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月下美人--실화상봉수

by moveon posted Sep 24,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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茶씨앗



내내 푸르던 잎 사이로 밤톨 같은 씨앗이 먼저 돋았습니다.
1년전 만났던 자신의 아름다운 반려를 기다리면서. . .
아는지 모르는지 아직 꽃 피울 준비를 하지 않던 나무 가지
사이로 찬바람이 스며들기 시작하면서 안타까움은 더하는듯
했지요.
거리의 꽃 가게들에선 노오란 국화 송이들이 점점이 그 별빛
같은 속삭임을 시작하고 있군요.
그래도 아직 아름다운 그녀에게선 소식이 없습니다.

투둑 투둑
제게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푸르고 단단한 잎 사이 사이로 진주알 같은 작은 봉오리들이
돋아나는 소리 말입니다.
아!!! 시작입니다.
견우 직녀의 사랑 같은 그들의 만남 입니다.
씨앗들의 가슴 두근거리는 소리도 들리는 듯 합니다.

그녀는 역시 수줍고, 여립니다.
우윷빛 작은 마음이 부끄러워 활짝 열지 못하고 마냥 조용히
미소만 짓습니다.
어서,그녀가 활짝 웃고 그에게로 다가서야 할텐데요.
단단한 씨앗들은 부드러운 그녀의 마음씨를 받고 싶어 사뭇 긴장
되어 있거든요.

다시 그녀들은 침묵으로 자신의 함박 웃음에 대한 준비를 단단히
하는 듯 합니다.

지켜보는 제가 지치겠습니다.[웃음]

달이 가득합니다.
뜨락에 들이는 달빛은 어쩐지 좁은 공간에 들어서기 싫은 눈치 여서
멀리 달 구경을 가야 할까 하고 집을 나서는 참이었습니다.
오늘이 한가위 거든요.
어디선가 다시 후두둑 무엇인가 열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시선을 끄는 무엇에 이끌려 잊은듯 버려둔 茶나무를 들여다 보았습니다.
이런!!!
그 사이 잔치가 벌어 졌군요.
세상에서 씨앗과 꽃이 만나는 나무 "實花相逢樹"들의 1년만의 만남이
한창 입니다.

월하미인
달아래 그녀들은 어찌 그렇게 아름다운지요?
작년 보다 더 풍만하고 더 요염해 졌습니다.
일제히 한 순간에 감추고 감추었던 자태를 터뜨리는 순간에는 정신이
아찔 합니다.
특히나 완전히 입술을 열기 직전의 터질 듯한 미백색의 자태는 세상의
어느 꽃들보다 뒤지지 않을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꽃은 피어나기 직전이 가장 아름답다는 속설을 유감없이 일러 주는
부분입니다.

10여년전에 가장 순수한 모습이라고 알려진 "선암사"의 차나무밭에서
옮겨 심으면 100퍼센트 죽어 버린다는 통념을 반박이라도 하고 싶은듯
억수같은 비가 오는 오후에 저의 손 바닥 길이 보다 더 적은 나무를
하나 가져 왔습니다. 애지 중지 가져온 것을 만일에 죽이고 만다면[?]
하는 걱정과 함께 씨앗도 같이 가져 왔지요.
발아시켜 키우는 것이 가장 완벽하다는 차나무의 씨앗 "발아하기"는
오히려 실패 했습니다.
오랜 전통[600년 정도라고 알려진]의 차나무를 뜨락에 옮겨 심고서
자라면 그 꽃을 편안하게 집에서 볼 수 있으리라고 기대 하면서 정성
스레 키워 나갔습니다. 벌써 웬만한 중학생 아이의 키보다 더 큰 나무가
되어 있고 그 모습또한 튼튼하고 건강해서 그 푸르름이 너무나 당당합
니다.
해마다 드믈게 벌어지는 씨앗과 꽃의 만남을 보는 기쁨이 무척 컸습니
다만 올해는 유난히 꽃이 많이 열리고 씨앗도 단단합니다.
꽃이지면서 씨앗이 나무에서 떨어지면 그들의 사랑도 다시 1년을 기다
려야 한답니다.

세상의 다른 계절에선 "상사화"라는 꽃이 피어납니다.
결코 잎이 꽃을 만나지 못하고 마는 슬픈 꽃입니다.
그 모습에 비한다면 1년에 한번이지만 이들의 사랑은 매우 행복한 편. . . .

달빛에 저의 발걸음을 붙잡은 그녀들의 웃음 소리가 사방에 퍼져 나갑
니다. 저러다가는 달빛이 오히려 무색하겠습니다.
자리를 비켜 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

세상의 모든 이들에게 보여 주고 싶은 기쁨이며, 아름다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