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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산행기>주변산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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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둘쨋날
새벽에 비 오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았는데 꿈이었는지 현실이었는지를 분간하지 못하겠다. 눈을 뜨자 얼른 창문으로 가서 커튼을 열어 보았다. 다행히도 파란 하늘이 보인다. 이번 산행은 고산증세 보다도 비가 오지 않을까 하는 것이 더 걱정이다. 텐트에서 이틀 밤을 자야 하는 것도 있고, 비가 오면 오브넷 식구들에게 보여 줄 사진을 제대로 찍을 수 없지 않은가. 거기에다가 많이 내리기라도 하면 정상 등정도 포기해야 할지 모른다는데.
아침 식사는 정말 기가 찰 정도로 간단 명료하다. 명색이 그래도 별 네 개(우리나라로 얘기하면 무궁화 네 개)짜리 호텔의 부페식 아침식사가 빵 종류 4가지에 삶은 달걀과 이상야릇한 야채절임, 그리고 우유와 차가 전부이다. 고산에서는 입맛이 없어서 잘 먹을 수 없기 때문에 이 식사가 굉장히 중요한데 이래서야 어디 체력을 비축할 수가 있겠는가! 입에 맞지는 않지만 힘든 산행을 위해서는 체력을 비축해야 하니까 꾸역꾸역 먹어둔다.


     <밤에 별을 보지 못해서 날씨를 걱정했었는데, 다행스럽게도 아침 하늘은 맑게 개어 있었다.
     호텔을 배경으로 폼을 잡아 보았다. [07:38]>

09:30. 전원 호텔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는 산행입구로 이동한다. 현재 기온은 20도, 햇살은 따가울 정도로 내리쬔다. 다들 날씨가 좋다고 야단들이다. 콘크리트 포장도로를 따라 마을을 빠져나간 끝에 조그만 팻말과 함께 등산로 입구가 있었다.


     <등산로 입구로 이동하는 중, 호텔 뒤로 저 멀리 얼꾸냥봉과 다꾸냥봉이 보이기 시작했다.>


     <등산로 시작점은 의외로 좁다란 오솔길이었다.>

동네 약수터 올라가는 길처럼 별다른 특색이 없는 것이 기대와는 너무나 달라 보였는데 조금 가면서 폭이 차차 넓어지면서 오르막도 심해지고 고도를 올린다. 채 5분도 못 가서 숨을 고르기 위해 멈추어 서야 했다. 가만히 서 있을 때는 느끼지 못 했는데 확실히 고소(高所) 현상이 있는 모양이다. 일행 중의 젊은 친구 하나는 벌써 어젯밤부터 머리가 아프더라고 한다.


     <인원 점검>


     <허름한 판잣집 같은 "매표소"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이곳에서 말을 타고 계곡의 호수를 구경하러 간다.
      "화해자"라는 호수까지 150위안(22,500원 정도)을 받는 것 같다.>

우리는 무거운 짐(카고백, 공용장비)만 말에 실려 보내고 가뿐하게 걸어가기 시작한다. 아직은 모두들 들뜬 기분에 즐거운 표정들이다. "고양이 코"라는 뜻의 <묘비릉>이 우리가 올라가야 할 능선이다. 갈짓자로 비스듬히 오르막을 따라 천천히 걸어가는 걸 말을 탄 관광객들이 신기하게 쳐다본다. 그들은 우리를 말도 타지 않고 걸어가는 "강철 같은 사람"들이라고 부러워하고 있을까, 아니면 돈이 없어서 말을 탈 형편이 안되는 사람들이라고 불쌍하게 여기고 있을까?


     <본격적인 산행의 시작. 길은 넓은데 걷는 폼이 어째 이상하게 찍혔다.>


     <아직은 쌩쌩합니다.>

거의 한 시간쯤 지나니 능선 위에 올라서게 된다. 탁 트인 시야에 부드러운 초원이 펼쳐지고 온갖 야생화들이 피어 있는 한쪽에 라마교의 상징인 하얀 탑이 서 있다. 탑돌이를 하며 소원을 빌면 효험이 있다고 한다. 탑에서 남쪽으로 푸르스름하게 보이는 산줄기는 바로 티베트로 가는 길이 뻗어 있다고 한다. 빨리 걷지도 않았는데 숨을 헐떡이게 된다. 아마도 해발 고도는 3,400m 쯤 되지 않을까 싶다.


     <현지인(장족)들이 능선 위에 세운 라마교 탑.
     저 멀리 등 뒤로 보이는 산줄기에는 티벳으로 가는 길이 있다.>


     <걸어가는 사람들이 뒤늦게라도 말을 타지 않을까 기다리는 마부.>


     <평평한 풀밭 위로 거의 직선으로 뻗어있는 길을 따라 말도 걷고 사람도 걷는다.>

바람은 거의 불지 않지만 그다지 더운 날은 아닌데도, 목덜미와 손등은 따갑다. 자외선이 그만큼 강렬하다는 의미이리라.
산책하는 속도로 30여분을 가니까 다시 두 번째 탑이 나타나고 왼쪽으로 쓰구냥의 네 봉우리가 한 눈에 들어온다. 바로 이 모습을 필름에 담으려고 수많은 사진애호가들이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야오메이를 덮고 있는 구름이 벗겨지기를 한동안 기다렸다가 우리들도 열심히 셔터를 눌러 본다.


     <드디어 쓰구냥산의 네 봉우리가 한꺼번에 모습을 나타냈다.
     왼쪽에 구름을 쓰고 있는 것이 主峰인 야오메이(6,250m)이고, 그 오른쪽으로 구름 그림자가 드리운 봉우리들이 산꾸냥(5,664m), 얼꾸냥(5,454m), 다꾸냥(등정 대상. 5,355m)이다. 사진 찍는 지점의 높이는 해발 3,500m [11:02]>


     <主峰인 야오메이를 좀더 끌어 당긴 모습>

산행은 다시 이어진다. 경사라고는 거의 느끼지 않을 정도로 평탄한 구릉지대에 온통 고산지 야생화들이 뒤덮고 있는 속을, 때로는 그 꽃을 밟으면서 걷는다. 이런 길은 아무리 걸어도 지루해지지 않을 것 같다. 에델바이스와 또다른 하얀 꽃이 바탕을 이룬 가운데 온갖 빨갛고, 노랗고, 파란 꽃들이 점점이 박혀 있다. 이 지역의 꽃들은 한국에서 보던 야생화들에 비해서 꽃송이가 상당히 작다. 아마도 고산지대의 특징인가? 작은 꽃송이를 들여다보고 카메라를 들이대느라 걸음이 자꾸 처진다.


     <지리산 서북능선의 바래봉-팔랑치 구간을 열 배쯤 확대시킨 것 같은 초원 구릉지대>


     <온갖 야생화들의 유혹에 도저히 그냥 갈 수 없어 앉고 말았다.>


     <풀을 뜯고 있는 양떼.>

다시 세 번째의 백탑을 지나고 길은 능선의 비탈사면으로 내려가면서 발 디딤이 불편해진다. 대개의 관광객들은 이곳까지 와서는 되돌아가거나 능선 아래 계곡 지대로 들어가 호수를 찾아가는 코스를 따른다. 우리가 따르고 있는 능선의 오른쪽으로는 "해자구"라는 계곡이 이어지는데 "해자(海子)"란 호수를 뜻하는 말이라고 한다. "대해자" "쌍해자" "화해자" 같은 호수들이 있다.
슬슬 배가 고프다고 느껴질 즈음, 저 멀리 파라솔이 보인다. 약간의 평지와 작은 그늘이 있는 곳에 노점상 두 명이 파라솔을 펼치고 컵라면이나 과자, 음료수 등을 팔고 있다. 우리도 이곳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손바닥만한 그늘에 말똥을 피해서 엉덩이를 들이밀고 앉았다. 점심은 행동식이다. 하나씩 배급받은 비닐봉지 안에는 캔으로 된 잡곡죽과 비스켓, 그리고 이상한 야채절임이 들어있다. 그렇찮아도 머리가 묵직하니 흔들어 보면 돌덩이라도 들어있는 듯 한데 입맛이 날 리가 없다. 비상식으로 가지고 온 스위트콘 통조림을 꺼내 먹었다. 늘 먹어보던 것이라 그런지 좀 낫다.


     <등산로 중간에서 컵라면과 과자, 음료수 등을 팔고 있는 노점상. 해발 3,630m 지점.
      우리도 이곳에서 행동식으로 점심을 먹었다.  [13:08]>

점심을 먹고 난 뒤, 다시 이어지는 등산로는 여태까지와는 다르게 작은 관목들이 보이면서 잠깐씩이나마 그늘도 있다. 주로 보이는 관목은 키가 허리춤에서부터 두 길 정도까지 자라있는데 가지와 잎에 억센 가시가 잔뜩 달려있고 그 사이를 헤치고 난 좁은 길은 또 말발굽에 깊게 패인 자국에 말똥까지 범벅이 되어 있어서 발을 디디기가 영 난감하다.


     <이제 나타나기 시작한 키 작은 나무들 사이로 행군은 이어지고 [14:08]>

그렇게 뒤뚱거리며 한 시간쯤 걸어나간 뒤, 다시 탁 트인 초원이 나타나면서 저기 언덕 위로 오늘의 숙영지가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원래는 "노우원자"라는 곳에 화장실까지 갖춘 제대로 된 캠프사이트가 있지만, 여러 가지를 감안한 가이드가 그보다 한참 위에 떨어진 공터를 캠프지로 잡았다. 제법 넓직한 풀밭이긴 했지만 온통 가축의 똥이 널려 있고 약간씩 경사가 있어서 텐트 자리를 다시 옮겨야 했다.
텐트는 모두 2인용으로 이번에 한국에서 새로 가지고 간 새 텐트이다. 여자가 두 명, 노인네(60세)도 두 분, 1중대도 10명으로 짝이 맞으니 어제 호텔에서 같이 잔 사람들끼리 자동적으로 같은 텐트에 들어가게 됐다. 거기에 취사용과 식당용으로 대형 텐트 2개를 쳤다.
텐트 안에 매트리스와 침낭을 깔고 짐을 정리하고 나니까 식사준비가 다 되었다. 이런 곳에서 먹는 식사는 어떨까 호기심이 생긴다. 메뉴는 "닭도리탕"에 "자반고등어구이"다. 닭은 아침에 살아있는 놈을 말에 매달고 온 것이고, 자반고등어는 한국에서부터 가지고 온 것이란다. 기발한 메뉴이건만 생각처럼 먹을 수가 없다. 역시 고소증세 때문인 듯- 밥 한 공기를 겨우 비운다. 이럴 땐 술 한 잔 하는 게 딱이겠는데, 모두들 고소증이 겁나서 억지로 참는 분위기이다.
밤하늘에는 구름이 짙은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아 별바라기는 포기하고 그냥 침낭 속으로 기어든다.  


     <드디어 캠프-1, 노우원자에 도착. 해발고도 3,900m 지점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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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 해 봉 2004.08.17 13:11
    3000m가넘는 고원지대로 올라가는 모습과풍경들이 참 이채롭습니다,
    넉넉한산세 야생화 고원의양떼 낙오자를 싣고갈말등 우리나라산과는 퍽 대조가 되는군요,
    매표소앞 사진으로봐서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더있어 보이는데 다른팀도 있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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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허바다 2004.08.17 13:50
    꽃밭에 앉으신 모습 정말 평화롭습니다...
    "구름이 흘러가는 그곳 내 맘도 흐르고 있어라~~" ^^*
    탁 트인 고산지대를 천천히 트레킹하시는 모습들
    질투와 욕망을 자극하고 있습니다... 으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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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훈 2004.08.17 14:00
    매표소 앞 사람들은 거의 가 중국인 관광객들이고, 일부 일본인들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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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도옹 2004.08.18 00:49
    아~ 아름다운 들꽃천지.
    사진으론 저렇게 아름답게 보이는데 실제론
    '말똥천지' 라구요?? =3=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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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생마 2004.08.18 01:17
    고산 구릉지대..바래봉 팔랑치 구간과 비슷하다구요..
    정말 저런 풍경 좋아하는데..아름답습니다..
    지천으로 깔린 야생화들과 그속에 풀뜯는 양떼들..
    가을의 안나푸르나를 보다가 푸른 고산의 풍경을 보니 새롭고 아름답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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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섬호정 2004.08.18 15:34
    풀밭에 앉아서 (ㅎㅎ바다님 글 선수에 밀려서리~)
    무슨 기원 담으시나요
    무사한 등정에 고소병 금지 발원...
    만면에 환한 웃음이 성공적인 쓰구냥산행 되시겠습니다
    잘~ 잡수셔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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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자요산 2004.08.18 19:51
    심각하게 읽다가 생닭을 가져갔다는 대목에서 ㅎㅎㅎ
    저렇게 높은곳에도 야생화가 있네요
    저기에 서면.. 저기기 앉으면 어떤 기분이 들까...가만히 상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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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없는여행 2004.08.18 21:56
    사진을 보노라면 지금이라도 달려가고픈...
    저 엄마품같은 구릉지에 서있는 느낌이 제 마음속에서 다시금 그대로 되새김질 됩니다. 산세는 운남성의 최북단 호도협트래킹 했을때와 비
    슷한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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