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지리산

정진원의 지리산이야기

정진원 프로필 [moveon 프로필]
산 이야기
2002.02.27 21:33

"깨진 소줏병속의 들꽃"

조회 수 2320 댓글 6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2월 7일
뜻밖의 편지를 받았다.

"그때 사진이 아마 집에 있을것 같네요
아침 꽃이 담긴 깨진 유리병을 들고 서서 여럿이 찰영한 사진이 ,... "

                     편지 중에서. .


"깨진 유리병속의 들꽃"
그것은 지리산 하면 떠오른 예쁜 이야기 여서 그 주인공의 이름을
잊더라도 사건 자체는 잊혀질 일이 아니었어서 금방 기억을 떠올
릴 수 있는 내용이었다.

한때는,
지리산 종주를 위해 지는 짐이 지금처럼 가벼울 수 없는 시기였다.
국이 없으면 식사를 하지 못하는 식습관때문에도 나의 산행 보따리
는 늘 필요이상 무거웠다.
화엄사를 오를때 힘겨워 보이는 나의 짐을 져주겠다고 손을 내민
일행들의 연고가 같아서 잠시 신세를 지고 대신 난 저녁을 대접하겠
다고 약속 했던 것 같다.
나중에 알고보니 교수님 이하 여학생까지 낀 대규모 군단이 단합의
의지를 다지기 위한 산행이었던 것으로 내가 대접하겠다던 저녁이면
그 인원이 얼마나 될 것인지 상상만 해도 웃음이 나온다.

산장 근처에 텐트를 칠수 있는 시절인가 보다.
지친 몸을 이끌고 고정시키지도 않은 텐트를 펼쳐 놓고 마치 집에
온냥 맛있는 스프를 끓이고 있었다. 약속대로 간식거리를 대접하기
위해. .
근데 나의 집, 텐트가 갑자기 불쑥 들려지더니 이동을 하는 것이다.
놀라서 돌아다보니 아까 그 일행들이 몰려와 나의 집을 들고 가는 것
아니겠는가?

지금은 노고단 정상 철조망이 있는 곳. 출입이 가능하던때에는 텐트
를 칠수 있는 언덕이 허용구역이 였던 곳인데 그들이 들고가는 나의
집은 그곳을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거리가 상당하다는 것은 여러분들이 잘 알것이고. .

이유인 즉슨,
우리집이 불행히도 팔에 문신하고, 얼룩무늬 옷을 입고 ,험상궂은
인상의 불량해 보이는[죄송] 남자들 곁에 무방비 상태로 지어졌던 것.
기사도 정신이 투철한 주인공이 그것을 간파하고 우리를[여자후배와나]
보호하려는 마음으로 그 소동을 부린것이었다.
덕분에 언덕에서의 하룻밤은 너무나 아름답게 흘렀다.
편안하고 곱게.

다음날 아침은 그래도 아쉬운 대로 한끼라도 대접을 해야 한다는 의무
감으로 주인공과 텐트를 짊어 졌던 일부를 신문지 식탁보를 깔은  돌
식탁으로 초대를 했다.
그런데 거기서 그야말로 나는 낭만이라는 이름의 *멋진 사건 *하나를
맞았다. 편지의 주인공이 사라지고 없다가 나타났는데 그 손에 들려진
것은 다름아닌 "깨진 소줏병에 담긴 이름모를 들꽃" 이었던 것이다.

그것이 사람들 앞에 놓여진 순간,
갑자기 초라하기 이를데 없던 식탁은 화려한 궁중 만찬 처럼 변했다.
물론 나의 상상속에서의 상징적인 의미에서지만. .
그 재치에 나는 너무나 놀라고 고마웠고 지금도 잊을 수 없는 하나의
지리산의 사건이 되어 있다.[웃음]

사진을 찍었는지의 기억은 불행히도 나는 없다.
그러나 그 사건[?]만큼은 내내 오랜 시간 동안 잊지 않았다.
평범한 감성의 소유자라면 생각하기 어려운 일.
깨진 소줏병과 가녀린 들꽃의 조화는 참으로 형용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힘든 산행에서 만날 수 있는 드믈디 드믄 감성이어서 ,더군다나 남성의
감성으로는 너무나 드믄 것이어서, 들꽃을 생각할 때 특히 지리산의 들꽃
을 생각할때면 늘 그 꽃을 생각하곤 했다.
미소가 피어오르는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들꽃의 형상으로. . .

다시,
학생운동에, 노동운동에 몸이 바쁜 주인공을 치악산 산행 끝에,늦은
열차의 객차안에서 다시 만난 것은 정부에서 그들을 달래기 위해 억지
연수를 중국으로 보내 주었다는데,[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돌아오는
길에서였다.
인연의 꼬리가 물고 늘어지는 순간이다.
내게 즉흥적으로 중국에서 사온 무엇인가를 선물한 것도 이제 마악 기억
이 났다.

키가 크고, 얼굴이 조그마 하고 호리호리한 모습.--내 기억으로는 분명히. . .

최근,
인터넷 사람 찾기를 통해 생각하지도 못한 사람들에게서 들려오는 소식들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 적이 있다.
잊지 않고 작은 흔적들을 통해 내게 전달되어 지는 것들에 대해 "어떻게?"
나의 대답은 늘 그런 식이었다.
이제 익숙해지고 있다지만 지리산을 통한 인연이라는 것이 나로서는
몇가지 안되는 탓에 이 편지는 너무나도 놀랍고 기쁜 선물이었다.
이번 편지는 조금 쉽게 이해가 되는 편. . . .
생각컨데,오브님 집에 세들어사는 덕분이듯. . . [웃음]

지금은 멋진 남편으로 , 어여쁜 아기 아빠로 살아가고 있을 그리고 여전
하게 사회의 등불 노릇을 하고 있는 주인공에게 누가 되지 않는 범위에
한해서 이 글이 지리산을 기억하는 모든 사람에게 낭만적인 예쁜 인연
이야기가 되기를 바라면서 . . . . . .









  • ?
    솔메거사 2002.02.28 10:46
    '아름다운시절'의 멋있는 추억이구만요..노고단佳緣.....
  • ?
    moveon 2002.02.28 18:48
    솔메거사님께서 이방에 와주시다니 어쩔줄을 모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
    moveon 2002.02.28 20:32
    그림이 너무 좋아서 오브님께 졸라 이곳으로 이사 시켰습니다.사랑방 가족님들 이해해 주세요.
  • ?
    검은별 2002.03.05 16:30
    소리없이 글만 읽고 갔는데... 오늘 글은 눈물이 날만큼 예뻐서... 알 수 없는 그 청년(?)과 진원님께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건강하세요.
  • ?
    바람소리 2002.05.26 13:10
    가슴이 울렁거리게 아름답네요. 돌아 갈 수만 있다면..내게도 그런 젊음이 있었는지..아!
  • ?
    parkjs38 2003.10.18 21:12
    여럿 울리시구 아직두 그렇게 고고하게 계시니... 천상님 이거 너무 차별하시는 것 아닙니까? ㅎㅎㅎ 소성님에 이름 모를 그 주인공.. 또 나타날 이 여럿이겠죠? ㅎㅎㅎ 하여튼 복 받으신 분.. 우리 성주님... 정말 오 해 봉님과 저는 왜 저런 추억 하나 없죠? 허긴 울 마누라가 처음이자 마지막 여자니.. 히! 추억은 언제 들어도 애틋함과 아련함을 선사합니다...

  1. 차꽃이 지고 있어서. . .

  2. 여래의 눈

  3. 서화담 과 반야봉. .

  4. 지리산 범왕골 --버림의 美學

  5. 은둔의 기상--지리산 단속사지 政堂梅花

  6. 雨中山行

  7. 선비샘과 벽소령 여름

  8. 몽수경 한 갈피--차일봉 "우번암" 그 사람

  9. 沈默은 言語의 여백--- 목통골 觀香停의 겨울 초입.

  10. 지리산 백배 즐기기--주 능선 무인 카페[?]

  11. 최참판댁과 조부자 집--지리산 평사리.

  12. 덕유산 . . .남덕유

  13. 2002년 겨울 지리山 연하천--그곳에만 있는 특별함.

  14. 다시 /문/수/대/에.. .

  15. 전설[?]속의 반야봉 묘향대.

  16. 지리산의 또 하나의 아름다움

  17. 그 山 그 사람--겨울 마지막 산행속에서 만난 얼굴

  18. 뜻하지 않은 만남-牛飜庵 그 스님

  19. "깨진 소줏병속의 들꽃"

  20. 꽃 소식 유감.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12 Next
/ 12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