취침한다고 하는 양을 보니
지리산 주능에 있는 대피소에 비하여 융통성도 있고
나름의 낭만도 있어보인다.
인터넷으로는 예약이 다 되었어도 당일 현지에서 알아보니
다행이 남은 자리가 있다.

이젠 장시간 운전에 장거리 登行으로 피곤한 몸을 침상에 누일 시간이다.
숙소배정을 받아 침상의 수직사다리를 타고 2층에 올라가
깔판깔고 침낭덮고 드러누우니
각각의 자리마다 이미 곤한 잠에 빠진 이들이 즐비하고
혹자는 가늘게 코를 골며 깊은잠속이다.
비브왁까지 염두에 두어 준비하고 짊어진 무거운 배낭에
밤새도록 어깨가 뻐적지근하여 몸을 뒤척이며 잠을 설치는데
어둠속 부시럭부시럭 옆에서 약을 챙겨주는 깊은 정성이
가없이 고마웁다.

대청봉.

04시,
이르게 길을 나서느라 수런거리는 바지런한 산꾼들 덕에
새벽잠은 이미 산너머로 달아나 버렸다.
우리도 장비를  점검하여 짊어지고 다시 취사장에 나와
어제 남은 누룽지밥을 끓여 더운 김나게 속을 채우고나서
대청봉을 향하여 길을 나선다.
아직 칠흑의 어둠이고 공기는 사뭇 차거웁다.
한밤중에 오색으로부터 올라서
대청봉을 찍고 넘어오는 산꾼들의 해드렌턴 불빛들이
초가을 날 산골짜기 반딧불처럼 어지럽다.

대청봉에 오르는 능선에 올라서니
새벽바람은 더욱 차고 저 아래 속초시가지는 깊은 잠속에 빠져있는 듯  
가로등만 졸고있는 모습이 손에 잡힐 듯 가지런하다.
더 멀리 가늠조차 안 되는 동해바다 深海상에는
한밤에 나가 조업하는 크고작은 어선들의 불빛 또한 휘황하고 어지럽다.
아직은 짙은 어둠속, 대청봉 표지석을 괭이눈으로 가늠하면서
내설악 쪽에서 부는 바람을 막아줄 바위벽을 의지하고
동녘을 향하여 자리를 잡았다.
아예 깔판과 침낭을 펴고 바위에 등을 기댄채
시린 손에는 정상주 와인을  유리잔에 받쳐들고 우리는 일출을 기다린다.

대청봉일출.

짙은 구름이 점점 옅어지고 일부는 찢기듯이 열리는 구름사이로
동녘이 희붐하게 밝아온다.
먼~먼~나라 동해바다 수면위로 불을 토하듯 떠오르는 일출은 아니라 해도
이미 동녘은 붉게 타오르고 사방의 山群들은 綾波의 모습으로 다가든다.
산마다 간밤에 옮겨앉은 안개가 구름떼가 된 듯 골마다 운해로 가득하고
體感으로 영하의 찬바람은 휘휘거리며 불어댄다.

이 때,
봉우리에 모인 수십명의 산꾼 중에 어느 시인이 있어 즉석시가 낭송된다 ..
일출을 응시하는 사람들의 가슴을 휘젓는 열정적 외침은
산 아래로 메아리친다.
그 격정의 詩語들은 내 기억에서 사라졌지만  
‘덧없게 살아온 각각의 인생을 저 찬란한 동해일출을 보며 새롭게 다잡자‘는 요지.
점점 퍼지는 아침햇살이 금빛은빛으로 우리 몸을 감싸준다.
설악의 제일봉, 남한 육지에서 지리천왕봉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봉.
내 인생 처음으로 맞이한 ‘대청봉일출’이었다.

금강산 조망,
        
대청일출을 보고 내려오며
동해쪽으로 뻗은 화채능선을 멀리에 두고 천불동계곡을 굽어보다
다시 북녘을 더듬으니 공룡능선 끝자락에 마등령이 뚜렷하고,
그 서쪽으로 용아장성능,
그 사이에는 서린 한처럼 깊게 들어앉은 가야동계곡이
웅얼거리는 물소리로 흘러가리라.
우리는 다시 눈을 들어 끝없는 하늘이 산그림자로 닿은 곳,
북녘을 응시한다.
보인다!  맑게 트인 시야 저 너머로 구선봉 끝자락이.....
금강산 일만이천봉이 줄달음치듯 동해로 달려나와 해금강으로 이어주는
낙타등 같은 구선봉 자락.
저 산능도 백두대간 한줄기인데
설악같은 짙은 초록, 붉디붉은 단풍은 어디에 두고 민둥스럽게
그저 회색의 처연함을 몸에 두른채 동해로 흘러내리는가.

끝청봉.

키작은 관목이 발길을 붙잡는 산길을 타고
중청봉을 우회, 마침 내려앉는 단풍의 물결속으로
장쾌하게 달리는 서북능을 응시하며 발길을 재촉한다.
남설악의 한계령 너머 가리봉과
유난히 뾰죽한 주걱봉에 몇 번씩이나 눈길을 주며 20여분을 걸으니
끝청봉에 도착한다.
소청이 있고 중청, 대청이 있는데 거기다가 끝청봉은  또 무엇인가.
또한 저 멀리 서북능을 주도하며 두세줄기 흘러내린
너덜겅이 뚜렷한 해발 1,578m의 귀때기청봉은 또한 무엇인가?

서북능선.

대청봉을 떠난지 3시간반만에 서북능삼거리에 도착한다.
한계령에서 시작하여 올라오는 산객들이
대청제일봉을 향하여 허위대며 오르는 모습이 사뭇 분주하다.
우리는 서북능삼거리에서 식수보충도 못하고
중청에서 확보한 물로 라면을 끓여먹고
낙엽이 깔리기 시작한 등로를 따라 귀때기청봉을 향하여 오른다.
서북능선 상에는 샘터도 없다하니
중청대피소에서 여유있게 식수를 준비해야하나
그리 크게 의식하지 않고 준비한 식수때문에  
앞으로 닥칠 여정에 큰 고생이 가로놓일 줄을 미처 몰랐다.

귀때기청봉,

등로가 아연 험해지면서 너덜지대가 계속되니 발걸음이 무거워진다.
멀리 보이는 중청봉과 남설악 계곡으로는
대형 헬기가  요란한 굉음으로 날아다니면서 대피소의 각종 쓰레기를 하산시키고  
작년에 일어난 수해복구를 위한 자재를 아직까지 실어나른다.
설악산에서 **청봉이라고 이름 붙은
다섯번째 봉우리 - 귀때기청봉에 도착하니
한계령에서 시작하여 한발 먼저 올라온 한 떼의 산객들이
다양한 먹거리를 펼쳐놓고 왁자지껄하다.
우리는 쨍쨍한 햇빛을 피하여 그늘에서 잠시 쉬다가
곧 서북쪽 대승령을 향하여 출발을 한다.

너덜바위들은 송편을 곧추세운 듯이 날카로워
발걸음에 긴장감이 더해지는데  
등로상에 우리를 제외하고는 사람을 보기 힘든 외로운 산행이다.
설악의 서북능은 산행중에 보이는
좌우로 펼쳐지는 산세미와 계곡미의 觀望이 수려하지만
식수보충이 불가능하고 암능을 반복하여 타고넘는 코스가 길어서
화려함과는 달리 설악주능에서 한걸음 비켜서있는 아웃사이더이기 때문일까?
오가는 사람이 없다.
다만 한 사람을 만났는데
그 이는 며칠째 서북능을 오가면서  바위능에서 잠을 자고
혼자 산행하는 기인같은 사람이다.
타고 넘는 암능마다에는 근년 들어 새로이 시설한
각종 계단과 난간등의 시설물이 아마추어산행을 편하게는 하지만
자연미가 훼손된 인공시설물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만만찮음이 현실이다.

대승령,

날카로운 능선길을 지나며
장수대 골과 남설악의 계곡미, 그 너머 점봉산을 위시한 연봉들을 건너다보니
지난해에 할퀸 水魔의 상처들이 아직도 선연하다.
시간이 갈수록 어깨를 파고드는
75리터급 배낭의 중압감과 피로감이 엄습하고
물 한모금으로 목구멍만 축이며 식수를 아끼는 등...
우리는 서로를 배려하며 꾸준히 앞으로 나아간다.
해는 중천에 떠있고
시간이 갈수록 소모되는 체력과 솟아나는 땀방울에
탈수증이 우려되는 힘든 산행이지만
의연하게 따라오고 때로는 앞장서서 치고나가주는 동행이 있어
마음이 든든하고 행복하다.

큰감투봉을 우로 두고 1,408고지를 지나간다.
서산에 기우는 해를 보니 마음은 더욱 조급해지는데
서쪽으로 주욱 펼쳐진 파도같은 능선을 바라보니
대승령으로 가늠되는 산마루는 너무도 아득하고  
아직도 갈 길은 멀다.
우리는 한모금의 물로 목을 축이다가
이제는 입술만 축이는 정도로 부족한 식수에 대응한다.
몸은 점점 쳐지고 식수도 거의 동이 나는 시점에
서쪽 산능으로 져가는 태양과 함께 대승령에 도착한다.

지형도 상 오른쪽 계곡으로 탈출하면 흑선동계곡(대승골)이니
그길로 내려가서 우선 식수부터 해결한 후에
장수대 방향으로 하산하고도 싶지만,
우리의 당초 목표인 십이선녀탕 계곡 탐방을 버릴 수가 없어
대승령사거리에서 다시 오름길로 직진한다.
산세는 느긋하나 지친 몸으로는 힘겨운 오름길 20여분,
체력의 한계를 느껴갈 즈음에
치마바위를 둘러놓고 의연하게 솟은 안산에 이르는 갈림길을 만나니
한결 마음이 놓인다.
이제는 내림길이다.
日落西山, 어둠이 깔리는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길을 잡아
탈수증 직전의 나를 위하여 샘터를 찾는데 온 촉각을 곤두세우고
앞장서 하산길을 재촉하니 위급한 상황에 발휘되는 그 힘이 놀라웁다.
어둠속에서 서로를 불러 안전을 확인하면서
발길은 그저 아래로 아래로 옮겨간다.

샘터 그리고 비브왁.

이미  산속의 어둠은 더 짙어졌다.
랜턴에 의지하여 샘터와 비브왁지점을 찾아가는데
푸드득거리는 산새의 날갯짓과 간혹 불어가는  바람소리만이
깊은 산의 적막을 깨워준다.
우리가 휴대한 5개의 물병은 이미 다 비웠고
한 개의 병속에 최후의 비상수로 사용할 몇 방울의 물을 남긴 채
어둠속을 함께 더듬어가던 나의 동행은
동물적인 청각을 곤두세운 채 멈춰선다.

어둠속에서는 더욱 찾기 힘들었던 샘터,
작년의 폭우로 무너져 계곡의 돌 틈사이를  돌돌거리며 흐르는 물소리,  
우리는 그 어느 신선이 마시던 감로수와도  비교가 안 될 물이었다.
벌컥거리며 마시고 물병마다에 담아  짊어지고
다시 조금 더 내려가 맞춤한 자리에 비브왁을 준비하고
칠흑의 어둠과 함께 저녁을 지었다.

四圍는 칠흑인데 느끼는 동물의 溫氣라고는 동행과 나 뿐이다.
멀리서 간간이 으르렁대는 산짐승소리도 오히려 정겨웁다.
와인을 飯酒하여 몸을 덥히고
부서질 듯 노곤한 몸을 비브왁쌕 안에 구겨넣는다.
침낭 덮은 발치에 넣어둔 손난로의 온기가 전신을 어루만지듯 다숩게 느껴진다.
간혹 스쳐 지나는 바람소리와 외로운 산짐승의 울음을 귓가로 흘리면서
설악산 중의 최초 비브왁은 그렇게 전설처럼 깊은 잠에 빠져든다.

십이선녀탕,

새벽에 설픗 잠이 깼다가  다시 잠에 빠져들었으나
놀라듯 깨어보니 벌써 동녘에는 黎明이 완연하다.
간단식을 뜨겁게 하여 후르룩거리고 나서
한창 단풍이 내려앉고 있는 긴긴 십이선녀탕 계곡길로 접어든다.

두문폭에서 시작되는 담소가 참으로 아름답다.
하얀 반석을 타고 골을 파내며 흐르다가
깊고 넓은 담과 소를 만들고
그 안에는 옥빛 푸른 물을 넘치게 담고있는 저 아름다움,
나는 외금강의 連珠潭과 상팔담을 연상했다.
금강이나 설악은 태백준령을 한줄기로 삼아
바위와 물과 흙과 돌에 뿌리내린 한 줄기 植生이 아니던가.

작년의 폭우가 할퀸 상처를 치유시키는
복구공사도 도처에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일꾼들의 가설숙소도 간간이 보인다.
복숭아탕 언저리에는 한층 진하게 붉어진 단풍잎이 여실한데
우리는 갈길을 더욱 재촉한다.
응봉폭포 준수한 물줄기를 계단길에 서서 하염없이 내려보다
다시 인적 드물고 끝없을 것 같은 깊은 계곡길을 내려간다.

북천나루 남교리가 얼마 남지않은
햇빛을 다숩게 받는 바위벽에서 빛바랜 위령비를  발견하고는  
우리는 근 40년 전의 겨울, 그 생때같은 대학생 청춘 여럿을 앗아간 눈사태를 회고한다.
산길에 수북한 이른 낙엽들을 밟으며  
선녀탕입구-남교리에 당도하니 해는 이미 중천인데
2박3일의 설악산행을 마감하는 성취감에 우리는 하이파이브를 하면서
기분이 날아갈 듯 도착하는데  
갑자기 관리초소의 공원관리인이 손사래를 치며 우리 앞길을 막는다.
수해복구기간 중에 입산금지가 공시되었으므로
공원관리법 위반이라며 엄중한 분위기를 잡아간다.
그러나 사람과 사람간에 솔직하고 마음 열은 대화로 안 되는 일은 없었다.

속초,

새로이 뚫린 미시령터널을 이용하여 단숨에 속초로 넘어갔다.
작지만 깨끗하게 리모델링한 척산온천에 들려
3일동안 땀에 절은 몸뚱이를 담그고나니 날아갈 듯이 개운하다.
우리는 점봉산 산채식당을 찾아들었다.
풍성하고 웰빙스러운 산채를 곁들여 점심을 먹고 나오는 우리 손에는
불노초장아치 한 보시기와  말린 삼지구엽초 한 보따리가 들려있었다.
속초시내를 지나 동명항으로 들어가 방파제에 앉아
선명하고 영롱하게 하늘과 바다가 손을 잡은 수평선을 응시하니
천국처럼 평화롭다.
짙푸른 파도가 넘실대는 방파제에 달라붙어
숭어 훑치기낚시를 하는 釣士들과 덕담을 곁들인 대화도 터본다.
우리는 동명항 회센타에서
산오징어와 도다리,숭어,멍게,해삼....모듬회를 한 채반 떠서
2층으로 올라 마주앉아 창너머로 설악준령을 올려다보니  
정상에 올랐던 어제일이 언젠가 싶게 아득하다.
가을의 전령이 붉게 물드는 10월,
의지하고 북돋으며 이룬 3일간의 설악종주를 마감하는 성취감으로
싱싱한 횟감에 소주를 몇잔 기울이니 男兒 한 평생이 이만만 해도 좋을 성 싶다.


[님의 침묵]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끼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서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 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은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源泉)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 설악의 근대사에 빼놓을 수 없는 인연인
   만해 한용운의 시 [님의 침묵]을  읊조리며  
  
   ‘07년 10월 .... 화개동천.


  • ?
    부도옹 2007.11.06 01:03
    長程의 길을 따라 숨가쁘게 읽어 내려갑니다. ^^*
    식수 때문에 고통스러웠을 긴박한 시간들을 든든한 동행이 있어 힘이 되었으니 더욱 마음에 새겨진 산행이었을 것입니다.
  • ?
    김종광 2007.11.08 13:11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좋은절기에 내설악,대청에서의 밤,속초의 모두를 보여주십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 ?
    오 해 봉 2007.11.08 22:50
    백담사에서부터 12선녀탕까지 화개동천님 따라서
    힘들고 정다운 산행을 하였습니다,
    곳곳의 역사와 해학이 겻든설명이 명품입니다,
    참 좋은 코스를 택하셨습니다,
    화개동천님 항상 고맙습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이곳은 . . moveon 2003.05.23 4360
302 나무가 된 오대산 종주길 카오스 2010.02.09 2092
301 보현봉 1 카오스 2009.12.03 1334
300 산에 들면 산이 없다.[대한민국 5대고산 오르기] 1 카오스 2009.02.20 2346
299 영남알프스 신불산 억새평원 3 푸르니 2008.11.25 1868
298 瑞雪 펑펑 터진 장성 백양사.백암산 3 카오스 2008.11.21 1762
297 삼각산의 가을... 3 이안 2008.11.08 1822
296 멀리 가려다 쉬고 싶은 길 위에 문득 네가 있다 3 카오스 2008.10.26 1715
295 조계산..그 평안 2 카오스 2008.09.12 1753
294 그리움으로 걷다..설악의 백미 용아장성(龍牙長城) 6 카오스 2008.08.02 2370
293 백두대간 제 24구간(화방재-함백산-싸리재) 2 김수훈 2008.05.20 2225
292 아들들에게 쓰는 산행편지 ( 설악산 공룡능선 무등을 탄 날 2월 08일) 2 쉴만한 물가 2008.02.17 2107
291 네팔 히말라야 "헬람부트래킹" 記 10 K양 2008.01.23 2881
290 2008년 해맞이 산행 5 카오스 2008.01.01 2005
289 철지난 산행기...영남알프스 그리고 북한산 4 해성 2007.11.18 1993
» 가을설악-서북능을 만나다. 3 화개동천 2007.11.04 2072
287 아~~!!! 설악, 설악 3 카오스 2007.11.01 1829
286 공룡은 어디갔을까? (설악산) 4 쉴만한 물가 2007.11.01 1615
285 백두대간 23구간(도래기재-태백산-화방재) 산행기 5 김수훈 2007.10.25 2192
284 금강굴 3 오 해 봉 2007.10.15 2384
283 백두대간 22구간(고치령-도래기재) 2 김수훈 2007.09.12 2053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18 Next
/ 18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