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장터목이야기--세석평전에 꽃 피일 즈음. . .

by moveon posted Jun 02, 2003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꽃피는 세석--ofof.net 지리산 회화




나의 위장에 대한 전설은 그 유래가 깊다.
기억하는 최초의 사고는 국민학교때 의식을  잃어 병원에 실려가고,
[단지 구멍가게에서 사먹은 빵 때문에 체한 것이 원인이 되어]
체하면 가볍게 해결 되지 않아서 의료 분업이 되기 전에는 반드시
무조건 병원에서 주사를 맞고서야 해결이 되었다.
의식을 잃는 일이 잦은 탓에. . .
어른이 되어서도 간간이 사람들을 혼비백산하게 하는 급성 위장병이
만성이 되어가면서는 오히려 건강 전반에 많은 영향을 주는 상태로
되어 갔다.
그래서 홀로 여행하면 숙소에서 불면과 함께 혹시나 발생할 일들로
늘 불안하다.
홀로 죽을 듯한 고통을 겪은 적이 한두번이 아니어서. .
아주 친한 사이가 아닌 사람과 식사를 해도 바로 탈이나고,
비싼 일식 집에서 곱게 대접 받고 나오다가 얼굴이 일그러지고,
산행할때엔 걸으면서 멀미를 하는 특이한 위장을 가졌다고 보면
이해가 빠르다.


한번은 중산리에서 장터목으로 오르던 중 이었다.
초여름 비가 추적하게 내리고 있었지만 점심을 해결해야 했으므로 잘
먹지 않는 비상식량인 라면으로 얼른 한끼를 때워야 하는 지경이었다.
비가 내리고 있는 상태인 길 한가운데에서 허기를 때워야 할때에,
간단한 행동식으로 대체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으랴만 불행히도 나의
식습관은 반드시 국물이 있어야만 햇으므로 부득히 라면을 이용했다.
유암 폭포 즈음에서 간단히 마쳤다고 생각한 식사는 바로 효과가 나타
났다. 쭈그리고 앉아 먹은 라면은 제대로 어떤 구실도 못한채 나의
전설적인 위통을 가져 온 것이다.
답답하고,
머리가 아프고,
거짓말 같은 증상은 걸음 하나하나때마다 고통이었다.
그러다,
급기야는 걷는 순간순간마다 토하기 시작했다.
어둑해진 산길에서 길 확인에도 신경이 쓰이는 상황에 구토는 정말이지
눈물과 애처로운 핏기 없는 혈색과 함께 최악의 상황을 만들어 주었다.

아까 폭포 즈음에서 우연히 같은 시간대에 식사를 했던 두 남자가 이상한
나의 상태를 직감하고 차라리 이곳에서 쉬고 있으라고 충고 하고, 대피소
에 가서 구원을 요청하겠다고 했지만.. . . . .
믿지는 않았다.
누가  위장 부실한 등산객을 위해 배낭을 옮겨 주기 위해 달려와 주겠느냐
말이다. ㅎㅎㅎㅎㅎ


죽을 둥 살둥. . .
장터목아래 식수가 있는 곳 까지 어떤 상태로 기어 올라 갔는지를 기억도
안난다.
다만 그곳에서 산장에서 일하던[아르바이트] 남자 한사람이 날 데릴러 온
듯 보였다. 후레쉬를 들고 내내 비추이면서 상황을 묻는 것 같았음으로. . .

비척거리는 걸음으로 대피소에 도착했을때에는 입소를 기다리는 기다란 행렬
이 또 한번 아픈 몸을 슬프게 했다.
나는 줄 서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이상한 핸디캡이 있다.ㅎㅎㅎㅎㅎㅎ
잠자리 걱정을 하기 보다는 차라리 멀리 떨어져서 쉬는 것이 내게는 절실
했다.
한참을 지나고,
산장 주인 대신 일하던 아까 그 남자의 안내로 이끌려 대피소 직원이 있는
방으로 들어 갔을 때에. .
밥 대신 허멀건 하게 끓여진 죽 한그릇이 내 손에 들려 졌다.
죽이라기 보다 물 밥인 상태 였지만. . . .
그리고,
복잡한 대피소 막사[?]에서가 아닌 직원 숙소 골방에 내 잠자리가 제공 되었
는데 뒷날 산행은 엄두를 못낼 정도로 내 상태는 심각했다.

불면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깊은 잠에 빠져 하룻밤이 지났다.

다음날은 오락가락하는 비 때문에 더욱더 대피소의 아침이 번거로웠다.
산장지기도 없고,[관리공단 체제로 들어가기 바로 전 상태였으므로 산에서
아르바이트겸 올라온 산 사랑 사나이들이 꽤 되었던 것으로 보였다.]
몇몇의 사나이들의 손에서 이일 저일이 너무나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는데
방안에서 매점 창구를 통해 본 세상은 또 다른 맛이 난다.ㅎㅎ

물건 값을 물어 물어  가면서 그들을 도울 수 있었던 그날 오전은 얼마나
길게 느껴지던지. . . .
난데없는 여자가 물건을 팔게 되자 갑자기 매점안이 술렁 거렸다.
ㅎㅎㅎㅎㅎㅎ
비를 동반한 바람은 또 얼마나 드세던지, 매점입구가 막힐 정도로 대피소
안이며 바깥이 어수선했다.
무엇보다도 호기심 어린 사람들의 질문이 더 피곤했다.
별별 가지 질문이 쇄도해서 웃느라고 진이 다 빠지고, 산 아래와는 다른
물건 값에 헷갈려서 손해나 끼치게 되는 것은 아닌가 하여 아픈 위장이 더
아픈 것 같았다.
어설픈 "산장의 여인"이 강한 호기심의 대상이 된 사건이다.

5월 30일 전후한 세석 철쭉 피어나던 때의 일이다.

요 며칠 감기 인듯 하면서 시작된 위장 불량 상태가 15일째로 이어진다.
의사 말로는 "예민한 성품 탓"이라고 세번째 진료에서야 한마디 던진다.
예민한 성품 탓. . . .
부실한 곳이 한두군데가 아니지만 위장은 튼튼해야 산이건 여행이건 갈 것
아니냐????
어머님 걱정에 아프다는 기색도 할 수 없다.


아차!!!
그날 산행은 오전에 대피소 매점에서 장사 해주느라고 까먹어 버렸다.
오후에는 하산을 해야 했으므로 그해 세석 철쭉 구경은 놓친 셈이다.
후일 은혜를 갚으려고 고기 한보따리 산아래에서 짊어 지고 그곳을 찾았을
때엔 사람이 바뀌고 운영체계도 바뀌고, 그냥 고기만 그곳에 두고 왔다.

산에 사람이 있어서 있을 수 있던 추억 한조각으로 정감어린 민간인 대피소
운영 시절의 이야기.


어느 한때--지리산 --여명


추신:
위장 불량이 없어지면 다시 생각나는 아름다운 지리산 이야기 올려 놓겠습
니다.

음악:꽃이피는 날에는 --소리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