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이야기

선비샘과 벽소령 여름

by moveon posted Nov 12, 2001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산수국
2001.7.22    
의신--선비샘--벽소령--삼정--의신  

산동백이 지고 있었다.
동백의 아름다움은 그 소멸에 있어서 아름다운 자기 목을
일순에 떨어 뜨려 추하지 않은 일생을 마치는 것에 있다.
그 점에 있어선 붉은빛 평지의 동백이나 고산의 외롭고
바람을 머금어 창백해져버린 산동백이나 마찬가지 이다.

키가 너무 멀어 하늘 위에서 조락하는 꽃 .
그가 있는 길은 여지 없이 하얀 꽃잎들의 시신으로 길이
덮인다.

이 길.. .
오를 때에는 조릿대의 숲에서 온몸이 패잔병의 그것같
이 변해 버린다.. 상상을 초월하는 인적이 없는 그길은
묵을 대로 묵어서 이미 몇년전보다 더 키가 자란 산죽
들을 헤치고 오르는 길에선 죽을 힘을 다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러다 벽소령을 완전하게 조망할 수 있는
지점에 다다랐다.
이곳이 아니면 볼 수 없는 모습이다.

정신차리고 본 내 모습에 푸욱 하고 웃음이 나온다.
산죽숲에서 치룬 육탄전[?]탓에 온 몸이 흙투성이에다 젖은
모습이 늪에서 헤엄쳐 나온 사람 같다.
저 山頂의 사람들은 이해가 안될 일이다.
투명하고 질리도록 맑고 찌는 듯한 이 날씨에 저런 모습이
있을리 없다고 여길 것이므로. . [웃음]

힘든중에 미소가 피어 오른다.

갑자기 선비샘이 가까워지는 신호로 비교적 평온한
오르막이 나오면서 뜻밖의 손님을 만난다.
비비추.
보랏빛 수줍음이 무거워서 오히려 고개숙인 가녀린 꽃
대에 의지한 군락의 모습은 지난번 우중산행의 노고
에서 반야로의 길에서 보았던 "노루오줌" 군락의 환상
을 재현시켜 주고 있다.
왜 이럴때 마다 젖은 그들의 품속에 눕고 싶은 걸까?
다시 숲은 축축하다.

구름이 오고 가고 산아래의 찌는듯한 더위와는 관계
없이 산그림자 깊은 선비샘 주변은 신선의 동네다.
벽소령까지의 길에서는 이제 서로 시샘까지 하면서
다투어 피는 꽃들로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는데. .
나는 지리산이 그동안의 의식있는 이들의 노력으로
많은 것을 잃으면서도 성숙해졌음을 느낀다.

두 아들을 데리고 산행에 온 어머니의 활기찬 모습에
잠시  또 웃는다.

벽소산장에서 의신 삼정으로 하산하는 길. .
내려 걷기에도 아슬하고 위험한 그길은 여전히 이끼낀
자칫하면 발을 헛딛기 위험한 채로 습한 제 기운을
담북안고 남아 있다.
이런,
발밑을 보기에도 아슬한 그 길에 보랏빛 층층이"산수국".
날 유혹하는군. . .
유혹에 져 보는 거다. 역시 넘어 질 뻔 하다.

그래도 천하의 미색이로군.

침침한 음지 사이를 한줄기 햇살이 파고 든다.

사족:참고로 이 길은 거의 오르는 이가 드물고
     특히 해가 들지 않는 이끼낀 전형적인 돌길이
     상당시간 이어지는 것을 염두에 두면 된다.

사진 심기섭님의 "들꽃 사랑"에서 빌려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