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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정진원의 지리산이야기

정진원 프로필 [moveon 프로필]
이야기
2004.12.21 17:55

화장지 5개

조회 수 2030 댓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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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이라 우아한 그릇을 사용할 필요도 없고,
빨래도 몇개 되지 않으니 시골 아낙들도 쓰는
세탁기를 쓸일도 없어요.
삶아야 하는 빨래를 담아야 하는 마땅한 그릇이
없었습니다.
거위가 사는 뒷 언덕 감나무 밑에 가보니 찌그러진
알루미늄 그릇이 있더군요.
안성맞춤 이었습니다.
삶을 빨래를 불 위에 얹어 놓고
"저게 다 되려면 시간이 조금 걸리니 방에서 잠깐
쉬어야 겠다."
이것 저것 쓰고, 오브넷도 들어와 보고 그리고 무엇을
했는지 시간이 많이 흐른듯 합니다.
무엇인가 잃어버린것 같은 불안감이 있었지만 제가
불 위에 무엇인가를 얹어 놓았다는 것은 까마득히
잊었더랍니다.

그런데,
열어놓은 창문틈새로 검은 연기가 보인는 듯도 하고
어디선가 무엇을 태우는 냄새가 나는 것도 합니다.
문을 열어 보니. . .
세상에! 저의 부엌쪽에서 검은 연기가 치솟고 냄새가
온 집을 뒤덮고 열기구 위의 그릇에서는 이미 불꽃까지
환하게 타오르고 있었군요.
우선 가스를 잠궈야 하겠는데 그 검은 연기에 질식할 듯
해서 다가 갈 수도 없고 가슴은 뛰고 작은 개울이 가로
지르는 뒷 마당에 가서 물을 퍼서 불꽃이 보이는 곳에
부었습니다.
타버린 빨랫감에서 불꽃이 일고 있었고, 쉬이 꺼지지도
않았으며 그릇은 이미 까만 숯더미가 된 뒤였지요.
[웃음]
재가 되어가고 있는 빨랫감.
그렇지 않아도 쭈그러진 그릇은 더욱 초라하게 그을려
버렸고. . .

수습하고 나서 그 그룻을 버리려고 다시 거위들이 사는
곳을 가려고 할때 였습니다.
"고물 파세요."
시골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는 고물 수거하시는 분들이
었습니다.
"이 그릇도 가져갈 수 있나요? 타버리기도 해서 더 이상 쓸
수가 없군요."
도저히 아까의 악몽같은 일이 생각나서 그 그릇이 존재한다
는 사실을 얼른 잊어 버리고 싶었답니다.
전에 살던이가 두고간 몇개의 남은 그릇들과 함께 얼른 내어
놓았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운좋게 화장지를 준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것도 5개씩이나. . .
이게 웬 떡입니까?
마치 보물이라도 건진것 처럼 받아들고 한참을 웃었습니다.
늘 버리기 좋아하는 제게 어머님께서 물건버리기 좋아하는
사람치고 잘 사는 사람 없다 하시던 그 말씀이 다시 생각
났습니다.
그렇지! 생각하고 구입하고 조금 못쓰는 물건이라고 쉬이
버리는 그런 버릇은 옳지 않지.
그러나,
내가 버리는 것은 물건이 아니라 늘 번뇌와 집착을 가져오는
원인을 버리는 것인데 뭐 ㅎㅎㅎㅎㅎㅎ

못쓰는 물건에서 건진 부가가치[?]를 들여다 보며 풍요와
빈곤의 형이상학적인 공간속으로 잠시 헤매었습니다.

다시보자 불조심
꺼진불도 또보자.

띨띨한 정진원



  • ?
    부도옹 2004.12.21 21:18
    아이구, 이 엄동설한에 옷을 태워먹었으니 춥지나 않을런지?
    그러길래 약도를 가르쳐 주면 가서 밸브도 잠궈주고 그럴텐데~~
    언제고 분부만 내리시면 내의와 자장면을 가지고 갈
    '5분대기조'가 준비되어 있답니다. ^^*
    진원님이 앓으신 뒤로는 글 내용이 '신비주의'를 많이 걷어내신 듯합니다.
    얼마전에 올려주신 사진도 그러하고.... ^^*
    암~ 그래야제!!
    질문 : 집들이 안 합니까?

  • ?
    허허바다 2004.12.21 21:32
    큰 일 날 뻔 하였습니다!
    근데 점점 '드가'가 되어 가고 계시는군요... 음...
  • ?
    야생마 2004.12.21 21:53
    정말 큰일날뻔 하셨네요. 시골에서의 삶...애잔한 느낌입니다. 신비로움 조금씩 벗어내시니 좋지만, 싸~한 마음 어쩔수 없네요. 항상 단정하신 느낌의 글이었는데 '띨띨한'이란 표현도 쓰시고...예전엔 엿이나 비누를 줬는데...불조심하시고 건강한 겨울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 ?
    오 해 봉 2004.12.21 22:44
    부도옹님 허허바다님 야생마님이 내가할말을 다 해버렸네요,
    동지인데 팥죽은 드셨나요.
  • ?
    끼득이 2004.12.22 09:28
    진원님 글 뵈니 반갑습니다.^^
    정말 일 낼뻔 하셨네요. 가스렌지는 괜찮은지요?
    꺼진 불도 다시보자, 불위에 얹어놓고 옆에서 기다리자,
    깜박 돌아서면 잊어버리니~~
    저 같은 경우는 한이에게 미리 말을 해 둡니다.
    '엄마 물주전자 올려 놓았거든~ 좀 있다 끓거든 이야기 해줘~^^' 하믄서 말입니다.
  • ?
    솔메 2004.12.22 11:04
    한편의 전원교향곡으로 들립니다.
    허나, 그런 일이 자주 있어서는 안 될터이니
    집안(주부)의 필수품으로 '타이머울림통' (불위에 올려놓은 대상에 따라서 타이머를 작동시켜 시간이 되면 울리게 만든 애기주먹만한 기계) 을 하나 구입해놓으면 좋습니다.
  • ?
    정진도 2004.12.22 11:29
    한가한 고향의 애기 같아요.........
    어릴때 우리네 누나들이 곧잘 그런실수를 하곤 했지요.
  • ?
    섬호정 2004.12.22 19:01
    타이머~ 꼭 필요합니다 주방에선~ 태우는 선수등록된 터인데 저도요~ 진원님, 주변정리가 하나씩 되어가고 알뜰한 살림냄새도 나서 마음이 훈훈해집니다 . 근디 얼매나 놀랬을가... 알쓰러워 죽갔네....
  • ?
    타타타 2004.12.24 13:55
    정말 띨띨하네여...하하~
    재미있습니다..후후~
  • ?
    길없는여행 2004.12.24 17:19
    불~~ 하니 제 가슴도 뜁니다.
    그 놈이 내가 있는 현장에서 집도 산도 한번씩 재더미로 만든 기억이 있어서인지... 지금도 불!하면 철렁 놀랍니다.
    많이 놀라셨겠네요.
  • ?
    해성 2004.12.26 17:15
    크리스마스 잘 보내셨는지..
    작은 일 별탈없이 지나갔으니 다행이네요.
    올 한해 계획하신 일들 잘 마무리하시고
    새해 힘차게 생활하시면서 항상 좋은일 가득하길 빌어봅니다.
  • ?
    김용규 2004.12.27 11:28
    물질적 풍요속에서 마음이 빈곤해져 가는 요즘 진원님의 잔잔하고 섬세한 글 속에서 무엇인가 생각을 하게 하는군요. 작은 것에 숨어 있는 짜릿한 행복! 이런것들을 주변에서 찾아내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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