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길 중 하나인 밀포드 트래일.
뉴질랜드 남섬 남서쪽 피오랜드국립공원 안에 있는 밀포드 지역은
인간의 발이 닿은지 200여 년밖애 안되는 숨겨진 땅이었다.
풍부한 강수량으로 밀림이 울창하고
1억 년 전 대륙과 분리되어 고립된 독특한 자연환경이
뉴질랜드인들의 극성스러운 노력 덕분에 원시 상태로 잘 보존되어 있다.
퀸스타운에서 버스로 티아나우까지 2시간 이동 다시 배를 타고 1시간 이상을 가면
등산화 바닥을 소독하고 들어서면서
54킬로 밀포드 사운드까지의 4박 5일 일정이 시작된다.
오직 외길이기에 길을 잃거나 잘못 들어설 염려도 없고
대부분 트래일은 완만하고 안전하며 마을이 없기 때문에 동행하는 이들 외에 마주칠 사람도 없다.
하루 입장 인원을 철저히 관리하기 때문에 수개월 전 사전 예약해야 하는데
산행 중 모든 숙식이 제공되는 가이드 워크와
산장만 사전 예약하고 필요한 모든 짐을 지고 개별로 걷는 방법이 있다
하루 50명이 제한인 가이드 워킹은
롯지에서 최고급 식사를 제공받고 다인실이지만 깨끗한 시트에서 잠을 자고
건조실 샤워시설 등이 잘 갖추어져 있다.
초기 개척자 맥케넌의 수중 무덤..
첫날 그래이드하우스에서 잠을 자고
둘째 날 폼폴리나 숙소까지 16키로 이동이다.
클린턴 강을 따라 협곡으로 들어서는 길엔 팔뚝 만한 장어 연어가
빙하수가 녹아내려 시려진 물에서 게으른 헤엄을 치고
바닥의 돌들이 떠 있는 부유물이라 착각할 만큼 쨍하게도 맑고 투명하고
나무뿌리까지 통째로 뽑히며 거칠게 쓰러져 나뒹구는게 원시감을 더한다.
다양한 초록빛을 내는 군지 식물들은
산나무 썩은 나무 가릴 것 없이 거침없이 기어올라
아바타에서 나온 원시림의 숲속에 들어온 듯한데
형광빛 이끼 숲 사이에서 금방이라도 날개 달린 요정들이 튀어나올 것만 같다.
손가락으로 톡톡 건드려 보니
마치 마른 해조류를 물에 불린 듯 보드랍고 탄력 있는 신선한 촉감이 찌릿하다.
파충류나 네 발 달린 짐승류는 아예 찾다볼 수도 없고
오직 바람과 비와 꽃과 새들의 천국이며
약육강식 이전의 순후한 먼먼 시절로 돌아간 것 같다.
빙하의 침식 작용으로 만들어진 U자형 골짜기
돌아본 협곡은 흐트러짐없이 단호하고
이지역 최고의 포식자 독수리는 고요한 허공에 정지된채 비상하고 있다.
이대로 멎어버리고 싶은 순간을 살라는 말이 있었던가.
언제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가장 슬프다..
트래킹의 하일라이트는 셋째 날 퀸틴롯지까지 가는 길로
트래킹 중 가장 높은 고개 맥키논 패스를 지나는데
골짜기 깊숙히 들어가 맞딱뜨리는 졀벽엔 도무지 길이 없을것 같은데 루트를 개척해 놓았다.
고개 정상엔 1888년 처음 밀포트 트랙을 개척한 맥캐논과 미첼을 기념하는 탑이 세워져 있다.
남반구의 생생한 대자연 협곡속에
구름은 푹 솟아 올랐다 이내 뒤집어지고 쏟아져 내려오기를 반복한다.
지그재그 오름 길엔 단정한 야생화들이 시들어지고
힘들어 쉬기보다 한 걸음이 소중하고 벅차 하염없이 되돌아보게 된다.
구름 낀 산정 크고 작은 둠벙엔 하늘의 성수가 담겨져 있고
삶을 관조와 관찰로 대체하지 말자.
무기력할수록 가장 치열한 곳으로 자신을 내던져라.
딱 그만큼만 자란 순한 풀들은
바람에 잘록 휘어져 아예 드러누워 버렸고
안개비에 덮힌채 산 옆구리를 돌아 돌아 고도를 낮춰 내려간다.
날지 못하는,난다는게 뭔지도 모르는 새
세계 5대 폭포라는 서덜랜드 폭포.
거침없는 물벼락 세례를 받고나니
필시 종교 의식을 치른양 영혼이 샤워를 하고 나온 듯하다.
밤새 빗소리가 들리더니
온 산에 크고 작은 폭포쇼가 펼쳐지는게
눈코 입 온 산의 구멍이라는 구멍에서 다 연기 같은 물줄기 내뿜고 있다.
마지막 날은 아서강 맥케이 폭포를 지나며
종착지인 샌드플라이 포인트까지 완만한 길을 직성껏 실컷 걷는다.
산정 멀리 한 귀퉁이
아슬아슬하게 달라붙어있는 푸른 빙하는 범접할 수없는 다른 세상의 것이고
길가의 노란 꽃은 가늘은 몸을 바람에 맡기고 흔들 거린다.
인간에 대해 전혀 무지한 새들은 지나가든 말든 전혀 신경조차 쓰지 않고
호들갑을 떨며 카메라를 들이대고 손을 가져가도 서운할 정도로 무심무심하다.
아직도 계속 솟구쳐 오르고 있는 듯한 산맥 어딘가에서
금방이라도 다이너소어가 펄떡펄떡 뛰어 나올 것 같 같다.
여기서는 당당히 자연이 주인이고
그 한귀퉁이를 지나는 것조차 미안하고 영광스런 마음이 든다.
마지막 밀포드 사운드 크루즈 관광은
태즈만해로 나가는 협곡을 두 시간여 돌아오는데
넙적 바위 위 물개는 늘어지게 잠을 청하고
싱싱한 돌고래가 펄떡펄떡 까불며 날렵한 몸을 날린다.
피오르드 해안과 만년 빙하가 만들어 낸 푸른 풍경이 매순간 왈칵왈칵 달려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