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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의 뒷간에 살면서

(땅끝마을에 살던 시절에 적어두었던 글입니다.)




약 7 킬로미터를 자전거로 달려 산 입구로 접어들었다.

턱까지 올라 찬 숨을 내리려고 천천히 걸었다.

가늘고 긴 녹색 몸통 위로 여섯 입 붓꽃이 달렸다.

아름다운 육판화가 꽃줄기 끝에서 푸른빛이 도는 짙은 자주색을 뽐내고 있다.

길 건너편에는 유난히 파란 도란형 제비쑥이 곧게 자라나 백여 미터 넘게 도열해 있다.

새로 생긴 '호수 가든'을 지나 오르는 길은 약간 가파르다.

지쳐버린 6월의 봄바람은 흐르는 땀을 식히지 못한다.

산 중턱에는 텐트를 치기에 딱 알맞은 곳이 있다.

오른쪽으로 이동 화장실이 세 칸 있다.

그 옆에 네모진 분리용 쓰레기통이 나란히 있다.

편평한 땅 위로 높이 30미터 가량의 쭉 뻗은 나무들이 항상 기다리고 있는 곳이다.

"취사장"이라고 적힌 나무판 옆으로 간신히 세수 정도 할 수 있는 물이 흐른다.

이 산에서 유일하게 텐트를 치고 음식을 해 먹을 수 있도록 허락된 곳이다.

오늘따라 사람들이 버린 봉투와 술병들이 제 자리를 찾아가지 못했다.

썩은 냄새가 가뜩이나 민감한 내 코를 자극한다.

주섬주섬 거두어 한 곳에 모았다.

베낭을 정리하는데 커다란 쓰레기 청소차가 올라온다.

위에 있는 절을 다녀오더니 이곳에 멈춘다.

두 남자가 모아놓은 쓰레기를 치우면서 이 쪽을 자꾸 곁눈질한다.

나머지 한 남자가 뒷짐지고 느린 걸음으로 다가선다.


- 어디서 왔죠?

- 근처에 삽니다.


남자는 연신 버려진 쓰레기와 나를 번갈아 본다.

범인을 알고 있다는 투였다.



- 뭐 하는 사람이오?... 머리는 왜 길렀죠?

- ......



그는 눈동자를 위아래로 굴리며 앞에 있는 '동물'을 관찰한다.

쓰레기는 잊은 듯 호기심에 가득 찬 표정이다.

세 남자는 별 소득 없이 갔다.

나뭇가지들이 쳐놓은 하늘의 그물 사이로 빛이 하강한다.

두 명은 족히 드러누울 수 있는 넓은 바위에서 잠시 오수(午睡)를 즐기고 있었다.

깊은 수렁에 점점 빠지듯 아늑한 세계 입구에서 빗장을 열려는 순간이었다.

느닷없는 소음에 소스라치게 놀라 일어났다.

30명 가량의 아줌마 부대가 출현한 것이다.

그들은 먼저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술잔이 두어 순배 돌았다.

남편 흉보기로 시작하더니 음담패설이 오고갔다.

한 사람이 일어나 음악을 틀었다.

잠시 후 일행은 모두 일어나 거의 비슷한 동작으로 몸을 흔들며 괴성을 질렀다.

새들은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고 날다람쥐는 끅끅거리며 도망쳤다.

그들을 바라보다가 개울에 담가둔 물병을 찾으러 갔다.

그러나 물병은 없었다.

몸을 흔들다 지친 한 여자가 내가 사용하던 바로 그 바위 위에 몸을 펼치고 있었다.

술에 취한 여자는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계속 흥얼거리고 있었다.

그녀의 한쪽 손에 내 물병이 들려 있었다.

큰 대자로 드러누운 그녀는 음악이 꺼지자 이내 잠이 들었다.

그 순간 새 한 마리가 날아와 공교롭게도 그녀의 이마 중앙을 향해 하얀 배설물을 뿌렸다.

그러나 이미 만취해서 잠에 골아 떨어진 여자는 코를 골고 있었다.

새는 여전히 나무 위에 있었다.

동료가 다가와 여자를 깨웠다.

힘겹게 일어나는 여자의 머리 위로 또 다시 배설물이 떨어졌다.

여자들은 배를 움켜잡고 낄낄거렸다.

움켜진 그녀의 손에는 아직도 물병이 들려 있었다.

여자는 짜증스럽게 물병을 던져버렸다.

취사장 주변은 다시 쓰레기로 더렵혀졌다.

그들이 떠난 뒤 1분도 지나지 않아 새들과 날다람쥐들이 모여들었다.




*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4-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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