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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정진원의 지리산이야기

정진원 프로필 [moveon 프로필]
산 이야기
2002.06.11 11:00

사라진 폭포--지리산 계곡美

조회 수 1802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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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불일 폭포
계절, 날씨에 상관없이 수량이 일정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비교적 비가 온 다음엔
그 수량이 풍부하다. 겨울 내내 얼어있는 폭포가 볼만하다.


오래전엔,
여름 산행의 묘미는 장마철에 있었다.
일부러 엄청난 비가 온 뒤, 혹은 비가 내리는 중에 꼭 지리산엘 가던 위험한 취미는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사건들이 보도 되고 나서 부터 중단되었다.

언젠가 영남 알프스의 일부 구간인 천황산과 재약산을 잇는 산행을 장마철에 시도
한 적이 있는데 사실 사자평 같은 너른 초원 지대는 안개가 자욱한 탓에 이미 길을
잃은 상태였고, 비는 숲이 보완해주는 지리산 숲에서 맞는 것보다 더 심각한 상태
로 쏟아지고 있었다. 길을 찾는 감각이 없었다면 높지도 않은 산에서 영낙없이 미아
가 되어 아마 무슨 일이 일어 났을 지 모를 일이 었다.
얼음골로 하산해서 사람들의 품으로 돌아 왔을 때,
"귀신이가? 사람이가?" 하던 마을 사람들의 반응에 오히려 내가 낯설어하자, 여기
저기서 비때문에 입은 피해를 이야기 하고 죽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부지 기수 였다
며 무모한 나의 산행을 비난 했었다. 집으로 가는 길은 더 우스웠는데 버스가 시내
외곽에서 침수된 도로 때문에 멈추어 버린 것이었다.
택시도 일찌 감치 포기한 길을 몇시간을 걸어서 검은 밤을 헤쳐 집에 들어 서서
엄청난 비난을 받았지만 자연이 주는 폭행에 대해서는 아직도 그 매력에 화가 안 난다.
물론 안전하게 행동하고,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질 수 있을 때만 가능한 일이지만. .

하여간에,
지금은 튼튼한 철다리가 놓여진 백무동에서 한신 계곡들로의 진입구간은 한때는
무심한 바위더미들만 놓여진 계곡초입의 모습이었다.
비가 많이 오면 영낙없이 통제 되어 버리던 그곳을 제지 당하지 않기 위해 처음부터
계곡을 타고 올라 무작정 산행을 시도 했다.
물은 상상을 초월하게 불어나 있었는데 우선 등산화를 벗어서 끈으로 둘을 묶어 가슴
에 걸었고, 배낭의 무게가 뒤로 밀리는 것을 방지 하기 위해 앞으로 매었고, 하여간
덜덜 떠는 후배 아이를 위해 준비한 자일로 길게 서로를 묶고 허리가 넘는 물길을
헤쳐 나갔다.
짧은 거리다.
그러나 그 몇분이 영원 같이 여겨지던 경험은 누구든지 경험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웃음] 그리고 사람들이 잘 믿지도 않았다. 그냥 그곳을 어떻게 건너 들어 왔느냐고 나무
라는 것 같았고, 혼내고 싶어 하는 모습들이 었을 뿐이다.

산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은 다시 한신 지곡이었다.
추적거리는 비를 다시 맞으며 하산하는 길에서 어디선가로 부터 우뢰와 같은 진동이
느껴 졌다.
폭포 이름이 무명이란다.
영혼 하나하나를 적시듯 미세한 물보라는 얼굴의 감촉을 최대한 자극하면서 멋진
모습으로 한껏 자신을 과시하고 있었다.
그 수량이 어떠 했을 까는 짐작이 갈것이다.
아!!! 깊은 산중에서 저런 모습을 만나는 것은 너무나 기분좋은 행운이다.
주변이 모두 어둠처럼 진한 초록이 되버리는 雨期의 지리 숲속은 빛이라고는 볼 수
없는 암흑같은 분위기가 연출되버리기 때문에 그 어둠 사이로 다가서는 하얀 포말의
폭포는 숲의 생명력을 응집하여 표현하는  유일한 의미가 된다.
그럴때. .
삶의 환희를 만나는 것 같은 기쁨으로  지친 몸, 젖은 몸등은 별로 문제가 안된다.

다만,
"왜 무명 폭포일까?"
그 질문만이 유일한 불만이었다.

그 질문의 해답은 다음 산행에서 얻었다.
마른 산길을 헤치고 오르다 무명 폭포가 있는 그곳에 다시 들었다.
이게 웬일인가?
그 화려한 자태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검은 바위덩이에 실오라기 같은 물줄기만
이 여러갈래 표면을 적시고 있었던 것이다.
잘못들어 온것인가 하고 여러번 반복해서 길을 더듬었지만 마찬가지 장소 였다.
아!! 이제 알았다.
폭포의 이름이 왜 "무명" 인가를. . .

비가 올때는 화려한 여신의 모습이었다가 비가 오지 않을때에는 그 모습을 감추어
버리는 조화에 이름을 굳이 붙이는 것도 무리였을 것이고, 차라리 "이름없는 이름"
이 어울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이해가 되었다.물론 이것은 내 개인의 지극
히 감상적인 해석에 불과 하지만. .

이젠 그 신기루 같은 현상을 보기 위해 장마철에 계곡 산행을 한다던가 하는 모험은
하지 않지만 솔직히 그 때의 감동적인 느낌을 완전히 잊어 버리고 살고 싶지는 않다.
언제고 다시 그런일들을 하겠지만 . . . [웃음]

언젠가 겨울에 들어섰다 물 길보다 더 장관이던 얼음 덩어리의 대성폭포를 보았던
감동은 "겨울에 그런 협곡을 가다니" 하시던 어떤 어른의 비난을 막론하고라도 언제
든지 시도해 보고 싶은 매력적인 위험으로 남겨두고 있다.
영신대에서 내려다 보자면 대성폭포의 여름은 물보라가 피어오르는 소리가 웅웅
거릴정도로 신령스럽다. 그러나 정작 가을에 그곳을 가 보면 너무나 초라한 바위
덩어리로 변해 있는 실망을 갖고 돌아 온다. 그러나 다시 겨울을 만나면 쏟아질 듯한
물길 그대로 얼어 버린 제 1단 부분의 모습은 두고두고 잊을 수 없는 환상을 남긴다.
설악의 겨울 산행에선 그런 폭포의 결빙 상태는 얼마든지 볼 수 있다.
그러나 설악과 지리는 겨울 잠을 자는 모습 자체가 다르다.
지리산의 폭포가 그 흐르기를 멈추는 것은 일상이 아니라  특별한 자아의 표현 같다.
그저 흐르고, 보듬고, 감싸주는 대상만이 아니라는. . .

사막의 신기루 같은 지리산의 변화하는 폭포의 모습들. . .
얼마나 매력적인가?[웃음]
  • ?
    yalu 2002.06.11 14:53
    재밌네요.^^
  • ?
    허무공 2002.06.12 11:05
    moveon님의 깊이와 폭을 가름할 수 없어요
  • ?
    부도옹 2002.06.12 13:31
    언젠가 파김치가 되어 산을 내려오다가, 탁~ 마주친 '무명폭포'를 떠올릴 때면 아직도 그 묵직하던 물줄기가 가슴속에 차오릅니다. ^^*
  • ?
    바람 2002.10.04 21:38
    내랑 비슷한 사람이군 후하하하 비가 엄청스리 오면 비맞으러 눈 엄청스리 오면 눈 맞으러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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