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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산행기>산의 추억

2004.12.04 16:47

추억의 오버랩...(5)

조회 수 2780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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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지리산에 가면 뭐가 좋아요?"

당시 직장에서는 '오빠'라는 개념이 없었다.
나이가 많고 적음을 떠나서 '남자사원'은 무조건 '아저씨'였다.
휴가 날짜가 잡혔다.
"아저씨, 이번에 산에 갈 때 우리랑 같이가요!"
같은 부서에서 일하는 아가씨가 조심스런 제안을 한다.
"우리?"
"저 포함해서 세명인데...."
평소 부서원들과는 이물없이 지내던 사이라 ok했다.
직장 산악회에 가입을 하고 적어도 한달에 한번은
정기적으로 산행을 하던 아가씨들이라 걱정은 없었다.
휴가 일주일 전부터 점심시간이면 모여서
코스를 정하고 끼니를 해결할 식단을 짜면서 서서히
산행준비에 마음이 설레인다.

.... 사무실 한쪽에서는 이 모든 것을
지켜보는 아가씨가 있었으니....

빈틈없는 계획과 철저한 준비를 했지만 하늘이
도와주지 않는다.
C급태풍 주디.
수요일 오후부터 비를 뿌리기 시작해서 금요일 퇴근 무렵까지도
기세가 수그러 들지 않아 동료 남자사원들은 고소해서 어쩔 줄 모른다.
"아저씨, 어떻게 해야돼요?"
"...."
"하필 태풍이 불게 뭐야~~ "
"내일 배낭에 다 챙겨넣고 준비해서 출근해. 한번 가보자."
심난한 마음들이었지만 그렇게 휴가는 시작됐다.

7월29일. 토요일
비는 그쳤지만 진한 먹구름이 온통 하늘을 뒤덮고 있다.
토요일 정오에 퇴근을 해서 진주행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다.
코스는 중산리-천왕봉-장터목대피소-한신 지계곡-백무동이다.
점점 구름이 걷혀가고 눈부시게 푸른하늘이 펼쳐진다.

중산리.
태풍 때문에 '입산금지'라며 매표소 입구 야영장에는
산행객들로 만원이다.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일행 한명과 텐트를 설치한다.
물론 나머지 둘은 이른 저녁식사를 준비하고. ^^*
그때 옆자리에 남과여 딱 둘이만 와서 텐트를 설치하는데 볼 만하다.
한참을 지켜보다가 나서서 거들어 주었는데 이후로 쭈욱
'두지붕 한가족'이 되어 함께하는 처지가 되었다.
저녁식사를 맛있게 먹었지만 '입산금지'가 언제 풀릴지 걱정이었는데
매표소에서 안내방송이 나온다.
"내일 아침 입산금지를 해제합니다!!"
"와~~~~~~~~~~~~~~~~~~~~~~~~ "
그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함성을 지른다.
몇무리는 통기타를 튕기며 밤을 지새우고
'우리' 넷은 이렇게 한텐트 안에서 잠자리에 들었다.

2박3일의 일정이라 바쁠 것 없다.
오늘 목표가 천왕봉 거쳐서 장터목 대피소까지만 가면 되니까
느긋하게 일어나 아침밥을 지어먹고 출발이다.
옆집 '남과여'도 우리의 일정에 맞추기로 한 지 이미 오래다.
일행중 한명이 충격적인 발설을 하기 전까지는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이야기도 하면서 산행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인재언니(일행 가운데 한명)는 산악회에서 지난번 월출산 갔을때
업혀서 내려왔다. ^^* "
" @#$%@*#*\ "

두달전 산악회 정기산행으로 월출산을 올랐던 회원들이
아가씨 한명때문에 4시간이나 지체한 사건(?)이 있어서 급기야는
회사 '동호회 지원규정'까지 고치게 만든 일이 있었는데 그 장본인이
바로 일행중 하나라니.... ㅜㅜ

기다렸다는 듯이 그녀가 처지기 시작한다.
5분 산행하고 10분 휴식하지만 5분동안 올라간 거리는 고작 20m정도다.
살살 달래보기도 하고 겁을 줘보기도 하지만 별로 효과가 없다.
두명은 시야에서 사라진 지가 한참이다.
어떻게 올랐는지 나도 모르겠다.
천왕봉에 도착했을 때 해는 뉘엿뉘엿 먼저 올라왔던 일행은 보이지 않는다.

장터목.
지리산에서 해가 지면 아름다운 광경 두가지가 있다.
밤하늘에 반짝거리는 별빛과 야영장 들머리에서 바라보는
야영장 풍경이다.
불을 밝힌 텐트들이 여러가지 색깔로 산중에서 또하나의 도시를 이룬다.

일찍 도착한 일행과 옆집 남과여가 저녁식사를 준비해서
지쳐버린 두 육신을 구제 해준다.
생각해보니 이렇게 피곤한 산행은 처음이다.

날이 밝았다.
오늘 역시 바쁠 것없는 일정이다.
쉬엄쉬엄 한여름의 녹음을 즐기며 하산을 한다.
어제와는 영 딴판이다.
장군바위, 내림폭포, 무명폭포....
큰비가 온 뒤라서 폭포에서 떨어지는 수량이 많아 보기가 좋다.
마음이 편하니 모든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힘들지 않게 하산을 하고 백무동 버스종점 아래 계곡옆에 텐트를 치고
점심을 준비한다.
맛있는 식사와 물놀이에 시간 가는줄 모른다.
"같이 하루만 더 놀다 가면 안될까요?"
옆집 여자의 제안에 '우리'들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엄마, 이제 산에서 내려왔는데 막차가 가버렸네. 내일 일찍 들어갈께~~ "
"응, **가 하루 더있다 가제~~ "
"엄마 나야~~ ...."
제각각 나름대로의 보고를 마치고 젊음을 만끽한다.

2년후....
손한번 잡은 적 없던 '옆집여자'에게서 propose를 받았다.
그동안 산행중에 찍었던 사진을 건네받는다며 옆집여자의 동네인
창원으로 초대되어 아구찜을 맛있게 먹었고 나중에 내가 그녀를 초대해서
저녁식사와 무등산 산행을 했으며 또한 틈틈이 일상을 담은
편지가 오고갔을 뿐인데 당황스러웠다.
그땐 이미 '사무실 한쪽에서 조용히 지켜보던 아가씨'에게 온 마음을
빼앗겨버린 터라 정중히 거절 할 수 밖에 없었다.

지금....
가장 심하게 열병을 앓았던 15년전의 기억들이
편한세상님과 아낙네s님, 하회별신님, 허허바다님의
'추억의 오버랩'을 읽고 아름답게 떠오릅니다.
그 사람들 모두 행복한 삶을 살고 있겠지요.
그러기를 기원했습니다.

지금 아내는
일행중의 한명도, 옆집여자도, 사무실 한쪽에서
조용히 지켜보며 내마음을 가져가 열병을 앓게했던
그 아가씨도 아닌 나의 '옛사랑'의
마지막 이랍니다.

부도옹
  • ?
    허허바다 2004.12.04 19:30
    몇일 전 뵈었던 아주머니가
    등장인물중 누구일까 하며
    음흉한 웃음 지우며 읽어 내려왔더니 허! ㅎㅎㅎ
  • ?
    섬호정 2004.12.04 22:31
    .... 사무실 한쪽에서는 이 모든 것을
    지켜보는 아가씨가 있었으니....이 대목에서 현지엄마를 떠올렸더니 실패이네요...추억의 오버랩을 요로코롬 똑 부러지게 잘도 기억해서 쓰셨네요.재니있고마~ 옆집 남과여와, 한 텐트안의 님들까지.. 좋은 인연
    되어 편안하게 행복하게 지내세요
  • ?
    진로 2004.12.04 23:58
    @.@
  • ?
    하회별신 2004.12.05 21:07
    저도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읽어 내려왔더니...아깝? ...
    행복하셨겠습니다.
    부럽기도 하구요.
    추억의 오버랩 시리즈(?)가 너무 재미있어집니다.
  • ?
    아낙네s 2004.12.07 16:31
    소설의 한 귀퉁이를 읽어내려가 듯 했습니다.
    저 또한 음흉스런 마음이 살짝 들어왔으니 ..
    약간의 실망감이 덩달아 따라오더라구요 ㅎㅎ
    저마다 지리산을 품고 떠올리는 기억들 모두 엿볼 수는 없겠지만
    언제 들어도 편안해지는 이야기입니다.
    추억의 오버랩 시리즈 다음은 누구시려나... ^^*

  • ?
    sliper 2004.12.08 10:58
    님들의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어서,,
    지리산의 추억에 있는 저의 첫산행의 글의 제목을 바꿨습니다..
    "추억의 오버랩"으로..ㅎㅎ
  • ?
    신후 2004.12.08 15:42
    언제나 든든한 총무님!
    그 시절부터 기획,준비철저...오브 미래를 위한 준비된 총무님(?)
    이셨군요.그 시절,그리운 얼굴들 모두 잘 살고계실까?
    한 번씩 우리 총무님 그리면서!어~허 누구에게 야단 맞고 싶은겨
    시방...
  • ?
    오 해 봉 2004.12.09 23:26
    부도옹님 젊은날의 러브스토리 네그려,
    정답고 아름다운 지리산은 능선따라 사연도 추억도 많네요.
  • ?
    해성 2004.12.10 01:04
    재치만점, 센스만점의 영원한 오브넷 부동의 총무님ㅎㅎ
    부도옹님 지리사랑과 엮어진 아쉬움 가득한(러...리)ㅎㅎ
    재미있습니다.
  • ?
    룰루랄라 2006.02.08 20:08
    ㅠㅠ 감동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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