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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정진원의 지리산이야기

정진원 프로필 [moveon 프로필]
조회 수 2497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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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막혀 있다.
그러나 열려 있는 곳도 있을 것.

"죄송하지만 물 한모금 마실수 있을까요?'
"마시지 말라면 안 마실거요?"
"허락 안하시면 삼배를 올리고서라도 허락 하신 후에
마시려고 그렇습니다."

물 맛이 독특했다.
나중에 설명에 의하면 고로쇠물이 스며들어 지금도 그
맛이 난다고 한다. 정말이 아닐지라도 아니 정말 같다.
집에와 마셔보니  단 맛이 확실히 많다.

석간수.

"이거 가지고 가서 버려 주시요."
파 한다발을 건네 주신다.
홀로 암자에 사시면서도 아직 서슬이 퍼렇게 계율을 지키고
계시는 증거 같아서 괜히 기분 좋다.

"여기 사신지는 오래 되셨습니까?"
"얼마나 살아야 오래 살았다고 할 수 있소?"
"한 2천년쯤 사시지는 않으셨는지요?"
"그렇다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소. 여러 생을 거듭났다면. . "

남기지 않고 주어버린 과자 때문에 선배는 화가 났다.
여성스러운 성격의 일면이다.
아직 끝나지 않은 우리 산행에 필요한 몇가지 먹을 거리를
우번암 스님께 다 드리고 돌아섰기 때문이다.
몇가지 안되는 건데.. 그래도선배님 제가 잘못 했어요.[웃음]

제대로 받을 줄을 안다.

"우번암"은 차일봉 일명 종석대라고 하는 노고단을 마주 보고
높이 솟은 봉우리에 다소곳이 들어선 암자의 이름이다.
최근에 그곳으로 흘러 들어온 스님과 벗하느라 암자가 하나
더 늘었단다. 그래봐야 단순한 사각형 건물 따로이 두개 있다.
생명선 같은 물을 나누어 먹고 산다.

막히지 않은 곳으로 가야 했다.
옛길이 아니고는 그곳에 갈 수 없어서 애써서 찾았다.

"뭐하러 고생스럽게 없어진 길들을 찾소?. 성삼재로 가면 편하게
내려 갈텐데. .아니면 뭐 등산로 많지 않소?"
그런데 그분이 별로 밉지 않다.
사는 모습에서 이미 비어 있음을 보았기 때문일까?

차일봉을 병풍처럼 둘러치고 그 안에 소복히 앉아 있다.
천은사로 잡은 하산로는 낙엽속에 묻혀서 도무지 길이 보이지 않
는다.
아하!!!! 낙엽으로도 길은 사라질 수 있구나.
사람이 다닌 흔적이 없어서 너무나 오롯하다.
길이 사라져서 많이 헤맸다.
그런데 행복하다.

이제 내년에나 만날 모습들이다.

헤매는 눈앞에 갑자기 나타난 작은 나무 다리가 구도의 첫 관문
같다.
지리산은 여전히 처녀의 모습이구나.
아무리 어지럽혀 졌어도 그 순결함은 여전히 남는 것. .

아! 다시 그분. .

호방하고 당당한 모습이 지리산을 닮아 있다.
남자가 아름다울때가 저런 모습이겠다.
홀로 단 하루도 살아 낼 수 없는 우리 범속한 이들의 저울로는 이해
되지 않을 모습이다.
20년을 이곳에서 살았단다.

바라다 보이는 문수대를 품은 산록이 부드럽고 완곡한 나신으로 드러
난다. 어린시절 여선생님의 올린 팔 때문에 허리에서 얼핏 드러나던
속옷의 색깔을 생각나게 한다.--핑크색 레이온
이 즈음 부터가,
지리산의 속살을 볼 수 있는 최적기 이다.
단풍기보다 더 멋진 때라고 생각한다.
지 능선들을 택하면 더 여실히 느낄 수 있다.

사족:아!!!우번암의 우자는 소 牛字.
     소는 심우도에서와 같이 불교에서 구도의 상징으로 생각된다.

"우리의 영혼은 물질은 분명 아닌데 비우고 채우고 합니다.
중생은 채울 것과 비울 것을 같이 걱정합니다.
참으로 어리석습니다.
확실한 것은 비어도 담겨 있고 채워도 비어있다는 겁니다.
참으로 고맙고 희열을 느끼곤 합니다. "

돌아와 열어본 메일 박스에선 이런 귀절이 튀어 나온다.
이 메일을 보내기 위해 타자 치는데 한 나절은 보내셨을 우리나라에서
제일 아름다운 절에 사시는 스님을 위한 답장을 써야 하겠다.[웃음]

오늘 하루가,
벌써 꿈속의 일처럼 아득해진다.
"몽수경 한 갈피 내 전생의 일" 같다.

                        2001.11.18

  • ?
    parkjs38 2003.10.20 23:51
    치열하게 생을 살고, 나름대로 자연과 인생에 대해 사고하고 느끼고자 최선을 다 했다고 생각하였으나 성주님과 같은 해맑은 마음을 가지지 못한 것에 마치 쌓은 것이 잘못되어 허물어야 하는 그런 허탈감에 망연자실 해져 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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