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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정진원의 지리산이야기

정진원 프로필 [moveon 프로필]
조회 수 2429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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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마지막 산행은 다시 덕유 종주였다.
혹독한 주 능선의 바람은 징그럽다는 표현으로도 부족했다.
감히 석가의 6년 고행에 버금 가는 것이었다고 말하고 있는
자신이 우습기는 했지만. . ㅎㅎㅎㅎ
"아고산 지대"라는 주목 군락지가 가까워서야 순해지고,
뭉글 뭉글 굵어지던 눈송이가 겨우 날 살려 냈다.

설상 가상으로 영각사는 이곳 무주구천동에서는 여러 고을을
걸쳐 지나야 갈 수 있었다.
그곳으로 다시 가야 하는 이유야 뻔하다.
일행이 가져온 차가 거기에 놓여져 있어서다.
오랫만에 해보는 "버스 시간 맞추기"는 그런대로 성공적이
었다. 시간이 딱딱 맞아 떨어지는 즐거움이 순간 순간 있었
던 것으로 보아. . .

문제는 마지막 영각사로의 행로에서 였는데 갈 수록 깊어지는
밤, 그리고 눈 보라 속에 엄청난 적설로 운전기사님은 더 이상
진입을 포기하고 무작정 우리를 다그쳐서 오지의 썰렁한 어둠
에 버려 두었다.
엄밀히 말하면 일행의 고집스러움이 빚어낸 결과 였지만. .
Anyway,
난 거의 지친 상태에다 좋지 않았던 건강때문에 차를 가질러
그 혹한 속을 걸어 갈 수는 없었다.
매정한 듯 보이지만 일행은 혼자 영각사를 향해 가야했다.

멀리 보이는 불빛은 길거리 바로 창을 두고 있는 단촐한
시골 집뿐이다.
불청객이 민박집도 아닌 곳에 찾아 들어서 어떤 식으로 도움
을 청해야 할지도 정말 난감한 처지였다.
그러나, 이런 상황 그야말로 It's an emergency!!!!

두드리는 문이 열리고 나타난 얼굴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뽀얀 파마머리의 할머니가 화안하게 웃고 나타난다.
낯선 사람, 그것도 밤중에, 이 눈보라에, 인데도 전혀 난감해
하는 기색이 없는 천사의 얼굴이었다.
너무나 선선하게 아무런 의혹 같은 것이 없이,
" 세상에 . . 들어와요. 이곳은 종종 그런답니다. 이런 눈에는
  버스가 아예 들어오질 않는데 그래도 용타. 이만큼이라도
  들어 오느라고. . "
겉에서 보기와 다르게 너무나 정갈한 방들은 사람을 놀라게
했다. 자식들이 눈보라에 찾아 들지 못하는 명절 前夜.
덕분에 아랫목에서 도란 도란 이야기 하는 기쁨이 컸다.
아직도 이런 인심의 향기가 남아 있어서 세상이 그나마 향기
롭구나.
돈으로 보상하면 된다는 생각은 이런때 너무나 속되다.
그러나 결국은 그 말을 해버리고 마는 나는 역시 속물인것. .
"민박하는 곳이 아니라예!!!걱정하지 말고 차를 가지고 올
동안에라도 편히 쉬소."

그제서야 문을 열고 바라보는 시골의 한적한 밤 풍경이 아름
다운 것을 알았다. 한없이 평화롭기도 하구나. . .

아랫목의 뜨끈한 온정에 몸을 뉘이고 있다가 그대로 잠이
들것 같아서 오히려 불안했다.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그리곤 결국 두 어모금 밖에 하지 못해서 너무나 미안했다.
시골 노인 손에서도 커피를 얻어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세상
이 변했는데도 아직 이런 情이 남았다는 것이 기쁨이었다.

밤을 재촉해서 그곳을 빠져 나오면서 혹독했던 산행의 후유증
이 심할 것을 예상 했다.
할머니의 일을 글로써야 했지만 시간이 꽤 흘러 버렸다.
많이 피곤했는지 지금도 몸이 좋지 않다. . .
전달하려뜻이 표현되지 않은 것은 내 글재주의 빈곤함의 결과
인데도 속이 상한다.
다만,
그 얼굴을 잊지 않으려고 이 글을 쓴다.
  • ?
    parkjs38 2003.10.21 21:32
    "다만, 그 얼굴을 잊지 않으려고 이 글을 쓴다." 고마움에 대한 최상의 표현이라 하고 싶습니다... 정말 성주님 같은 깨친 분을 어디서 다시 뵐 수 있겠습니까... 지금까진 저는 복없는 인간이라 스스로 놀려대었는데 이젠 그 놀림 그만 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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