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가 된 오대산 종주길

by 카오스 posted Feb 09, 2010 Views 2092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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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대산의 백두대간 동대산-두로봉을 거쳐 상왕봉-비로봉 약 18km의 오대산 종주길, 하나의 기억만으로도 나는 또다시 이 길을 걷게 될것이다.
    나무를 만났으니 이제 시인이 되었다 우리모두 시인이 되었다 텅빈 대나무 속처럼 시를 모르는 시인이 되었다
    한때 나도 하늘이었지요 그시절을 그리워하냐구요 아닙니다 누군가의 꿈을 지키고 있을 뿐입니다
    옹이가 어찌 생기는 지 아시나요 은은한 달빛아래 별들의 속삭임을 담아 바람에게 전하는 말들이 옹이안에 있음을 아시나요 더 많이. 깊게 사랑한 사람에겐 그 사랑이 아픔도 상처도 아님을 옹이를 들여다보면 알게됩니다
    바람이 우는 소리를 들어보셨나요 제가 바람통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다름의 낮설음과 같음의 익숙함 세월을 지켜온 나무의 눈으로 보면 모두가 하나입니다
    긴 기다림입니다 기다림이 나를 있게 합니다
    나무의 시 / 류시화 나무에 대한 시를 쓰려면 먼저 눈을 감고 나무가 되어야지 너의 전생애가 나무처럼 흔들려야지 해질녘 나무의 노래를 나무 위에 날아와 앉는 세상의 모든 새를 너 자신처럼 느껴야지 네가 외로울 때마다 이 세상 어딘가에 너의 나무가 서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지 그리하여 외로움이 너의 그림자만큼 길어질 때 해질녘 너의 그림자가 그 나무에 가 닿을 때 넌 비로소 나무에 대해 말해야지 그러나 언제나 삶에 대해 말해야지 그 어떤 것도 말고.
    오래된 벚나무 아래 나무의자 하나를 내어놓았다 시집(詩集)을 덮어두고 차를 끓이러 들어온 창문 너머 쓸쓸해 보이는 나무의자의 풍경 그래, 예전엔 너도 나무였구나 성장 멈춘 관절마다 쐐기 옥 다물어 잎눈 틔우던 수액의 향을 힘겹게 잊어냈을 마른 옹이들 맨발로 듣는 벚나무 숨소리 직선의 어깨위로 눈길 없이 바람은 먼 숲에 다다르고 김 서린 창문 너머 오래된 벚나무 아래 손길 익은 한 사람의 체온과 무게를 감내하는 기다림 그리워 할 일 하나로 저기 서 있다 아름다운 나무의자 한 그루.
    나무 의자 / 용 혜 원 나무 의자에 앉아 책을 읽다 생각에 빠진다 어느 숲 속의 나무였을까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몇 번이나 지냈을까 어느 새가 날아와 앉아 울고 갔을까 어떤 짐승이 보금자리를 틀고 싶어했을까 나무는 자라가면서 무엇들을 바라보았을까 나무는 여름날 그늘을 잘 만들어 주었을텐데 목수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무슨 생각을 하며 만들었을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의자에 피곤을 기대고 앉아 잠이 들어버렸다 꿈 길에서 큰 나무를 만났다
      나무의자 / 백창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