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시의 수림 - 가리왕산

by 연하 posted Nov 28, 2011 Views 978 Replies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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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 (휴양림- 어은골 - 마항치삼거리 -가리왕산1560- 중봉- 휴양림)  약10키로






강원도 평창과 정선의 경계에 있는 가리왕산(1560)은
위용 있는 몸집만큼이나 수많은 골을 가지고 있고
아직은 미개척 상태로
원시의 울창한 수림이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우리나라 영서지방의 전형적인 두리뭉실한 육산 가운데 하나로
먼 옛날 동해 부족국가의 갈왕이 쫓겨와 피신하였다 하여
갈왕산, 가리왕산으로 불리었다 한다.
옛 전설이 그럴싸하게 들리는 것이
산중에 들면 그 안에서 마을을 이루며 한참을 살 수도 있겠다 싶을 만큼
평평하고 안온하다.











그러나 산의 규모에 비해 등산로는 단순하여
북쪽의 장구목이골이나 남쪽의 자연휴양림에서 주로 접근하는데
정선군 회동리의 자연휴양림으로 들어가 어은골로 올라
정상 거쳐 중봉 지나 다시 휴양림으로 하산하는 일반적인 산행을 택했다.
매표소 직전 다리를 건너 맞은편 골짜기를 거슬러 오르는 중봉 코스는
주차장이 없는 대신 입장료와 주차비를 안 내고 갈 수 있다.













휴양림 안쪽 산막 끝트머리에서 어은골로 들어간다.  
초입에 버티고 있는 이무기 바위 때문인지
물고기가 숨어 산다는 뜻의 어은골은 6.25 발발 전까지만 해도
화전민들이 마을을 이루며 살았다고 한다.
계곡 입구에 들어서니
나무를 엮어 만든 운치 있는 다리가 흐르는 물에 발목을 담그고 있다.
천 일 동안 묵언하며 기도하면 득도할 수 있다는 천일굴 안내판이 들어온다.
불어난 청정계곡을 아슬아슬하게 건너며
모든 생명력의 원천이라 할 수 있는 습하고 축축한 숲의 기운,
그 원형질의 정적에 전율한다.
내면에서 주체할 수 없이 터져 나오는 자체발광
환한 초록의 형광물질이 이끼의 촉수에서 뿜어 나온다.
계곡과 멀어지는가 싶다가
다시 물을 만나고 건너편으로 건너뛰기를 몇 번이고 반복한다.















어느새 계곡은 희지부지 사라지고
무너진 바위 너덜길 오르막 끝에  
드디어 임도를 만나는데
임도 바로 맞은편 직진으로 산을 타면 주능선으로 접어들게 된다.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오르막 산행이 시작되는데 가파른 경사길이다.
정상으로 가는 1000미터 고지의 상천암을 지나
임도에서 한 시간 정도 오르면 비교적 경사가 완만해진다.
깊은 산중 고요한 원시림의 평원지대가 경이롭다.
근처에 절터였던 자리도 눈에 띄고 돌로 쌓은 무덤가도 지나며
마침내 주능선 삼거리인 마항치 삼거리와 만난다.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1킬로 못되게 오르면 정상이다.






















정상으로 가는 길은
낮은 잡목들이
홀로 도드라진 주목과 어우러진 초원지대로
그 대비되는 풍경이 어긋나는 듯 조화롭다.
들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능선길을 홀린 양 걸어간다.
학교 운동장처럼 넓고 한적한 정상 부위는
모진 비바람에 닳아진 흔적이 역력하다.
사방팔방에서 들어오는
바람이면 바람,
사람이면 사람을 홀로 다 맞고 있다.
여기서 원시적으로 비박하며 해맞이 달맞이를 하면 어떨까.
먼산인지 눈앞인지 흰구름이 터지듯 부풀어 오르고 있다.
주체할수 없는 빅뱅이 일어났는가
공기의 내통함인가
잿빛 구름이다가 먹장 구름이다가
천둥번개가 되고 미쳐나뒹구는 비바람이 되어
기어이는 비를 만들고 눈을 낳으려하고 있다.



























정상에서 중봉으로 가는 길은 평화롭고 고요하다.
온갖 야생화는 지천으로 피어 있고
신갈나무 떡갈나무는 멋대로 휘어지고
거기에 초록의 이끼가 제 몸인 듯 떳떳이 기생하고 있다.
돌탑이 세 개 있는 중봉 조금 지나 오른쪽으로 하산하면 하산길이다.
거친 수림이 도열한 완만한 산길을 한참 걷다가
갑자기 경사면으로 떨어지며 내리막이다.
중봉에서 두 시간여 걸려 콘크리트 포장의 임도를 만나고
이내 마을로 접어들면 하산점이다.
원시림에 가까운 활엽수림과 생생한 이끼가 인상적인 가리왕산은
내려와서 돌아봐도 그 육중함이 일대의 다른 산군을 제압하는 듯한,
얼핏봐도 제왕의 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