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하늘채 여름 일기 2006.6.21--긴 기다림의 끝

by moveon posted Jun 21,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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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할일도 없나부다.
꽃이야 피면 피고 안피면 안피는 게지. . 뭘 그리 기다리나?????
모두들 그리 생각 할테지. .



그런데 그게 그렇게 안된다.
특히 이곳에서 생활을 시작하면서 뭐든 지 하는 것마다 실패하거나
별로 신통치 않다고 주눅들어 있는 나로서는 작은 일 하나 하나에
마치 대단한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추진하고 그 결과를 기다리는 듯한
마음이 되어 갔다.
첫해 여름에 연을 심었지만 결국 실패해서 도중에 죽어 버렸다.
꽃이라것을 피워 보기도 전에. . .

담쟁이 덩굴이 있는 집에 간혹 흘러나오는 피아노 소리.. .
소설의 로맨티즘의 극적인 요소를 암시하는 아름다운 광경의 하나로
등장하는 담 가득히 번진 그 담쟁이를  갖고 싶어 했던 작은 꿈을 실현 하려고
열심히 뿌리도 얻고 줄기도 얻어 허름한 집 둘레에 이식했지만
소식도 없이 결국은 사라졌었다.
무엇인가 발견하는 즉시 얻어 들고 집에와서 땅을 파면 곧 자갈밭이
드러나서 아무 쓸모 없는 불모지 같은 땅을 파는 심정에선  호미끝에서
"터걱"하고 받치는 그 소리와 함께 아픔으로 찢기우는 비명소리가
났다. 지금도 2년전 심은 포도 나무에선 겨우 몇줄기 덩굴손이 타고
오르다 도무지 더 이상의 성장을 포기하는 기색이 연연하다.
같은 시기가 아니라 나보다 늦게 심은 다른 집에선 벌써 천정을 뒤덮을
너른 잎들이 울렁울렁 그리고 열매도 생기기 시작하더니만 . . . .

연못을 만들면서도 흙이 모자라서 겨우겨우 뿌리를 덮을 정도의 논흙을
퍼다가 만들었다. 힘도 들고 거리가 거리 인지라 흙을 운반하는 일이
너무 힘들었을 뿐 아니라 사람들의 논에서 어마한 양의 흙을 퍼오다간
표시가 나서 농사지을 땅이 파헤쳐 지는 것을 용납할 이웃이란 한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다. 시골 사람들의 단순함에는 그런 이기심도 다분해서
내게 이것 저것을 신세 지다가도 정작 도와주어야 할 상황에선 늘 냉정
하다.
흙이 얼마나 소중하던지. . .

하여튼 그러그러한 우려와 노력한 것에 대한 여지 없는 댓가 없음으로
해서 내게는 은근히 패배 의식까지도 생겨났다.
한줌 한줌 흙을 퍼다 채우고,
패인 곳엔 메꾸고 ,
손과 팔 다리가 제 모습이 아니게 된 요즈음. . .
혹시나 저러다 마는 것일까?
이런 패배 의식은 늘 오마조마한 가슴졸임을 기다림 속에 덧붙여서 행복
하다기 보다 근심으로 인해 애닯곤 했다.

또 그러그러한 노력끝에 담쟁이 덩굴에서 이제서야 덩굴손이 나오고,
연못에선 찬란한 꽃이 피어난 것이다.
9시 즈음 시골장에 찬거리를 사러 가면서 한번 둘러본 수련은 그 꽃봉오리
가 터질듯해서 안쓰러웠다.
음~~~~이 삼일 내 즈음엔 피겠다.

무거운 몇가지 물건을 마을 입구에 두고 수레를 가질러 들어 오는 뜨락에서
연핑크의 빛이 새어 보인다.
낯선 무엇인가가 있네????
와!!!!세상에 꽃이 피었네!
허망하기 까지한 기다림의 끝. . .그  끝. . .
들어오는 길에 뱀 한마리를 본 것에 기분이 몹시 상했었건만 그런거 다 아무
문제 없어. .  연꽃이 피었는걸?????
마음에 정토세계를 피어올린 듯해서 눈물이 나오려고도 한다.

누군가가 일부러 훼손하지만 않는다면 나도 마음을 놓아 버릴 수 있을 텐데. . .
아무리 아스팔트 거리에서 멀리 숨었어도 어디서나 거친손들이 있어서
내가 가진 평화에도 늘 바스락 거림이 있다.
진절머리를 치게 하는 인간의 그 무엇. . .

차나무가 뾰족한 입술을 열고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어느 순간이 되기 까지에는 손길이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가지고 있는 것을 놓아 버릴 수 없는 나의 거대한 삶의 굴레다.
부자연 스럽다.
훌훌 털 수가 없는 것이..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