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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산행기>산의 추억

조회 수 2975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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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人)좋은 지리산(8) - (종)밥 짓는 여인 



우연히 한 여자를 만나 여기까지 무사히 잘 왔다. 
역시 여자란 남자를 구속할 줄도 알고 자유를 줄줄 알 때 
존재의 가치가 더욱 빛나는 것 같다. 
이제부터 나 홀로 길을 걸어 가야한다. 
애초 집을 떠날 때부터 이러고 싶어 여기까지 온 것이다. 
어제 밤부터 시작한 비는 아직도 그칠 줄을 모른다. 
조금 내려오니 계곡 건너 언덕의 뱀사골 산장이 쓸쓸해 보인다. 
이곳에도 등산객이란 아무도 없다. 비를 맞지 않은 곳에서 다시 한 번 
배낭과 신발 끈을 재정비하며 지루한 하산 길을 대비 했다. 

잡목이 우거진 오솔길을 지나 계곡을 건너려하니 무서울 정도로 물살도 
급하고 흙물이 많이 불었다. 평소에도 양쪽 바위위에 쪽 나무 몇 개를 
새끼줄로 엮어 걸쳐놓고, 몇 발 안 되는 쪽다리 위를 건너던 곳이다.
그것도 흔적 없이 떠내려갔을 뿐더러 양쪽 바위 끝도 보이지 않는다. 
빤히 건너보이는 서너 발 폭의 계곡, 이곳만 건너면 대한민국 어디라도 
갈 수 있는데, 이 유혹에 무모한 도전을 하다가 희생을 당하기도 했다. 

그나저나 나도 참 난감하다. 
이일을 어떡하면 좋다 말인가? 
비는 아직도 부슬부슬 내리는데 쉽게 물이 줄어들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도루 산장으로 올라가 일박을 할 것인지 젖은 침낭과 텐트라도 
이용 해 여기서 잘 것인지 고민하다가 결국 잡목사이에 있는 빈 공간에 
어두워지기 전에 텐트를 쳤다. 어느새 주위는 어스름 해졌다. 

비에 젖은 바지를 입고 침낭 속에 들어가는 게 유리한지, 벗는 게 유리한지 
계산타가 결국 벗고 들어갔다. 
침낭 일부까지 물이 베어들었는지 찹찹하다. 
그래도 내 좋아서 하는 짓이니, 참아야지 하고 있는데, 위에서 사람소리가 나고 
내려오는 인기척이 났다. 어? 밖에 나가 쪽다리가 떠내려가 못 건넌다고 얘기를 
해주어야하는데 하면서 쉽게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설마, 이 시간에 산에 다니는 사람이 무모한 짓이야 하겠나? 
도루 돌아오겠지. 그런데 한참을 기다려도 다시 돌아오는 인기척이 없다. 
이상하다? 이곳을 건너지 않고 우회하는 길이라도 있다 말인가? 
에라, 모르겠다. 문득 비상용 위스키가 생각나 빈속에 한 모금을 하고 잠을 청했다. 
잠이 막 들려는데 또 사람들이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아!~ 지금이라도 저 사람들을 따라가면 이 칙칙한 텐트에서 자지 않아도 
되는데. 그것도 마음 뿐, 언제 저 사람들을 기다리게 하고 배낭을 꾸린다. 
말인가? 결국 이 사람들도 돌아오지 않는걸 보니 모두가 잘 갔을 것 같다. 
나만 우회로가 있는 줄을 모르고 이러고 있는 것 같았다. 
언젠가 이곳저곳에 철교 가설 작업이 한창이던 것을 보고 지리산에 고속도로 
공사하느냐? 며, 점점 운치가 떨어진다고 투덜거린 적이 떠올랐다. 

주위는 깜깜한데 인기척 하나 없는 계곡에 물 흐르는 진동소리가 바위 굴러가는 
소리처럼 그 기세가 등등하고 우렁차다. 그 소리에 두려움도 느낄 새 없이 
이 산중에서 나 홀로 잠이 들었다. 
비 내리는 지리산에서 산장에 들어가지 않고 결국 2 박을 하는 것이다.
언제나 그랬다. 집을 떠날 때 이번에는 꼭 종주를 해야지 하고 준비를 해 
떠나지만, 이러한 각오도 산 입새만 들어서면 와!~ 하는 소리와 함께 무기력
해져 버린다. 그저 지리산 어느 모퉁이에서라도 좀더 오래있고 싶은 생각뿐이다.
집처럼 하루 종일 책도 보고, 밥도 먹고, 잠도 자고, 노래도
하고 지리산의 하루를 지켜보고 싶은 것이 나의 소박한 꿈이다. 
 
다음날 아침의 청명한 날씨, 찬란한 햇빛, 맑은 공기, 풋풋한 풀냄새 
온 산의 나뭇잎들이 이제 갓 목욕을 하고나온 여인처럼 눈부시고 생기가 
돌아 촉촉하다. 아!~ 어제 멋모르고 여기서 자게 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O sole mio 가 이럴 때 작사, 작곡 되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다시 한 번 산에서는 아무리 힘들어도, 짜증스럽거나 남과 시비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물론 산장 속은 예외지만. 
난생 처음 느껴보는 기분 좋고 희망찬 초록의 아침을 맞이했다.

물에 젖은 장비들을 챙겨 메고 계곡에 당도하니, 어제와 달리 맑고
푸른 물이 힘차게 흘러가고 있다. 쪽다리를 걸치든 바위도 물위에 나타났다.
제자리서 멀리뛰기를 하면 건너 질 것도 같았다.
우선 무거운 배낭부터 먼저 던져 놓아야 했다. 온 힘을 모아 

“하나~ 두울~ 다시”
“하나~ 둘~ 셋!!! 다행이 배낭이 바위에 잘 붙었다.
그런데 어찌 좀 심상찮다. 배낭 하단이 물에 약간 잠겼는데, 워낙 물살이 세니
그런대로 잘 붙어있던 배낭이 슬슬 기울기 시작하더니 그냥 휩쓸려 떠내려갔다.
어? 어? 하는 사이 밑에 있는 소(沼)에 떨어져 물결에 따라 한바퀴를 돌더니 또 
잠수를 했다가 다시 떠올라 다행히 길 쪽 낮은 물가에서 멈추었다.
휴!~ 천만 다행이었다. 가라앉거나 저쪽 절벽에 붙었다면 포기를 해야 할 판이다.

나도 하나, 둘, 셋하며 뛰어 건넜다.
바다에서 컨테이너 박스가 물에 떠 몇 시간을 버틴다 하더니. 배낭도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오늘 내 배낭도 주인을 잘 못 만나 물 먹을 대로 먹었을 것 같다.
가리모어! 저 멀리 이국땅 영국에서 여기까지 온 너의 운명도 파란만장 하구나.

어제와 달리 비갠 정오는 기분 좋을 만큼 따끈따끈하다.
나는 개울로 내려가 시에라컵으로 산삼뿌리, 사향노루 오줌이 
섞여있을 것 같은 맑은 물을 두 컵이나 퍼마셔 허기를 채웠다. 
창공은 맑고 구름 한 점 없다.

문득 하늘에 계신 두 분의 영혼이 그리워진다.
오늘 같은 명절에 차례도 못 모시고 여기까지와 방황하니 한없이 죄스럽다.
그래도 제가 사랑하니깐 언제나 그리워하듯이 부모님께서도 모든 걸 용서 해 
주셔서, 폭우도 견디고 벼락도 피하고 배낭도 건지게 해 주신 것 같다.

“부모님, 언제 한 번 휴가 내어 내려오시면, 
 지리산 좋은 곳으로 잘 모시겠습니다.
 꼬옥, 한 번 와 주십시오.”

살아생전 어렵고 힘든 시기에 어머님은 어디서 일을 하고 저녁때가 되어 
돌아오시면, 먼저 부엌에 들어서자마자 바가지에 물을 퍼 벌컥벌컥 마시는
모습을 보았는데, 이것이 목이 마르시어 마시는 것이 아니고, 허기를 물배로 
채우기 위한 것이란 것을 한 참 성인이 되어서야 형님으로부터 들어 알았다.
                                                         
                                                             [疊疊山中]

타박타박 타박네야 너 어드메 울며 가니 
우리 엄마 무덤가에 젖 먹으러 찾아 간다 

물이 깊어서 못 간단다 물이 깊으면 헤엄치지 
산이 높아서 못 간단다 산이 높으면 기어가지 

명태 줄라 명태 싫다 가지 줄라 가지 싫다 
우리 엄마 젖을 다오 우리 엄마 젖을 다오 

우리 엄마 무덤가에 기어기어 와서 보니 
빛깔 곱고 탐스러운 개똥참외 열렸길래 

두 손으로 따서 들고 정신없이 먹어 보니 
우리 엄마 살아생전 내게 주던 젖 맛 일세 

명태 줄라 명태 싫다 가지 줄라 가지 싫다 
우리 엄마 젖을 다오 우리 엄마 젖을 다오 

명태 줄라 명태 싫다 가지 줄라 가지 싫다 
우리 엄마 젖을 다오 우리 엄마 젖을 다오. 





  • ?
    김수훈 2004.07.04 18:48
    아니, "밥 짓는 여인"이 어떻게 됐는지를 밝히지도 않고 끝을 맺을 수가 있습니까? "그냥 그렇게 헤어졌다"는 말로 적당히 얼버무릴 생각일랑 마십시오. 비밀은 지켜드리겠습니다.
    <첩첩산중님 글은 한 줄에서 오른쪽 끝부분이 잘리는 수가 많던데요? 지금 이 글도 그렇습니다. 저만 그런지는 모르겠지만요.>
  • ?
    疊疊山中 2004.07.04 21:35
    그렇잖아도 그 점을 참작하여 최대한 폭을 줄였습니다.
    아무래도 두 사람이 전생에 잘라먹기 놀이를 했던 것 같습니다.
    "밥 짓는 여인"은 산 토끼 꼭 잡아 몸보신 해야 한다며
    토끼봉으로 넘어 갔습니다.
  • ?
    정민기 2004.07.05 17:39
    그녀는 아마도 전생에 사냥꾼이었나 봅니다.
    돼지평전에서는...
    노루목에서는...^^*
  • ?
    오 해 봉 2004.07.06 14:55
    사냥꾼은 무슨,
    첩첩산중님께서 비를몽땅맞고 배낭은무겁지 술은다먹고없지
    에라 못가겠다 가까운 반선으로 내려가자 한것이그만,
  • ?
    sagesse 2004.07.06 17:52
    뱀사골 급류,,, 고정희 시인이 생각나는군요.
    근데 위의 사진,,, 정말 좋네요.
    저걸 무사히 귀환하신 疊疊山中 님께 탁탁,,,털어드리면 딱 좋을텐데...
  • ?
    진로 2004.07.08 11:44
    밥 짓는 여인에 대해 마지막까지 써 주셔야 됩니다.
    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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