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이야기

남부능선의 남자무속인 이야기

by moveon posted Nov 13,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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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궁--박용희님 갤러리에서



인기척이 없는 길섶에서 불쑥 나타난 연인들의 표정에서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돌아서면서 무슨 말을 할지도 예상하던 것이었는데,
"와!!! 저봐 혼자 오는 여자도 있잖아. 대단하다."
그날따라 세석부터 이 능선으로 들어선 사람이 거의
없어 삼신봉에 다다를 때 까지 내내 홀로 걸어야 했었다.
그러다 만난 이 연인들에 대해선 지금도 그 반가움이
머릿속을 떠돈다.
아뭏튼,
무슨 이유에선지 그곳에서 1박을 해야 했던 나로서는
짐을 풀어 놓고 어슬렁 거리면서 삼성궁 지점까지
[원래 그러길 좋아한다. 마을 걷기를....]
걸어 내려 갔다가 마지막으로 청학동으로 들어오는
버스를 타고  숙소로 정한 도인 집으로 다시 오는
중이었다.
아무도 없고,
마을 사람 두어명과 얼굴이 파리하고 깡마른 남자 한
사람이 타고 있는게 보였다.
중간에 내린 마을 사람들을 버리고 버스는 종점까지
들어갔는데 거기서 우리 둘이 나란히 내리게 되자
그가 싱긋 웃었다.
혀가 짧은 편이었던 그가 말까지 더듬는 바람에. . .
무슨 소리인지를 잘 못알아 들었는데 내용상 잠자리를
어디다 틀어야 하는지를 묻는 것으로 들렸다.
자기는 아래 상가에서 자고 싶은 생각이 없고, 도인촌
안에 도인들이 사는 집에서 묵고 싶다는 소망이었다.
마침 ,
내가 도인 한 사람 집에 짐을 풀어 놓은 상태라 그를
그 집에 소개 하는 수밖에 없었는데 물론 다른 곳은 내가
알고 있는 곳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밤을 지새울 정도의 시간 동안 그는 도인과 무슨 이야기
인지 주고 받았고, 아침에 나는 이른 산행을 위해 불일폭포
를 보고 쌍계사로 향하는 꿈같은 아름다운 산 속으로 다시
걸음을 옮겼다.
남부능선의 길고 지루하다 싶은 산행끝에  쌍계사로 향하
는 이 코스는 아기자기한 내,외 삼신봉의 묘미와 오솔길이
어떤 일의 대단원을 바르게 마감해주는 맛을 느끼게 해
주곤 하는 길이다.
갑자기 함박눈이 쏟아져 내렸다.
종정굴[송정굴?]사이로 눈을 피해 들어섰다가 어디선가 뒤
이어 사람 인기척을 느꼈는데 순식간에 쌓이는 눈 때문에
길은 정말 미끄러웠다. 아이젠은 이런 상황에서 필요하지
않아서 조심해 걸어야 했는데. .
뒤따르는 사람은 하얀 고무신을 신은 예의 그 어젯밤에
같은 집에 묵은 그 청년이었다.

상상할 수 없는 속도 였다.
더군다나 하얀 고무신을 신고 가벼운 츄리닝 복 차림에
아무런 장비도 없이 손에는 덜렁 비닐 봉지에 몇가지 먹을
거리만 담고 말이다.
섬짓하기도 하고,
가엾기도 하고,
이상한 느낌 때문에 걸음이 빨라지고, 숨도 거칠어 지고,
아이젠을 할 수 없는 눈길 때문에 자꾸 미끄러 졌다.
"이거 하나 먹고 쉬어 가지요."
모든 것들이 두 개 씩이다.
우유두개,
과자 두 개,
등등
정말 궁금한 것은,
그 보행속도인데..  이른 아침에 떠날 때 전혀 보이지 않던
그가 날 추격해온 속도가 이해가 안되는 것이었다.
"이 산행에서는 도무지 산꾼이란 없는 것일까?"
겁이나서 아마 다른 산꾼이라도 우연히 만나기를 얼마나
기대 했었는지 모른다.
However,
어쩌지 못하고 일행이 되어가면서도 이상했던 것은 , 다시
걸음 걸이 였다.
날.아.갈.듯.이. 사뿐 사뿐 그러나 치밀하고 단 한 발자욱도
미끌어짐이 없이 정확하게 산을 걷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산에 붙는 듯한 발걸음을 가졌다.
겁을 낼 상대는 아닌 듯했고 아무리 거리를 만들어 보려고
해도 그 걸음걸이 앞에선 정말 어쩔 수 없었다.
몹시 추운 상태에서 점심을 해결하려고 개활지 한군데를
찾아 다시 나타난 햇살을 의지해 마주 보고 앉았다.
날씨도 이상해서 그토록 야단을 치던 눈보라가 햇살 속으로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
내가 귀신에게 홀린 것일까?
그의 창백한 얼굴이 그런 생각을 더 하게 했다.

코펠 버너를 챙길 필요도 없이, 손쌀 같이 주변을 더듬던
그가 나뭇가지로 불을 능숙하게 피웠다.
가지고온 간식 거리를 어울리지 않게 불에 굽기도 하고
[그 모습에서는 천진스러운 모습이 보였다.]    
끓이는 라면을 돕기도 하면서 더듬거리면서 이야기 했다.
지리산의 기운이 어떤지 보러 왔노라고. .
그리고 도인들과 이야기 해 본 결과 이곳의 도인들은 참 도인
이 아니라고. .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 이야기를 끝내려고 서둘러 걸음을
재촉해서 쌍계사로 내려 왔는데 내내 그의 표정에서는 산을
취미로 다니는 사람들에 대해선 여지껏 들어 본적이 없는
머나먼 이야기 인듯한 느낌이  역력한 거 같았다.[웃음]
둘다 말 없기는 마찬가지 여서 그 동행[?]이 얼마나 어색했을
지는 상상에 맡긴다.
쌍계사 시설지구에 들어서서야 그가 도중에 하산할 계획으로
산에 들었다는 것을 알고선,
엉겁결에 날 따라 본의 아닌 산행을 한 그를 사바에서 보니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어디로 가시는지요? 차표 끊어 드릴께요. 산에서는 덕분에
따뜻하게 점심을 먹었습니다."
불쑥 아까 끓여 주었던 라면에 대한 감사를 하는 통에 같이
웃었는데 도착한 버스를 급하게 타느라고 그의 친절에 대한
뒷 모습의 기억이 없다.

다시,
월출산 종주후 늘 그곳에서 보는 마애불에 들러서 오다 보면
도갑사에 늦게 도착한다.
어둑한 절 입구에서 감로 같은 물 한모금을 마시려고 할 때,
하얀 분칠을 한 여자 얼굴이 마주 칠 뻔한 거리로 같이 물
바가지를 만지는 듯 싶었는데 붉은 입술이 몹시 슬프게 보이
는 얼굴이다.
그 얼굴이, 갑자기 놀라서 웃는 듯 슬픈듯한 표정으로 날 보았
다. 같이 놀란 나의 심중에는 그가 여자가 아니라 남자여서 였
는데. .
바로 그 청년-- 삼신봉의 그 귀신같은 남자 였다.

박수무당. . .
영험한 월출산 자락에서 다시 그는 신내림을 위한 굿판의 "박수
무당"으로 나와 조우 한 것이다.
괜히 그곳에서 그런 모습의 그를 본 것이 미안해서 무척 당황한
나와는 달리 그는 몹시 반가워 했다.
아아~~~그 때서야 나는 그 걸음걸이가 이해 되었다.
그들은 산에서 걷는게 아니라 날아 다닐 수도있는 신과 인간의
매개의 세계속 "인간과는 다른 존재의 인간"이었다..
다시 급하게 헤어져야 하는 순간에 그를 만난 것도 우연이라면
우연이었고.
택시를 호출한 상태에서의 나는 그와 한마디 나눔도 없이 서둘러
그곳을 떠나야 했다.
하얀 한복 차림으로 물끄러미 나를 바라다 보는 그를 뒤로 하고
돌아오면서 또 공연히 가슴이 아렸다.

남.자.무.당.이.었.구.나.

한참후,

버스 터미널에서 다시 지리산을 가기 위해 기다리던 중이었다.
배낭 맨 나를 제외하고는 모두들 시끄러운 잡담이 생활 같다.
어디선가 시선이 느껴지는 것을 느끼고 돌아다 보았다.
세 번째 조우!!!
화장기 없는 그 얼굴은 훨씬 내가 알아보기 쉽다.
둘다 웃었다.
터미널 다방에 마주 앉기는 했지만 할말이 없다.
"제가 전화해도 될까요?"

다시, 정해진 버스 시간 때문에 짧게 인사하고 헤어 졌다.

전화번호를 가르켜 주었는지 기억이 없다.

曲 :medit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