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지리산(옮김)

by 부용 posted Dec 24, 2004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그리운 지리산

                               김 연 주

이른 아침 창문을 열면
천왕봉 언저리에 하얗게 내려앉은 상고대가
아스라니 보이는 곳에서 살고 싶다

짙은 어둠을 뚫고
달려온 계곡
흐르는 물소리
뽀얗게 내뿜는 입김사이로
어둠이 걷히면
골골이 이어지는 깊은 골짜기의 아침은
삼위일체가 된다.

운무와 능선과 한기(寒氣)가
병풍처럼 둘러쳐진 산길들을 지나
너덜 길 끝에서 만나는 대피소는
어느 고관대작의 별장이
이보다 더 아름다울까

이른 저녁 뒤뜰 굴뚝에선 하얀 연기가
가느다랗게 피어오르는 그런 집에서
장작 타는 부뚜막에 퍼질러 앉아
매운 연기 마시며
시뻘건 눈물을 쏟아내고 싶다.
질퍽거리며 살아 온
시간의 통한(痛恨)들을 위해서...

내려서면 더 그리운 지리산
돌아서면 더 그리운 지리산
골짜기마다 엄마 품 같은
짝째기 엄마 젖무덤 같은  
지리산, 저 언저리에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