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겨울 지리 계곡으로 다이빙 하다.

by moveon posted Oct 31,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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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어 있는 구룡폭포에서. . --오돌오돌

제목만 보면 대단한 용기를 지닌 기인 에 관한 이야기 같지 않습니까?
그런데 속 사정은 매우 다르답니다.[웃음]

어느해 겨울이었던 가 봅니다.
지리산 입산 자체만으로도 행복했던 시간들이었겠지요?
가볍게 청바지를 입고 떠난 것을 보면 분명 산행을 계획한 것은
아니 었을 것 같습니다.
구룡폭포로 들어가는 길은 얼핏 한가로워서 유혹이 심합니다.
옛 사대부들의 놀이터로 족히 알맞았을 법한 육모정의 모습이
또한 그 유혹을 부추기기도 하구요.
아마 이때에도 "잠시만"하는 마음으로 들어섰던 듯 싶습니다.
그러나,
항상 그렇듯이 계곡을 낀 오솔길은 결코 그렇게 버리고 나오기 쉽지
않습니다. 매혹적이거든요. 들어 설수록. . .

지금과는 다르게 있어야 할 곳에 적절한 안전 시설이 없었습니다.
덩그라니 넓은 계곡에 걸린 다리 외엔. . .
그런데 가다 보니 제가 정상적인 입구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계곡을
가로지르는 곳으로 들어서서 등산로와는 벗어난 곳에 있었습니다.

저 너머에 등산복을 입은 여성이 한 분 보였습니다.
아무도 없는 겨울 숲에서 만난 기쁨!!!
소리 소리 질러서 서로 같은 목적지로 가는 것이 확인이 되면서 저는
제가 길을 잘못 들어선 것을 알았지요..
어디선가는 만나는 길이 되겠지만 계속 한다면 점점 깊어지고 위험해
지는 "겨울 계곡 산행"을 할 위기에 봉착한 것이 직감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녀처럼 랄랄 거리면서 길을 걷는 기분이 되려면,
1.오던 길을 돌아서 가든지,
2.아니면 계곡을 건너 낮아 보이는 벼랑을 오르던지. . .
.
하여튼,
"이쯤이면" 싶은 지점에서 계곡을 잘 건너는 가 싶었는데 바로 앞에
길로 오르기 위해 기어 올라야 하는 난공불락 같은 벼랑이 버티고
있었습니다.
올려다 보니 멀리서 보기 보다는 훨씬  높았고,
손이나 발이 닿는 부분들이 매우 밋밋해서 오르기에는 너무나 벅찬
상태였습니다.
지금은 그 장소를 아무리 찾으려 해도 변해 있어서 찾을 수가 없더
군요. 계곡의 주변이 많이 변한 탓으로. . .

오지도 가지도 못할 입장에서 저는 그냥 오르고 있었습니다.
멀리서 혹은 가까이서는 그녀의 나를 부르는 소리가 정겨웠지만,
하여튼 그 정겨운 소리는 허공에서 맴돌고 나는 마치 그 소리를 잡
으려는 듯이 마음을 놓다가. . 방심하는 순간...
저는 계곡으로의 불가피한 다이빙[?]을 했습니다.
쉽게 말하면 계곡으로 풍덩 빠진 것이지요.ㅎㅎㅎㅎㅎㅎㅎ
온 몸이 몽땅. . .
어디 다친데가 없나 하는 걱정 보다 더 고통 스러웠던 것은 그 차거운
"물의 느낌" 이었습니다.
한참을 정신 없다가 헤매어 나온 곳에서 다시 돌아가서 제대로 길을
찾기 까지 그 추위는 정말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다행히,
보는 이가 없는 탓에 길섶 숲에 들어가서 옷을 벗어 물기를 짜내어
다시 입고 길을 재촉했습니다.
오히려 벗은 상태가 입은 상태보다 더 나았다면 이해가 되겠지요.
걸어야 했지요. 움직이지 않으면 죽을 것 같이 괴로웠으니까요.

위 사진은 아마 구룡폭포에 도착하자마자 아까 만났던 그 여인이
기념하자면서 장난스레 포즈를 취하게 해서 찍혀진 사진입니다.
보온병에 가지고 온 그녀의 커피 한잔이 절 살려 낸 것 같았습니다.
그날따라 ,
오랜 산행 경험이 있다던 그 부인 역시 버너를 휴대하지 않은 상태
였답니다.
진원이의 혹독한 시련의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웃음]

Anyway,
거대한 바위위에 드러누워 승천하지 못한 "구룡폭포"는 그대로 얼음
이 되어 저를 반겼습니다.
풀어진 긴장 탓으로 몸은 다시 얼어 붙는 듯 했습니다만 늘 그런 것
처럼 저는 기쁨에 "용"[?]의 품에 안겨서 입맞춤까지 했었답니다.
마치,
승천을 포기한 용의 숨소리를 듣기 위한 두근거림으로. . .
점점 추워 왔습니다. 어디로 가야 할까를 망설였지만,
그래도  추운 몸을 이끌고 다시 길찾기는 이어 졌습니다.
폭포를 이루게 되는 작은 개울을 따라 주천면 호경마을을 더듬어
고기마을에서 "운봉"으로 이어지는 "길 따라 걷기"를 하면서 만났던
한적하고 조용한 모든 것들은 젖은 몸 따위는 상관할 바 아니 듯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오래된 [후손의 말로는 110년 정도 되었다는]초가집에 들러 주인이
내어 주는 홍시를 먹는 여유도 가졌으니까요. [웃음]

사진 속의 흠뻑 젖은 모습속에선 고통이 보이는 듯 합니다.
지리산을 마치 산책이라도 하듯이 준비 없이 들어섰다는 죄목하나
만으로도 그런 취급을 받아도 쌉니다.
좋은 교훈이 되었답니다.

어느 곳이건 지리산 자락에서는 절대로 마음을 놓지 마세요.

아쉽게도 최근 들러본 "구룡의 처소"에는,
"박수무당"의 신명나는 박자에 흥겨운 사람들의 현란한 굿거리 때문에
온통 주변이 아파 보였습니다.
신당이 차려져서는 이미 승천 해버린 용의 침소를 마구 흙탕물로 범벅
을 해 놓았더군요.
이곳 저곳에서,
사람과 개발이라는 무서운 경쟁자로부터 하나 하나 포근한 자연의 품이
그 포근함을 잃어 가고는 있지만. . . . . .
그래도, 그래도,
지리산에 누웠었던 용의 숨소리는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