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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정진원의 지리산이야기

정진원 프로필 [moveon 프로필]
이야기
2002.08.09 11:02

誘惑--노고단에서 온 편지

조회 수 2088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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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무속의 원추리--지리산"
바위 곁에 앙징맞은 핑크빛 꽃은 "둥근 이질풀"인것 같아요.
그림: 지리마당 갤러리 하성목님 사진입니다.


하나---상선암 가는길

천은사에서 시암재 오르는 길가의 숲 속에  입간판 하나가 서 있다.
"상선암" 가는 길
그러나 숲은 그 길을 쉽게 열어 보이고 있지 않다.
그래서 사람들은 순간 잊어 버린다.
다시,
해발 8백m를 지날 무렵 오른쪽 차창 밖 차일봉 아래 문득 지리의
숲을 바다 삼은 배 처럼 떠오르는 암자 하나를 보게 된다.
그 때서야 사람들은 저곳에 사람 사는 흔적이 있음을 알게 되고
그곳이 산중 암자라는 사실에는 조금 의아한 표정이 된다.
왜냐하면?
이미 수많은 지리산 주변의 암자들이 산을 훼손하면서 그 크기를
부풀리기를 서슴지 않고 있는 즈음에 고즈녁히 오래전 모습으로
남아 있는 암자에 대한 믿기지 않는 시선을 지니게 되기 때문이다.
복원이라는 마수의 손길에서 벗어나 있을 수 있는 절묘한 위치의
암자 "상선암"

길은 들어서면서부터 벌써 길이 아닌듯 헤매어 이어진다.
눅눅한 길들에서는 오래된 이끼 내음이 솔솔 거리는 숲의 소리와
함께 전해지고, 가끔씩 나타나는 썩은 나뭇가지 들에서는 오랜 시간
배인 검푸른 흔적들이 여실하다.
가끔은 두터운 이끼로 인한 돌무더미에 미끄러 지기도 하는 길.
그리고
젖은 여름엔 어디선가 흘러든 작은 실개울이 어둑한 길에 휘감기고,
그 물길을 따라 산산이 목숨을 다한 산동백[쪽동백] 꽃잎들이 江이
되기도. . .

도저히 나타날 것 같지 않아서 지치기 시작하는 그 즈음에서 갑자기
쏟아지는 햇살 사이로 너른 밭이 나타나고 그곳에 안개같은 개망초
군락이 지친 나그네의 가슴안으로 쏟아진다.
"아!"
탄성이 나는 것은 시린 눈길 끝에 매달린 점점이 개망초의 꽃잎들이
별처럼 여겨지는 착시 때문이다.
오랜 검은 숲길에서 익숙해지지 못한 햇살에 반응하는 인간의 눈의
조화 라고 생각하지만 첩첩한 지리산의 여름 숲이 깊어서이다.

그래서 그 길을 어느 외국의 스님은 "미로"라고 생각했다.
그는 그 근처 능선에 토굴을 짓고 한국식 수행을 감행했었다.

장마가 깊어지던 무렵,
젖은 몸으로 그곳으로 찾아들었다.
어느해 여름. . .
몹시 추워서 입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는데 마루에 걸터 앉아 茶삼매에
빠지신 주인장[스님]께 아무런 말도 건넬 수가 없다.
그처 허름한 요사채 처마밑에서 서서 물끄러미 그 안에 잠긴 모든 것에
마음을 주고 있을 뿐. .
들은 바에 의해 그곳 주지 스님의 이력이 상당히 화려해서 선입견에
시달린 탓도 있었지만. .
"차 한잔 하고 몸녹이고 가시오"
단 한마디도 건네지 못한 채로 들여다 본 찻종에는 "開口卽착" . . . .
선문답 한 구절이 떠 돈다.

그곳에서 산행을 지속한다면  우번암을 품은 종석대를[차일봉]
만난다.
"유마의 침묵"

근래에 이르러 사찰들의 길내기에 우리 산하가 몸살을 앓고 있다.
아니 아예 근처의 수목들은 씨가 말리고 땅은 뜨거운 아스팔트가 도포
되어 죽어 버리는 것이다.
사람이 다니는 길에서 조금만 가깝거나 아주 높은 봉우리가 아니면
여지 없이 도륙 당하듯이 부풀려지는 사찰들의 처지에서 볼때에 상선암의
"지조 있는 버팀"은 자의건 타의건 간에 가슴 조마조마한 즐거움이 아닐
수 없다.
아직도 붉은색  양철 지붕으로도 당당한 선승의 처소로 군림하고 있을
그곳이 오래 오래 그런 모습으로 남기를  빌어 본다.
박제된 지리산 이라고들 한다.
그래도 아직 남은 순결함을 만나는 일. .  
여름의 강한 誘惑 이다.

두울--원추리

지리산 능선은 여름내내 구름에 가리워져 있기를 좋아 하는 까닭에. .
특히 장마철이 여름의 중심에 있는 , 그리고 7,8월이면 여지없이 찾아
드는 태풍의 진로속에 있는 우리 산하의 특성상 독특한 이변이 아름
다움으로 표현된다.

야생화들의 수선스럽고 앙징맞은 수다야 비록 노고단 주변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지만. . .
원추리의 노오랗고 투명하면서도 덜익은 빛깔은 초록 언덕을 배경
으로 열렬히 불타는 희고 화려한 운무와 함께 바람에 드는 노고단
에서 더욱 특별해 진다.

이슬처럼 내리는 작은 그리움 위로 첫/사/랑/을/ 기/억/하는 빛깔이다.
오래된 수동카메라의 둔탁한 셔터 소리와 함께 추억속으로 달려 가고
싶은 , 그러나 조금은 아픈 빛깔. . .
유독 智異의 품안에서는 흔한것이 흔하지 않게 되어버리는 묘안이
생긴다.

그 한가운데 팔을 벌리고 서 있다 보면 살갗에 매끄럽게 스치며 들려지는
갖가지 소리속에. . . . . .
가만히 옷깃을 당기는 요정의 아름다운 손짓이 있다.
여름 막바지에 노고단이 보내는 초대,
誘惑이다.



  • ?
    운조은놈 2002.10.11 12:14
    좋은 글 감사.. 맘이 편안해 짐을 느끼네요....오늘 정말 운 좋네요...
  • ?
    parkjs38 2003.10.21 22:16
    "또 숙제가 늘었으나 나중에 나중에 가보자.." 왜냐구요? 저까지 거기 가버리면 또 똑같이 길 내어 버릴까 두려워서 말입니다... 이렇게 글만으로도 가본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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