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청봉 등반기(下)

by 김현거사 posted Sep 23, 2003 Views 1539 Replies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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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채봉(華彩峰) 만경대(萬景臺)

대청봉에서 속초로 하산하는 길은,화채봉 망경대 집선봉 권금성 소공원 코스와 소청봉 희운각 양폭 비선대 소공원 코스 둘이다.

'아무도 밟지않은 능선의 하얀 눈 위에 우아한 보랏빛 얼러지꽃이 군락을 이루고 무더기로 피는 곳'이 초봄의 화채봉이다.알프스 고원지대 에델바이스 보다 시적(詩的)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이 설악의 보라빛 얼러지꽃 이다.

화채봉 만경대는 대청 소청 신선대 범봉 천화대 장군봉 천불동 울산바위 달마봉 등 설악의 암릉과 계곡을 한 눈에 다 보는 천하제일 조망처다.
그러나 우리는 천불동 코스를 택했다.기암괴석 사이로 떨어지는 폭포와 계류의 단풍을 더 보고싶었기 때문이다.

공릉능선(恐龍稜線)

대청에서 소청은 지척인데,희운각산장 내려가는 길이 급경사다.험하고 가파른 계단 조심해 내려오니 공릉능선이 보인다.
마등령에서 무너미고개까지 공룡이 용솟음치듯 힘차게 울퉁불퉁 솟은 5K 암봉군(群)이 공룡능선인데,이는 내외설악을 가르는 설악의 척추이다.능선 동쪽 외설악은 기암절벽 천불동이 있어 남성적이고,서쪽 내설악은 백담 가야 백운계곡이 여성적이다.

천불동(千佛洞)계곡

무너미(水踰)고개 지나 희운각산장에 도착하여,평상에서 시원한 샘물 한잔으로 땀을 식히니,대청봉 오른 것도 은근히 자랑인데,남은 것이 천불동 단풍 구경이라,이제부턴 없던 흥도 절로 난다.

천불동 내려가니.가파른 협곡 오른쪽은 화채능선이요,왼쪽은 톱날 공룡능선이다.바위는 수직절리(垂直節理) 천태만상 빚었으니,뽀족한 암봉마다 아미타불인가하면 문수보살이고,관음보살인가하면 미륵보살이다.십리 불계(佛界)는 천 불상(佛像) 펼치고,골골이 은하(銀河)같은 폭포와 담(潭)이다.

선경(仙境)은 내려가면서 보아야한다.
선인(仙人) 하강(下降)의 운치가 있기 때문이다.

그 누가 나무까지 이리 멋진 수형 잡아주었던고.
바위 위 낙락장송은 안개 휘감아 멋을 부리고,물은 폭포에서 쏟아져 암반의 소(沼)에서 휘돌고 구비치고 내달리며 골짜기를 소리로 덮는데,하늘을 찌르고 구름을 뚫은 것은 암봉이요,  하늘과 땅을 취토록 붉게 만든 것은 만산홍엽이다.

험한 바위틈을 쇠난간 움켜잡고 양폭산장으로 내려가니,절벽 중간중간 푸른 이끼와 단풍 조화가 그림같은 만경대 능선이 하늘에서 수직으로 계곡에 꽃혔고,천당폭포 지나서 양폭산장 곁에 가니 양폭 음폭 쌍폭포가 있는데,그것도 모자라 염주골 에 염주폭포 하나 더 있어,하얀 물보라는 부서져라 바위를 때린다.
천불동은 기암절벽과 폭포와 소(沼)와 담(潭) 원도한도 없이 보여준다.폭포 없는 산들 여기 와서 꼬리도 못펴겠다.여기가 설악의 백미(白眉)다.

양폭산장의 물 맑고 깨끗한 바위 위에서 늦점심 먹고,하얀 구절초 꽃향기 맡으며 탁족(濯足)하니,추수여면경(秋水如面鏡)이라 얼굴이 다 비친다.
소소히 날리는 단풍을 어깨에 맞으며 골 안 굽이쳐 흐르는 물길 따라 걷노라니,천불동(千佛洞) 물소리 바로 무량(無量)설법이요 장광설(長廣舌)이다.

문수담(文殊潭) 이호담(二壺潭)

용소골 철다리께 침봉(針峰) 에워싼 곳에 다섯 개 폭포 연이어 흘러내리니 오련(五連)폭포다.
칠선(七仙)폭포 있는 칠선골 계류 밑,병풍교 병풍바위 지나 절벽이 만길 벽처럼 우뚝 선 것은 귀면암(鬼面岩)이다.
토막골 설악골 잦은바위골 물줄기는 연이어 맑은 담(潭)과 소(沼)를 만들어놓았는데,그 길에서 결정타로 사람 마음을 뒤흔들어놓는 것은 문수담(文殊潭) 이호담(二壺潭)의 유리처럼 파란 물빛이다.

비선대(飛仙臺)

그리고 비선대가 나온다.
마고(麻姑)선녀가 너럭바위에서 바둑과 거문고를 즐기며 누워서 경치를 감상한 곳이 와선대(臥仙臺)요,하늘로 올라간 곳이 비선대다.수석(水石)이 이리 맑으니 전설이 어이 없으랴.

시인은 '반석 위로 흘러가는 물은 아름다운 옥구슬 구르는 것 같고,너럭바위에 폭포수 떨어지는 모습은 선녀의 옷자락이 나부끼는 것 같다.'고 읊은 적 있다.
바람 속에 '줄 없는 거문고'(無弦琴),'구멍없는 피리'(無空笛) 소리 들리는듯한데,박새 노랑할미새는 이 여기서 득음(得音)하였나.맑은 울음소리 속세를 떠나있다.

비선대 위에 나란히 선 것이 선녀봉 장군봉이다.
장군봉 아득한 층층계단 위가 원효스님이 도 닦던 금강굴이니,'금강삼매경'은 그 어떤 경계더냐.
지관(止觀)의 맑은 심정,물속에 비쳐있다.

여기가 신선이고 극락이 아니겠는가.
비선대에서 산을 보고 합장하는 고운 할머니 한 분을 보았다.
나도 내려온 산을 되돌아보았다.
청수한 준봉이 안개 휘감고 있다.
월야선봉(月夜仙峰).달밤엔 저 봉이 선녀로 보일테지.
하얀 안개가 향 피우듯 산 위로 올라가고 있다.

                                        2002년 10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