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년도 지리산 등반

by 김현거사 posted Oct 11, 2005 Views 7341 Replies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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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년도 지리산 등반

이중근이 하고 지리산 오른 것이 어언 42년 전이다.
63년에 대학 합격 발표 본 후,자랑삼아 호랭이뺒지 가슴에 달고 진주에 내려가 밀림다방에 갔더니,중근이 창환이 한탁이가 있었다.넷이 지리산 등산을 하기로 작정,우선 지리산 밑 한탁이네 집에 갔다.

집 앞 냇물에 나가 바위를 오함마로 내려치니,중근이가 그때 힘이 얼마나 좋은가?이 바위 저 바위 얼음 밑에 동면하던 피라미 모래무지가 기절해서 떠오른다.오염이 있나 공해가 있나 바께스에 이놈들을 가득 담고 배도 가르지않고,볏자락 들치고 움속을 뒤져 무우 꺼내 채를 썰고,함께 초고추장에 버무려 젓가락 가득 입에 넣고 막걸리 벌컥벌컥 마셨으니,그때 우리 먹성 하나는 좋았다.한탁이가 양은주전자 들고 들낙날락하면서 몇번씩 새 막걸리 사왔던 기억이 난다.

이튿날 법계사코스로 오르던 기억은 지금도 아찔하다.
그땐 날씨가 지금보다 차서,산에 쌓인 눈이 요즘보다 많았다.
좀 올라가니 몸이 눈 속에 허리까지 빠지고,길은 눈에 묻혀 보이지 않았다.길 잃고 한참 헤매다가 해는 지고,해 지니 눈바람이 불었다.요즘처럼 등산복 등산화를 제대로 신었나?배낭도 없고 그냥 군복 바지에 신발은 웍화다.해 져서 기온 내려가자 웍화 속에 스민 물은 슬슬 얼어붙고,면장갑 낀 손도 칼바람에 꽁꽁 얼어붙었다.

요즘같은 지정등산로가 없었다.이능선 저능선 긴가민가 왔다갔다 법계사 찾아헤매다,해떨어진 산속 기온은 급격히 냉기 품으며 식어서 나중에 우리 네사람은 어떤 계곡 밑에 기진맥진해서 주저앉고 말았다.여기는 눈이 우리 가슴께까지 쌓여 한걸음 옮기기도 힘들었다.계곡은 눈이 바람에 날려 쌓이므로 한걸음 잘못 딪으면 사람 전체가 눈 속에 쑥 파묻힐 정도였다.

그 깊은 눈밭 속에 산짐승 발자국이 있었다.
요즘 지리산은 반달곰 방사니 어쩌니 하지만,당시 지리산에 곰과 멧돼지는 흔했고,표범같은 맹수류도 있을 때다.눈 위에 난 짐승 발자국은 간격이 칠팔미터가 되는 것으로 보아 후자같았다.눈 위로 비호처럼 날라간 모양인데,거기서 이놈 만나면 우린 끝장이었다.

좌우지간 우리는 사나운 눈바람에 체온은 식어가지,캄캄한 산 속에서 눈물 그렁그렁 하다가 저멀리 능선 위에 법계사 불빛을 보고 살아났다.아득한 능선 위 불빛은 사람이 일부러 들고 이리저리 옆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여보세요!'
총각 넷이서 목이 터져라 고함 질렀고,
'누구요?거기 사람 있읍니까?'
법계사 보살님 목소리가 응답했다.

깊은 산중에 사는 분은 혹시 산속에 조난자가 있을까해서 밤에 이렇게 빈 산에 등불을 비춘다고 했다.

그 늦은 한밤중에 보살님이 해주는 따뜻한 쌀밥 얻어먹고,썰썰 끓는 장판바닥에 녹작지근 얼어붙은 엉뎅이 녹였다.

그리고 다음날.
'썰피까지 갖춘 부산대 산악팀도 여기서 하산했으니 돌아가라.'
는 보살님 간곡한 만류 뿌리치고 넷이 천왕봉으로 올라갔으니,지금 생각해도 버르장머리 없는 총각들이 우리였다.

올라가보니 천왕봉 일대는 눈이 아예 목까지 찼다.
천지는 흰눈 덮힌 동화의 세계였다.저멀리 산 아래 쪽만 푸른 숲이 보이고,그 너머에 희미한 것은 남해바다였다.눈쌓인 소나무 아래로 사람 두손바닥만한 곰발자국들이 어지럽게 나 있어 좀 두렵기도 했다.곰은 그 무게를 어떻게 지탱하는지 발자국이 눈 속에 5센티도 들어가지 않는 점이 신기했다.

여기서 창환이는 자기가 제일 용감한체 '쌍계사 쪽으로 하산하자',운동 잘하던 중근이와 우리는 '온 곳으로 하산하자' 의견이 엇갈렸다.결국 창환이가 혼자 전라도 쪽으로 발걸음 떼다가 '어이쿠!'눈 속에 쑥 파묻히고 말았다.손끝도 보이지 않았다.눈 속에서 목소리만 들렸다.우리 키보다 큰 소나무가지를 꺽어서 눈구덩이 속에 밀어넣어 창환이를 건져올렸더니 그 몇분 새에 동태처럼 새파랗게 얼어서 오돌오돌 떨던 모습이 생각난다.

눈쌓인 지리산 썰매 타듯 내려오던 기분은 지금도 신난다.
눈 위에 반듯이 누워 몸만 흔들면 주루룩 주루룩 미끄러진다.올라간 시간 반도 안걸리고 내려온다.
법계사에 오니 보살님이 보이지않아 우리는 다시 신나게 미끄럼질치며 산을 내려왔다.

산 아래 쯤 왔을 때였다.
동네 청년 여나믄명 데리고 보살님이 산을 올라오고 있었다.우리가 조난 당했다고 짐작한 보살님이 구조대를 만들어 온 것이다.

그때 그 무모한 지리산 등반을 같이 했던 이중근이는 그 뒤 엘지 씨름팀 감독,창환이는 진주서 건설회사 한 것은 아는데,한탁이 소식은 통 모른다.법계사 보살님은 타계하셨다고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