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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산행기>주변산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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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셋째날
텐트 안이 옆으로 약간 기울어 자리가 영 불편한 바람에 잠을 제대로 못 자고 자다 깨다를 반복하는데 천막을 두드리는 빗소리! 아이고, 드디어 우려하던 비가 오는 모양이다. 얼마나 내리려나, 언제까지 내리려나? 온도계를 꺼내 본다. 텐트 안은 7도, 텐트 밖은 10도. 고산지대치고는 생각보다 온도가 높은데 한국에서의 같은 온도에 비해서는 좀더 춥다. 한국에서 이 정도 온도라면 춘추복을 입고 자도(오리털 침낭) 덥다고 느낄 텐데, 여기서는 우모복에 겨울 바지를 입고 자고도 더운 줄은 몰랐다.
침낭 안에서 뭉개고 있으려니까 아침 먹으러 오라고 소리친다. 그래, 일단 밥은 먹어야 하니까 먹고 보자. 식당 텐트는 10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 2중대가 먼저, 1중대가 나중에, 교대로 먹는다. 오늘 아침의 메뉴는 밥에 미역국과 계란찜이다. 통조림류라도 몇 가지 가지고 올 걸 하는 후회가 생긴다. 어차피 무거운 짐은 말에 실려 가지고 왔을텐데, 그걸 알면서도 평소에 배낭 무게 줄일려고 하던 습관이 저절로 나왔던 모양이다. 미역국과 계란찜은 어느 정도 괜찮은데 밥은 영 아니다. 깨작거리다가 나중에 누룽밥이 있다길래 그걸로 배를 채웠다.
밥을 먹고는 또 하릴없이 텐트 안에서 노닥거리다가 한숨 또 자다가 시간을 보내는데 빗줄기가 점점 가늘어진다. 좁은 텐트 안에서 있기가 답답한 사람들이 하나둘씩 우산 쓰고 나와서 돌아다닌다.


     <겨우 비가 그치는 모양이다. [10:21]>


     <내가 잤던 텐트와 룸메이트>


     <캠프사이트는 온통 말, 양, 야크의 똥이 널려 있다.>

어차피 원래 오늘의 일정도 고도순응을 위해 오전에는 주변 산책으로 예정되어 있었다. 능선 아래 계곡의 관광지인 호수 몇 개를 둘러볼 계획이었는데, 그건 물건너 간 셈이다.
할 일이 없어진 사람들이 모두들 캠프지에서 약간 떨어진 실개천에 가서 발도 씻고 세수도 하고 하면서 한가로이 지내고 있다. 어제 오후부터 무겁던 내 머리도 자고 나서 그런지 깨끗하다. 옆 텐트의 입심 좋은 두 아저씨는 여러 사람 즐겁게 해주는 기쁨조 역할을 하고 있다. 1중대의 한 명은 아직도 머리가 아픈 게 가시지 않고 있다. 알고 보니 어제도 오후에는 말을 타고 올라왔단다.
캠프 옆에 가축을 방목하면서 牧夫들이 잠자는 대피소가 있어서 구경하러 갔다. 구들돌 같이 얇게 잘라진 돌들을 쌓아서 벽을 삼고 지붕도 이었다. 음- 송동선씨가 보면은 삼겹살 구이에 제격이라고 얼른 하나 집어 지리산에 가져 가자고 할 텐데. 사진 한 장 같이 찍자고 했더니 극구 피한다.


     <방목시킨 가축을 관리하기 위한 우리와 대피소.>


     <목동들의 대피소 안에 구경하러 들어간 일행들.>

난생 처음 먹어보는 "짜파게티"로 점심을 먹고는 다시 산행이 시작된다. 어제 오후에 비탈면을 타고 거의 3부 능선까지 내려왔었는데, 이제 그것을 도로 직선으로 올라가야 한다. 길은 다시 풀밭 길로 부드럽지만 급경사 오르막을 올라가려니까 조금만 가도 숨이 차고 가슴이 뻐근해오면서 머리가 무겁다 못해 띵- 해온다. 아이고, 다시 고소증세가 시작되는구나. 2, 3분을 채 못 가서 숨을 돌려야 했다. 같은 상태, 같은 경사도의 길을 기준으로 비교해 보면 한국의 산보다 속도는 1/2 정도로 가는데, 숨가쁨은 2배, 다리 힘드는 건 1.5배 정도 되는 것 같다. 한여름날 오후에 화개재에서 토끼봉 올라가는 생각이 든다.
더덕 냄새가 강하게 풍겨 온다. 누군가가 더덕 캐서 반찬 하자고 하니까 가이드 얘기가 냄새만 비슷하지 더덕이 아니라고 한다. 헐떡대는 우리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야크 떼가 오르막을 우르르 달려간다. 야크가 덩치도 훨씬 크고(말은 몽고종으로 제주도 조랑말보다 약간 큰 정도이다) 힘도 셀 텐데 짐 싣는 일을 왜 안 시키나 물었더니 부리기가 말보다 어렵다고 한다. 털북숭이에 머리는 가분수로 크고 털에는 온통 덕지덕지 뭔가가 엉켜붙은 게 가까이 오면 겁난다.


     <다시 오르막을 올라 산행은 계속되고 [14:20]>

한 시간 가까이 오르막을 올라서니 다시 풀밭 능선길로 나선다. 아침비에 물기를 머금은 야생화들이 반짝거린다.


     <캠프-2를 향하는 도중에 야생화 꽃밭에 앉아서>


     <얼굴은 웃고 있지만, 실제로는 거의 비몽사몽입니다. [15:14>]

가축들이 다니는 길을 따라 옆으로 따라오던 조선족 가이드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배낭을 집어던지고 달리기 시작했다. 모두들 놀라 쳐다보니 웬 조그만 짐승(나중에 알고보니 멧돼지 새끼) 하나를 쫓고 있는 것이 아닌가. 비탈을 오르내리며 벌어진 추격전은 결국 고산족(멧돼지)이 평지족(인간)을 완전히 가지고 논다는 평가를 내린 끝에 끝났다.
한참동안 능선을 따르던 등산로는 다시 비탈면으로 비스듬히 내려와 실개천을 따르다가 지능을 돌아나가기를 몇 번, 드디어 오늘의 종착지- 과도영이 보이기 시작했다.


     <저기 중간의 절벽 아래가 캠프-2, 오늘의 목적지이다.>


     <캠프-2 근방에서는 방목 중인 야크 떼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드디어 병참부대도 도착했다. 말에 실린 각종 보급품과 취사용 가스통>

어제의 경험을 되살려 재빨리 텐트 자리부터 골라잡기 시작했다. 똥 없고, 평평한 곳-
그런대로 만족할 만한 수준의 텐트를 완료하고 나니, 18:30. 현재 고도는 4,200m 기온은 14도이다. 이제 내일의 정상 등정을 위해 오늘은 무조건 잘 먹고 일찍 푹 자야 한다. 그런데 점심에 먹은 짜파게티가 영 소화가 안 되는지 속이 더부룩하다. 저녁 메뉴는 꽁치통조림으로 찌개에 조림까지 완전 통일이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도저히 먹을 수가 없어서 결국 포기하고 숭늉으로 대신하고 만다. 가이드가 고소약을 가지고 있을 텐데 좀 달라고 해볼까? 고민하다가 오브넷 식구들의 성원으로 버틸 각오로 그만 두고는 침낭 속으로 기어 들었다.
  • ?
    허허바다 2004.08.17 14:53
    아~~ 못 드셔서 그리 홀쭉하셨던 것이군요 쯔... (ㅋㅋ)
    시간이 멈춘 그 대자연 속에 푸~~욱 파묻히셔서
    한없는 평화와 자유를 맛 보신 것 같습니다...
  • ?
    오 해 봉 2004.08.18 00:31
    목동대피소 보급품을 싣고온병참부대 과연 쓰구냥원정대란
    실감이 드네요,
    야생화 꽃밭에앉아서 찍은사진을보니 고소증으로인해 고생한것인지
    힘들어 보이네요,
    야생마님이 약챙겨가라고 하던데 고생하셨습니다,
    ofof.net 스티커를달고 6250 m를 정복하고오신 김수훈님의 노고에
    거듭 감사드립니다.
  • ?
    부도옹 2004.08.18 00:57
    사진으로는 거의 평지 풀밭처럼 보입니다. ^^*
    고소증이 입맛을 가시게 만들었네요.
    내일 정상으로 향 할텐데 걱정입니다.
  • ?
    야생마 2004.08.18 01:12
    고산병을 이기는 방법엔..잘먹고 잘버리고 잘자는 것인데..
    고산병엔 장사없다고도 하고요..
    오브넷 가족들의 성원으로 버티셨군요..대단하십니다..
    고생 많이 하셨네요..
    사진속 풍경들이 정말 아름답습니다..가고싶어라~~
  • ?
    섬호정 2004.08.18 15:55
    오브넷 산꾼님들의 선망을 온 몸에 받으시고
    힘 내시었네요 누룽지만 잡숫고도요~장하십니다!!!
    ^^^&꿈!
    차라리 흰구름이 되고지고...
    저 쓰꾸냥 네 봉우리 떠다닐 수 있다면 ~금생엔 아닐 테이고..
    말 등에 신세지며 '대해자'에라도 간다면~
    사천성 성도엘 가거던 사천요리 맛이나 볼 수 밖에...
  • ?
    인자요산 2004.08.18 20:04
    산에서 먹는재미가 경치구경만큼 큰것도 없던데..
    전날보다 더 고생하셨겠어요..저같으면 얼른 집에 오고싶겠어요
    가시기전에 고민많이 했을거란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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