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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정진원의 지리산이야기

정진원 프로필 [moveon 프로필]
산 이야기
2002.05.28 11:02

인연이야기

조회 수 2232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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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편지함을 뒤지다 우연히 발견된 색바랜
한통의 편지.
아득하지만의 곱고 젊은 추억으로 아련한 아픔
같은 것이 느껴지는 유물 같은 것이다.
석장의 편지는 그러나 정갈하게 배어나오는 힘이
있는 글씨다.

"귀의 삼보하옵고, 보내주신 글을 잘 접수 하였습니다.
소임자로서 동안거 준비로 다소 답신이 늦어 졌습니다.
하찮은 산승이 일기 일념을 소중히 생각하오다 보니
이번과 같은 일이  생기게 되었나 보오.
보살님께서 어떠한 내용으로든 마음의 짐을 느끼신
다면 이 글 접하는 즉시 벗어 던지세요. 불경의 팔만
사천 경전의 그 핵심이 무엇인고 하니
'일체가 공한데 어디에 얽매일 것인가? 부지런히 마음
닦아 대 자유인이  되어라' 입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최소한의 자유와 권리마저 포기하거
나 구속하는 어리석은 중생이 되어서는 안되지 않겠소?
이번 겨울은 스님들의 용맹정진 기간으로 정하고 모든
접근을 금하는 시기  임으로 보살님이 겨울에 이곳에
한 번 들르겠다는 소원은 이루어 질 수 없는 듯 싶습니다.
다시 춘삼월을 기약하심은 어떠 하올지. . .
어차피 제행은 인연따라 이루어 지기 마련이니까요.
분망한 시간이 지나 고 나면 불서 몇권과 큰스님 말씀
을 든 테잎을 보낼 테니 이 기회에 불교 에 대해 제대
로 이해하는 기회를 가지시도록 하세요.
그럼 이 산승과의  인연 공덕으로 부처님의 가피가
세세생생 함께하길 바라면서 늦은 시간  졸필 이만
줄이겠소. 불기 0000년 음력 10월에 봉암사 山人 도석."


그 해 가을은 유난히 은행잎의 노란 빛 만이 생
각난다.
말로만 듣던 봉암사엘 들렀다..
희양산이라는 山안에 선승의 요람으로 천년을 이어온
사찰에 대한 동경은 늘 있었다. 그리고 등산으로는
그곳으로 들어 설 수 없다는 곳이어서 더욱 애타게
가보고 싶어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오랜만에 등산복 차림이 아닌채로 가는 것에 대한
홀가분함도 있어서 즐거운 여행이었다.
그러나,
문경을 지나는 모든 길은 까만 석탄이 묻어나오는
강물들을 끼고서만 이어졌다.  아름다운 산천의
갈빛 풍광에도 깊은 삶의 그늘이 보이는 듯해서
그것 들을 제대로 감상하는 것이 죄악처럼 여겨 질
정도로 착찹해지는 심정.. . . .  
마치 미로를 가는 듯한 착각 속에서 가은이라는
예쁜 소읍에 도착했을 때에는 길가에 노오란 가로수
들의 투명한 빛깔은 사람의 정신을 뽑아 놓을 것만
같은 혼란을 준다.
나는 그 뒤에도 늘 은행나무 하면 그곳 "가은"이라는
곳을 떠올릴 만큼 그 때의 영상을 거두지 못하는
습관이 생겨버렸다.
어디에고 그때 그곳의 은행 빛만큼 아름다웁고 슬픈
영상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루에 한번도 차가 들어오지 않고 걸러버린다는
"봉암사".
다른 모든 곳 처럼 근처에 숙박할 민가는 있겠지
했던 나의 순진하던 생각은 여지 없이 어긋나고
도무지 사람이 사는 것 같지 않는 그 곳에는
늦가을 황량한 바람만이 나를 반기고 있었다.
용기를 내서 근처의 여러가지 탑기들과 문화재를
살펴본뒤 천천히 절의 입구로 전진을 했다.
일반인들의 철저한 통제가 불문률처럼 되었던 그
곳은 이미 산문 밖에 보초실을 세워 놓을 만큼
철저했는데 이상하게 그날은 아무도 그곳을 지키
지 않는 것이었다. 사람이 너무 없다 보니 잠시
소홀한 탓이겠거니 하고 점점 절가까이 가자 거기
에는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다리가 수북히 쌓인
낙엽속에 덩그라니 놓여 있었다.
산문과 세속을 잇는 유일한 통로였던 것이다.
잠시 머뭇거리는 내 모습을 저편에서 지켜보는
이가 있었다.
문이 없는 절, 보물로 지정된 극락전이 일품이라는
그 절에는 문이 따로 없었다. 전형적인 선종의 절
다왔다. 그저 그 다리가 승과 속을 가르는 표시 였
을 뿐이었는데 저 넘어 스님의 큰 소리가 들려오는데. .
"어디서 오셨습니까?"
이 물음에 정확한 답은 "참배객입니다. 부처님께
절을 하고 싶은데요" 여야 했다.
그런데 나의 대답은 천만 뜻밖에도
"네 여행객입니다. 0 0 에서 예까지 일부러 왔습니다.
들어갈 수 없겠 습니까?" 였다.
이런 이런, 결코 허락 받을 수 없는 대답이다.
그런데도 그 맑은 눈빛에 질려 버렸는지 오히려
가당치 않은 대답이 불쑥 나와 버렸던 것이다.
아마 나는 그 이유가 산빛보다 강했던 그 차고
이지적인 선승의 눈빛에 질렸던지, 아직 세상에
대해 수줍었던 세월 탓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나의 진입은 실패였다. 정말 어이없게
돌아서 나오는 나의 뒷덜미에
" 애기 보살님, 잠시만요"
하는 다른 목소리가 달려든다.
돌아다 보니 지금생각하면 마악 출가하여 입구를
지키는 가장 힘든{?}일을 맡았던 스님이었는데
잠시 점심 공양을 하러 간 사이에 내가 불쑥
들어선 것이다. 그 덕분에 임무 소홀로 잠시전 그
스님께 야단을 맞았다고 했다.
자신이 도와줄 수 있음을  선선히 밝히고 자신의
힘으로 다시 절에 들어 가볼 의향이 있는가를 내게
물었다.
나는 거절 했다.
안되는 일을 되게하는 데에는 아마 아까 그 고참
스님에게 자신을 낮추어야 한다는 문제가 발생할 것
이었는데 내 개인의 호기심 때문에 그 스님에게
그런일을 시킬 수는 없는 것이었다.
그냥 돌아서 나오는 것이 옳은 일 같아서 돌아 가길
원했다.
그 덕분에 걸어나오면서 많은 이야기를 했다.
오히려 내게는 그것이 더 좋은 여행의 묘미가 되었
던 것이다.
이런 마음을 알지 못하는 그로서는 걸어오는 내내
마치 내가 허망한 발걸음을 돌리게 된 것이 자신의
죄인양 안타까이 여겨 주었다.
그러면서도,
돌아갈 차편이 없는 것과 이곳에는 민가라는 것이
거의 없는 것과 자신들의 외출은 멀리 가은에서 택시
를 불러들여 가능해진 다는 것을 알려주면서 대책없이
찾아든 애기보살[그 분의 표현]을 어찌 해야 하는가
고민하는 것 같다.
사실은 거의 비슷한 나이인 것을 이야기 도중에 알았지만 .. .
내 생각은 그저,
무슨 이유에서건 이런 좋은 곳으로 출가를 해서 그
첫 인연이 참으로 다행스럽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어쩔 수 없는 쓸쓸함으로 그 옆모습을 보았다.

차가 도착해서 아무 의식없이 올라탄 나는 웬지 돌
아 보기 싫어서 앞만 보고 있었다. 스님은 불쑥 앞
열린 유리창으로 돈을 들이민다. 놀랄 틈도 주지 않고.  . .
운전기사를 만류할 기회도 없이 스님은 뒤를 돌아보지
않은채 저멀리 떨어져 나가고 운전기사는 지불된 돈의
액수가 분명히 정상적인 액수보다 많은 것에 신이나서
주절주절 말을 붙여 대기 시작 한 것이다.
아차 싶어서 뒤를 돌아다 보았지만, 이미 멀어진 저
만큼에서 가만히 지켜보는 그를 어찌 할 수가 없었다.
낯선 곳에서 그것도 낯선 기사에게 스님께 되돌려
드리라고 돈을 줄 수는 없었고[기사가 불량해 보였으
므로] "가은"에 도착해서 문경으로 접어들려는 기사
에게 내려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리고 정확한 돈을 계산
하고 나서 남은 돈을 돌려주기를 요구했고 기사도
어쩔 수 없이 돌려주었다. 기사가 간이 정류소에 나를
내려주고 떠난 뒤에 나는 까닭 없이 흐르는 눈물을
훌쩍이고 있었다.
바람이 나를 때리고 눈물 사이로 드는 찬 공기는 가슴
까지 깎고 그때 어둑해지는 가은읍의 은행 잎들이
그런 나를 놀란 모습으로  보고 있었다.

한참을 낯선 정류소에서 슬퍼했다. 어쩌면 타향에서의
나그네의 어줍잖은 애상 같은 것이어서 더욱 감정이
산만해졌을 것이지만 그때에는 그냥 그렇게 눈물을 흘리
는 일이 마음을 달래주었던 것이다.

집에 돌아와 편지를 썼다. 그 때 불리우던 "도석"이라는
법명을 기억하고 편지를 쓰고 고마움을 갚을 기회를
갖기를 바란다는 나의 편지에대한 그의 답이 바로 위의
글이다.

동봉한 소포꾸러미에는 테잎과 책이 들어 있었고 ,나는
그것을 꼭 필요한 사람에게 주었다.
나는 한 동안 멍한 상태로 그 글을 읽고 또 읽었다.
아 이런 것 이겠구나, 자유로워 진다는 것,
베풀었다는 생각이 없는 것.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것, 물질에 공한것,
그것은 나에게 이론에서는 줄 수없는 확실한 현실에서의
깨달음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뒤에 그를 까맣게 잊어갔다. 자신의
현재의 삶에 다시 젖어 가서 그런일들이 있었던 것 같
은 시간조차 잊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이 빛바랜 편지는 나를 이상하게 슬픔으
로 몰아 넣는다. 그의 "一期 一念을 소중히 했다"는 대목
에서 그만 가슴 밑바닥까지 쓸어드는 여운이 생긴다.
그토록 하찮은 인연에도 소중히 했던 그런 마음씨의
소유자에게  한때지만 어쩌면 마음아프게 했을 지도
모르는 나의 몰염치가 이렇게 많은 시간이 흐른뒤에도
아픔으로 남는 것이다.
나의 몰염치란 그 뒤에 그 분의 공부에 방해가 되지
않으리라는 생각으로 편지 같은 것 조차를 하지 않았
다는 점이다.
최소한 늘 잊지 않고 있다는 그래서 스님 덕분에 좋은
마음의 공부를 잃지 않는 다는 글이라도 계속 보내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를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뒤의 사고 방식에 많은 변화를
가지게 되고, 그 스님의 가르침 대로 "어디에도 얽매이
지 않으나 최소한의 권리나 자유를 포기 하지 않는"
대 자유인이 되는 것에 게으름을 피우지 않았다.
그것으로 그 몰염치에 대한 보상을 하려는 것처럼. .
그리고 또한,
얽매이지 않으나, 아주 적은 인연에 소홀히 하지 않는 것이
진정으로 자유로워 지는 인연의 법이라는 것을 스스로 실행
하고 옮기는 것에 주저 함이 없이 살고 있다.

가르침이라는 것은 그렇게 오는 법도 있다.


      



  • ?
    아영호 2003.03.25 21:14
    속세를 벗어난 스님과의 인연
    구구 절절히 맘에 와 닿습니다
    스님과의 짧은 인연이
    기~인 삶 속에
    알맞게 간이 배인것 같군요
    참 !
    모처럼
    맘에 양식을 얻어 가옵니다,
    보살님 에게 부처님의 ...........
  • ?
    moveon 2003.05.07 15:49
    아영호님께도 부처님의 가호를. .
  • ?
    parkjs38 2003.09.07 23:32
    나무관세음보살!
  • ?
    길없는여행 2003.10.01 11:08
    .......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내 일상에서 다시 되새김 할 수 있는 부처님의 말씀입니다.
    얽매임과 끄달림이 없지만 인연에 소홀함없는 그런 아름다움입니다.
  • ?
    산도깨비 2007.02.08 08:20
    一期一念....
    얽매이지 않으나, 아주 적은 인연에 소홀히 하지 않는 것이 진정으로 자유로워 지는 인연의 법이라는 것을.....
    항상 소리없이 많은것을 배워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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