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지리산

산행기>산의 추억

2004.01.02 15:33

수고했다...

조회 수 2372 댓글 13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어제 2004년 첫날은 진주에서 보냈다.
인연인 사람의 집에 인사하러 갔다.
아침 일찍 부산을 나서,밤 늦게 부산에 왔다.
집에 도착한 인연의 사람이 수고했다고 했다.
인연이라는 것이...
작년,2003년 음력설연휴를 이용하여 지리산을 찾았다.
눈이 많이 와서 지리산은 연일 입산통제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산장에 예약해놓고,
나에게 주어진 황금 같은 시간을 지리산이라는 참 너른 자연과 함께 보내리라.
눈이 너무 많이 오면 내려오라는 부모님의 염려스런 말씀을 듣고,
새벽5시 20분 경 집을 나섰다.
도시지만 그래도 언제나 하늘엔 반짝이는 별이 있다.
공기도 아주 시원하고 좋다.
늘 나서는 길은 두려움이 설레임보다 크다.
아직도 까만 하늘을 벗삼아 30여분 기다린 후에 버스를 타고 터미널로 갔다.
터미널은 귀성객들로 분주하다.
매표를 하고, 구례버스 타는 곳에 가니 줄이 엄청 길다.
아! 어떻게... 갈 수 있을려나...배낭이 갑자기 무겁고 머리가 어지럽다.
순간, '혼자가실 분'하고 버스안내 하시는 분이 외친다.
야호, 잽싸게 뛰어가자 마지막 남겨진 한자리를 채우고 차는 구례를 향해 떠났다.
작년 추석연휴 때는 고속도로가 막혀서 시간이 많이 늦었는데,
다행히 버스운행시각에 맞게 하동을 들러 구례에 도착했다.
구례에서 화엄사가는 버스를 탔다.
늘 그렇지만 이런 연휴에 화엄사가는 버스를 타는 사람은 아주 적다.
화엄사버스정류소에 도착해서,
화엄사매표소까지 얼음길을 조심조심 걸어가고 있었다.
뒤에서 빵빵한다. 안 돌아보고 계속 갔다. 자꾸 빵빵한다. 이상하다, 나는 지금 차의 통행에 지장이 없을 만큼 잘 걷고 있는데, 왜 자꾸 빵빵하지...그래서 안 돌아보고 계속 갔다.
그런데 차가 내 앞을 훨씬 앞질러 서더니만, 타라고 한다.
나는 '아니요' 했는데, 옆에 아이가 있다.
까무잡잡한  진짜 촌아(촌아이)같은 취학 전 아동이 있다.
거절했는데도 얼음길이 위험하다고 타라고 하신다.
차를 탔다.
매표소를 그냥 통과 ,한화콘도 앞에서 내려 주셨다.
내리기 전 그 아이에게 뭔가를 주고 싶었다.
갤로퍼차 앞자석에 뚱뚱한 배낭을 안고 있었던 터라, 음식물을 꺼내 주기엔 그렇고,
돈을 줄까하고 하니, 그것도 좀 그렇고...어물어물하다 그만 차에서 내려 버렸다.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화엄사 경내로 들어설 때까지 계속됐다.
또 입장료를 안 낸 것이 영 꺼림직 했다.
꽁꽁 얼어버린 길을 양팔을 벌리고 걸어가,
가까스로 화엄사 경내에 다다를 수 있었다.
아침의 절은, 또 이런 연휴의 절은 참 조용해서 좋다.
대웅전을 살짝 보니 아무도 없다.
한 바퀴 돌고 나서 들어 갈려고 문을 찌찍 여니,
회색몸빼를 입은 아주머니께서 계신다.
다시 문을 닫을려니, 손짓으로 들어오라고한다.
절하고 가라고 한다.
절을 어떻게 하냐고 하니, 정성스럽게 세 번 하라고 한다.
화엄사 대웅전,
큰 부처불상이 있고, 음식이 차려져 있고 반들반들한 마루바닥이 기분좋은,
조금은 스산한 공간에서 나는 절을 했다.
언젠가 tv에서 봤던 모습을 생각하며,
손을 모으고 눈을 감고 허리를 굽히고 몸을 아주 낮게 하여 절을 했다.
세 번을 했는데, 한번 한번이 참 어려웠다.
한번  하고 일어설때마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눈을 감고 해서 그런가....?
절을 하고 나오는데, 종이 한 장을 내민다.
이걸 적어주고 가면 좋단다.
아버지 엄마 언니 오빠 동생 형부 큰올케 작은올케 우리조카이름 내이름,
이렇게 다 써놓고 보니 종이 줄수는 다 채웠는데, 내 옆칸이 허전하다.
참 허전하다.
얼마의 돈을 시주하고 대웅전을 나섰다.
화엄사를 나오기전 내내, 다시가서 옆에다 내 친구 이름을 적을까하고 생각했다.
근데, 그건 거짓인데..거짓인데도 써놓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부처님께 거짓말하면 안되기에 쓸쓸한 마음을 안고 화엄사를 벗어났다.
화엄사를 나와 등산로를 향하는 찻집앞 쉼터에서 아이젠과 스패츠를 찼다.
걷는다.
내 앞에 꼭 내 키만큼의 거리로 조금 늙은 부부가 걸어간다.
간편한 차림이다.
서툰 눈길이라 그 차이가 좁혀지지도 않고, 꼭 그만큼이다.
다리앞에서 그분들이 걸음을 멈추신다.
눈길을 조심조심 걸어오는 나에게 시선을 주신다.
내가 미소짓자, 아주머니께서 혼자 왔냐고 묻는다.
'예.'라는 대답이 끝나자 아저씨께서 뭐라 하신다.
겨울산은 혼자오면 안된다고...
산에 혼자 다니면서 늘 들어오던 소리라, 씽긋 웃자,
대뜸 막 야단이시다.
좀 무섭다.
'예, 다음부턴 둘이 오겠습니다.'
이렇게 답하자 그분들은 연기암(?)까지만 간다며 조심해서 다니라고 하신다.
그분들을 뒤로하며 조금 걸어가다보니,
팻말이 있고 거기엔 연기암이라는 글자가 뚜렷이 적혀있었다.
노고단쪽으로 길을 접어들며, 이제 마음을 다 잡아 먹고 가는데, '어이 아가씨'하고 부른다.
앞만 보고 가고 있어서, 어디서 부르는지 몰라 뚝 서있다가, 잘 못 들었나하며 들려왔던 소리의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니, 거기 사람이 서 있다.
놀랍고, 앞길만 있는 산길 인줄 알았는데, 옆에 이런 장소가 있었다니...
나무탁자에 긴 나무의자에...이름하여 간이 취사장.
'혼자 오신 거예요?'
내가 미소로 끄덕이자, 같이 가자며  오란다.
괜찮다며 혼자 간다니깐, 잠깐 오란다.
자기 키만한 배낭에 탁자에 어질러져 있던 물건들을 주섬주섬 챙기며,
'학생이예요?' 하고 묻는다.
'아니요, 돈 벌이는데예' 내가 이렇게 대답하자 껄걸 웃는다.
빠다코코낫을 들며,'이거 먹을래요?'한다.
고개를 가로젓자 ,사과를 집어들며
'먹을래요?'
'예'
겹겹히 옷을 껴입은 나와는 달리, 얇은 티만 입고 목이 훨렁하니 춥게 보인다.
'와, 이 아저씨는 산꾼인 갑다'이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이름이 뭐예요?'
'허윤희'
배낭이 다 꾸려지자, 남겨진 사과를 칼로 쪼개서 준다.
사과를 다 먹자, 먼저 비탈진 눈쌓인 산길을 나선다.
참 말을 많이 시킨다.
시끄럽기도 하고,
물어보기에 대답은 해주지만 산길을 걸어가면서 말을 하는건 나에겐 힘들다.
간격을 넓히기 위해 일부러 천천히 걸었다.
그리고,
'저는 걸음이 느려 천천히 갈테니, 먼저 가세요'라는 말까지 했다.
그런데도, 조금 가면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
한참 있다가 가도 또 앉아서 기다리고 있다.
아, 안되겠다. 어쩔수 없으니, 그냥 이 아저씨랑 같이 가야겠다.
'아저씨예요?'
'아니요, 총각'
이렇게 천천히 얘기를 주고 받으며,산길을 걸어갔다.
노고단산장에 도착, 예약이 안된 이 총각은 그날이후로 나외 1인 동행이 되었다.
눈이 너무 많이 내려 노고단에서 천왕봉쪽으로의 길은 통제란다.
아직 천왕봉쪽에서 넘어온 사람도 없고,
노고단에서 천왕봉쪽으로 간 사람도 없단다.
오늘 노고단에서 자고, 사태를 지켜보기로 했다.
아직 자기엔 한참 이른 시간이라, 그 총각과 나는 노고단을 산책했다.
다리가 푹푹 들어가는 눈길에서 사진도 찍고 찍어주고 눈두둑을 만들어 그 위에 앉아서 석양을 바라보았다.
참 고요했다.
'손 좀 줄래요?'
'아니요.'
허벅지까지 푹푹빠지는 눈길을 그 총각이 길을 만들면, 나는 뒤따라서 노고단 참 좋은 산책길을 내려왔다.
다음날 아침, 여전히 천왕봉쪽으로의 길은 통제란다.
어쩔수 없이 어제 올라갔던 길을 다시 내려왔다.
나외 동행1인 그 총각과 나는 연기암까지 내려왔다.
'저기 가볼래요?'
'예'
연기암 초입에 배낭을 벗어두고 들어갔다.
암자를 이리저리 구경하던 우리에게 어떤 할머니 한분이 보였다.
그 총각 할머니에게 가더니만, 산에 왔던 사람인데 공양할 수 있겠냐고 물어본다.
할머니 나를 보시더니만, 이리 오란다.
연기암내 식당에 차려진 떡국과 밥과 반찬 그리고 각종 과일.
설날 아침을 아주 잘 먹었다.
먹고나서,  설거지를 했다.
설거지를 하면 할수록 그릇이 계속 나왔다.
그러나 즐거운 마음으로 했다.
다하고 나니, 그 총각이 수고했다고 했다.
...

  • ?
    허허바다 2004.01.02 16:26
    끝이 묘합니다.. 그래서 그 총각과? (또 탐정 짓을 하려는 요 방정맞은 마음을 안주머니 속에 쏘옥 집어 넣어 버렸습니다) 아! 저렇게 인연을 만드는구나.. 과감하게 오라하고 안 오면 계속 오라하여 ㅋㅋ
  • ?
    복지리 2004.01.02 17:32
    제일 마지막의 말줄임표.. 그안에 너무나 많은 이야기가 있을거 같다는 느낌.. 저만 그런가요..? 다음에 계속 이어 주실거죠..?
  • ?
    소주한잔 2004.01.04 14:03
    헐!!
    글이 여기서 끝난건 아니져 이어서 해줄꺼죠??
    "진주의 인연" 글속의 총각???...^^*
  • ?
    바람돌이 2004.01.04 23:23
    참 쓸쓸한 산행이군요 명절날 산행이라 정말 큰산이죠 모든근심을 안아줄만큼 정말 좋은 인연이었음 합니다.
  • ?
    오 해 봉 2004.01.05 00:23
    yalu님 좋은인연이야기 참 좋으네요.부산에서 지리산에올려면 퍽으나
    힘드셨지요.앞으로는 진주에서 중산리나 대원사가는 뻐스한번만 타면되니 얼마나 좋으나요.yalu님 결혼식때는 배낭메고 가볼렵니다.
    새해에는 좋은일만 있으세요.
  • ?
    솔메 2004.01.05 11:06
    얄루님의 멋진 글을 년초에 대하니 기분이 좋습니다..
    복많이 받고 끝없이 행복하소서~!
  • ?
    moveon 2004.01.06 12:28
    음~~드디어 얄루님이 인연을 만난듯하오니~~~~기대됩니다.
    결혼 청첩이든 약혼 소식이든 ㅎㅎㅎㅎㅎㅎ
  • profile
    김수훈 2004.01.07 15:49
    그러니까- 결론인즉슨, 예비신랑 집에 인사하러 간 거로구나!
    맞지요? 맞지? 맞지?
  • ?
    길없는여행 2004.01.10 13:03
    여운을 깊이 남기신걸 보면 "ing"인걸요. 그쵸?
    좋은 인연이길 바랍니다.
  • ?
    zoom 2004.01.16 23:11
    "인연인 사람의 집에 인사하러 갔다." 요 대목에서 느낌은 그 인연의 총각분과 결혼이 다가온다는 의미로 생각되옵니다 ^^
    좋은 인연이 되어 혼자가 아닌 두분이서 찾는 지리산이 되길 바랍니다
  • ?
    지리1915 2004.01.19 01:15
    흠, 정말 끝이 묘하네요.많은 함축을 지닌 마무린데... 위에 글 올린 많은 님들이 생각하시는것처럼 그런 좋은 인연이겟지요? 잘 되시길 ( 이미 잘 된거라면, 앞으로의 다른일에서) 바랍니다. 줌님이 적으신대로 두분이 같이 산에 다니시면 더욱 좋겠지요. 참 아름다울거라 생각합니다.실제 제가 아는형중엔 신혼여행으로 지리산 종주 하신분이 계십니다(좋은건지는 좀 헷갈립니다만 좋게 받아들입니다) 음,제가 너무 앞서 나간건 아닐거라 생각하며 암튼 좋은일 있으시길 바랍니다.
  • ?
    정진도 2004.01.22 07:43
    좋은일이 계속되시길바라며 다음편기대합니다......
  • ?
    섬호정 2004.06.18 23:32
    ~yalu예요~ 언젠가 카페에 방문한 적 있던 걸로 기억나는 그 yalu님!
    느낌으론 퍽이나 순수하고 넓은 마음의 소유자라 생각되던 그 yalu님! <수고했다> 그 총각님, 그런 yalu님을 놓칠 순 없었겠죠... 그 후론 한동안 글소식이 뜸하다 싶더니...보금자리 하나 꾸리셨는지요...소식오길...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지리산의 추억 4 file 운영자 2001.09.15 9607
69 예전에는... 4 예전에 2004.05.31 2150
68 물(人) 좋은 지리산 (1) 4 疊疊山中 2004.05.28 2162
67 그리움에.... 7 file 들꽃 2004.04.02 2548
66 나의 꿈 지리산 4 바람꽃 2004.02.28 2932
65 碧宵寒月을 아시나요? 1 벽소령 2004.02.26 2325
64 인디언님과의 첫 만남.. 두번째 만남...그리고... 5 2004.02.03 2564
63 그려~ 전국의 노처녀 노총각 다 모여. 5 file 들꽃 2004.01.30 2932
62 지리산과의 첫 인연 - 하중훈련 11 지리1915 2004.01.17 2863
» 수고했다... 13 yalu 2004.01.02 2372
60 ^.~ 6 file yalu 2004.05.27 1882
59 가슴에 기억되는 지리산 사람이 있다면.. 은작가 2003.12.26 2293
58 [re] 가슴에 기억되는 지리산 사람이 있다면.. 1 신용섭 2003.12.27 2085
57 세석에서 보낸 지난 크리스마스 7 들꽃 2003.12.24 2498
56 점점 가물가물해져 가는 추억들 7 허수무 2003.12.13 2379
55 아!... 그립습니다. 3 신용섭 2003.12.06 2481
54 [re] 아!... 그립습니다. 신용섭 2003.12.25 1803
53 억새바다에서 만난 지리산 10 해연 2003.10.29 2861
52 그녀와 세번째 만남,그리고 마지막... 8 소성 2003.10.16 3823
51 [re] 그녀와 세번째 만남에 부쳐 허허바다 2003.10.18 2335
50 그녀와의 만남 두번째 8 소성 2003.10.14 2474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Next
/ 8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